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휘덕이네 晩村농원에서, 두 여인
자갈 깐 앞마당에선 토란 줄기가 노랗게 말라가고 있다.
그 둘레로 노랑 빨강 주홍으로 벼슬을 세운 맨드라미들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고, 짚으로 두껍게 지붕을 인 원두막 처마에선 조롱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익고 있다.
여름내 굵어진 호박이 이리저리 뒹굴고, 움막엔 아직 젖을 못 뗀 강아지 6마리가 잠들어 있다.
황토방엔 엊그제 딴 땅콩과 고추가 한창 마르고 있고, 장독대엔 지난 해 담은 누런 된장이 가득 담긴 독들로 꽉 찼다.
황토로 쌓은 아궁이엔 잘 마른 장작들이 빠지지직 소리까지 내며 불타고 있고, 그 아궁이에 걸린 가마솥에선 콩 익는 냄새가 진동한다.
내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인 안휘덕 친구가 인생 느즈막에 귀향해서 일구고 있는 일군 경북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 176번지 ‘만촌 농원’의 풍경이 그랬다.
농원 이름 ‘만촌’의 그 유래에 대해, 안휘덕 내 친구는 늦을 ‘만’(晩)에 시골 ‘촌’(村)해서 ‘만촌’이라는 자신의 호를 딴 것으로서, 그 호는 자신의 장인어른께서 이미 십 수 년 전에 지어준 것이라 했다.
내가 안휘덕 내 친구로부터 그 사연을 듣게 된 것은, 바로 엊그제인 2009년 5월 3일 일요일, 내가 내 일생 처음으로 우리 고향 땅의 명산 주흘산을 올랐을 때의 일로서, 안휘덕 내 친구는 내게 그 뒷말을 이렇게 이으면서 슬쩍 눈가에 이슬 한 점을 맺고 있었다.
“그 어른께서 내 지금 사는 모습을 그렇게 미리 점쳐 주셨던 것 같아.”
바로 안휘덕 내 친구의 장인 되시는 유 상자 근자 어른께서, 바로 오늘 별세하셨다는 비보를 내 방금 들었다.
같은 국민학교 동기동창인 김완태 친구가 우리 Daum카페 ‘참 아름다운 동행’에 이렇게 그 사연을 올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휘덕회원 장인 유상근님(유미순회원 친정부친)이 2009년 5월5일 05시 40분 숙환으로 별세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영안실: 전라남도 순천시 순천병원. 발 인: 2009, 5, 7일 10:00시. 연락처: 안휘덕(011-344-8206)’
문득, 안휘덕 내 친구 부인이신 유미순 여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원래는 거기서 미모를 자랑해선 안 된다는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유난히 예쁘시고, 한 때 우리나라의 재계를 주름 잡았던 그룹에서 장래를 촉망 받는 재원이었던 유 여사가, 남편인 안휘덕 내 친구를 따라 우리 고향땅 문경에 터 잡은 것은 이제 4년 남짓 밖에 안 된다.
그 남짓의 세월에, 유 여사는 그렇게 누런 황토방도 만들고, 시원한 원두막도 짓고, 그리고 옥수수농사, 콩농사, 배추농사, 토란농사, 고추농사, 가지농사, 호박농사, 옥수수농사를 지으며, 우리 고향땅 문경에서 ‘순천댁’으로 다시 태어났다.
유 여사의 장한 그 적응과정을 지켜보면서, 주위에서 정겹다는 뜻을 담아 그렇게 ‘순천댁’이라고 부른다.
겉 멋들기 십상인 도시 여인의 귀농이라고 하는, 너무나 힘든 적응을 바로 그 ‘순천댁’은 끝내 이루어내고 만 것이다.
‘순천댁’의 그 진정한 삶의 모습에, 우리 고향땅 문경 사람들 또한 무심하지만은 않았다.
문경 인터넷 뉴스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여론을 들어, 2007년 10월 1일 판에 사진까지 곁들인 ‘순천댁’의 그 발자취를 기사로 소개하기도 했다.
장영화 편집국장이 쓴 ‘순천댁이, 문경 농군 다 됐네. 남편 고향에서 콩 삶고 배추 갈고’라는 제목으로 쓴 그때 그 기사를 여기로 옮겨왔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유미순(55)씨는 요즘 남편의 고향인 문경으로 이사 와서 2년3개월 쯤 살고 있다.
유씨는 처음엔 시골에서 살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워 남편은 혼자서 1년여 동안을 문경 영순에 구입한 헌집이 딸린 3천여 평 밭을 일구며 지내야 했다.
이들 부부는 인천에 살았고 남편은 대우중공업 인천본사에서 27년 동안 근무를 하고 지난 2004년 정년퇴직을 했던 것이다.
퇴직 이전인 2002년도에 영순에 땅을 미리 구입해 두었던 남편은 원래 점촌3동에 본집이 있었다.
