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기(소방) 최종합격자 입니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까 생각했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 소방학교 입교를 1주일 남겨둔 지금에도 잘 실감이 나질 않네요..
친구랑 소주 한잔 마시고 집에오니 비도 오고 잠도 오지 않아서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처음 공무원 공부를 했었던 때는 군대를 갖 제대한 2003년도 였습니다. 제대하고 누나가 살던 외대옆 이문동 자취집에 같이 살게 됩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시라 집에서는 '너도 공무원 해라'는 압박을 받아왔던터라.. 복학하기전 공무원 시험이 어떤건지나 알아보려고 종로 서점에 갔다가 남정집 선생님의 '맥 행정학'을 한권 샀습니다.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더구나 행정학이라는 난해한 과목을 강의 없이 책으로만 공부 할려니 이해도 되지 않고.. 그래서 3개월만에 GG를 선언하고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고향에서 7개월정도 학원 봉고차 아르바이트를 하고 2004년도에 복학을 했습니다.
대구에 있는 K대 건축공학과에 복학을 해서 친구들과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던 2005년 즈음에.. 항상 같이 수업듣고 같이 놀던 저를 포함한 친구3명이 여름 방학이 되자 공무원 학원에 같이 등록을 하게 됩니다. 대구에 있는 '춘추관'이라는 학원이었는데 그 시절에 대구에서는 그학원이 제일 인기가 있었습니다. 처음이고 공무원에 대해 무지했던 때라 남들 다하는 9급행정을 준비했었습니다.국어는 호호샘 이재현 선생님, 국사 정재준 선생님, 행정학 남정집(참행정학으로 바꼈더군요), 영어 이성철 선생님, 행정법은 하근영선생님. 이정도 강사진이면 노량진이 부럽지 않았죠. 꼭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기 보다는 졸업과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면서 종합반 2달이 다 끝나갈 즈음에서 깨달은 건 학원 출석은 반도 못했고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보통신부 시험과 지방직 국가직 시험을 빼놓지 않고 보았으니 어림도 없는 점수로 낙방했죠.. 2006년에도 학원을 다시 등록해서 다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은 거라고는 학원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춘추관' 마크가 찍힌 최고급 독서대뿐...
졸업학기인 2007년 2학기 때까지 술과 당구 게임만 하면서 살았죠. 당연히 학점은 바닥을 쳤고 제때 졸업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남들 다 따는 기사자격증도 못땃고. 다행히 계절학기 한번 듣지 않고 졸업학점 2.3점이라는 부끄러운 학점으로 가까스로 졸업하게 됩니다. 취업자리가 있을리 만무했고 원서를 내도 연락 오는 곳은 없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졸업장만 받아서 고향으로 낙향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터라 그때부터 도서관으로 출근했죠.. 작은 시골의 도서관에 며칠 다니다 보니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는 동창들이 많았습니다. 오랫만에 만나서 서로 인사하고, 모르던 사람은 새로 친해지고... 외로울 것만 같았던 수험생활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만 취업을 못한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었고, 같은 수험생으로서 같이 노니깐 불안감도 잊혀졌습니다. 그때가 2008년 2월이었죠. 그후로 6개월 간을 아침에 가방만 도서관에 던져두고, 도서관앞 벤치, 피씨방, 당구장, 저녁엔 가방가지고 술집을 반복했습니다.
소방을 하게된 계기는 정말 우연적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소방 공무원을 준비했었는데, 벤치에서 담배 피면서 얘기를 하던중, 소방은 체력이 빡세다는 거였습니다. 제멀이 젤 빡센데 자기는 만점이 나온다면서 자랑 비슷하게 말하길래, 같이 한번 뛰어 보자고 하고 뛰었는데 제가 친구보다 10센치 가까이 더 많이 뛰는 거였어요. 그래서 소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체력시험 보러 가서 안 사실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왕복오래달리기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올해 경기시험에서도 왕복에서만 2점 감점당했네요.
그렇게 고향에서 즐거운 수험생활을 만끽하던 중, 아버지가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게 됩니다. 우리 가족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죠. 정말로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가족이래 봐야(누나는 시집감) 아버지, 엄마, 내가 전부이지만 우리집 세식구가 원룸에서 서울생활을 시작하게됩니다. 다행히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나고, 항암치료도 무사히 잘 받으셨습니다. 수술후 거의 1년 가까이 통원하면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었는데, 전세집이 회기동이고 병원은 풍납동 아산병원이라 가까운 거리가 아니어서 매일 아버지를 병원까지 통원시켜 드리는게 그때 내 임무였고 하루 일과 중의 하나였습니다. 병원 갔다오면 집 바로 옆에 경희대 도서관에서 공부했었고, 밤 12시 도서관 문 닫을때 집에 왔습니다. 장기간의 수험생활 중 이때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때였던것 같습니다.
