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하나에도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는 말은 꼭 불심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은 아닌다. 적어도 운주사(雲住寺)에서는 그렇다. 절 입구에서 객을 맞이하는 것은 오른쪽 바위 언덕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거나 앉아 있는 돌부처들. 코도 닳았고,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하나같이 납작한 얼굴, 비바람에 닳고 닳았다. 멀리서 달려와 지친 이들에게 이들의 이지러진 얼굴은 더 살갑다. 그 친근한 얼굴 속에 부처가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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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워 있는 돌부처가 일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이 서린 운주사 와불. 이런 사바 세계의 염원조차 한낱 헛된 것일까? 부처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 |
천불천탑도량(千佛千塔道場)으로 불리는 전남 화순군 운주사. ‘1000구의 석불과 1000기의 석탑’이 있던 곳이란 표현이 전혀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운주사 매표소(성인2000원)를 지나 눈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는 ‘9층석탑’(보물 제796호)이 우뚝 솟아 있다. 그 뒤로 시루떡을 쌓은 듯한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과 불감 안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돌아 앉은 ‘석조불감 쌍배불 좌상’(보물 제797호)이 원경으로 펼쳐진다. 곳곳에 흩어진 석탑에는 이렇다 할 형태가 없다. 아무렇게나 돌을 쌓은 ‘거지탑’도 있고, 사람 머리만한 돌덩이가 세워져 있는 것 같아 다가가 보면 부처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운주사 계곡은 상상이 허락되는 공간이다. 제대로 된 기록이 없으니, 수많은 설화가 존재한다.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하늘나라의 석공들을 불러 하룻밤 사이 천불천탑을 세워 새 세상을 부르려 했으나, 일에 지친 동자승이 새벽닭 울음 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공들이 하늘로 돌아가버려 미완에 그쳤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소설가 황석영은 ‘장길산’에서 의적 장길산이 새 세상을 꿈꾸다 실패한 혁명의 땅으로 묘사했다.
지금은 석불 70구와 석탑 18기만 남았을 뿐.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훨씬 많았는데 넓고 반듯한 석재는 농가의 장독대나 봉당 섬돌로 옮겨졌고 불상이나 석탑도 장식용으로 유출됐다.
절 왼쪽으로 ‘와불님 뵈러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면 누워 있는 한 쌍의 돌부처를 만난다. 운주사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영험한 부처.
운주사에서 나오는 길, 젊은 남녀가 펑퍼짐한 돌에 앉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온 샌드위치와 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던 시골 아낙이 말한다. “총각, 그거 부처님이여.” “오메!” “아이고 몰랐네잉” 늘씬한 미녀의 입에서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터져 나왔다.
운주사에선 평범한 돌덩이 하나가 부처가 되고, 부처는 지친 여행객의 쉼터가 된다. 혹 뒹구는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가 거기서 부처의 얼굴을 본다고 하더라도 호들갑을 떨지는 말 일이다.
보너스, 담양도 놓치지 마세요
◆ 담양 대나무골 테마공원
대나무 숲속을 거닐며 죽림욕에 빠져 드는 곳. 고지산 기슭 3만여평의 대밭에 맹종죽·왕대·분죽 등 20m는 족히 넘을 듯한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5월 초부터 7월까지는 죽순이 올라오는 계절이어서 여행하기에 안성마춤. 사진기자 출신인 신복진씨가 30년전부터 조금씩 땅을 매입해 공원 겸 청소년야영장으로 가꾸어 왔다. 각종 CF와 영화·드라마촬영지로 TV에 자주 등장했다.(061)383-9291 bamboopark.co.kr
◆ 가마골 용소
담양온천이 있는 담양리조트를 지나 29번 국도를 타고 담양호를 따라 순창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가마골 표지판이 나온다. 가마골은 영산강의 수원지로 불리는 곳. 규모는 작지만 연못에 떨어지는 폭포수의 물줄기가 무척 시원하게 느껴진다. 용소 위 절벽 위에 있는 시원정에서 출렁다리를 건너 등산로를 따라 산책할 수도 있다. 가마골야영장(061)383-2180
[ 여행수첩 ]
● 가는 길
서울 등 수도권에서 담양·화순까지 고속도로로 4시간은 족히 걸린다. 화순은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기 때문에 광주나 담양을 거쳐야 한다. 담양이 초행길이라면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빠져 장성을 거쳐 담양으로 들어가 두루두루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송강정과 소쇄원을 거쳐 바로 화순으로 넘어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서광주IC, 동광주IC를 차례로 지나 88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담양IC에서 빠져 29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다 소쇄원 방향 지방도로 갈아탄 뒤 화순으로 넘어가면 된다. 경남에선 남해고속도로를 타다 창평IC를 이용하면 바로 담양으로 들어간다. 화순에 가려면 광주까지 내려오는 것이 가장 빠르다.
● 묵을 곳
담양·화순 지역에는 온천이 세 군데 있다.
담양온천 (061-380-5111)은 대나무골테마파크 인근에 있다. 남탕과 여탕을 1주일에 한 번씩 바꿔 남탕과 여탕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쾌적한 편이다. 바로 옆 담양리조트에서 묵을 수도 있지만, 숙박료가 15만9000원으로 비싼 편. 온천요금은 6000원. 가족탕도 있다. 5만원. 화순에는 금호화순온천리조트 (061-370-5000)와 도곡온천이 있다. 화순온천은 화순보다는 담양과 가까운 편. 송강정~식영정~소쇄원~물염정을 꼼꼼히 돌아보고 난 뒤 화순온천으로 직행하면 좋다. 150m 길이의 원통형 미끄럼틀이 있다. 도곡온천은 운주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모텔 수십 개가 밀집해 있어 방을 잡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해 개장한 도곡스파랜드 (061-374-7600). 수영장에 65m 길이 워터슬로프(1000원 4회·평일 무료)가 설치돼 있다.
● 먹을 곳
명가은: 소쇄원에서 1㎞ 가량 떨어져 있는 전통찻집이다. 녹차를 마시며 마당을 바라보고 있으면, 먼 옛날 이 지역에 들어와 정자를 짓고 살았던 은자(隱者)들의 심정을 이해할 듯싶다. 차는 몇 번이고 우려내 마셔도 된다. 1인당 5000원.(061)382-3513
국보966옛날두부: 담양군 24번 국도변에 위치. 100% 국산콩과 댓잎이 들어가 푸른색을 띠는 손두부를 맛볼 수 있다. 무료로 제공되는 콩물이 구수하다. 댓잎 생두부가 3000원. 말간 국물로 끓여낸 두부전골이 여독을 풀어준다. 5~6가지 재료로 우려내는 육수에 대해선 “고기를 쓰지 않는다”는 말만 해줄 뿐, 비밀이라고! 두부전골 2~3인분 1만3000원.(061)381-9662
전통식당: 담양군에서 송강정을 지나 소쇄원으로 가는 길. 40여 가지가 넘는 한정식 반찬을 한 번씩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참게장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4년 묵은 김치에 싸서 먹는 삼합(남도한정식)도 일품. 메뉴는 전통한정식 2만원, 남도한정식 2만5000원 두 종류. 된장·고추장·물엿·참게장·젓갈·장아찌·김치를 판매하기도 한다.(061)382-3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