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장 호사다마(好事多魔)
417 “옛날부터 좋은 일이 있는 데에 안 좋은 일이 따라 다닌다는 ‘호사다마’라고 허는 말이 있지 않던가? 아부지가 석방되고 나니, 아들이 그러케 돼 뿌럿다니까.” “그래 순남이 자네 말이 맞담 말이시. 꼭 좋은 일 담에는 나쁜 일이 따라오더라니까.” 유치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는 날 원수였던 장영팔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김영규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아들 근식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 팀장이 ‘호사다마’란 말을 했다. 좋은 일이 있고 난 후에는 꼭 나쁜 일이 뒤 따르더라고 덕형도 거들었다. 강물에 멱을 감으며 노느라 점심을 먹은 걸 소화를 다 시킨 삼 남매가 불을 지피고 삼겹살을 구워 먹을 요량이다. 그리고 산동댁은 장독대 옆에 여름철 때만 사용하는 아궁이에서 수육용 돼지고기를 삶을 채비를 했다.
“아그들아 이리 와 봐라.” 이 팀장이 지갑을 꺼내 들고 삼겹살을 구워 먹던 아이들을 부르자 삼 남매가 동시에 쳐다본다. 지갑을 꺼내는 모습을 보더니 우르르 달려왔다.
“느그덜 공부 잘하라고 주는 거란다.” “아니, 그거이 무신 짓인가? 어찌하라고 그런 큰돈을 아그들한테 주는가?” 갑자기 거금 300원씩을 받는 아이들이 어리둥절했다. “맹희야! 얼런 아저씨한테 돌려주거라.” “아닐세 이 사람아! 다 이유가 있는 돈이람 말이시. 친구 자네는 암말도 말고 있으소.” 일찍이 명채와 형기에게 강덕형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힘이 천하장사인 그가 일본인 스모장사 출신 거인 가토에게 풀이 죽어있던 조선인들의 기를 살려주었으며 조선인의 긍지를 살려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미나미 총독저격 사건을 일으켰다는 동갑내기 덕형이 초야에 묻혀 어렵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꼭 한번 만나 보겠다고 벼르다 오늘서야 만나 봤다.
처음 덕형을 보자마자 뿅 하고 가버린 것은 개울에서 아내가 등목 해주면서 노출된 그의 윗몸을 보는 순간 가슴과 잘 발달한 어깨 근육을 보고부터서다. 그리고 들논 한 마지기 없고 재 너머에 천수답 농사뿐인 것을 알게 된 것은 점심 밥상을 받으면서다. 식구끼리는 꽁보리밥을 먹으면서 손님 배려하느라 쌀이 절반을 넘게 섞어 점심밥을 지었었다.
이순남 팀장은 입산 금지로 농사를 짓지 못하는 덕형네가 끼니 걱정하는 마당에 도울 방법을 연구하다가 아이들에게 현금을 쥐여 주는 것이 좋은 방법임을 알게 된 것이다. 고기를 구워 먹던 삼 남매가 이 팀장에게 100원 지폐 석 장씩을 받더니 부엌에 돼지 수육을 삶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랑하기 위해선지 달려갔다.
“아이들에게 무신 돈을 그러케 큰돈을 준대요.” 영순이 곧바로 달려 나와 말했다. “형수님께서 오늘 수고한 값이고망요.” “내가 무엇을 했다고 이러케 택도 없는 큰돈을 준대요.” “아무 말씀 하지 마십시오. 우리나라를 빛낸 큰 위인이 이러케 살고 있어도 나라에서는 나 몰라라 허고 있는디 친구인 나라도 도와야 허 꺼 아닙니까? 쌀이라도 사 들여놓고 아그들 먹이라니까요.”
“참말로 고맙고 마라.” 잘 삶아진 돼지 수육을 먹기 좋게 썰면서 산동댁이 목멘 소리로 감사 인사를 했다. “부부간에는 서로 사랑한단 말은 딱 한 번만 허고 시도 때도 없이 하지 않아야 헌다등마요, 그리고 친구 간에도 고맙다는 이런 말은 하지 않아야 헌다등마요.”
아침은 쌀 한 주먹에 보리쌀로만 밥을 지어 먹고 점심 저녁에는 무조건 수제비 칼국수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가 정말 뜻밖에 큰 횡재를 했다. 9백 원이면 쌀을 두 가마는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영산짐샌이랑 영산떡이 왔다 헝게 그 집에 한 번 가 봐야 하겠고만요.” “그래요, 형수님이 한번 가 보씨요, 김영규 그 사람이 풀려난 것이 어찌 된 일인가도 알아보고 장영팔이랑 그 사람들의 아들도 어찌 된 건지 알아보고 오씨요.”
산동댁은 영산댁이 궁금해 좀이 쑤셨다. 돼지 수육도 잘 삶아 올려주고 깻잎과 풋고추 토종오이까지 안줏거리를 완벽하게 준비 해주고 영산댁 집으로 향했다.
“큰아부지랑 팀장님이랑은 참말로 딱 어울리는 환상의 친구이고마라. 오늘 맘 놓고 한잔썩 험서 회포를 풀란게요.”
