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일루 와봐.”
“왜....?”
“왜긴... 빨랑 안와?”
“응”
<드르륵->
“그 잘난 면상. 내가 그어버리면.. 유우도 널 버리겠지?”
“그게 무슨..!”
“흐응-, 그래.. 어디부터 그어줄까?”
활짝웃는 아연. 사악하게 변해버린 아연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아즈.
“커터칼 말야.. 많이 녹슬었다..”
“왜에~ 내가 그 예쁜 얼굴 그어준다니까? 왜, 겁나? 겁나니깐 딴소리하는거지?”
“아연아...”
“내 이름 부르지마. 그 잘난 목소리로 내 이름 부르지마.”
“아연아, 난...”
“넌 뭐..?”
“난.. 유우 안좋아해.”‘
“상관없어. 니가 유우 좋아하는 건 상관 없다구. 중요한건, 유우가 널 좋아한다는 거야.”
“유우는 내 동생이야. 내 이복동생.”
“너.. 그거 아니? 네 이복동생 유우는... 널 엄청 좋아한다는 거 말야.”
“...생각해본 적 없어.”
“물론. 나도 어제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어. 니년이 유우 누나라서 친구행세 한 것뿐이니까. 단지 그것뿐이니까.”
“단...지?”
“..단지.”
“...젠장.”
“...뭐? 젠..장? 이년이 미쳤나!”
아연이 커터칼을 높이 드는 순간 아즈는 아연의 손목을 잡는다. 그러고는, 나지막히 말한다.
“..뭐라고? 이년이 미쳤나? 그래.. 나 미쳤다. 그리고, 너 그딴말 함부로 하는거 아니다? 응?”
아연의 손목을 잡던 아즈의 기다란 손은, 그대로 힘을 주었다. 아즈는 활짝 웃으며 아연의 손목을 비틀어버린다.
“다음부턴... 그러지 마”
“으..으윽... 그만해..! 아..프잖아...으윽....”
“아프라고 그러는거지... 다음부터 유우랑 나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그만 할게.”
“약속...할게. 약속 할게... 제발.. 그만...!”
-저거 거짓말이야. 사람은 그 순간에만 생각하고 그 다음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지. 그래도 뭐, 아닐수도 있으니깐 용서해주지.
“큭...! 너말야. 나한테 한번 잘못걸리면 ‘켁’ 이건거 알지? 조심해라~!”
“...놓고.. 말해.”
아즈는 아연의 손목을 놓았다. 아연의 손목은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연약해보이는 아즈의 손이 이렇게 만들었다라고는 그곳에 있던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간다-”
아즈는 옥상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있는 유우를 보고 잠시. 아주 잠시 놀라긴 했지만, 아즈는 유우를 지나쳤다.
# 집
“너 왜그랬어...”
“....누나.”
“왜 거짓말 쳤나고-”
“미안. 헤헤, 근데 나 거짓말 엄청 잘 치지 않어?”
유우는 어색하게 웃는다. 그런 유우를 보고 한숨을 짓는 아즈. 아즈는 철없는 유우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휴우- 넌 언제 철들거냐?”
“나중에- 아주 나중에-”
- 나중에가 아니라, 영원히 철 안들거야. 영원히 철없는 동생 될래. 누나만 영원히 사랑하는.. 그래서 철없는... 동생될래. 그런 동생 될거야.
유우는 잠시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가 이내 표정을 바꾼다.
“아참, 누나. 유우 엄마한테 연락왔어.”
“...일본에서?”
“응! 한달동안 유우집에서 머문다는데?”
“.....여기가 니집이냐? 내집이지.”
“에이~ 누나 돈으로 샀다 쳐도 이건 우리집이죠옹~”
“휴.. 그래, 우리집. 우리집이다. 아, 맞다. 너 가람고등학교 톱으로 전학왔다며?”
“......응”
“잘됐다. 그럼 우리 같은 학교야?”
“응. 인제 만날 누나 볼 수 있겠네.”
“후후.. 너, 입학하고 3학년교실 오기만 해봐, 중학교때처럼 철없이 행동하면.. 알지?”
“응.”
유우는 철없이 웃는다. ‘헤헤’하고 웃는 유우를 보고 아즈는 한숨을 짓는다. 그러고는 식탁을 치우려고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의자다리였다.
“우악!”
“어엇!”
순간적으로, 유우는 아즈를 잡았다. 가까스로 넘어지는 것을 방했던 아즈는 자신을 구해줬던 유우를 밀쳐낸다.
“너없이도 충분히 코피까진 안흘렸어.”
“치.. 누난 나 없었음 코피는 물론이고 실리콘까지도-...”
“...죽을래?”
“이잉... 미안해.. 근데, 누나 코 보면, 엄청 높아. 동양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안믿을거야.”
“....코 크면 징그러.”
“큰게 아니라 높은거라니깐? 음... 한국연예인중에서... 아! 한가인 코같아.”
“나 한가인 싫어. 너무 예쁘잖아.”
“난 누나가 더 이쁘던데...”
“잡소리 말고 설거지나 해.”
“에엑..? 또 내가? 어제도 내가 했잖아!”
“이봐, 이 몸은 내일부터 선도부이올시다. 준비할 것도 많고-..”
“헤헤.. 그럼 아침마다 누나 볼수 있겠네?”
“꿈 깨셔. 난 뒷문감독이다.”
“히히.. 뒷문으로 들어가면 돼.”
“.....맘대루 해라.”
아즈는 유우에게 작은 미소를 보내주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을 연 아즈는 책상 서랍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에게는 아즈 못지 않은 미소녀가 웃고 있었다.
