초유국서용연[草儒國西龍戀] 71.
"후우- 다 놀고보니까 말하는건데말이야,"
사람이 굉장히 복작이는 음식점에서 괴상한 가면을 뒤집어쓴 금발머리의 남자와,
그 맞은편에 얌전히 앉아있는 여자.
굉장히 눈에 띄었지만 누구하나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기- 뭐 기분 거지같았다거나 그런건 아니지?"
"..네?"
공주가 의아한듯이 물어보자 가령은 말하기 좀 그런듯 흠흠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이번 자유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싶어 조금이나마
진탕 놀고싶었거든.. 일방적으로 널 잡아끌며 다닌것같아서-
중간에 막- 찐한 애정표현같은거 하는 놀이에도 잘 따라와 줬잖아. 그러니까 내가 너무 염치없어져서-"
"아.아니에요!(기분 좀 많이 괜찮았는데.)"
..이번..자유의 마지막?
공주는 가령의 말이 약간 마음에 걸리면서도 그에게 즐거웠다는걸 보여주기위해
밝게 웃음지었다.
그의 갑작스런 출현, 그때부터 잘 진행되었던 계획은 산산조각이 되었다.
전혀 예정에 없었다. 그와 만난 기간, 안 기간, 모든것이 너무나 짧았다.
그러나 그런 짧은시간임에도 가령의 존재는 서용보다도 중요해져있었다.
서용처럼 정체가 확실한 남자도 아니다.
성격도 의문이고, 하는말도 의문이며, 행동도 의문투성이인 남자다.
그런데- 같이 있으면 편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게 있다면 그것은
흑단같이 검은 머리칼이 아닌, 달빛의 색과 똑같은, 아니 더 찬란히 빛나는 금색의 머리칼이였다.
'..지조를 지키자.'
내심 가령이 그 남자였으면 하고 바라는 자신이 미워지는 공주였다.
사랑이란 마음가는대로- 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이것이 안되니까 저것'이라는 심보로 가령을 바라보는건 아닐까?
만약 진짜 그런이유로 저 남자를 선택한다면 그건 내가 너무 추악해보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자신이 날 용서할수없을거야.
-계속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살이, 사랑이 또 이런 난관에 부딪칠줄 누가 꿈에라도 알았겠는가.
'서용이건 저기 가령님이건, 내가 반한사람은 달빛의 남자야.'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알아내지?
공주는 그가 보이지 않게 작은 주먹을 꼭 쥐며 곰곰히 생각했다.
그녀가 침묵하고 있는 사이, 가령도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주를 바라보는 가령의 눈빛은 점점더 침울해지고 아련해져만 갔으니.
"...공주,"
"...?"
그가 물을 한컵 마시고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그 후 또박또박,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운명을..믿는가?"
".....!"
운명을 믿는가?
운명을 믿느냐고?
운명을..? 운명이란것을..?
그의 물음을 듣는 순간 공주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저 사람이 저런 생각도 할줄 알았나? (보기엔 전혀..)
낭만적인. 추상적인. 의심잘하는 인간인 몸으로써는 공상일 뿐인 그 운명이란것을 믿느냐고,
가령이 그녀에게 말하고있었다.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그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최종적으로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아로하 공주로써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주에게 있어서 그는 바람같았다. 잡힐듯 잡히지 않고, 어떻게 나를 흔들어댈지 모르는
전혀 알수없는 미지의 세계에 존재하는것같은 사람.
그러나, 앞뒤 머리를 따져가며 말할겨를없이 공주의 입술은 제멋대로 행동하고있었다.
"믿어요.. 운명이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잘 믿지 않는 그것을?"
"...."
글쎄, 물론 철학이니 인간이니 세계니, 이성에 딱딱 들어맞게 모든것을 보이는것으로만
판단하는 인간들은 운명을 개보듯하겠지.
하지만 여자는 달라. 대다수의 여자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니까.
그러니까 아름다운것만을 믿고싶어하지. 그런 욕구속에서 만들어낸 그것이 운명이란 단어니까.
..공주는 자신의 나름대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운명이라는것이 있다면, 그건 신의 인형에 지나지 않을뿐이란 말이 된다.
그래도 믿고싶은가?"
"......아,"
-그건-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듯이,
..가령의 말은 거의 생각지도 못한 것이였기에.
신의 인형?
..싫었다. 내가 어릴때 가지고 놀던 종이인형같은 존재라니, 싫고도 싫었다.
하지만, 필연적인 만남은 겪고싶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었다.
"신은 우리에게 이것이 이렇다라고 말해주시지 않으니, 추측밖에 할 수 없겠죠.
그러니 우린 항상 그런 추측을 우리 좋은대로 몰아가지 않나요?"
공주는 관심있는 주제가 나오자 살짝 얼굴을 붉히며 흥분했다.
그런 아로하공주를 가령은 뚫어지도록 바라보기만했다.
아무말없이, 다음말을 기다렸다.
"그러니 나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운명을 믿겠어요."
"어떻게?"
"간단해요. 정말 이기적으로 믿어버리는거죠."
하나도 둘도 셋도, 모두 아름답도록, 이기적이라고 생각될만큼 아름답게 꾸미고, 꾸민
운명을 믿는거야.
"운명에 여러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고 믿는거예요. 그 길은 나의 선택이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거예요. 나중에 그 길이 좋지 않았다 해도, 그건 나의 선택이니
후회는 없지 않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그건 신이 정한대로 행동하는 인형도 아닌 존재가 되는거겠죠.
그분이 그렇게 잔인하지 않다고 난 믿어요.
이렇게 아름답게 세상을 가꾸신분이 인형놀이를 하시진 않을거예요.
나는.. 운명을 믿지만, 내 스스로 운명의 길을 택할수 있다고 믿어요."
"...그런가..."
...
...
공주의 장황한 말을 듣고도 가령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공주의 추측이 실제와 맞는 엄청난것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저 질문을 하나 덧붙였을뿐.
"넌.. 네가 지금 운명의 길을 잘 택해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
이렇게 힘든걸 보면, 아픈걸 보면,
잘 택한건.. 아니겠지요.
공주는 약간 슬픈듯한 기색으로 나직히 말했다.
..아니라고.
"아니에요. 난- 힘든쪽을 택한것같네요."
"후회하지 않나?"
"내가..택한 길이에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에게 내색을 할수는 없었다.
공주로써의 자존심이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아로하공주는 씩씩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언제나 행복하게만 살수는 없을거예요. 시련도, 운이 나쁘면 영원한 시련도 있겠죠.
그러나 무엇하나 내가 선택했으니까. 후회하지 않아요."
소휴 오라버니를 사랑해버린것도, 후회하지 않아.
서용을, 혹은 저사람에게 반해버린것도, 후회하지 않아.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가령은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나도 이런 길을 걸어가는것에 후회하지 않겠다."
"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가령은 평소에 짓던 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공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곧 불꽃행사를 할것이다. 그게 가장 보기 좋다는데.. 갈거지?"
"....."
..왠지 조금더 아까보다 부드러워지고 다정해진것같은데?
공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기쁘게 그의 손을 받으려 손을 내민 순간,
"오늘은 네 오라비를 정화한 그날 밤보다 더 밝게 달이 뜨는구나."
...
...
뭐?
그녀는 그녀의 귀를 순간적으로 의심했다.
입가에 살짝 띠었던 귀여운 미소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져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오라비가 변하기 전날 밤- 그날밤이였다. 정확히 기억하고있었다.
오라비에게 상처받아 하염없이 울고있던 때 달빛을 맞고 있던 남자를 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밤이였다.
그날밤에 서용인지 가령인지 모를 남자를 보고 새로운 감정에 빠졌다.
그런데,
그랬는데, 방금 그 말은..
"뭐라고.. 하셨어요?"
"이런.. 너무 놀라네."
그는 씩 웃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나 공주는 그 손을 거칠게 빼내고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절박한 목소리로, 어떻게 들리면 환희에 가득찬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기를-
"말해줘요!! 당신이에요? 당신이 그날 달 아래서 기도하던 그 남자예요?"
"...."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고개만 살짝 끄덕여도 좋아요.
아니면, 긍정하는 미소라도- 아주 살짝이라도-
"... 나가자. 불꽃놀이는 처음부터 봐야 복이온다더라."
끝내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표정은 맑게 웃고있었다.
그 미소를 본 공주는 멍하니 가령의 옷자락을 스르르 놓았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그리고 기분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지금 걸어가야 할지 뛰어가야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딱 하나의 생각밖에는 나는게 없었다.
'..찾았어. 이 분이란걸 알았다. 이 사람이라고.'
.
.
***
***
***
.
.
.
"합환주 하시려오?"
"..네?"
편한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우리둘에게 늙수그레한 남자 하나가 다가섰다.
어깨엔 뭔가 붉은 포로 싸인 잔들을 잔뜩 지고 있었고
한손에는 잔 두개를 들고있었다.
또한 얼굴은 재미나게 반짝이고 있었다.
"무슨..주요?"
그 장사꾼(?)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비령님을 대신해서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을 하려다 갑자기 뭔가 생각나는듯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워했다.
"다..당신은.."
장사꾼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내게로 치켜세우며 놀라움에 가득찬듯 말했다.
"가묘님???"
"...에.. 얼굴이 보이나요?"
"아이고, 그러면 삭월도 아닌 달이 뜨는데 당연히 얼굴이 비춰지시지요!"
반달이라 다 신경 안쓰고 넘어갈줄알았는데..긁적..
그는 뭔가 대단한걸 만났다는듯[살짝 기분나빴음-_-]
손을 싹싹 비비며 굽실거리는 말투로 내게 슬쩍 말했다.
"나라에서 가장 미인이라는분을 만나니 새삼 나이가 들었는데도 괜시리
가슴이 쿵쿵하는군요.. 허허허, 뭐- 설마 혼자이십니까?"
"음- 물론 혼자는 아니지요."
"그렇죠? 역시 그렇죠? 그럼 동행자분은 어디.."
휙-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무엇인가가 내 허리를 확 잡아채어
그쪽으로 끌어당겼다.
졸지에 그의 무릎위에 앉게 된 나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비령님을 한번
노려보며 그에게 말했다.
"하.하.하.. 보.보다시피 이곳에.."
"으음- 그렇군요. 밤이라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 아니 그렇게 자세히 보실 필요는 없어요!"
이젠 장사꾼을 죽어라 노려보는 비령님의 얼굴을 재빨리 손으로
가리며 급히 말했다.
이놈 얼굴까지 드러나면- 진짜 그건 난리날거야. 싫어안돼-_- 소문날때 나더라도
오늘은 확실히 평화를 즐기자.
못알아채주길 바라는 내 마음과 달리 장사꾼은 뭔가 눈치챈듯히 씨익 미소를 지었고,
술잔 두개를 우리앞으로 내밀었다.
"합환주입니다. 원래 혼례식때 마시는것이지만,
대축일때 남녀에게 파는 물건이죠. 아무래도 특별한날이니까요. 불꽃놀이 거의 막바지쯤에
효력이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효력이요?"
"글쎄요.."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음흉한놈(장사꾼에서 음흉한놈으로 탈바꿈했음)은
아무말 않고 우리에게 그것을 쓱 내밀었다.
"좋은 추억을 남기려면 합환주같은건 마셔주셔야죠."
"아...ㆀ"
"남자분이 누구실-"
퍽!
...
그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뭔가가 그 장사치의 이마를 퍽 때리고 떨어졌다.
뭐지? 굉장히 딱딱한것같았는데. 퍽이라는 소리를 들어보니 =_=..
비령님이 던진건가?
살며시 옆의 눈치를 살피니, 비령님은 (여전히 내 손에 얼굴이 가려졌음에도)
앞쪽으로 노려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금강석이다." [※현대의 다이아몬드.]
"...에에에?!??"
잠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그는 금강석이란 소리를 듣자 눈이 쟁반만큼
커졌다.
-저 얼굴, 지금 어두워서 잘 안보이기에 망정이지,
낮에봤으면 아예 역겨웠을것이다.