아이들이 삼겹살을 구워 먹다 엄마를 따라 가버리자 형기가 솥뚜껑 불판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 잘 구워진 삼겹살을 남김없이 접시에 담아오더니 두 사람에게 소주를 따라 올렸다. 그리고 명채 잔에도 채우고 권했다.
“오늘 밭에서 금방 딴 풋고추, 물외, 깻잎, 소불이랑 완전히 싱싱해 뿔고만, 그런 디에다가 삼겹살에 수육까지 끝내쥐 뿔그만.”
이 팀장이 감탄한 대로 돼지 수육 안주로 나온 풋고추, 오이, 깻잎 등 모든 것들이 모두 텃밭에서 금방 딴 것들이었다.
“순남이! 한잔험서 들어보라니까. 무신 이약이냐 하면 명채 즈그 아부지 이약이라니까. 나하고는 친구 헌 지가 20년 지기다니까. 말하자면 만석꾼 집에 도련님이랑 머심 사이로 만났지만, 우리는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있었다니까. 근데 그 친구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시방 죽었는가 살았는지 모르고 있담 말이시.” “나도 명채에게 그런 이약을 들었구먼.” “그래서 어찌 살고 있는지 내가 찾아 올라가 봤으면 싶다니까.” “자네가 명채 즈그 아부지가 있는 디를 알고 있는가?” “장소를 내가 알았으면 진작 찾아 나섰다니까?”
“그런디 명채 아부지가 그 넓은 산속에 어느 골짝에 있는 줄 자네가 어찌 알것능가? 알지도 못하면서 찾아 나설 수 없지 않은가?” “삽재로 들어가 가꼬 회룡 동네 지나 뒷산으로 깊숙이 들어가서도 재를 몇 개를 넘어가야 있다고 허더라니까. 백운산으로 들어가는 디란 말이시. 드렁치라는 곳에 있는 숯가마 터에 숨어지낸다고 허등만, 그 말만 들어서는 못 찾을 거 겉에 가꼬 이러고 있담 말이시.” “거기에 있다는 말은 누구한테 들었는가?” “정원이 친구가 한날 내려왔었네. 그때 날짜도 안 이자 뿌럿네, 언제였냐 하면 작년 동짓달 스무이렛날인디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순철이라는 청년하고 내려왔더라니까. 그런디 친구 집은 지서에 사람들이 불을 대 뿔고 명채 즈그 어무니하고 막내 늦둥이 동생 종채하고는 면사무소 마당으로 소개를 시게 뿌럿는디 어찌 만나는가?”
여순사건이란 날벼락을 피해 산에 숨어 지내다 김정원이 마을에 내려온 날은 작년 12월 27일이었다. 발산마을 사람들은 음력을 사용했으므로 동짓달 스무이레고 양력은 한 달이 앞서가는 섣달 스무이레였다. 날짜는 음력이나 양력이나 월(月)만 다르고 일(日)은 같았던 것도 덕형은 기억했다.
그때는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었다. 집에 들러 옷가지를 챙기고 아내를 만나볼 작정이었으나 살던 집은 불태워졌고 아내와 막내 종채는 면사무소 뒷마당으로 소개되고 없었다. 이날 저녁 김정원과 강덕형이 눈물겨운 상봉을 했던 때를 얘기해주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장소를 안다고 해도 이 난리 통에는 아예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산에서 고생하고 있는 친구 김정원을 찾아 나서고 싶다고 말하자 이 팀장은 장소도 모르면서 어찌 찾아가냐며 반대했고 명채는 아버지가 있는 장소를 안다 해도 요즘처럼 계엄령이 걷히지 않은 입산 금지 시국에는 위험한 일이라고 반대했다.
“말하자면 명채 즈그 증조할아버지 때부터는 의병을 도왔고 김 진사 대에 이르러서는 만석꾼이던 재산을 중국 상해임시정부에 야금야금 다 팔아 보냈다니까. 그리고 명채 즈그 아부지는 보성전문학교를 나온 사람인데 행정관서에 취직하면 일제에 협력하는 일이 된다면서 시방까지 직장도 안 가진 사람이다니까? 그러니까 대대로 독립운동을 했고 친구 정원이는 평생을 항일운동을 험서 살았는데 친일파들한테 빨갱이라고 낙인이 찍혀서 시방까지 산속에서 고생하고 있으니까 말이나 되것능가? 나는 자네들 메키로 배우지는 못해서 좌라는 사상이 머고 오른쪽 우라는 사상이 머인 줄을 모르지만, 친구 정원이는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고, 좌도 우도 신물이 난다고 나한테 몇 번이나 말했던 사람이다니까?”
김정원은 보성전문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로 조선총독부에서 호출받았지만, 거부했다. 이유는 일제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작정했기 때문이었다고 덕형에게 수차례 밝혔다고 이 팀장에게 얘기했다.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고부터는 좌우 이데올로기에 빠져 버린 한반도가 혼란에 빠지자 소련도 그리고 미국도 간섭하지 말고 우리나라에서 떠나야 한다며 주장했다. 발산마을 청년들에게도 좌에도 우에도 편들지 말자고 설득해 왔기 때문에 좌익에는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았으나 이번에 여순사건이 나면서 억울하게 죽었다. 많은 사람이 좌익에 협력했다는 빨갱이 올무에 걸려들었다고 덕형이 설명한 것은 모두 친구 감정원에게 들었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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