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 모바일게임 전환 주춤한 까닭
2012년 초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게임회사들은 변화의 기로에 섰다. 당시 우리나라 게임 시장의 주류는 개인용 컴퓨터(PC)를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게임이었다. 그러나 2009년 말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된 이후 스마트폰 보급률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게임 시장에서도 모바일게임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모바일게임 시장이 온라인게임 시장처럼 커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강했다. 이후 5년간 모바일게임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1년 4000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규모는 2015년에는 3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모바일게임 시장은 136억달러에서 213억달러로 컸다. 반면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2011년 6조2000억원에서 2015년 5조6000억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현재는 모바일게임 시장의 성장이 정체 상태에 빠졌지만 지난 5년간의 빠른 성장은 우리나라 게임업계 판도를 흔들어놨다. 국내 1위 게임회사인 넥슨이 모바일 전환에 주춤한 사이에 한참 뒤져 있던 넷마블게임즈가 모바일게임으로 전환에 성공해 2위에 올랐고 내년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경우 시가총액에서 넥슨을 앞설 가능성도 있다. 어째서 국내 게임업계에서 압도적 1위였던 넥슨은 모바일게임 시장에서의 기회를 선점하지 못했을까.
◆ 기존 기업의 딜레마에 빠진 넥슨
전문가들은 이를 '파괴적인 변화(disruption)'가 예고된 상황에서 1위 기업이 맞는 전형적인 '기존 기업의 딜레마(Incumbent's dilemma)'로 본다. 최승호 이화여대 교수는 "넥슨은 온라인에서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바일로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다"면서 "반면 넷마블이나 다른 기업들은 온라인에서 입지가 좁았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모바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모바일게임 시장의 성장이 기존 온라인게임 시장의 파이를 잠식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온라인게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넥슨이 선도적으로 모바일게임 시장을 확대해나갈 이유도 크지 않았다.
이는 2011년 넥슨과 넷마블 상황을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설명이 된다. 넥슨은 2011년 12월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했는데 당시 시가총액이 8조원에 달했다. 당시 매출이 876억엔(약 1조2640억원), 영업이익은 382억엔(약 5511억원)을 기록해 한국 게임회사로는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던전앤파이터'와 '메이플스토리' 등 대표 온라인게임이 승승장구한 효과였다.
반면 넷마블은 당시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있었다. 2011년 CJ E&M 게임 부문(현 넷마블)의 매출은 2576억원으로 전년 대비 3% 감소한 상황이었다. 대표 게임이었던 '서든어택'의 운영권이 넥슨으로 넘어가면서 2012년에는 넥슨과 넷마블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6월 넷마블 경영에 복귀한 방준혁 넷마블 창업자는 모바일로의 전환을 선언한다. 당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던 넷마블은 기존의 온라인게임 중심에서 모바일게임 회사로 변신하는 게 생존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2012년 초만 해도 모바일게임 시장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대부분 게임이 간단한 캐주얼 게임 위주여서 매력적인 수익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컴투스, 게임빌 등 모바일게임 전문회사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는 점도 온라인게임이 중심인 회사들에는 장벽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2012년 7월 시작된 '카카오 게임하기 서비스'는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국내 1위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통해 게임을 지인들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모바일게임 유저들이 급격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애니팡의 경우 일 사용자(DAU)가 1000만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기존에는 게임을 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모바일게임에 유입되면서 많은 회사들이 이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
넷마블도 이 같은 '카카오발' 성장의 수혜자였다. 보드게임 '모두의 마블'이 카카오 게임하기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2013년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모두의 마블은 출시된 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매출 상위권에 올라 있다. 넷마블이 2013년에만 30개가 넘는 모바일게임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모바일게임 회사로 빠르게 전환했기 때문이다.
2014년에도 모바일게임 시장은 큰 폭으로 성장했는데 이는 모바일에서도 RPG(롤플레잉게임) 장르의 게임이 성공하는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RPG는 캐릭터를 선정해 꾸준히 육성해나가는 장르를 의미한다.
특히 수많은 사용자들이 동시에 접속해 게임을 하는 MMORPG(다중접속롤플레잉게임)는 기존 온라인게임 시장의 중심이자 캐시카우인 장르였다. 캐주얼 게임에 비해 사용자들이 현금 결제를 하는 비중도 높을 뿐 아니라 결제하는 금액도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RPG는 사용자 1인당 평균 매출(ARPU)이 다른 장르 게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모바일게임의 경우 기술상 문제와 네트워크 문제로 RPG가 성공을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2014년 이전에는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LTE와 무제한데이터요금제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RPG뿐 아니라 MMORPG가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도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는 모바일게임 시장도 온라인게임 시장처럼 수익성이 높은 매력적인 시장이 됐음을 의미한다.
◆ 온라인 1위 넥슨 모바일 후발주자로
상대적으로 모바일게임 시장에 소홀했던 넥슨의 전략은 2014년 실망스러운 결과로 돌아왔다. 당시 넥슨이 모바일게임을 완전히 외면했던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2014년 넥슨이 출시한 모바일게임은 당시 누적 매출 순위 10위권에 하나도 들지 못했다. 물론 2014년 박지원 신임 CEO가 취임하고 2015년부터 모바일게임에서 넥슨의 히트작들이 출시됐다. 하지만 이 기간 모바일게임 시장의 빠른 성장 과실을 결국 다른 경쟁사들에 내줬다는 것을 생각하면 넥슨 입장에서는 뼈아픈 경험이다.
최승호 교수는 '넥슨: 모바일게임 시장의 과제와 성공을 위한 전략 모색'이라는 논문에서 "현재 핵심 경쟁사로 대표되는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한 2011~2013년 넥슨은 국내 모바일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성장 속도를 간과했다"면서 "넥슨은 자사가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누렸던 '압도적인' 입지를 모바일 시장에서는 확립할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넥슨은 어째서 모바일게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는 온라인게임 개발 조직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에서 나오기 어려운 전망이었다. 최승호 교수에 따르면 넥슨은 2013년 모바일게임 전문 자회사 '네온스튜디오'를 만들었으나 이 조직이 2014년에 결국 내놓은 게임은 모바일이 아닌 PC게임이었다. 조슈아 갠스 토론토대 로트먼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기업들은 별도 조직을 구성해 파괴적인 혁신(disruption)에 대응하고자 하지만 이 조직도 모기업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
다만 최근 넥슨이 모바일게임에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면서 밝히는 등 모바일게임에 집중하면서 개발 및 퍼블리싱 역량이 크게 올랐다. 또한 넥슨이 장기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단번에 넷마블을 추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후발주자 입장이 된 넥슨에 현재 상황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최근 모바일게임 시장도 온라인게임처럼 신작 게임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KB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2013년 말 매출액 상위 30위 모바일게임은 평균적으로 출시 후 6개월이 경과했던 반면, 2016년 10월에는 이 기간이 15.8개월까지 급증했다. 같은 기간 출시 1년 이상 경과한 게임은 3개에서 15개로, 2년 이상 경과한 게임은 0개에서 10개로 증가했다.
이동륜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모바일게임의 인터페이스, 수익화 모델, 경쟁구조 등 큰 틀이 자리 잡게 되면 유사한 게임이 끊임없이 생겨나게 되며, 동일 장르 내 게임 간 차별화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면서 "게임 간 변별력이 떨어진다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기존에 하던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