비령님은 다시 나직히 말을 이어나갔다.
"좀더 세공하면 큰 집 오십채는 살수 있을거다."
"아.."
주섬주섬_.
말을 듣자마자 그 장사치는 기쁨에 겨운 웃음을 헤벌레 지으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금강석을 찾기 위해 손을 더듬더듬 하더니,
뭔가를 줍고는 막 이빨로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만수무강하실겁니다. 정말 복받으실겁니다 서요..아니, 공자님."
"....."
인간이란 참 역겹지. 특히 물질에 대한 탐욕이란.
나는 술잔 두개를 내려놓고 허겁지겁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비령님의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렸다.
"비령님."
"...."
"청옥도 엄청 귀한것일텐데, 왜 금강석을 주셨어요?"
"어차피 용의동굴에서는 돌만도 못한존재니까."
"그래도..."
"돈욕심으로 눈이 쟁반만해진 인간이 하루빨리 구원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
뭐.. 내가보기에도 줏대없고 역겹긴 하더라=_=..
허나 그건 당연한것일지도.. 돈이란 필요한존재니까 말이야.
나는 그가 내려놓고간 술잔을 들어 그에게 내밀었다.
"..뭐.. 이렇게 된이상 술값은 해야죠?"
"술... ... ..."
"합환주라잖아요."
"우린 결혼안했어."
"..그러니까.. 그냥 행사라잖아요..♨ 나중에 대비해서 연습삼아 해보는것도 좋지 않아요?"
'나중에.'
'연습.'
아아..나는 확실히 미래를 결정지어논거야..-_-..그런거야..
비령님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술잔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약간 말을 버벅이면서-
"여.연습은 필요없으니까 그냥 마시는게 나을거야."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합환주면 합환주답게 해야죠."
"아니, 그런건 한번이면 족해."
"쪽팔려요? 하지만 다른사람들도 다 저렇게 하는걸요."
내가 주위를 가르키며 말했다.
과연 주위의 연인들은 모두 그 잔을 하나씩 든채로
서로의 팔을 걸고 그것을 마시고있었다.
"으음...♨"
"뭘 고민해요? 별 뜻없이 그냥 마시면 되잖아요. 대축일이라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다짜고짜 비령님의 팔 안쪽으로 내 팔을 끼워넣은 다음
착 걸며 그를 향해 말했다,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면서~"
"...? ? .. ??"
"이.. 그냥 마셔요."
이상도하지.
결혼도, 그 무엇도 아닌데 가슴은 괜시리 뛰었다.
이 술이 합환주에 쓰이는 술이라고 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의식이 그래서 그런건지.
쪼로록.
나는 눈을 감고 입술을 열어 그 씁쓸한맛이 나는 액체를 받아들였다.
끙- 여느 술보다 더 씁쓸한 맛이 나네.
당장이라도 뱉고싶은 씁쓸함을 참고 끝까지 그것을 마신 후에야 나는
팔을 풀고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끙..약간 떫은맛이 나네요."
"...."
비령님은 다 마셨는지 빈 잔 속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넌 맛있었냐?
"분명히.. 떫은걸 보니 독주는 아닌듯한데.."
"...???"
"뭔가 이상한게 있는것같아."
"네?"
"..아니야. 뭐 괜찮겠지."
이잉? 난 하나도 그런느낌 안들었는데?
어쨌건 그는 술잔을 바위에 내려놓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에 딱 맞춰서 급작스레 굉음이 울리며 빨간 불빛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피잉- 퍼어어엉!!------
"와아아아아아아-"
"꺄아아!"
"멋있어라!!"
"와우~~"
사람들의 엄청난 환호성을 가르며 불꽃은 그렇게 하늘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퍼엉! 퍼어어엉! 퍼엉!
처음엔 빨간색의 빛으로 시작해서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완전한 흰색 등등,
굉장히 현란한 색깔을 선보이며 하늘에서 퍼졌던 불꽃들이
사그라들라 치면 또다시 올라오는 불꽃들.
"와아아아-"
사람들은 너나 할것없이 환호를 하며 손을 높이 흔들었다.
물론 그중에선 얌전히 서로에게만 기댄 채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이다.
".... 처음보는거죠?"
"당연하지."
"사실..나도 처음봐요."
이렇게 평화롭게 불꽃을 볼 시간이 여태까진 없었어.
나는 생긋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어깨를 살짝 기댔다.
이거야말로 항상 내가 그와 있을때 바란 모습이였어.
다정한모습의 결정체, 여기서 살짝 어깨만 잡아준다면-
"....."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하늘만을 멍하니 응시하고있을 뿐이였다.
이제는 다양한 색깔에 이어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꽃모양을 만들거나, 초유국이라는 글자를 새기고있는 하늘.
그 모양크기도 엄청나서, 저절로 눈이 떨어지지않을만 했다.
..뭐, 그럴수도 있으니까 봐준다. 처음보는거니까-
여전히 비령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멋지게 문양을 그려내고있는
불꽃을 감상하려는데,
비령님이 내게 나직하게 말했다.
"이게.. 대축일의 절정단계라 했었지?"
"...네. 그도그럴듯이 멋있잖아요. 밤하늘에 새겨진 저런것들이-"
"주로 다른인간들은 뭘하지?"
"뭐..소원같은걸 빌지 않을까요? 저라면 소원을 빌겠어요."
소원같은걸 빈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안식을..
영원히 식지 않는 이 감정을.. 비령님에 대한 이 사랑을 간직하고싶었다.
정말이지, 처음만났을땐 이리될줄 누가 알았을까?
절대 아무도 추측하지 못했을것이다.
갖은 난리통을 겪어가면서, 일반적으로 상상도 못할 일도 겪으면서,
그 사랑은 돈독히 이어갔던거.
"내가..."
계속 사랑의 표식을 쏘아올리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내가 들릴듯 말듯 말했다.
"비령님이 용이 되었을때.. 좋아한다고 말한적 있죠. 그 후에도.. 한번더 그랬었죠."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채, 눈길도 내게 주지 않은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비령님이 내 말을 듣고있다는걸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런데 말한적 있던가요."
이 기회를 타서 한번이라도 말해보고싶었다.
절대적으로 하기가 어색했던 그 말 한마디.
일반 연애책이나, 이야기같은곳에서 흔히나오는말. 하지만 진짜로는 하기 정말 어려운말.
"비령님을.. 많이 사랑하고있다구요.."
..............
.............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은은한 분위기에서. 계속 불꽃의 펑소리를 배경음으로.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는 모양을 배경그림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후아...'
편했다. 느낌은 그것뿐이였다.
막상 뱉어놓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것같았다.
뭐 비령님이 나도 사랑한다고 말할리가 없지만, 내가 말했다는것만으로도 난 굉장히 만족했다.
"저어기.."
그때-
틱_.틱_.
"...???"
나는 그에게서 조용히 몸을 떼고 비령님의 손을 바라보았다.
비령님은 이제 하늘에서 시선을 내리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뭔가를 하고있었다.
손가락을 틱틱 튕기는 동작을 한번. 두번. 계속계속.
그 튕기는 손가락 사이에서는 불꽃이 조금씩 일어나고있었다.
그에게서 많은양의 신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지? 힘을 쓰는건가?
화르르륵_
조금 시간이 지나자 비령님의 손위에 작은 크기의 불이 타오르고있었다.
-???
나는 그의 행동을 의아스럽게 바라보며,
"비령님? 지금 뭐해요?"
"....."
혹시 여기서 불을 지르는건... 쿨럭.. 아니겠지.
비령님은 내 물음에 아무 대답도 않고 타오르는 불을 향해 뭔가를 짧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손을 저 어두운 하늘을 향해 들어올렸다.
-피잉-핑-핑-피잉-파아앙-
하나둘씩 똑같은 모양의 불길들은 점점더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또 솟구쳤다.
수많은 불길들이 제각각 하늘로 날아가는데도 비령님의 손위에 얹힌 그 불씨는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는 소리가 들리면서 계속 '불꽃'이 아닌 여러 '불길'들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오오오오오오!!"
"이번엔 불꽃이 아냐!! 뭐지?"
"와아아아- 작은 불들이 뭔가를 그려내고있잖아!!"
"뭐지??"
사람들은 뭔가 바뀐듯한 모습에 더욱더 환호성을 지르며 목빠져라
하늘만을 쳐다보았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으니까, 나 또한 하늘만을 쳐다보고있었다.
파아앙- 파앙- 파앙_.
작은 불들이 계속 하늘로 올라갔지만, 그것들은 계속 타오르고있었다.
그런 기이 현상은 처음이였다.
원래 불꽃은 하늘에서 몇초간밖에 빛을 내지 못했기때문에.
그러나 저 작은 불들은 하늘에 못박힌듯, 계속 그 빛을 내고있었다.
"비령님...?"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그 하늘에 무엇인가가 드러나는것이 보이자 나는 입을 딱 다물었다.
...
..
"그림인가?"
"맞아! 불로 그림이 그려지고있어!!"
"뿔? 뭐지? 머리인가? 꼬리?"
"그런데 신녀와 신관 진영에서 쏘아올려지는게 아닌데? 어디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늘에서 시선을 뗄줄은 모른다.
나는 서서히 드러나는 그림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그가-비령님이 만들고있는 그것은...
"..용?"
...
용이였다. 뿔-날렵한 눈-긴 원통형의 몸체- 꼬리까지.
전형적인 용의 본체였다.
''와아아아아아------------------''
용의 모습이 하늘에 그렇게 빛을 내자 사방곳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들이 그렇게도 동경하는 미지의 생명체.
그리고 하늘에서 불이 계속 타오르고있다는 기이 현상.
모든것이 그들을 놀라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눈을 크게 떠야할 사람은, 나일거야.
"비령님..."
용. 불 수천개로 하늘에 수놓은 용의 모습.
무얼까? 무슨뜻으로 저걸 쏘아올린거지?
비령님은 그 용을 다 완성하고나자,
손을 모으고 어떤 주문을 쉴새없이 중얼하는듯했다.
또다시- 뭔가를말이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뭔가가 속에서 올라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뭐라하지. 뭐라해야하지.
내가 한개해주면 그는 열개를 해주는것같달까.
아니, 그런걸로 표현이 안돼. 그냥 뭔가 파도처럼 내 모든것을 덮어버리는듯한 느낌이야.
촤아아아악----------
마지막으로 비령님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자
긴 불길이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그 긴 불길이 하늘에서 올라서 만든 것은..
...
".........."
"........."
".......화아...."
여태까지 시끌시끌 환호만 했던 사람들 모두, 모두 조용해졌다.
그것을 본 순간, 이 넓은 공간에있는 엄청난사람들 모두가 다 입을 다물었다.
나도 입을 다물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들도, 모두 아무말않고 입을 벌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비령님의 손에서부터 뻗어나온 그 긴불길은,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모습의 용그림 옆에,
아주 정확하게 문자 하나를 만들었다.
단 하나의 글자. 딱 하나.
"내.. 대답이다."
그의 말이 어렴풋이 내 귀에 들리는듯 했다.
그 하늘에 새겨진 그림과 글자때문에 정신을 거의 차릴수는 없었지만,
대답이라고 말하는 비령님의 목소리는 겨우겨우 들을 수 있었다.
..아무말도 나오지 않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너무나도, 너무나도 할말없게 만드는 그 글자에- 그 그림에-
너무 감동이 올라서,
"...아...."
"나는 .. 말로는.. 잘 표현할수 없으니까.."
하늘에 밝게 새겨진 그 글자는
戀( 사모할 [연].)
딱 하나의 글자였다.
초유국서용연[草儒國西龍戀] 72. <<술의 효과는 위대하다>>
"..기분탓인가.."
"에..?"
대축일이 거의 폐막으로 접어들어 사람들이 하나둘씩 발걸음을
돌릴무렵에 어색하기만 한 침묵을 먼저 깬사람은 비령님이였다.
사실 난 그때도 아까의 戀이란 것에 모든 마음을 쏟아버리고 있어서
난데없는 소리에 화들짝 놀랄수밖에 없었다.