영순에 혼자 내려와 헌집을 페인트칠하고 또 밭에는 감나무도 380주를 심고, 고추, 가지, 옥수수, 토란, 호박, 배추 등을 심고, 또 밭 한 켠에는 분재도 가꾸면서 직장인에서 농군으로서의 일을 몸에 익혔다.
부인 유씨도 1년이 지난 후, 하는 수 없이 영순으로 내려왔고 시골생활은 시작이 됐다.
“처음엔 너무도 답답하고 여기서 과연 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농사일이 힘은 들지만 공기가 너무도 좋고, 모든 게 여유가 있어 너무도 즐겁다”고 했다.
부부는 지난 2년 동안 밭의 대부분 면적을 할애해 콩을 심었고, 여기에서 생산된 콩을 이용해 마당에 걸어놓은 재래식 가마솥에서 콩을 삶아내서 큰 항아리에 된장을 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인천, 서울 등에서 이곳까지 놀러온 부인과 남편의 친구들과 문경지역 주변 분들로부터 맛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금은 이들과 조금씩 나눠 먹으면서 내년부터는 아예 당국에 식품 허가를 얻어 된장을 전문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또한 황토로 한 칸을 지은 방에서는, 요즘처럼 비가 잦을 때는 땅콩, 고추 등을 말려 내기도 하고, 몸이 찌뿌둥 할 때는 소위 말하는 등어리도 찌지면서 딩굴딩굴 하는 재미도 대단하다고 자랑했다.
현재 영순에는 부부만 살고 인천에는 자녀(2남)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남편 안휘덕(60)씨는 요즘 농사일과 함께 틈틈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문경중13회)들과 자신이 직접 지은 원두막에서, 고구마를 삶아놓고 차 한 잔씩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도 즐겁다고 했다. <054> 553-8206
이렇듯 삶의 모양새를 바꾸어버린 ‘순천댁’ 유미순 여사에게 내 진정한 마음의 박수를 보낸다.
그 적응의 세월에, 농원 뒤뜰에 돌아앉아 남몰래 숱한 눈물을 훔쳐야 했을 유 여사의 모습이 그려지고, 멀리 순천에 있는 유 여사의 아버님도 먼 타향의 딸이 그렇게 남몰래 훔칠 눈물을 생각하며 애비로서의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그 모습도 그려진다.
이제 자기 고향땅 순천의 아버지 영정 앞에서 펑펑 쏟아낼 유 여사의 눈물이 안쓰럽다.
그 먼 길을 따라 가진 못하지만, 말 한마디로라도 내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지금 이 순간이다.
곧 이 한마디다.
‘순천댁요. 울매나 맴이 아프시겠능교. 해싸도 내일의 태양은 내일 또 다시 떠오른다 안 했씸니꺼. 그라이 슬픔일랑 싹 거다뿌시고 퍼뜩 일나시이소. 그카고 힘 내시이소. 예!’//
9년 전 이맘때로 거슬러 2009년 5월 5일의 일로, 내가 카페지기인 우리들 Daum카페 ‘아침이슬 그리고 햇비’ 사랑방에 ‘내 너를 위하여-순천댁의 슬픈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써서 게시한 글 그 전문이 그랬다.
만촌농원의 밤이 깊었다.
저녁도 끝났고, 술판도 끝났다.
송길이 친구의 클라리넷 연주로 우리 모두 목소리를 하나로 해서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리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중에, 그 뒤켠에서는 일손 바쁜 손길이 있었다.
유 여사와 아내, 그렇게 두 여인의 손길이었다.
그 손길을 보면서, 내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 따라 타향인 문경으로 흘러들어와 그 농원을 일구어 온지 13년째인 유 여사의 삶을 생각했고, 역시 남편인 나를 따라 주흘산 자락의 텃밭인 햇비농원을 7년째 일구고 있는 아내의 삶을 생각했다.
그 헌신의 삶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두 여인이다.
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두 여인의 삶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챙겨 봐주는 사람들이다.
우리 문경중학교 12회 동문이신 김규진 선배께서 지난해인 2017년 11월에 창설한 ‘재경문경시산악회’ 밴드에서 함께 어울리고 있는 권정순 회원도 그 중 하나다.
내가 ‘친구 이야기-휘덕이네 晩村농원에서’라는 제목으로 연작해서 게시하고 있는 글에 달아준 댓글에 그 마음을 담고 있었다.
다음은 그 댓글 전문이다.
‘어쩐지 장독대가 아주 정갈하더라구요~~~우리는 산양초등 동네 살았는데 만촌농원이 어디쯤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그나저나 사모님이 그많은 친구분들 먹거리 와 뒷치닥거리를 우찌 해내셨을지~~~’
내 연작의 글을 그동안 쭉 지켜봐왔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챙겨 봐주는 마음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맛난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