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생활(골3:18-21)
갈등
1. 한 방송인 가정의 최근 이야기입니다. 형이 신장병으로 이식을 받아야 되어 자신의 신장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형은 안된다고 반대했어요. 너는 몸으로 일을 하기에(고액 수입을 받는 유명 댄서 및 안무가) 신장 기증을 해주면 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듣고, 엄마는 신장이 안 맞으니 내가 신장 기증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결단을 보고 어머니는,‘우리 큰아들 살려줘서 고맙오. 내가 평생 당신에게 잘 할게요.’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따뜻한 가정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가정 윤리를 말합니다. 먼저 부부관계에 대해서 권합니다. 18-19절,“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어요. 에베소서 5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바울이 권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다.
2.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 남편들은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하라.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가 서로 지켜야 할 것을 말할 때 순서에서 아내가 먼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어요.
이어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 윤리에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적용하여 말했습니다. 아내와 교회를 남편과 그리스도를 연결하여 복종하며 사랑하라고 했어요. 바울이 그리스도인 부부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며 권면하였는데,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면 좋을까요?
갈등 심화
3. 두 번째 가정 윤리는 자녀와 부모관계를 말합니다. 20-21절,“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권했어요. 에베소서 6장에서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은 일이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렇게 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오늘 본문과 같이 어머니는 빠지고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당시 세계인들과 같이 문자대로만 보면 아내-여성-어머니-자녀들을 홀대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가정 윤리를 말하며 이들을 홀대하고 남편-남성-아버지-부모들을 우선으로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실마리
4. 사도 바울이 살던 로마제국을 비롯한 세계는 여성보다 남성 위주였습니다. 자녀들보다 부모가 우선이었어요.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말한 문자대로만 본다면 이런 모습이 보입니다. 부부 윤리에서도 남편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권면으로 시작했습니다. 골로새서-에베소서 동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를 말하며 어머니는 배제되었습니다. 아비들아 하고 불렀어요.
사도 바울은 부부 윤리를 말하는데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적용해서 권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인 아내가 불리해 보이고, 남성인 남편이 유리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하면 됩니다. “복종하라”(ὑποτάσσεσθε, hypotassesthe)는 말은 마치 노예와 같이 기계적으로 따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자발적으로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submit yourselves)을 의미합니다. 곧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 아래에 놓는 것을 의미해요.
5.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심 같이-죽기까지 하라고 했어요.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아내와 남편의 역할 중에 어느 편이 더 무겁고 어렵다고 할 수 있나요? 남편의 역할입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며(ἀγαπᾶτε, agapate) 괴롭히지(πικραίνεσθε, pikrainesthe) 말라고 권합니다. 사랑은 eros가 아니라 agape 사랑을 말해요. 또한‘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은‘괴롭게 하기를 그치라,’‘괴롭게 하는 습관을 버려라.’는 의미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같이 가정에서 동등한 인격체이며 동등한 가정의 동역자라는 말이에요. 남편은 아내를 거칠게 대하거나 분노에 휩싸여 화를 내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약자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더했어요. 크리스천 가정 윤리를 대변한 사도 바울의 권면은 매우 합리적이었습니다. 약자인 아내를 남편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고 섬기라고 했어요. 아내는 이러한 남편에게-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남편-복종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6. 이런 관계가 이뤄지려면 아내대로 또 남편대로 서로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한쪽에서만 역할을 기대하거나 강요한다면 그리스도인 부부관계는 깨지기 시작합니다. 남편과 아내, 양자의 노력이 실행되어야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게 한 영국사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습니다. 어느 날 빅토리아 여왕 부부가 다툰 후 남편 알버트 공이 자기 방으로 가서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여왕이 방문을 노크했습니다. 그때 남편 알버트 공이 말했습니다.‘누구세요?’