..이젠 굉장히 어두워졌다.
반달의 은은한 감각외엔 불빛이라곤 볼수 없었고,
즐거운 불꽃도 그 빛을 감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려 애썼다.
"왠지.."
머리를 사라락 하고 쓸어올리는 소리가 났다.
굉장히 지치고 어딘가 졸려보이는 비령님의 목소리.
하긴 그렇게 한판 놀았는데 안지칠 위인이 어디있을까. 피식..
"당연히 그렇게 많이 힘을 썼는데 피곤하시겠죠. 이제 끝났잖아요.
봐요, 우리 말이 이제 저쪽에 있는거 보이..."
"아니..그런 종류가 아닌데.."
엥? 그건 또 무슨소릴까?
내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때는 조금이나마 달빛이 그의 얼굴에 새어들어오고 있을때였다.
에- 헌데,
"얼굴이 약간 더 붉어졌네요?"
"..그런가? 이상해. 피곤하면 피곤하고, 몸살나면 몸살난걸로 확정지을 수 있을텐데,
이상하게 얼굴은 뜨거워지고 가슴도 답답해져. 머리는 이상하게 빙빙도는 것 같아."
-몸살?
나는 몸살난 비령님을 단 한번 본 일이 있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 뜨거운 열.
잔뜩 찌푸린 눈썹. 한마디로 몸살난 육체.
그건 변이 후 홧병(?)이라나 뭐라나, 그런것이였는데 어쨌건 지금것과는
약간 달랐다.
"가슴이 막 두근두근해요?"
"..(끄덕)"
"언제부터요?"
"-모르겠어."
사박사박_.
잠시 말없이 걷다가 비령님은 문득 생각났다는듯 내게 말했다.
"..맞아, 아마 합환주였는지 뭐였는지 그 잔에 든 액체를 마시고 난 뒤인 것 같아."
"..."
음..합환주라면 기본적으로 주(酒)형식일테니..
하지만 비령님은 엄청나게 독한 곤창주[한잔 마시면 거의 뻗는다는 전설의술-_-;;]
먹고도 취한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합환주에 맛이 갈리가 없잖아?
"설마 취한건 아닐거예요."
"당연하지."
-_-;; 뭐냐 그 자신감은?
그냥 말했는데 너무 딱 잘려버리니까 생기는 이 오기!! (부르르)
나는 입을 약간 쭉 내밀고 그에게 말했다.
"..흥, 진짜 취한건지 누가 알아요?"
"말도안돼."
"아무리 독해도 각자 사람마다 약한게 있을지도 몰라요."
"난 사람이 아니야."
"이익.. 그럼 합환주에 뭐가 들었나보죠!!"
하지만 그 재수없는(;) 장사꾼이 진짜 합환주를 팔았을리가 없는데.
내가 알기로 합환주에는 약간의 흥분제가 들어간다고 하지만,
흥분제는 굉장히 비싸다.
혼례날의 흥분제는 또다른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밤에 흥을 돋군다거나 아니면 힘을 잘쓴다거나..(??!@?@?) 쿨럭..
금강석에 눈알을 당장 빼버릴듯 보는걸 보니
흥분제를 구할만큼 부자는 아닌것같은데.
"설마 흥분제를 넣었을리는 없고.."
"어? 비령님도 그 생각했어요?"
".... 너, 흥분제를 마시면 어떻게 되는줄 아나?"
물론..내가 먹어본적이 없어서 모르지..쿨럭,
내가 침묵으로 긍정의 표시를 하자 비령님은 한숨을 쉬며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내가 흥분제를 먹으면 네가 상당히 곤란할거다."
"네?"
"....."
저거 뭔소리지? 의심스러운 눈길을 아무리 쏘아도 비령님은 여전히
모른척했다. 그러나 대충 짐작은 가.
그도, 나도 흥분제가 어디에 쓰이는줄 알고있으니까.
..
.
왜 자꾸 얘기가 이런쪽으로 향하는거야 제길! (철썩!!)
"...."
"......"
"....."
"........."
"이상해 정말!!"
"꾸엑!"
우리가 점점 말을 묶어두었던쪽으로 가까워져가고있을때
결국 비령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항상 놀라는 가슴을 매만지며 조용히 신경질을 부렸다.
"제길.."
"너 방금 뭐랬어?"
"세상은 아름다워라고 했어요."
"......."
물론 그가 나의 어이없는 거짓말(도아닌 거짓말)에 속아줄리는 없다.
하지만 저렇게 신경질을 내는거 보니까 뭔가에 이상이 있긴 있는것같은데
신력이 함부로 방출 안되는걸 보니 진짜 기분이 나쁜 것 같진 않았다.
뭐라고 한대 소리쳐주고싶었지만,
아까 받은 감동의 영향력인지 그에겐 뭐라 쉽게 말할 수가 없었다.
한발, 걱정만 앞설 뿐.
"많이..안좋아요?"
"...아."
"뭐라구요?"
"오히려 ..."
비령님의 말소리는 계속 구석으로 기어들어가기만 했다.
왠지 숨소리도 평소와 다른듯 하는게, 이상하기만 했었다.
그는 뭔가 망설이더니, 내게 말하기를
"오히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있어."
"네에-?"
이건 또 웬 생뚱맞은 소리?
얼굴 뜨겁고, 머리 빙빙돌고, 나른하고, 기분 좋다고?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바닥을 탁 쳤다.
"비령님!! 난 그 증상 알아요!"
"..뭔데?"
"취한거요."
"...."
"......."
아까 취했을리 없다고 한창 논쟁을 벌였는데 또 그 이야기를 꺼내는 나도 한심하다..(훌쩍)
하지만 그 증상은 분명 취한건데,
세상에 서용이란놈이, 인간이 만든 술에 취해버린거야~? 너 곤창주먹고 끄덕안한거 맞아~?
그런거야~?
"..히죽.."
"멋대로 추측하지마."
"말은 내가 몰게요."
"...!! 아니야! 취했다면 이렇게 정신이 멀쩡할리가 ..."
비틀_.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는 내쪽으로 살짝 몸이 기울어졌다.
...
거봐, 취한거 맞네.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구름에 살짝 가렸던 달이 떠서
조금더 빛이 그에게로 비추어졌다.
-달빛에서 본 그의 얼굴은 한마디로-
예술이였다.
........
.......
취한걸 한눈에 알게 해주는 눈을 하고 있었으므로..-_-...
"비령님. 그거 알아요?"
"뭐..가.."
"눈 풀렸어요."
"쿨럭!"
그는 말도안된다는듯 입을 잠깐 벌렸지만 다시 비틀-하고 몸을 기울였다.
그런 자신의 상태를 느꼈는지 더이상 반박을 할 생각을 포기한듯한 그.
이젠 말이 있는쪽도 거의 코앞인데, 술취한건 확실한 것 같고..
흠.. 말은 내가 몰아야하나? <-[이제 완전히 취한것으로 단정해버렸음]
「이히힝!」
이마를 짚고 잔뜩 얼굴을 찌푸린 비령님을 뒤에 두고 나는 말 고삐를 잡으며
즐거운듯 말에게 속삭였다.
오늘은 참 재밌단말이야. 대축일에서 신나게(??) 놀고,
불꽃놀이때는 낭만적인..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고백을 받고,
이렇게 마지막으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새로운 면을 볼수 있다는게.
어쩌면 그에게 한발짝이라도 훨씬훨씬 가까워진것같은 느낌이 들어.
"쉬이- 네 주인님이 취하셨어. 맨 처음주인이였던 내가 오늘은 말을 몰아도 되지?"
"취하지 않았... 으윽.."
"풋풋.."
이제 거의 서있지도 못하는 그를 살짝 말 안장까지 인도했다.
비령님은 여전히 뭔가를 부인하려는듯 허리를 꼿꼿히 세우려고 하는듯했지만,
정상인사람과 취한사람중 누가 더 판단이 빠를까?
취한건 확실했다.
나는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며 안장의 앞에 올라탔다.
"안..."
"자아- 오늘은 내가 마부를 하도록 할래요-"
"말도안돼.. 내가 정말 취했다면.. 왜 넌 멀쩡..한거야.."
"랄랄랄♬"
모른척했다-_-..
물론 키가 굉장히 큰 남자가 여자 뒤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한 꼴이
굉장히 웃기기는 하겠지만, 난 상관없어♡ 없다니까♥<-[뭔가 굉장히 즐기고있음.]
헌데, 걸어올때까지만해도 머리가 빙빙도는 수준이였는데
벌써 효력이 이렇게까지 많이 나타난다는건, 도대체 뭐지?
이해할수가 없군..없어..
"너무 싫어하지 말아요. 꼭 한번쯤은 상상해 봤던 일이니까."
말을 모려다가 멈추고 그를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그래, 한번쯤은 생각했다구.
술에 취해서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내 님이랑 밤길을 헤매는거.
내 상상에서는 걸어다니는거였지만 말타는거라도 괜찮아.
항상 완벽한(최근엔 굉장히 허술해졌지만) 남자니까. 이런 모습 본다는거 정말 즐거우니까.
사실,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이 작가, 맨날 나만 망가뜨리잖아!! [헉 =_= 어떻게알았니]
내 말을 들은 비령님은 안그래도 좋지않았던 얼굴을 더욱더 구기며
내게서 말 고삐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붉어진 얼굴로 그래봤자 내겐 우스울 뿐이다. 푸.하.하. <-[....ㆀ]
"도대체 효력이 이런식으로 나타나는 술이 어딨다고...그러는.."
"쉿- 취하셨어요."
어휴 귀여워라~ <-[이제는 거의 보모라는 사명감을 가지고있음-___-;;]
나는 그의 볼에 스치듯이 입을 맞추고 고개를 돌려 고삐를 잡아당겼다.
뒤에서 살짝 기우뚱 하는 듯 했지만 다시 올라오는듯했다.
그리고.. 조그맣게 소리가 들렸다.
"젠장.. 잠시만 눈을 감.."
추욱-
말소리는 거기에서 그쳤다. 내게서 고삐를 앗아가려고 내 손목을 잡던 손의 힘도
풀려서 천천히 밑쪽으로 떨궈지는듯 했다.
이제는 말의 발굽소리만 다각다각 하고 밤길을 메웠다.
허나 이상하긴 하지. 천천히 술기운이 감돌게 되는 술이 있다고는 들어보지 못했는걸.
어쨌든 뭐.. 내 작은 어깨를 그에게 대어줄수 있다는것도 굉장히 즐거우니까 됐어.
휘익 한번 휘파람을 불고,
비령님이 술기운에 완전히 뻗어서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말고삐를 한창 주욱 잡아당기려고 힘을 주는 순간,
깜짝 놀랄정도로 센 힘이 허리를 확 조여들었다.
"흐악!"
「히히히히힝!!」
그 힘때문에 무게중심이 흐트러진 것 같았다.
충격의영향은 나 뿐만이 아닌 말에게도 미친것같았다.
허리에 손의 느낌을 받는순간 놀라서 말의 몸통을 퍽 차버렸기 때문이다.
모두 알다시피- 말의 허리(어디가허리? -_-)를 차버리면 말은 전력질주를 하는데..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이히히힝! 히히힝!!!!!」
기우뚱-
내 뒤에 있는 비령님의 몸부터 서서히 말에서 떨어지는듯 하고있었다.
스륵-스륵- 다리부터- 하나씩, 그다음엔 몸이 점점더 말에게서 밑으로 미끄러지는- 계속-
"뭐야, 켁, 안....... 으아아!"
「끼이이이----」
뭐야 이 말도안되는 현상은!!
그는 말에서 떨어지면서도 내 허리를 꽉 잡고 놓지 않았던것이다!
뭐 이런 뷁스러움이 다있어!!
당황스러움에 최대한 말고삐를 잡았지만 그건 더욱더 화근이 되고 말았다.
말을 더 흥분시켜서 속력을 빨리 해버렸기때문에.
틱_찌이이익_
"꺄아아!!"
「푸르르-푸르르-」
두다다다닥 다각다각다각다다닥---------------.
