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래의 고유토종개 중에 세계적인 명견의 반열에 오른 개중에 진돗개와 풍산개가 있다. 두 개 모두다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 중형견이지만 풍모가 준수하고 강인한 체력에 복종심이 강하여 사냥개로써 손색이 없어 국가적 보호 육성의 필요성이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를 받고 있다. 나는 풍산개에 대하여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진돗개는 10여년 이상을 한 식구처럼 키우며 지내왔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1967년 내가 공직에 있을 때 진도에 공무로 출장을 간적이 있었다. 그 때는 진도에 들어가는 다리가 없을 때라 목포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진도에 들어갔다. 그 때도 이미 진돗개의 혈통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진돗개를 등록해 놓고 관리하고 있었으며 진돗개를 육지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관계당국의 반출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배를 타기 전에 불법으로 진돗개를 육지로 가져가는 것을 단속하기위해 개개인의 수화물을 하나하나 검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돗개를 육지로 몰래 반출하기위해 독주를 먹여 술에 취해 곤히 잠든 강아지를 짐 속에 꾸려놓고 단속의 눈을 피해 들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진도에서 공무를 마치고 나오면서 진돗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많이 습득하게 됐다.
그 후 나는 기회가 오면 한번 진돗개를 길러봤으면 하는 욕망을 갖게 됐다.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세파트 종류의 서양개를 길러 본 적은 있었지만 공직으로 서울에 살게 되어 개를 길을 기회가 없었다. 아니 여건이 되지못했다. 그러다 여건이 보다 나은 집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어느 날 퇴근 길에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진돗개 분양가게에 들러 제법 잘 생긴 진돗개 강아지를 골라 사들고 집으로 안고 왔다. 이 강아지는 자태도 준수하게 잘 생겼지만 발이 긁고 큰 것이 맘에 들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자랄 때 까지 집안에서 기르면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주면서 세심하게 보살펴줬다. 이 강아지는 집안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나는 이 개의 이름을 베스라고 지어 불렀다. 베스가 어느 정도 자라자 정원 한구석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개집을 지어 그곳에서 살게 했다. 베스는 내 기분을 어떻게 빨리 알라 차리는지 내 눈치를 잘 살펴보는 것이었다. 퇴근해서 귀가하면 제일 먼저 뛰어 나와 반겨주며 맞아주는 것이 베스였다. 베스는 내 차 소리와 발걸음 소리를 먼데서도 잘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베스가 어느덧 자라서 성견이 되자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이 그 늠름한 자태에 두려움을 느끼고 겁을 집어먹는 것이었다. 주문한 물건을 배달 차 대문 안에 들어섰다가 베스를 보면 놀라서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내에 좀도둑이 자주 들어서 이웃집들이 여러 번 털렸는데 우리 집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어느 날 야심한 밤중에 베스의 험상궂게 짖는 소리에 잠이 깨여 불을 켜고 정원을 살펴봤으나 별 이상을 발견 할 수 없어 그냥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 밤 소란을 생각해 정원을 유심히 살펴보니 장미나무 속에 수제품인 짤막한 스테인리스 칼이 떨어져 있었다. 칼자루는 헝겊으로 칭칭 감아 잡기 편하게 만든 것이었다. 지난밤에 도둑이 들었다가 진돗개인 베스에 놀라 칼을 놓치고 도망을 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해당 경찰서에 신고해 찾아온 경찰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스테인리스 칼을 증거물로 건네주었으나 그 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베스는 진돗개의 특성인 사냥술이 매우 능했다. 집안에 돌아다니는 고양이와 쥐를 잘 잡아 죽였다. 하루는 베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정원에 나가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베스에게 쫓기어 대추나무에 올라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다. 대추나무 밑에서 베스의 짖는 소리에 겁을 먹어 정신이 나갔던지 고양이는 잽싸게 내려와 대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철제대문에 막혀 올라가다가 뒤 쫓은 베스에게 잡히어 무참히 주검을 당했다. 베스는 고양이를 한입에 물고 좌우로 흔들어대니 창자가 터져 나오고 피가 사방으로 티는 것이었다. 나는 그 참혹한 광경을 보고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를 생생하게 체험했다. 이렇게 사나운 개이지만 주인인 나에게는 한낱 온순하고 귀여운 강아지 같은 존재였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배를 살살 굵어주면 뒷다리를 흔들며 좋아했다. 북어 대가리와 살이 붙은 연한 소뼈를 주면 그렇게 좋아하며 정신없이 먹어대는 것이었다.
자녀들도 모두 출가해 둘만 덩그렇게 남겨진 집에 살면서 베스는 그 공허한 공간을 메워주는 유일한 동반자가 되었다. 때때로 우리 내외 둘 다 외출을 하게 되면 베스는 빈집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그래서 베스를 믿고 안심하고 집을 비울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땐가 국내외 장기 여행을 가게 되노라면 개 사료를 준비해 놓고 동내 앞집 아주머니한테 개를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해 놓고 안심하고 갔다 올 수가 있었다. 해외로 나가 한 달 이상 집을 비우게 되면 홀로 집을 지키는 베스와 집이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베스는 나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닐까 하고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겠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베스는 반가워하면서도 좀 서먹서먹해 하는 것 같이 보인다. 나는 혼자서 집을 지키느라고 애쓴 베스를 껴안고 머리와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베스를 강아지 때부터 대려와 같이 산지도 어느덧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개 나이 13년이면 사람으로 치면 수명이 다하는 노년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개의 건강을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렷다. 겨울에는 감기가 들까 봐 개집 콘크리트 바닥에 두꺼운 나무판자 깔판을 깔고 그 위에 담요를 덮어 춥지 않게 배려를 했다. 또 전문 개 사료 외에 가끔 우유와 고기도 먹였다. 베스는 나이를 먹어서 노년기에 들어서서 그런지 늑대와 같이 구슬프게 울기도 해 늑대의 본성이 들어 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개가 울면 좋지 않다.” 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개가 노쇠해져서 갈 때가 가까워져서 그러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베스는 그렇게 2년을 더 살다 어느 날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