여왕은,‘대영 제국의 여왕이에요. 어서 문을 여세요.’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여왕이 다시 문을 두드리고, 남편이 다시 말했습니다.‘누구세요?’‘대영 제국의 여왕이에요.’남편은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여왕이 다시 문을 두드렸고 남편은‘누구세요?’물었어요. 여왕은 이제야 깨닫고,‘당신의 아내에요.’그러자 남편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남편이 바라는 것은 아내지 여왕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7. 부모와 자녀 간의 윤리에서도 자녀들에게 순종을 먼저 권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오늘 본문에서는 모든 일에 순종하라고 했어요. 두 말씀을 묶으면, 주 안에서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일에 순종하라는 것은 절대적인 순종이지만, 주 안에서라는 말이 뒷받침해주고 있어요.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독특한 가르침입니다. 부부관계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말했듯이,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주님이 개입하십니다.
‘순종하라’(ὑπακούετε, hypakouete)는 말은‘아래서 경청하라,’‘우러러보라’는 의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허투루 듣지 말고 우러러보며 그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모든 일입니다. 다만 순종이 어려운 때가 한 가지 있으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것을 명할 때는 제한적으로 그 명령을 거스르는 것을 허용합니다.(눅12:51-53, 14:26, 신앙 때문에 원수가 됨). 자녀가 이처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도덕적 표준입니다.
8. 이러한 모습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라고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는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약속까지 제공했습니다. 이 약속은 십계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주셨어요.(출20:12, 신5:16-장수와 복을 누리리라) 장수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륜의 기본을 지키도록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이 권면을 했습니다. 효는 유교보다 성경에서 더 강조했습니다.‘노엽게 한다’(ἐρεθίζετε, erethizete)는 말은 부모의 권위가 자녀들을 억압하고 무조건적으로 복종을 하게 함으로써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에서와 같이(엡6:4)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잘못된 권위 의식으로 화를 돋게 하거나 짜증나게 하는 것이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노엽게 하면 자녀들이 낙심하게 됩니다.‘낙심한다’(ἀθυμῶσιν, athymōsin)는 말은 그들이 부모의 잘못된 훈육으로 인하여 의기소침하여 세상을 살아갈 용기마저 잃게 되는 상태를 말해요. 낙심은 자녀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가정 윤리에는 상호성이 잘 나타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는 보상이 약속되었지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에게는 보상이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보상을 바라고 양육하지는 않습니다.
복음 제시
9. 사도 바울은 가정 윤리와 사회 윤리를 말하며 23절,“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24절,“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바울은 초기 교회 성도들의 삶의 중심에 주 그리스도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어요. 그래서 부부관계에서도 교회와 그리스도를 연계해서 권면했고, 부모 자녀 관계에서도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에서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셨어요-섬기셨어요. 십자가에서 피와 물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주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생명을-영생을 얻고 오늘도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립니다.
기대
10. 가정의 달 둘째 주간입니다. 우리 각 가정이 더욱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괴테는,‘왕이나 백성이나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톨스토이는,‘가정에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면 어디서도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래,‘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이 노래 Home sweet home을 지은 존 하워드 페인은 미국의 유명 배우요 극작가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평생 한 번도 행복한 가정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가 이런 가정을 꿈꾸며 노래를 지었을 뿐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가정을 대신 노래해 주었습니다. 건강한 부부, 건강한 부모, 건강한 자녀들이 모이는 교회가 행복한 교회입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의 비결이 오늘 본문에 잘 말씀해줍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서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에요. 어느 한 편에서만의 희생과 섬김을 기다린다면 불행이 시작됩니다.
11. 가정은 상호책임이 따릅니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형제와 자매 간에도요. 오늘 소개해드린 어느 방송인의 가족 같이요. 서로 책임을 지려고 하는 곳에 기쁨과 행복이 넘칩니다.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곳에 아픔과 불행이 시작됩니다. 이 모든 관계에서 사도 바울이 전해주는 대로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주께 하듯 하면, 우리 삶의 질이 더욱 증진될 것입니다. 이 시간 다 같이 기도합니다. 우리 각 가정이 오늘 말씀을 좇아서 살아가며 더욱 행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