말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를 우리는 버텨내지 못했나보다.
또한 이미 아래쪽으로 쏠려버린 비령님의 무게에 나또한 말에서 떨어져 내려버린것 같다.
그것도 처참하게. 데굴데굴데굴. 계속 두개의 몸이 엉켜서 땅을 굴러버린것이다.
그나마 다행히 밑은 풀로 뒤덮여있었다.
결국 나는 옷자락까지 찢어지는 수모를 겪으며 (난생처음) 어떤 망할놈자식과
풀밭을 굴러버리는 신세가 되고말았다. 아주 눈덩이가 비탈길을 오르듯이 우당탕퉁탕
데굴데굴 별 소리를 다내면서. 낙마하고 만것이다.
엄청난 재수없음에 죽일듯 말쪽을 노려보았지만 말은 이미 저 먼쪽으로 달려가며
시야에서 흐려지고있었다.
털썩_.
"...시.바..ㄹ..."
...
아.. 신님, 용서해주세요. 천한 언행을 함부로 한것을.
하지만 어쩔수없습니다. 누구때문에 낙마해버렸거든요.
누구덕분에 낙마해서 옷이 완전히 엉망 진창이 되었거든요. 젠장-
"도대체 떨어지려면 혼자 떨어질것이지 내 허리는 왜잡어! 그럴 정신은 또 있었냐!?"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얼굴쪽은 드러내지 않은채 풀에 묻혀 엎어져있는 비령님.
이미 기절했을테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테지. 나는 뒤통수라도 한대 쳐줄셈으로 그의 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비령님! 왜그래요! 비령님때문에 말에서 낙마해버리고 이젠 걸어가게 생겼잖아요!
신력쓰기엔 또 너무 귀찮고.. 주문도 잘 모르고.. 뭐야정말!!"
그의 머리를 작게나마 한대 치고나서 나는 소리를 빽 하고 밤하늘을 향해 내질렀다.
그냥 여기서 엎어져 자버릴까?!
그때, 밑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끄응..."
약간 고개를 흔들며 일어나는듯한 인영.
-뭐야, 정신이 든거냐? 이.제.서.야?
부글부글 오르는 심통을 억누르고 그를 새침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비령님은 그러건말건 고개를 사락 흔들면서 점차 고개를 들고 엎어져있던 몸을 추스렸다.
"뭐야.. 정신이 든거예요? 아직도 몸 많이 안좋아요?"
"...."
"낙마한거 알아요? 고의적이였죠? 쳇, 아무리 비령님이라도 이번엔 심통부릴수밖에 없겠어요.
깜짝 놀랄만큼의 고백을 받아도 끝이 안좋으면..쫑알쫑알"
....뭐지? 나혼자 계속 지껄이는건가?
나는 계속 중얼중얼 신세타령을 하다가 뭔가 기운이 이상한걸 깨닫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
"...에...엥?"
훤한 달빛을 정면으로 맞았다.
우리 둘이 정확히 넓은 풀밭에서 정확히 달빛을 맞고있었다.
그때문에 난 엄청나게 밝은곳에서 비령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의 얼굴은, 한번도 보지 못했던것이였다. 아니 표정.
"....."
여전히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 달라지고있었다.
뭐지? 뭐지?
떨어지더니 살짝 머리를 다쳤을려나? 아니면 술이 덜깼나?
그는 눈을 아주 동그랗게- 엄청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것이다.
매우- 매우... 귀여...아니. 그만하자. 쿨럭..
"왜그래요? 맛이 간거여요?"
"ㅇ.ㅇ?"
헉.. 어떡하지?
엄/청/ 순진해보이는 그의 눈망울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불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돌에 머리를 부딪힌건가? 왜 말이 한마디도 없지?
"어..어디 아파요? 아님.. 뭔가가 신기한거예요?"
"....."
그는 여전히 대답없이 넝마가 되어버린 내 옷과 약간 흐트러진 내 머리와 얼굴을 보기만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말이다.
"...."
"......."
도.도대체 뭐냐구!
참을수없는 기운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저..어기 비령님? 갑자기 왜.."
그리 말을 하면서 그의 옷소매를 붙들자마자, 그는 뭔가 반응을 움찔-하고 보였다.
-평상시의 비령님은 전혀 아니였다.
약간 나른한 눈매가 그였는데, 지금은 엄청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갸웃갸웃 흔들고있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동그랗게 떴던들 가까이서 보니 눈이 초점이 정확하게 맞지 않았다.
그뜻은 즉, 취기가 아직 있다는것.
뭐지?
"저어.. 비령님?"
"........"
그는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입술을 벌리기만 했다.
점점더 벌어져가는 입.
그리고 반짝하고 뭔가가 스쳐가는 눈동자.
낌새가 이상했다.
"...."
"......"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뭔가 더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올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이 말문을 턱 막혀버리게 했다.
그는 갑자기 씨익 웃으면서 나를 와락 안고 말했다.
거의-거의-거의- 인간이 아닌듯한 초인적인 귀여움을 내뿜으면서!!
"애기야♡"
...헉.
73.
초유국서용연
"하아- 거참!"
"....."
"이녀석, 확실히 미쳤어 미쳤어 흥."
가령은 하늘에 붉게 타오르고있는 불꽃들을 보며 혀를 쯧쯧 하고 찼다.
가묘와 서용이 그들만의 세계에 심취해 있었을 무렵, 가령은 심통을 부리고 있었던것이다.
그는 戀이라고 새겨진 밤하늘의 불꽃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질했다.
"저거봐, 완전 닭살이지 않아? 어우- 싫다~"
"멋있는데.."
꿈꾸는듯한 공주의 표정.
그녀도 여자였다.(두둥) 한번쯤은 꿈꾸어보는 낭만적인 고백을 직접 실현해버린 서용.
대상이 비록 공주가 아닐지라도 그것 자체가 정말 멋있어보였던것이다.
아로하공주는 두손을 꼬옥 깍지끼어 잡고 거의 맛이간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가령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도 별 수 없는 닭살류군.. 흥, 어쨌든 이제 곧 폐막할거니까 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여기를 좀 떠야할걸."
그 말에 여태까지 몽상중이던 공주는 갑자기 확 깨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성급하게 움직였다.
"마.말도안되는..버..벌써요?"
"뭐?"
이미 자정이 거의 되었는데..
가령은 달의 위치를 계산하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축제가 자정이 되면 완전히
막을 내린다는걸 알텐데.. 아니면 뭐 다른뜻인가?
그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손바닥을 탁 치며 아로하공주를 바라보았다.
약간 음흉하게.
"혹-시-"
"???"
"나랑 그렇게 같이 있고싶어? 이 밤을 같이?"
씩 웃고 다가와서는 공주의 어깨를 슬며시 잡는 천서가령.
그녀는 순간이나마 그를 던져버리고픈 충동을 느꼈다.
얼굴을 파랗게 지르며 천서가령을 향해 말하는 아로하공주.
"무...무슨..!!!"
"이봐, 자정이 거의 다됐어. 이 이상을 같이 있고싶다는 뜻은, 굉장히 묘한 뜻이 있는거야.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님."
"....///"
물론 가령의 말투는 '장난이야~ 100% 장난이야~'라는 뜻이 아주 확실하게 담겨있었다.
그래. 알고있어. 이 남자 장난하는거야.
그래도 어쩔수없이 두근대는 가슴을 추스리며 그녀는 가령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어차피, 제가 같이 있어달라고 해도, 같이 있어주시지도 않을거잖아요."
"......"
"여자에게.. 장난으로라도 그런농담 말아요."
그렇게 말하고선 부채를 펴드는 아로하공주였다.
'뭐지 이 이상한 기분. 농담인줄 아는데 농담이라는것에 엄청난 실망을 느껴.
정말..정말 아이러니해..'
그러고선 부채뒤에 가린 입술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로하공주가 보는 천서가령은 세상을 초월했다.
사랑도 느끼지 않고, 동정도 느끼지 않고, 그저 인형같이 하루를 사는것같았다.
차가운 인상의 서용과 반대되는 화끈함이 있을것같으면서도
어느때보면 서용보다도 냉정하고 무관심하다.
어쩌면..그는 화려한 가면을 쓰고 암울한 진실의 얼굴을 감추는지도 모른다.
'이상하기도 하지.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모든것이 다 받아들여지고있어.'
천서가령이 공주에게 한말이 의도적인지는 그녀도 몰랐다.
만약 의도적인것이였다면 가령은 그녀에게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뜻이고,
그냥 불쑥 말하는것이였다면 그는 정말로 잔인한 남자임에 틀림없을것이기에.
'사랑에 완벽하게 걸려드는데는 몇초도 걸리지 않는다더니.'
이제 공주의 눈에 서용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확신을 하게된 그 순간부터 사고회로가 온통 그에게로 쏠려버린것이다.
이 얼마만에 느끼는 정열인가?
한편으론 주체할수없는 욕망에 휘청하면서도
자신의 속된 태도에 자신을 경멸하는 공주였다.
그녀는 항상 인생을 고달프게 살아가려고만 하고 있기에.
허나 그녀로서는 이제- 바라보는것도 괜찮았다.
그가 세상을 초월했다면, 나도 세상을 초월하겠다. - (Platonic love)
이처럼 좋은모습의 그를 가슴속에 담아두고
좀더 욕심을 부리자면 그와 마주칠때 웃음을 나눈 사이가 될수 있기만해도
그걸로도 좋을 것 같았다.
'좋은..사이로..지내자고 말해볼까?'
그는 내 마음을 눈치채고 있을 확률이 높아.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가령이 그녀를 붙들어줄만한 위인도 아니었기에
공주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속만 태우고 있어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부채로 가리고있는 자신의 입술을 똑똑 깨물며 고민하고있는 찰나,
천서가령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흠흠.. 날..너무 쪼잔하게 보지 말았으면 좋겠군."
"...?"
공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가령을 보자, 그는 뒷짐을 지고
목을 가다듬으며 조그맣게 말했다.
"여자의 바램을 모를정도로 무심한놈은 아냐. 다만 나쁜놈이지."
여전히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공주는 그의 말에서 약간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말뜻이..무엇이죠?"
조심스러운 말투.
가령은 너털 웃으면서 공주의 손을 예의를 갖추어 잡아올렸다.
"감히 공주님께 청하오자면-
뭐.. 잠시 축제의 여운을 같이 즐겨주십사 하는 마음에- 편안한 들판에서나
휴식을 취하면 어떠할지 묻는것이옵니다~"
".....에?"
"한창 침수드셔서 달콤한 꿈을 꿀 시기이오나, 미천한 소인과 단 한시간이나
같이 보낼 생각은 없는지 묻고싶군요 공주님?"
완전히 정4품 이하의 사람들이 쓰는 말투를 장난스럽게 툭툭 쓰는 가령.
확실한 익살이였다.
공주는 그의 태도에 저도모르게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하고싶은 말을 대신해서 해주신건가요...?"
"푸후후.."
"굉장히 친절하시군요."
공주는 살짝 웃으면서 부채를 접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가 나를 배려하면서도 은근히 멀리 하려고 한다는것은 알고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평균 이상의 호감이 내 피부로 전달되니-
역시 알수없는분.
'완전 철판이야 아로하..'
공주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끄는 천서가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공주의 체면이고 여자의 자존심이고 다 집어던져버렸구나..'
.
.
.
**
***
*
*
"후우-네 나라는 기분좋은 나라다."
"알아주시니 고맙군요."
"...-_-;; 흠.. 어.어쨌든, 피튀길줄만 아는 북방의 서역국이라던가..
아무튼 다른 야만적인 나라보단 나아."
큰 느티나무아래서 쐬는 밤바람은 그렇게 싫은기분이 아니였다.
옆에 누군가 같이 있어주니 더욱 그러하였다. 당장이라도 날아갈듯.
공주는 살포시 미소지어보이며 그와 더 앉은거리를 가까이 했다.
"그래서.. 초(草)유국이죠. 풀내음이 물씬나는 평화로운 나라요."