“이봐, 안휴. 나 이렇게 한국에서 살아도 될까..?”
# 다음날
“누나! 이렇게 빨리 가?”
“난, 선도부라니깐?”
“쳇. 그래, 잘났다 잘났어- 오늘 엄마 와~”
“오케이. 아참! 용돈 피아노 위에 있어. 한달 용돈이다.”
“얼만데?”
“50,000원. 부족하면 오늘 엄마한테 달라고 그래. 부족하진 않겠지?”
“부족해!”
“이것도 보너스야. 딴때 같음 어림두 없어! 그냥 그걸로 살어!”
“쳇.”
“간다-”
“누나..!”
<쾅>
“......뒷문에서 보자.”
# 가람고 뒷문
“누나! 일본인이라면서요? 이쁘네요!”
“..한국인인데..?”
“근데... 왜 이름이....”
“아빠가 일본인이야. 엄만 한국인. 난 한국에서 태어났어”
“아항! 그렇구나! 우리 자주 만나요! 제 이름은 이한유예요.”
“...10,9,8,7...”
아즈는 말을 듣다말고 시계를 보며 숫자를 센다.
“...?”
“종치기 6초 전, 5,4...”
“으악!”
아즈 앞에서 샤방하게 웃던 소년. 아즈의 깜찍한(?) 거짓말에 속아 정신없이 뛰어간다.
“인기 많네?”
“....”
아즈 앞에는 유우가 서있다. 아즈는 유우를 무시하고 한마디한다.
“복장불량. 이름표 어딨어? 넥타이는 왜그렇게 풀어져있고. 머리는 잘라라. 가방은 학생용 가방으로 해. 슬리퍼 신고오지 말고 운동화 신고 와. 그게 죄야. 마지막으로... 선배에게 ‘인기많네’ 라고 말한 죄. 이게 다 죄명.”
“쳇,. 많기두 하네.”
“그래. 너 이따가 1교시 끝나고 학생부실로 와.”
“그러지 뭐.”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종이 울리자, 유우는 아즈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교실로 향한다. 아즈도 피식 웃고 ‘3-1’이라고 써 있는 곳, 즉 자기반으로 들어간다.
“이건 뭔 이상이야?”
아즈는 자신의 책상에 둘러쌓여인 소녀들을 제치고,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
책상 위에는 하트가 범벅인 러브레터 10장정도가 있었다. 아즈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 러브레터 중 하나를 집었다.
“...가질사람.”
“...?”
“....!”
한동한 멍하니 있던 아즈 주위의 소녀들. 5초정도가 지나자, 서로가 가지겠다며 아우성이다.
“너 가져.”
아즈는 옆에 있는 민지에게 편지를 건낸다.
“아..아니야. 너 좋아해서 주는건데... 그냥 너 가져. 이거 준 남자도 이런거 싫어할거야.”
“이런게 뭔데?”
“...?”
“이자식, 내 동생이야. 장난도 유분수지, 이런 장난 못 받아들여. 그냥 너 가져. 선물이야.”
민지는 차마 거절할 수 없다는 듯, 편지를 받아든다.
“유..우?”
“...동생이야. 이복동생. 중학교때부터 이런 장난 많이 받았어.”
“그..랬구나.”
아즈는 싱긋 웃고는 남은 편지들을 가방에 쑤셔 넣는다. 그런 모습을 본 민지는 아즈에게 조금 실망한다는 듯이 말을 건낸다.
“넌.. 좀 다른줄 알았는데.... 너도 다른 애들처럼 그 편지 버리는구나?”
“...?...무슨소리야? 버리다니? 집에서 보는걸!”
“..집에서?”
“응. 학교에서 보면 조금 쪽팔리거든. 난 집에서 봐, 이런거.”
민지는 아즈의 동그란 눈동자를 보고 활짝 웃는다
- 그랬구나! 하지만, 이 애가 날 친구로 받아줄까? 나는 친구도 없고, 외롭다고 하면 동정이나마 해줄까? 혹시 다른 애들처럼 잘 놀다가 버리는 건 아닐까? 잘 놀다가... 날 냉정하게 버리는 건....
“김민..지? ..와아! 이름 이쁘다! 후~ 내이름은 이게 뭐냐? 촌스럽게.. ‘사츠아니 아즈’라니! 맘에 안들어.”
“아냐. 솔직히 난, 일본이름이 이쁘더라.”
“이거 일본이름 아냐. 아빠가 아무거나 붙어서 지은 이름이야. 일본에 가면 이런 이름 없어. 하나두.. 출생신고 할 때도 ‘아즈’라고 그러니깐 막 웃었대. 치-, 아무리 이상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해! 안그래?”
“..훗, 너 참 재밌는 애다.”
“재밌어? 내가? ..음.. 처음 들어보는 얘기야. 날 만나는 사람마다 나 무섭다고 하거든. 일본 도교에선 잘나가는 일진이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누가 나 시비걸면 싸울라고 해. 근데, 요즘 많이 참고 있어.”
“일진..이라니?”
“요즘 성질 많이 죽이고 있으니깐 괜찮아. 근데 나 어젠 정말 짜증나서 한사람 팔 꺾어버렸어. 전치 3주정돈 될텐데.. 그년이 꼬진르면 어쩌지?”
“...!”
“어엇, 무서워할 필욘 없어. 나 원래 착해. 시비만 안걸면 말야.”
“그게 아니라.... 우리... 친구해도 될까..?”
"..좋아!"
"고마워!"
"뭘, 친구끼리!"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