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6 주일설교 (묵상: 사 43:1-21)
본문: 신 10:12-13
제목: 경외하여 모든 도를 행하라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그의 모든 도를 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신10:12)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니까 그의 모든 도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모든 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경외함이 없기 때문이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그의 모든 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이중인격이요 외식이요 헛된 경배요 예배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5-26)
- 겉으로는 옳게 보여도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였다.
1.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신10:12)
‘경외하다’의 히브리어 의미는 ‘두려워하다’ ‘존경하다’이다.
중국 글자 경외는 ‘공경할 경’ ‘두려워할 외’이다.
영어 성경은 경외를 ‘fear’(두려워하다)로 표현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른다.
교회가 하나님 사랑 타령만 하다가, 경외함을 잃어버린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자의 지혜는 어리석고 교만한 것이다.
거룩하신 이를 모르는 자의 명철도 죄인의 어두운 명철일 뿐이다.
그 지혜와 명철이 결코 그를 구원하지도 자유케 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헛된 경배가 되는 원인이 인간의 교훈에 의지하는 것이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8-9)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꾸만 율법화한 바리새인들은
결국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른 것이었다.
인간의 철학과 초등학문을 따라 성경을 가감한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의 계명은 사람의 지혜요 사람의 철학이요 신학이다.
교훈을 삼는다는 것은 교리화 율법조문화 한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만 성경을 사람의 계명으로 율법조문화 한 것이 아니다.
로마교회도 성경을 율법조문화 곧 교리화 하였고,
개혁교회도 성경을 교리화 한 것이 바로 율법조문화 한 것이었다.
현대교회도 성경을 철학화 신학화하는 것이 바로 율법조문화의 변형인 것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지배한 교회들은 하나 같이 성경을 율법조문화 곧 교리화 한 교회였다.
종교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떤 분야도 교리화에 성공한 자들이 지배하였다.
그들이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들은 것이었다.
교리와 율법조문들은 옳게 보였지만, 속은 오직 탐욕과 방탕,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였다.
그 결과 교회와 세상은 오랜 세월 동안 황폐화 되었고, 기초는 역대로 파괴되었다.
주님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는 자들을 ‘화 있을진저!’ 하셨고,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자들이라 하셨다.
유대교회에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교회를 지배하였다.
그런데, 역사를 잘 들여다 보면,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도 명칭만 달랐을 뿐,
항상 ‘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 교회를 지배하였다.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상의 각 분야도 마찬가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그 분야를 지배하였다.
사람의 철학으로 율법조문화 곧 교리화하여 가르치는 교회는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
율법조문은 곧 교리와 신조들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조문들과 교리들은 하나 같이 먹으로 돌판에 쓴 것들이요,
영으로 마음판에 쓴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개혁교회에 속하였고, 그 완성품이라 할 수 있는 청교도신학만 16년 정통하였다.
바리새인의 율법조문화와 개혁교회 곧 루터와 칼빈의 교리화가 같은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그 긴 세월을 거기다 바쳤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주님의 은혜로 참 교회인 발도인교회의 긴 역사를 사실로 접하고서야,
맹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졌고, 거짓을 직시하게 되었다.
루터와 칼빈의 교리체계들도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친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2년여의 고심 끝에 큰 확신에 이르렀고, 성경도 사명을 받게 되었다.
영으로 마음판에 쓰고 영으로 말씀을 사는 새 언약을 붙들게 되었다.
주님은 이 새 언약을 주님의 피로 세우셨고 우리를 위하여 부어주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10)
하나님의 법도가 나의 생각에 있고 마음에 기록될 때
하나님과 백성의 산 관계가 비로소 맺어지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는 것이다.
우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된다.
성경의 교훈과 책망으로 인간이 온전케 되지도 못하고 모든 선을 행할 능력도 갖추지 못한다면
그 많은 율법화한 지식과 교리화한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발도인들은 자기들의 목자인 바르브를 선출할 때, 남녀를 차별하지 않았고,
성경의 영적 가르침과 삶의 모범을 기준으로 하였고, 선출한 다음에는 전적인 복종을 하였고,
바르브들은 21일 금식을 하였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하나님을 경외함의 본과 모범은 아브라함이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나님 경외는 말로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하신다.
우리는 초대교회처럼 발도인들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복음과 실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경외하였기에, 그들은 박해와 고문과 십자가와 화형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주의 말씀대로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였다.
말만 많고 책들만 많고 교리들만 많은 허접쓰레기들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야 한다.
회개와 행함의 열매들로 가득한, 초대교회와 발도인들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병자와 갇힌자들을 돌봄으로 공의와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2. 경외함은 그의 모든 도를 행하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도를 행하는 것이다.
그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성경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성경을 지켜 행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가르침은 있되, 그 지켜 행함은 없다면,
그 가르침은 길가에 바위에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일 뿐이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가 옥토에 뿌려진 씨이다.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이고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이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어도,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것이 없다면,
그는 불법을 행한 자요 주님은 도무지 모른 자이고 떠나가야 할 자들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여호와를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는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긴다.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의 사람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그의 모든 도를 기록한 성경을 사랑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없이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 순수한 경건서적을 만나야 한다.
3. 경외함은 내 행복을 위한 것이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3)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아니라, 바로 ‘내’ 행복을 위해 지키라는 것이다.
그 지킴이 바로 나와 내 집 그리고 내 후손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셨다.
오랜 광야 길을 걷게 하시는 것도 마침내 내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잠시 내가 받은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내게 이루게 하신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대장부가 되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하였다.
참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람은 풀과 같고 그 영광도 풀의 영광에 지나지 않다.
풀은 마르고 그 영광도 시들고 만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신다.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후손에 이르기까지 복과 은혜를 베푸신다.
참으로 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성경을 즐거워하고 그의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음 같이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