"그 이전엔 화(火)유국이였지. 저 먼나라보다 더 살육을 저지르는 잔인한 나라였다."
"네?"
"후... 아니야."
그는 다시 처연한 웃음을 지으면서 반짝이는 별을 보더니,
풀로 덮인 땅바닥에 풀썩 누워버렸다.
천서가령만의 독특한 체취가 공주의 코를 부드럽게 간질였다.
더욱 묘한건, 그에따라 심장이 두근두근- 쉴새없이 빨리 뛰는 것이였다.
그런 공주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안챘는지,
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터뜨리듯 말을 내어뱉었다.
"굉장히- 축복받았지."
"이 나라말인가요?"
"그래. 비교도..되지 않지. 다른나라와말이야. 현재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나라일테니
걱정없을것이고.. 물자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근 8천년간은 아름다운 신녀님께서 이 초유국을 수호하겠지."
"그렇군요..."
~그 아름다운 신녀님이란건, 역시 월가묘를 가리키는말인가?
8천년이란건- 역시.. 서용과 인연을 맺을테니 그만큼의 수명을 갖게된다는 소리겠지.
역시- 부러워...~
..아로하공주는 무의식적으로 부러움섞인 한숨을 하아- 하고 뱉었다.
그리고 그 다음순간,
"부러운가? 가묘가?"
정곡을 찌르는 말이 공주의 심장을 파고들어왔다.
"엇.."
순간 대답을 할수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대답할 틈새도 주지 않고 천서가령은 벌써 대답을 들은듯 멋대로 말하고 있었지만.
"부끄러워 하지마. 여자라면 누구든 그녀를 부러워하겠지."
"....."
"아름답고, 명문가의 외동딸이다. 비록 어머니는 여의었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 서용의 사랑도 받고있다. 가장 강한 신력을 지킨,
모든 국민들의 우상-
..그렇게, 사람이란 한면밖에 보지 못하지."
어쩌면, 그것은 천서가령 그 자신과 겹쳐보는것인지도 몰랐다.
가령은 그렇게 비웃음어린 웃음을 지으며 눈을 뜨고 자신을 동그란눈으로 내려다본 공주를
바라보았다.
"나는..그녀가 불쌍해."
"네?"
"그 여인이.. 여인으로써는 너무 많은짐을 지고 가야하는..
그 가냘픈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지어야하는 그 여인이 불쌍하다."
"마..."
말도안돼-라는 공주의 표정을 무시하고는,
그는 환상속에 취한듯, 꿈결에서 헤매는듯한 목소리로 계속 느릿느릿히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 자신은 행복할수도 있지만말이야, 사람마다 가치관이 틀린법이잖아?
적어도.. 나보단 불쌍하지 않으니.. 음, 가묘의 인생은 괜찮을수도 있겠군."
"불쌍..해요?"
"응."
"가묘가?"
"응."
"..당신도?"
더이상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가령의 눈꺼풀이 다시 감기는걸보니 무언의 수긍인것같았다.
..참, 가진사람들이 더한다더니,
공주는 피식 하고 웃고는 저도 모르게 그의 앞머리칼을 사악 하고 쓸어보았다.
"아뇨.. 사람들이 얼마나 당신을, 당신들을 부러워하는지 모를거예요."
"지극히..육체적인 면으로써만.."
"나는.. 당신의 말이 무슨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 공주. 넌 타인의 장점을 잘 파악해 내는 반면,
..항상 부러워한다. 네가 가지고있는게 굉장히 많음에도, 항상 다른사람을 견주면서
못났다고 자신을 탓하지만..
'하지만..'
가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공주의 손길을 나른하게 받아들였다.
손을 내밀어주는것과 손을 받아들이는것. 그 두가지가 무의식적으로, 둘 사이에서
그렇게 이루어지고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당신의 이름을 알고싶어요."
공주가 분위기에 잔뜩 취한듯, 꿈꾸는듯한 목소리를 내며 그를 향해 말했다.
떨리는 음성. 기대감에 가득찬 음성.
지극한 소녀. 그 자체였다.
가령은 그 말을 듣고나서 몇초간 그대로있다가 살짝 눈을 뜨고 슬쩍 웃어보였다.
"어째서지?"
"....."
"내 이름은 가령이다. 그 외에 더 알고싶은건가?"
"가능하다면, 많이. 여태까지 어땠는지도. 생일은 또 무엇인지.
좋아하는것은? 싫어하는것은?
지금 이순간 당신이 행복한지. 그것까지 알고싶어요."
평소의 아로하공주가 아니였다.
평소의 천서가령또한 아니였다.
자존심 세고, 그리 소녀적인 향을 풍기지 않는 공주도 정상이 아니였지만
평소같이, 아까같이 농담을 아무렇지않게 던지던 천서가령도 정상은 아니였다.
"어째서지?"
장난스러운 가령의 물음에 공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그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알고싶어요?"
"응."
"내가 할말을 당신이 더 잘알텐데도?"
"그래도 듣고싶어."
이인간이.. 아참, 인간이 아닌데.
공주는 최대한 부끄러움을 숨기고싶어 금빛 머리칼을 더 쭉 잡아당기며 말했다.
"솔직히..말하세요. 말해주세요."
"응?"
"아까.. 식당에서, 당신이 오라버니의 [그날]에 왔다고, 말한거 고의였지요?"
"웅???"
"일부러.. 그말 일부러한거죠. 처음부터,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았죠."
"뜸들이지 말고 결론만 말하시지."
'....이 인간, 처음부터 다 의도했던거야!!'
천서가령은 이제 완전히 김샌다는듯 눈을 감으면서 공주에게 말했다.
왠지 그에게 속은느낌이 드는 공주였다.
얄밉고 밉살스러웠지만, 싫지 않았다.
밀어내지 않으니까. 그 조그만 마음을 거부하지 않으니까.
'.......'
살짝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했다.
희미한 반달도, 저쪽을 바라보고있었다.
결론이 무엇이냐구요?...
라고 말할것없이, 그냥 당돌하게 순간의 끌림으로...
"....."
공주는 고개를 숙이고 천서가령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여태 어느남자에게도 그녀의 처음을 준적은 없었다. 오라버니는 오라버니였으니까.
그러나 공주는 한가지 사실을 모르고있었다.
그 입맞춤이, 천서가령에게있어 첫번째 입맞춤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것이였다는것을.
"...."
"....."
아주 잠시동안, 그렇게 입술이 맞붙고나서, 공주는 여태까지의 엄청난 행동들을
상기시키고나서, 살짝 붉어진채 고개를 드려고 한다.
그러나, 공주의 뒷머리가 그의 손에 의해 앞으로 다시 당겨졌다.
서로의 숨결이 아주 적나라하게 느껴질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가령이 공주에게 낮게 말했다.
"반달이 뜬 날은 음양이 서로에게 빠지기에 매우 좋은날이라고 하지."
".... ... .. "
"지금 내게 한 이 행동은 뭐지?"
그말에 공주는 잠시 아무말 없이 그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기만 하더니,
이내 입술을 열고 말했다.
"당신은 이미 대답을 알고있으니, 받아주신다면... 부탁합니다."
".....하...하하하..."
"여자를..몰아세우시면 평생가도 한명도 못건질거예요."
가령은 몇번이고 몇번이고 공주의 말에 웃었다.
당돌한건 알았지만 진정으로 당돌했다.
'더욱더 빠지게 될만큼 당돌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가령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공주가 그것을 눈치채기 전에 가령은 공주의 턱을 더 바짝 당겨서
들릴듯 말듯 말했다.
"...넌 반드시 후회할거다."
"...나는 운명론자라고 했어요."
"나중에 그 눈에서 한가득 눈물을 쏟을테지. 후회할거야. 네 오라버니에게
마음을 준 때 보다 더 후회하게될것이다."
"....."
공주는 가령의 말을 듣고 멍하니 있다가는,
그의 어깨를 살짝 잡고 말했다.
"나는 운명론자라 했어요. 내가 택한길은, 후회하지 않아요."
후-하고,
웃음이 입술을 스쳐갔다.
"..항상 그렇게들 말하더군. 하지만..
너, 후회할거야. 정말로. 나같은놈을 만난걸."
더이상 공주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난 후,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듯 입술을 벌리고
여인의 입술을 삼킬듯이 빨아들였다.
생전 처음느껴보는 그 기분에 아로하는 아찔한 감각마저 들었지만
그럴수록 가령의 어깨에 놓은 손에 더욱 힘을 줄 뿐이였다.
사락_.
몸을 옆으로 빙글 하고 굴리자 이젠 도리어 공주가 풀바닥에 누워있는 꼴이 되었지만,
없을만큼 가령이 그녀에게 선물한 접문(->키스)은 그런것을 의식도 못할만큼 정신이 혼미해질듯한,
정열적인것이였다.
잠시동안 서로의 세계에 빠져들다가, 가령이 다시한번 입술을 떼고 말했다.
"정말로 후회하게 될거야."
그후로 이어지는 말들도 이제 없었다.
그저 희미한 빛을 뿜는 달빛이 나무아래를 비추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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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알아서 상상하세요. 으하하(뭐냐 -_-;;)
이번편은 뭐랄까, 제가보기에도 난해합니다-_-
제가 표현하고싶었던건!! 말이 아닌 느낌으로 빠지는 사랑이였는데 ㅡ_ㅡ
어쩌다모니 말도 어려워지고-_- 하여튼 이상한 느낌으로 빠져버렸네요.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서로를 아는것.
물론 가묘랑 서용도 그런것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은 주인공-_-.. 쿨럭..[돌맞는 민무리]
아..어쨌든 허접하게 돌아오긴헀네요 \ㅅ\;; 감이 잘 안와서 이번편은 미흡합니다.[항상 미흡했음-_-]
다음은 이제 술마신 애쪽으로 넘어가겠습니다[-_-..뭐냐;;]
초유국서용연[草儒國西龍戀] 73.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
"물..먹고싶어.."
"여기요..(-_-)"
"응~ 우리 가묘양 착하다~"
"...(-_-)"
아까 그 광활한(?) 초원에서의 괴이한 '애기야'사건 이후 나는 거의
초죽음 상태에 빠졌다.
어떻게 또 소환진을 써서 용주관까지 그냥 와버린것같지만.. (뿌드득.. 그 말새끼.. 먹어버리겠어..)
일상생활에 신력쓰면 안좋은데 ㅠ_ㅠ.. 으아아악..
문제는, 이녀석을 그냥 용주관에 처 박아놓고 난 여길 떠나가야하는데..
"저기..전 이만 좀 가보면.."
"왜?"
"..자야되니까요."
"가지마아..여기서 자- 응?"
"크억.."
자꾸 간단말만 하면 나를 끌어안고 계속 주저리를 한다는것이다.
..
아까 그 '애기야'라는 갉뷁뚫훓(-_-)같은 말은 아니더라도, 그는 아직까지
귀염을 떨고있었다. 나를 가묘양이라고 부르질않나..
"우리 돼지 살은 부드럽지?"
"..난 돼지 아니예요=_="
"알아 돼지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것같아 ㅜ_ㅠ!!! 술취한사람은 무서워!! 으허허허헝!! [팔자탓..]
나는 그의 품에 안겨서도 한숨을 푹푹푹 쉬어야 했다.
..내가보기엔 그의 정신연령 자체가 어려진 것 같다.
그게 술버릇인듯 추측이 가는데..
한가지 의문점인건, 녀석이 성인의 기질도 같이 갖고 저짓거리(;)를 한다는거야!
예를들어,
"비령님 바보."
"..죽고싶냐?"
"아뇨..(ㅜ_ㅜ)"
"응~ 그래 착하지. 나도 너 사랑해요 가묘양."
"...(ㅠ_ㅠ)"
하나도 안기뻐!! 제기랄, 술주정인것같아. 으허허헝!!
물론 비령님이 멀쩡한 정신에 저 말을 할리도 없지만말야.
그게 쪽팔려서 아까 戀이라고 쓴 불꽃을 하늘에 올린거잖아.