2009년도 여름쯤 아버지가 항암치료 끝나고 고향으로 내려 가시고 혼자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게 됩니다. 슬슬 공부에도 지쳐가고 생활도 느슨해졌습니다., 시험에도 계속 1~2점 차이로 떨어졌죠. 집에서도 심한 압박이 들어오고, 노량진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됩니다. 인터넷으로 노량진 학원을 알아보고 이그잼 종합반을 등록합니다. 이때까지 3번 학원을 다니면서 3번 다 종합반만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과로 듣는게 더 효율적일 거 같은데 그땐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달동안은 학원 열심히 다니고 복습도 철저히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면서 출근시간에 그 미어터지는 지하철이 슬슬 타기 싫어지면서 부터 또 나태해 지기 시작합니다. 경희대 도서관도 경희대 학생이 아닌걸 수위한테 3번이나 걸려서 더러워서 안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0년도 5월달 상반기 경기도 소방시험에 또 낙방했습니다. 일주일동안 밖에도 안나가고 전화도 안받고 방에서 누워만 있었습니다. 일주일만에 받은 엄마 전화에서 엄마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나왔습니다. 엄마도 내가 우는걸 눈치를 챘는지 괜찮다고 그러네요. 내년에 또 보면 된다고 그러시는데 나보다 엄마가 더 속상했겠죠. 한달동안 폐인처럼 술만 먹고 다녔습니다. 그러던중 매형이 폐인처럼 살지 마라고 일자리를 하나 구해줬습니다. 경희의료원 야간주차하는 일이었는데 근무시간은 길지만 밤에는 한가해서 틈틈이 공부도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근무시간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더군요. 더군다나 진상고객님 한번 오는 날에는 일년에 먹을 욕을 하루만에 다 먹을 수도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유난히 추웠던 작년 겨울을 보내고 올해 2월에 퇴사했습니다. 4개월만 더 버티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5월 시험이라면 적어도 3월부터 시작해야 과목당 한,두번씩은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올해 시험은 통합이라 한곳만 정해서 봐야했기 때문에, 시험기회는 줄었지만 인원이 분산되기 때문에 나름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응시지역은 경기로도 선택하고 주위 사람들의 부담스런 주목을 받으며, 5월 14일 의정부 회룡중학교로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문제가 어려웠고,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초조해지면서 이마에 땀이 나더군요. 시험 마치고 나오면서 이번시험은 떨어졌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영어는 3문제 정도 찍었고, 행정학은 1문제 마킹 실수한데다가, 전체적으로 어렵게 느껴졌었기 때문이죠. 주위 사람들에게도 별로 기대는 하지 말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필기합격 발표날 내 이름이 명단에 있는 걸 보고 혼자 방안에서 미친놈처럼 날뛰었습니다. 최종합격때보다 필기합격때가 더 기뻣습니다. 최종합격때는 좀 멍한 느낌이었구요.
아무튼 이걸로 32살 길고 길었던 수험생활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어제 방에 있던 수험서 모두 사과박스에 다 담았습니다. 책이 얼마나 많은지 무거워서 들지도 못하겠더군요. 자취방 정리 대충 해 놓고 고향에 와서 내방 책장을 보니 여기에도 2006년대비(2005년판) 행정학 책이 있네요.ㅋㅋ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글이 길어졌습니다.
공부하시는 여러분들 모두 저와같은 전철을 밟지 마시고 바짝 공부해서 단기간에 합격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담배한대 피고 자야겠네요.. 우리 모두 소방서에서 만나요......BYE
첫댓글 멋집니다.^^ 최종합격 축하드립니다.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었으니 훌륭한 소방공무원이 되실것입니다. 55기 동기가 되겠군요.ㅋㅋ
좋겠다... 저는 어서 기본서 문제집을 불태우는 꿈을 항상 꾸는데 . . . .^^
멋진 대한민국 소방관 되세요~~
와 멋지십니다...저는 머리가 안좋아서, 수험 기간이 너무 길어질까봐 걱정만 앞서네요....
많이 고생 하셨네요....축하 드려요...
이번 경기도는 초장수생님들 활약이 두드러지네욤... 8년..... 대단하시네요 ㅋㅋ ㅊㅋ드립니당~
축하드립니다.
잘읽었습니다. 멋있네요
축하드립니다^^포기하지 않았기에 합격하신거 같아요!
축하드립니다. 경기도를 지켜주세요. 이말 멋지네요. 어느지역을 지켜달라는 말이.. ^^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고생많으셨어요! 저도 님과 동갑인데, 올해 전남소방보고 필기결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님처럼 좋은 결과가 꼭 있을거라 생각하고 기다릴게요~ 다시 한번 고생많았습니다..
이야~ 글을 잘보았습니다 ! 대단하시네요~ 저도 올해20살이되었는데 전 14살중학교1학년때부터 장래희망(꿈)이 소방공무원이라서 지금은 그꿈을향해 달리고는있어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리고 또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험생 자식을 둔 아버지로써 눈물이 나옵니다. 부모님께서 얼마나 님이 대견하시겠어요
이게 바로 효도입니다. 부디 공직 생활 잘 하셔서 부모님께도 효도하세요.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저도 회기동 사는데... 집 근처 사시네요,,, 경기 현직입니다.. 혹시나 같이 근무하게 된다면... 잘 지내봐요...
눈물날뻔했어요
축하드려요
대구에 K대면 경북대 이신가요 ^^
글을 읽고.. 정신차렸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쩌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