킁.. 어쨌든 방금 봤다시피 취했다 얕잡아보고 그에게 함부로 굴면 바로 싸늘한 반응이 올라왔다.
바로 그 점을 이해할수 없다고!!
"정말 용은 기이한 생명체죠. 그렇죠?"
" '기이한'이 아니고 '고귀한'이라고 해야지. 멍청한 우리 애기♡ 괜찮아. 그래도 이뻐요."
";;...제..발..."
입다물고 눈감아주면 안되겠니..
..
보고있는것 자체가.. 너..너무 고역이야.. 읍...
욕이라도 하고싶었지만, 그래도 이분이 누구야. 그래그래. 참아야지 가.묘.양.
억지로 입꼬리를 씨이익 올리며 그를 바라보자 비령님도 덩달아 씨이익 웃어주었다.
"....."
평소에 잘 웃어주질 않으니까.. 취하면 잘 웃어주는구나.
이쁘게 웃는거, 그거하나는 마음에 든다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다 쓰레기통에 박아버리고싶어.. (털썩)
"가묘야."
"네?"
"모르지?"
그는 갑자기 알수없는 소리를 했다. 뭔소린고 하고 그의 눈을 뚫어질듯 바라보니,
비령님은 방긋방긋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기만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리치기를,
"너어!!!!"
"꺅! 가.갑자기 왜요?"
"너어- 그럴수..켁.. 그럴수가 있는거야아-?"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애처럼 인상을 꽉꽉 찌푸리며 날 잡고 소리치는 비령님.
-영락없는.. 주정..이였다..ㅡ_ㅡ..
그래도 영감쟁이같은 주정이 아니라 다행이다. 귀여워. 귀엽다고. [애써 자기 합리화]
"또 뭘요?"
"내가..."
"...에?"
"내가... 정말..."
그는 그 뒤에 뭐라 몇마디를 중얼거리고는 내 목을 당기면서
침대로 털썩 누워버렸다.
-또 묘하게 되었네 -,.-*.. [어이;;]
내 아래에 누워있는 비령님을 향해 '왜요?'라고 말할 심산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자 비령님은 더욱더 인상을 찡그렸다.
"무거워."
";; 미안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가만히 있어."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비령님은 다시 내 목을 잡고
그의 가슴에 억지로 얹히게 했다.
...
고동소리.
"... 가묘야."
"네."
"있는거야?"
"..여기 있잖아요."
그는 내 머리를 좀더 세게 안으며 실없게 웃었다.
-허억.
"넌 모르지."
"뭘요.."
"심장같은거."
"..네?"
"심장..소중히해..줘..."
도대체 뭔소리하냐 너 =_=.
이미 그가 하는말들은 이제 모두 '개소리다'라고 단정한 나는
계속 일정한 빠르기로 뛰는 심장고동소리를 들으며 그를 어떻게하면
재울수 있을까 열심히 생각기로 했다.
"곰순아."
"...."
"어디 갔나?"
"...니 위에 있어!!... 요..."
제기랄. [퍼억-퍽]
집중하자. 집중하자. 어찌 재우나.
..어디서 들은적 있어. 남자가 한번 술먹고 헛소리하면 밤 새울거라고.
그러니까, 재울 궁리를..
"어머니가 항상 그랬어."
".....(자자, 저놈을 딱 눈감고 한대 쳐서 기절시킬까..)..."
"내가-변할거라고."
"(저 입을 그만 쉬게 만들어줘야.. 그래. 딱 한대만.)...."
"난..변했나봐."
"(열 센 다음에 팍 치는거야.)"
좋았어. 열 센다음에 뒤통수를 아주 세게 가격..
실패하면 죽음이다. [이미 안듣고있음]
내가 속으로 킬킬 웃으면서 하나를 셀때 그가 한마디 했다.
"내손에 한번 들어오면 완전하게 가져야해."
"...(둘)"
"내가 얻지 못하는건 세상에 없었어. 있었다 해도 곧 들어왔어.
아니지. 일단.. 갖고싶은건..없었어."
"...(셋이다. 넷.)"
점점 헛소리가 아닌것같은 말을 들으며
나는 떨어져가는 집중력을 한데 모으려 노력했다.
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여전히 꼬이는 혀놀림으로 말을 이었다.
"가묘양을.. 완전하게 갖지 못한 이유는 뭘까?"
"......"
여섯, 그다음에 일곱, 그다음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귀에서 기분좋게 뛰던 심장소리는 멀어졌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와 허공에서 마주치자,
그의 입술이 다시 씩 올라갔다.
"귀여워라♡"
"..읍;;"
사악- 내 볼을 쓰다듬는 손길. 소름이 끼쳐오는 내 피부.
..애..라고 생각하지뭐. 아하하하. 뭐야. 아까 한말. 제길..
다시 여덟을 세자. 젠장.
나는 뿌드드득 이빨을 갈며 다시 고개를 떨궜다.
다시 세자. 다섯부터.
"항상 드는 느낌은 있었어. 남자라면 당연하니까."
여섯.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 왜인줄 모르지."
일곱.
또 집중력이 떨어져간다. 나는 이제 귀라도 틀어막고싶었다.
마음과는 달리 몸은 아주 딱 굳어있다. 왜?
-나는 그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니까.
한대 치는거라면 지금이라도 할수 있어.
하지만 치지 않아.
그건 아마 열을세도 같을거야.
-그런 생각이 내 머리를 지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無限之愛"
".....!!"
"..우리에게 있어 필요할거야. 아하하.
..안웃기나?"
무의식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콰악 잡앗다.
여덟.
"안고싶어."
"....."
"그런데 싫어."
아홉.
내 귓가에 들리는 그의 심장박동소리 보다 내 머릿속 저 끝너머까지 쿵하고 나는 나의 심장박동소리가
훨씬- 컸고, 훨씬 빨랐다.
"왜인줄 안갈켜줄거다♡ 얄밉지이-"
"....(빠직)"
...이런 망할. 분위기 와장창 깨는구나.
망설일것없이 열.
내 손이 그의 목 뒤로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고있었다.
이제 무슨말을 하든, 안멈출거다.
한손은 침대를 짚었고, 오른손은 그의 목뒤 급소를 향했다.
"붉은 금실수옷을 입은 가묘가 보고싶어."
그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비령님의 말이였다.
뭐..
자.잠깐?
꾸욱_.
"......"
"....."
머리보다는 몸이 빨랐나보다.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조용히 천주혈(목뒤 양쪽에 있는 급소)을 찾아서 내리누르자
그는 이내 나에게 주었던 팔힘을 풀고 조용히 침묵으로 잦아들어갔다.
그러나 그 후에도 나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붉은 금실수옷을 입은 가묘가 보고싶어.」
...
정말로...
그가 내게 한말이 맞는거야?
"..아..."
곤히 잠든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
나.. 지금 청혼..받은거야?
[*붉은 금실수를 놓은 옷->여성 혼례복.]
「무한지애(無限之愛-한계없는 영원한 사랑)」
믿을수 없는 현실에 나는 눈을 더욱 흐리게 떴다.
잘못 들은건지.
아니면, 취중의 헛소리였는지.
"비령님 맞아요?"
"zz..."
잠든이는 대답이 없었다.
..
너, 그냥 이대로 영원히 살것같은 분위기 아니였어?
"붉은 포.. 알고는 있었어요?"
"....."
천주혈을 누른게 후회되었다.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서 깨우고싶었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양쪽 눈이 뜨거워져오는게 느껴지자 나는 조용히 그의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촛불사이로 비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어달전..
..황궁에서 돌아온날 본 그 얼굴 그대로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조용히 용주관 문을 닫았다.
-엄청나게 새까만 밤이였다.
우주. 항상 초유국의 지식인들이 중얼거리는 미지의 어둠속에 빨려드는것 같다.
까만 밤하늘이 어느새 넘실거리면 그것이 비령님의 머리로 바뀌는것같았다.
잠시나마 취했던 그의 얼굴이 별로 보이는건 또 뭐지.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모습의 비령님도 괜찮은것같아.
예쁘게 웃어주잖아. 사랑한다고.. 진짜 말해줬잖아.
청혼도 해줬잖아.
나참,
나 자신도 알수 없었다. 이 여자의 비열함이란.
여태까지 잔뜩 삐쳐있었는데.
..나 여태까지 그의 단 한마디를 정말 갈망했었나봐.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듣고싶은 한마디를.
그 한마디면 모든걸 믿어버리고 손을 굳게 잡을 수 있는 그 한마디를.
"..청..혼맞지?"
너 참웃기다. 술취해서 잠깐 해본 소릴텐데.
그것에 또 벅차하는 넌.. 도대체 뭐야 월가묘.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하얗게 반짝이는 별까지 내 가슴의 두근거림으로 빨갛게 보였다.
별에게 물어봤자 대답을 얻으리 무엇을 얻으리.
...
나는 가만히 그곳에 서있다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나의 처소쪽을 향해 걸었다.
꾸욱_.
'제정신으로 돌아올때.. 한번만 말해주세요.'
그 말을 계속 되뇌이며 대축일의 밤하늘과 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멍한 가슴을 안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그에게 부리나케 달려가 말 한마디를 기대해봤지만,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는 비령님은 술에 관해서 나와 아주 진지한 얘기를 했을 뿐
기억이 한오라기도 없었는지, 내게 다시한번 그 말을 해주지는 않았다.
..
그렇다고해서 실망할건 없겠지.
언젠가-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테니까.
초유국서용연[草儒國西龍戀] 완결. <<초유국서용연의 의미>>
「그때는.. 그일이 일어난 때는.. 대축일의 밤에서부터 몇달 후였다.
시간은 정말이지, 절대 우릴 배려해주지 않는다는걸 알았다.
굉장히 개방적인 우리나라는 한달이면 할거 다 하고 결혼하기에 충분했었는데,
그와 나는 무려 반년도 넘게 끌었다는거다.
아무일도 안한채로. 그렇게.
..그러나- 그 시간동안 우린 서로의 영혼을 가꾸고 준비시켰었나보다.
딱 그날에-
우리들 최고의 추억을 남겼었던걸 보면-」
- 월씨가문 가보의 하나인 167대 가주 월가묘의 일기중 일부 공개편-
.
.
.
"아..."
손바닥 위에서 떨어지는 하얀 꽃들이 내 시야를 가득히 메웠다.
..요사이 살을 에는듯한 추위가 이어졌고, 둥지 틀었던 철새들 또한 앞다투어 그 자리를 떠나니,
겨울이 온것은 알고 있었다. 헌데..
"벌써.. 겨울이란건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바구니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느꼈다.
...벌써 겨울이 왔구나.
-하고 말이다.
그와의 만남도, 이제 조금은 오래된것이 되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게 한가지 있다면, 그건 비령님과 나의 관계 뿐.
얼마의 시간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효소초태왕님이 눈에 띄게 건강이 약화되시고 아직 열 아홉인 태자님이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그외 등등.
세상이 바뀐다는걸 증명이라도 하는듯.. 이렇게 겨울의 표식이 오는구나.
눈이-오는구나.
..
한편으론 신기했고 한편으론 씁쓸했다.
"...가만,"
그와 눈을 같이 맞았던 일이 있었나?
-가만히 소복소복 내리는 눈의 모습을 혼자 감상하던 중 문득 그의생각이 난다.
나도 참, 모든일에 항상 그를 연결짓는구나.
이제 아예 습관으로 굳어졌구나. 피식웃음만 나는군.
킁..그래도 첫눈을 함께 맞는다는 건 중요한거야. [예나 지금이나 엄청 낭만 따지고있음-_-]
"눈이 쏟아지는데 뜰 한가운데 서서 무얼 하는것이냐."
무겁고 굵직하면서 온화한 목소리에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겨울이라 그런가? 수척한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가득 비쳤다.
"또 혼인이니 자손이니 설교하시려고 나오신건가요?"
장난스러운 말투로 아버지에게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을 건네었다.
사실, 거의 이틀에 한번꼴로 손자를 보고싶네 어쩌네, 딸의 결혼 청첩장좀 보내고싶네 어쩌네,
헛소리만 진창했던 아버지였는걸.
오늘도 그러면 콱... 그냥 성질나서 내가 비령님께 청혼해버리든지 해야지ㅡㅡ 등쌀에 미쳐 정말.
"그럴리가. 그런말을 하려고 이 추운 아침에 나왔곘느냐. 그냥 갑자기 세월이란게 느껴져서
감상적인 몸이 되어 나와본것 뿐.."
호오, 아버지를 다시봤단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아버지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다.
그러나 도저히 순수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누구완 달리 -_-.
멍하니 그렇게 서있자, 아버지는 내 손에 들린 바구니를 흘끗 보며 말씀하시기를,
"그건 용주관에 갖고갈 물건이냐?"
"...예."
"정성이구나."
말세라는듯(-0-) 혀를 차는 아버지.
"후후, 하지만 아버지가 저였더라도 이리 되었을걸요."
어느새 입가에 살짝 지어지는 미소. 내가 어떻게 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은 그 미소는 굉장히 행복하게 보였나보다.
아버지가 저리 흐뭇해하시는걸 보면.
그는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셨다.
"아직도 가주가 된것이 후회되느냐?"
"....?"
"태어날 때부터 짐을 가졌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지 않느냐. 아직도 가주가 인계되던 날
너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세상 다 끝났다는듯한 그 표정-"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나시나보다. 나도 기억한다.
우리집의 보물인 서구에 비쳤던 내 모습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던 나 월가묘의 모습이.
그런데 그것도 이제 가까운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가주란것은 생각보다 복잡한것도 아니였고, 가끔 노친네들과 집안문제로 싸워야 한다는 약점만 뺀다면,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아직도 후회되느냐? 아니면, 다행이라고 여기느냐? 너의 행복의 근원지를 만난것으로?"
..후후, 글쎄? 어떨까. 대답은 않고 씩 웃으며 아버지의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거울속의 내 눈과 똑같은 색. 예전엔 녹색이였지. 유일하게 집안에서 다른.
허나 연서령님이 떠나간 후로 다시 집안 대대로 물려오는 보랏빛 눈이 되었었다.
-이렇게 보니 모든일 하나하나가 용들과 관련되는군. 신기하구나.
"제가 후회할거라고 보십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널 만나것에는 후회없다.」
언제 말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 한마디만은 생생히 기억난다.
그래.
서용, 비령님이 내게 했던 말이였지.
그가 그랬듯 나또한 그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령님이 후회하지 않으면 나도 후회하지않아.
시간이 흐르고 역사의 흐름또한 서서히 바뀌며 숱한 이야기와 함께,
오늘까지 오게된 것에 대해서.
...나의 물음에 아버지는 말이 필요없다는듯 평온히 웃으셨다.
그리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차가운 눈송이와는 반대되게끔 따스한 손길로.
"난 네가 태어났을때부터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신의 축복의 끝은 이나라 황제이자 최고신녀라고 생각했지."
"......"
"헌데 신의 크나크신 축복의 정점은.. 용족의 여인이 되는것이였구나. 바로 이렇게말이다."
..신의 축복이라.. 용족의 여인이라...
누가 들으면 마치 꿈얘기인듯할 저 먼 세상의 이야기.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현실인 그런 이야기.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머리에 얹힌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가 서용과 내가 연결되기를 바란 목적이 무엇이였든,
항상..아버지께 감사하고있다. 그를 만나게 해준것에 대해.
"..가보거라. 겨울바람이 무척 차갑군. 네 몸도 꽁꽁 얼듯하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살짝 고개를 숙인 후 곧장 용주관쪽을 향해 걸었다.
우리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갖고있는 용주관으로.
얼마전까지는 한번도 인간사는곳으로 나와본적 없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비령님이 있는곳으로말이다.
점점 가까워져갈수록 마음이 이렇게 따뜻해져오는 이유는 아마,
그곳에 날 맞아주는 이가 있다는 확신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과 똑같은지 바구니속의 선물에서 바스락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리고 있다.
-끼이이익_.
"비령님! 밖에 눈이와요!!"
들뜬 목소리로 외친다.
물론 비령님에게 있어서 눈이란 별로 대단한게 아닐지도 모르지.
눈을 본적은 있을까 몰라.
똑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항상 조금늦은 아침에 와서 용주관에 햇살을 들여오고,
그는 나른한 눈으로 침대에 앉아 나를 맞이했다.
-잠덜깬 눈!!
클클, 그래. 그눈으로 말야.
"....?"
에..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딸깍거리다가 나를 보고는 그것을 얼른 감춰버리..
...???
"어어? 그게 뭐예요?"
"아무것도..."
거의 표정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은근슬쩍 숨기는거봐라-_-.
그래도 모른척하고 너한테 걸어가고있는 나. 얼마나 착하냐! 후후[자뻑증도 안변했음.]
나는 얌전히 바구니를 탁자에 올려놓고 침대에 풀썩 앉았다.
후우-파아-;;
어느새 언몸이 서서히 풀린다.
"...냉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차가운 기운이 난다고 중얼거리다가,
내 어깨를 잡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보는 비령님이였다.
"밖이 그렇게 추운가? 얼마나 오래있었지?"
-절로 따뜻한 미소가 지어지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아버지와 잠깐 얘기하다보니 시간이 좀 됐나봐요.
그래도- 눈이 오는데다.. 이제 실내공기가 따뜻해서 몸도 점점 녹고있잖아요."
비령님은 내 말을 듣고도 인상을 찌푸리며 내 어깨를 잡아보더니
결국 나를 그의 품에 안았다.
....호오, 굉장히 따뜻한 느낌. 한번에 확 따뜻해진 것 같은데?
"굉장히 따뜻해요."
"나는 좀 많이 괴롭지."
"엥, 왜요?"
그는 내 물음에도 대답않고 조용히 나를 떼어내며 말한다.
"..좀 추워지니 별 생각이 다 든다."
"...??"
"너로써는 도저히 상상할수도 없을..."
"??"
"거기에 백하유는 기름을 붓고.."
무슨 뜻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한숨만 내쉬었다.
고개를 숙이고..중얼거리는 비령님.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비령님."
알아듣게 말해야 맞장구를 치던지 해야할거아니야 -.-;;
왜 혼자만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겨..
"그래서 오늘 네가 오면..."
"....??"
"...휴."
=_=;; 뭐.뭐냐!! 너 때늦은 사춘기야? 나의 맑고 순진한(;;) 얼굴을 보니
갑자기 세상에 대한 회의라도 들던?
그는 뭔가 말하려다가 한숨짓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 거의 폐인수준.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번쩍 안아들고 문쪽으로 걸어가는 그였다.
"에? 지금 뭐하는.."
"눈을 좋아하나?"
비령님은 앞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그런것을 보면 그가 눈이 뭔지는 알았나보다.. 쿨럭. 물론 난 그 새하얀 눈을 좋아했다.
그 새하얌을 느끼고 있으면 천사가 되는~ 그런 기분 있잖아 왜.
씨익 웃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속삭였다.
"계절중에서 가장 좋아하는것이 겨울이 ㄴ이유가..눈이 있기 때문이예요."
"...이건 첫눈이지?"
"네."
"마침 좋은걸."
그가 살짝 눈웃음을 짓고 문을 열자 흐린하늘에 다소곳이 고개를 내민 해와
천지를 훑고있는 함박눈이 눈앞에 펼쳐졌다. 첫눈. 첫눈인데 함박눈이라니.
"오늘 뭔일이 크게 나려나봐요."
농담조로 웃으면서 말하자 그가 살짝 놀라며 내게 묻는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농담이였는데..뭔가 켕기는거라도 있냐? -_-;;
"뭐..그냥..첫눈인데도 눈이 복스럽게 펑펑 내리잖아요."
그는 그렇군..이라고 중얼거린 후 한동안 입을 다물고 눈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도 잠시 사향내가 옅게 풍기는 그의 품속에서 아늑함을 느끼며 눈을 바라봤다.
...전혀 말없이.....
..그런데, 딱 이 풍경에서 내가 배만 불러있으면,
딱인데. 동화이야기랑. 흐흐흐(또 므흣한 세계로 빠져들고있음)
"눈이오니 새삼 시간이 지났다는게 느껴지는군."
문득 그가 표정없이 말을 건네었다.
"음- 비령님도 그래요? 저도 그랬는데."
반년이란게 길수도 짧을수도 있는 시간이지.
특히 남녀관계에 있어선.
-아니, 내가 아직도 처녀란건 정말 경이롭다니까?? (왜 자꾸 강조하냐 -_-)
"네가 내게 부르는 그 이름을 듣는것도- 이제 자연스러워져버린걸 보면...
내게 있어선 굉장히 짧은 시간들이 새삼 길게 느껴진다."
...왠지 뭔가를 결심한 것 같다.
그는 확실히 평소의 분위기와 달랐고 표정.몸짓.그 모든것들 하나하나에
어떤 의지를 담은듯 했다. 그리고..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심장은 약속이나 한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게 오늘..어떤일이 일어날것만같은 예감이.
"뭔가..할말이 있는건가요?"
조심스레 그의 심중을 떠보았다.
내 물음에 대한 반응을 살피기 위해.
그 결과는 묵묵부답이였지만, 비령님은 내 눈을 들여다보다가 환히 웃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대답은 들은것과 다름없었다.
달칵_.
비령님은 용주관 밖의 진풍경에 대한 감상을 끝내었는지,
달칵- 하고 저쪽 추운공간과 이곳을 차단시켰다.
그리곤 다시 빙글하고 돌아서 가장 앉기 편안한 공간, 침대로...
"그런데 저건 뭐지?"
비령님은 나를 침대에 내려놓고 탁자에 시선을 두었다.
화려하게 조각된 무늬가 있는 옥색탁자에 가만히 놓여있는 바구니.
그건 나의 겨울선물이였다.
"선물같은거예요. 덮개를 걷어보실래요?"
활짝 웃으며 말하자 고개를 갸웃하며 바구니를 이쪽으로 들고오는 남자.
여태 내가 그에게 해줬던건
음식같은 자질구레한(그리고 절대 쓸모없는-_-)그런것이였으니,
이 해가 지나가기 전에 나도 비령님께 의미있는 선물을 주고싶었다. 그래서 만든것이-
"-웬 천조각?"
"손수건이예요!"
너한테 손수건이 필요할런지는 모르겠다만 그냥 나의 증표로 갖고다녀!
천조각이라니. 나의 정성(?)을 말야. 체,
그런나의 찌릿한 시선속에서,
비령님은 곱게 접어놓은 손수건을 폈고, 그와 동시에 녹색눈을 한층 크게 키웠다.
"無限之愛(무한지애:영원히 이어질 사랑)???"
무한지애라는 글자와 함께 손수건에 놓인 수는 흑룡을 나타내고있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의 서용만이 변할수있는 흑룡말이다.
나는 가사일,특히 음식과 바느질에 서툴었지만 수라면 항상 놓던것이였다.
평소같았으면 항상 꽃같은 간단한것만 수놓았을 내가,
어느날 정신차려봤더니 용을 수놓고있었던것이다.
그리고 다 완성한게 저것. 내가 그에게 준 손수건이다.
물론- 저건 내가 그에게 받은것에 비하면 하잘 것 없겠지.
저 손수건같은걸로 대축일때 내가 느꼈던 감동을 돌려줄수는 없을거야.
그래도 그것은 나의 진심이였다.
"좀..엉성한것같아서 글자도 수놓아본거예요."
아무말도 않고 손수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비령님이 왠지 뭐해보여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축일날 그가 이상한거 먹고 취했을때, (그 이유는 아직까지 파악못함.)
내게 해줬던말이다. 무한지애.
밤하늘에 '사모할 연'보다는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기분 좋았던 그 네글자.
...
...
..쩝, 좀 유치한가?
"끙.. 맘에 안들면 도로 주세요. 확 찢어버릴테니."
그리곤 너랑은 끝일줄알아 -_-ㅗ 진짜 그걸갖고 나한테 뭐라고 하면
진짜 쫑내버릴껴. 남의 진심도 몰라보는놈한테 평생을 바칠 순 없잖아?
'그..근데 진짜 도로 돌려주면 어째=_='
비령님은 계속 말이 없었다. 한번돌려서 10분보고, 뒤집어서 10분보고, 거꾸로 늘어뜨려 10분보고,
어쭈? 쭉쭉 늘이기까지? =ㅁ=;
"마음에..들어요?"
쪽팔림을 억누르고 쥐어짜는 목소리로 질문을 건넸다.
...침묵.
그의 표정은 정말 당췌 알수없었다. 옛날에도 항상 그가 하는행동이나 표정은
아리송하기만 했다.
지금도, 그가 기뻐할까 슬퍼할까, 전혀 짐작하지 못한채 난, 대답만을 기다리고있다.
얼마지나지 않아 그가 붉은입술을 열었다.
"..하,"
으응?
..웃음.
분명 웃음이야. 그렇지?
-기분좋게 벌어진 입.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얼굴에 화색이 도는게,
정말 기뻐한다는게 확 하고 와닿았다.
"하하... 하하하하..."
"저기..비령님?"
기뻐하고 있는건 좋은데..?
그는 계속 웃음만을 뱉어내었다. 여지껏 이런식으로 웃지는 않았던걸로 기억하는데..비령님은?
"비령님?"
"아하하하...하하하-"
"꺅-"
뭔가 느낀 순간- 어느새 사향내음이 내 코를 확 하고 덮쳐왔고,
내 몸은 다시 그에게로 와락 안겨들었다.
"으응..."
뜨겁게 닿아오는 입술의 느낌에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 세게 파고들어온 혀를 받아들였다.
여태 질리도록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을 했지만 여전히 난 그의 비밀스런 향을 느낄수있는
입맞춤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썬 이것이 그의 생각과 감정을 완벽히 읽어낼수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는 매우 기뻐하고있었다. 나를 어찌해야할지 몰라했다.
이게 현재 그분의 마음상태.
아니나 다를까 비령님은 입술을 떼고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어찌해야 좋을까 월가묘..."
"많이기뻐요?"
"응."
"훌륭한 실력이 아니였는데..."
그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마 더이상은 칭찬할 말도 없어서 그랬으리라. 아니면 선물에 기쁨을 감추지 않는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워 그런지도. (부끄러울 일인가?)
덩달아 나도 기분이 하늘로 오르는걸. 후후, 효과가 있을줄은 몰랐어.
음식을 다 뱉어버려서 의기소침했거든. [그거랑 이거랑은 달라-_-]
내가 다음부터 더 열심히 바느질 연습하겠다고 말하려 하는 찰나,
서용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내 손을 꾸욱 잡았다.
"...약속할 수 있겠느냐."
"...네?"
거친 숨소리가 내 귀에 닿았다.
그는 살짝 흥분한듯 보였다.
전과 전혀 다른 표정.
비령님은 긴장이라도 했는지 목소리까지 떨어가며 내게 말했다.
"나와 영원을 함께한 자신을 갖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
......
....
...
..에.. 그러니까.. 지금것이..
"뭐라고..하셨어요?"
"아-참, 이게 먼저가 아닌데."
갑자기 머리를 탁 짚으며 신음하는 서용.
그는 고개를 숙이고 품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무.엇.인.가를.
"......."
그것을 향해 눈을 고정시켰다.
아주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안고.
-작고, 검은상자.
많이 열고 닫았는지 끝이 살짝닳아있는 상자였다.
그것을 향해 모든 정신을 쏟았다.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건가?-
"아!!"
생각해보니 아까 용주관에 막 들어왔을때 그가 이것을 딸깍이고 있었던 것 같다.
맞아. 제법 심각한표정이였지. 정말 그런것같아!
주먹만한 크기의 검은상자.
난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뭐예요?"
"...이건,"
그는 말을 멈추고 아주 호흡을 고르게 쉬려고 노력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입술. 살짝 찡그린 이마.
꼭쥔 주먹까지.
천비령이란 남자 생애에서 이런때가 또 있을까?
딱 봐도 긴장하고, 초조해있고 불안정한게 보이는데.
그만큼 저 안에 굉장한게 들어있다는 뜻인가?
나도 덩달아 조바심이 났다.
그게 뭐죠 비령님?
"열어..봐도 돼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자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상자는 어느새 내 손바닥위로 투욱 떨어졌다.
....
......
.......기분이,
"으..."
이 상자를 여는 순간 어떻게 될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왠지 이 상자를 열면 울어버릴것만같은 느낌에 이도저도 할수없게 되고말았다.
내 손에 놓여진 순간, 심장이 미쳐버리고 말았단말이다.
'심장아.. 진정좀 해라.'
이렇게 꼴값해놓고 이상한게 툭 나오면 얼마나 무안하겠어.
진정하자 진정.
내가 어쩔줄 모르고 검정상자의 뚜껑만 매만지고 있자,
비령님은 내 손등에 손을 얹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건.. 3개월도 전에 완성했었다."
"....!!"
"하지만..과정이 쉽지 않았지. 막상 주려하니까 별 생각 다들더군.
아직 빠른게 아닌가도 싶었고..
네가 준비된건가도 걱정스럽고.. 결국 시간을 이리도 끌어버렸다. 오늘... 주어버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너의 [무한지애]를 보니 결심이 섰던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알고싶어 미치겠음에도 내 몸은 전혀 움직여지질 않았다.
눈만 멀겋게 뜨고 비령님을 바라보고만 있자 그는 살짝 웃으며 내 손이 움직이는것을 도와주었다.
"그것의 이름은..."
검은 상자의 뚜껑이 달칵하고 소리내며 분리되는것이였다.
그 주먹만한 상자안에 나란히 놓여있는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건말건, 비령님이 다음으로 한 말과 동시에 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것을 진실로 느꼈다.
"초유국서용연(草儒國西龍戀)이다."
.......
......
.......
.....
아무생각도 들지 않는데, 눈과 귀만 열렸나보다.
그냥 내 아래 있는 이게 뭔가-하고..
이게 무얼까..이 붉은것이 무얼까.. 이젠 그것만이..
"혹시.. 내 한쪽 귀에 걸렸던 홍옥귀걸이를 기억할련지 모르겠다."
약간은 쑥쓰러운 투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아주 작은, 작은목소리로.
나란히 누워 빛을 발하고있는,
한쌍의 홍옥귀걸이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가 새겨준 글자는 천비령 하나였지. 하지만 이제, 영원히 기억할 사람이 생겼으니
나는 그 귀걸이가 없어도 괜찮아. 그래서 .. 바꿔보기로 했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한쌍.. 정확히 한쌍의 붉은 귀걸이를 들어올려보았다.
-내 눈동자까지 비칠듯한 맑은 홍옥에 섬세하게 새겨진 글자들.
"나는 한쪽이였지만, 그것을 나누어 한쌍이다. 글귀도 더이상- 비령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귀걸이를 내 손에서 가져가,
오른쪽 귀에는 초유국(草儒國)을, 왼쪽 귀에는 서용연(西龍戀)을, 그렇게 새겨진 각각의 귀걸이를..
차분하게 달아주었다.
"나..나는..."
당신에게..무엇을 해준것이 없는데..
"역시 홍옥귀걸이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어울린다."
그는 만족스럽게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당겼다.
찰랑- ... 하고, 양쪽 귓가에 금속과 홍옥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어째서..."
내가 뭐라고. 용에 비해서 하잘것없는 인간계집일뿐인 내가 뭐라고.
"내가 무엇이나 된다고..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비령님은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가장 어조로 말했다.
"오른쪽은 네가 사랑하나는 이 국가. 초유국(草儒國)이고
왼쪽은 네 자신이다. 천비령, 즉 서용(西龍)이 연(戀)모하는 유일한대상.
서용연(西龍戀)."
..초유국..서용연..이라고..
그렇다는것인가요..
..
내가 계속 눈물을 퐁퐁 쏟자 분위기를 모면하려는지 비령님은 장난스럽게 내게 말했다.
"사소한것에 많이 우는데..
그 귀걸이의 대가가 굉장히 비싸다는것은 알고 있곘지?"
...?
멍하니 보고만 있으려니, 손가락 두개를 펴서 내게 보여준다.
"첫번째는..이것이다."
손가락 하나.
"영원의 시간을 나에게 주어야 한다는것. 그것의 의미는 결실이다.
정식으로 나의 여인이 되는것과 동시에 너는 영원의 시간을 빼앗긴다.
그 다음생애, 그다음생애, 계속 나를 만나겠지."
"아...."
"그리고 두번째는,"
그는 말하다 목이 결리는지 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현재의 육신이 수명을 다하고, 그 다음에 만났을때, 또는 그 다음에 만났을때에도,
너는 그 귀걸이를 잊지않고 어느곳에 두었다가
다시 소생한날 되찾아 몸에 지녀야한다. 그리고- 나를 발견한 경우..
서용이 아닌.. 내 이름을 잊지않고 불러야한다."
비령님이라고.. 그렇게요?
..
그 두가지 인가요?
하나는 영원히 함께한다는거, 나머지 하나는 이것을 귀에걸고..
이름을 불러주는것?
"내가..좋지 않은 여자라면 어떻게 하려고.."
"용이 선택한 연분은 정확해."
"후..자신감이 과해요."
할말이 이게 아닌데 자꾸만 말이 헌나갔다.
여전히 볼을 적시는 눈물.
이러지 말아야지. 나도 약속해야지.
나는 다부지게 눈물을 훔치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꼭...지킬거예요."
"당연히 그래야..."
다음 생(生)에도, 그 다음 생에도, 꼭 먼저 찾아볼거예요.
나를 찾지 않더라도 끌어내서 데리고 살게요.
"이..초유국서용연이란것.. 신께서 부르실때까지 몸에 지니고 있을거예요."
...
그말이 끝난 후, 입술에 스치는 그의 미소를 보았다.
.
..
.
.
.
초유국서용연.草儒國西龍戀.
「BCC 2500년에 발굴된 고서적 초유국서용연이 신빙성을 가지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대대로 오는 단어와 초유국 전통결혼제도에서 볼수있다.
모두들 알고있는 육자성어 초유국서용연.
현세사람들은 그것의 의미를 '세상에서 하나뿐인 영원한 사랑'정도로 알고있다.
그 유래를 여태 찾지 못했으나, 효소초태왕시절의 역사서와 BCC 2500년의 초유국서용연이란 서적을 통해
드디어 그 어원을 찾아내게 된것,
그리고 나머지 전통결혼제도.
사람들은 그 후 월가묘라는 여인의 귀에서 찰랑이는 두개의 홍옥귀걸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한다.
오른편에 국가명을 의미. 왼편에는 남자가 새겨준 여인 그 자체를 의미.
당시 초유국사람들은 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부러움을 감출줄몰라
부족함이나마 자신들도 비슷하게 해보고싶어했다고 한다.
돈이 있는 집은 진짜 홍옥을 구해서 신랑이 직접 글을 새긴다. 오른편에 국가명 왼편에 신부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돌 혹은 금속에 글을 새겨 신부에게 직접 귀걸이를 걸어준다고 한다.
이러한 희망이 대대로 세습되어, 그것은 이미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해버렸고
요즘에도 우리나라의 신랑은 귀걸이에 직접 글을 새겨서 신부에게 주지 않는가?
그런것들을 미루어보아 한 여인과 한 용족의 사랑은 실제였다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추정하고있다.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만약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도 그들은 서로와 함께하고 있을것이 아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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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유국서용연[草儒國西龍戀] 71 - 75(完)
雪柳香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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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3
06.05.15 00:2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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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다 ㅠ_ㅠ
우와~ 재미있어요. ㅇ. ㅇ~
너무 재밌어요>_<
다시 읽어도 재밌다
정말 너무 재미있어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2부도 나오면 좋으련만...
재미있어요ㅠ너무 늦은 시간이네!ㅎ
환생이야기는 없나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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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되게 재미있어요...캡![짱](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4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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