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교사의 우울한 하루 (제 이야기입니다.)

[황국현]

  방학이지만 영어가 많이 부족한 6학년 아이들과 좀 더 재미있게 흥미를 가지고 영어를 좋아할 수 있도록 하려고 영어 캠프를 이번 주와 다음 주에 걸쳐 운영 중입니다. 학년 말 방학 때 마다 해온 일이지만 역시나 변함없이 나오기로 한 녀석들이 돌아가며 결석을 하네요. 이해가 됩니다. 방학이면 실컷 늦잠도 자고 하고싶은 것 맘껏 해야하는데 하기 싫은 영어를..... 그것도 2주간이나 나오라고하니 정말 짜증 제대로지요. ㅎㅎ. 나름의 노하우로 단기간의 영어실력 향상보다는 영어샘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그로 인해 영어도 좋아할 수 있도록 하려고,  그래서 영어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 캠프 기간 동안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아이들과 삼양라면을 오늘은 짜왕을 내일은 불닭 볶음면을 그리고 금요일에는 피자도 먹고 마지막 쫑파티는 극장에 가서 영어로된 영화를 보는 것이 아이들과 하는 영어 향상 프로그램의 루틴이 되었네요. 당근과 외적 보상으로 아이들을 현혹한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게 고민이긴 합니다. 어떡하면 아이들의 자발적 호기심과 내적 동기를 끌어낼까 고민하고 있지만 4년간 영어에 대해 부정적 정서를 쌓아온 아이들에게 단기간에 내적 기제를 통해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쉽진 않네요. 그래서 잠깐 동안 외적보상과 당근을 쓰고 있는데 그 효과는 나쁘지 않습니다. 즐겁다고 느끼고 그래서 영어에 대한 부담을 그나마 조금은 던다고 할까요? 이 아이들이 학기 중과는 다르게 정말 진지하게 공부합니다. 참 신기합니다. 몇 명 안되는 아이들에게 제가 좀 더 많은 눈길을 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모르는 것 친절히 알려주어서일까요? 학기 중에는 25~26명의 아이들과 참된 소통과 관계 맺기가 쉽지않거든요.  오전 내내 서너명의 아이들과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진도에 얽메이지 않고 능력 만큼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참 즐겁고 기뻤지요. 그걸로 하루 일과가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ㅠㅠ.

   오후에는 인사자문위원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인사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글로 언급하기 부적절한 부분이 있어 생략합니다. 어쨌든 각 학년 인사자문위원들은 방학 중이지만 모두 참석해주셨구요. 참석하신 선생님들께 우울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잘 될거다. 미리 일어나지 않은 일은 걱정하지 말자.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등등 긍정적 발언들을 쏟아냈지만 제 마음은 그 회의 이후로 계속 우울함을 지울 수가 없네요. ...ㅠㅠ

  교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1993년 제가 처음 교직에 발을 내딛었을 때와는 정말 다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사회적으로 존중받는다는 생각과 자부심으로 교직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교사들의 자살율은 3배이상 늘었다고 하고요. 명퇴를 하려는 교사는 늘어나는데 예산이 없어 다 못받아준다고 합니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높은 급여도 아니고, 방학도 아니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누렸던 사회적 존중이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이들로 따지자면 칭찬과 격려가 되겠지요. 성인이 무슨 칭찬과 격려에 그리 목을 메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 내면의 확고한 기준과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에 대해 동료교사나 학부모, 학생으로 부터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그건 그들의 몫이라고 과감하게 타인의 평가로 부터 독립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전제는 내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구요. 하지만 비고츠키언들이 '내 밖에는 나를 만든 수 없이 많은 내가 있다'라고 주장하듯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타인의 평가와 시선으로부터 오롯이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타인으로 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이는 교사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직업적 가치의 가장 큰 파이가 존중감이기에 교직은 타인의 평가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다른 부정적 시선의 하나는 교사의 급여 및 근무여건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교사의 대우가 우리 사회 평균적인 급여를 넘어서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또한 40대에 직장을 나와야하는 분들이 볼 때에는 62세에 퇴직하고 연금 받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교사의 급여가 많은 것 또는 62세에 정년퇴직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다른 직업을 가지신 분들도 교사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충분이 일할 나이에 원하는 만큼 노동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더욱 바람직하겠지요. 문제는 하는 일에 비해 급여가 많다는, 즉, 과잉보상 여부에 대한 그리고, 능력은 없는데 나이들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라는 사회적 인식이 관건이겠지요.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받는 봉급에 비해 일은 절반도 안한다 그리고 젊고 능력있는 사람들의 자리를 꼰대들이 차지하고 있다?라고 할까요?  교사가 급여를 너무 많이 받고 있다는 평가와 노후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잘 보장된 철밥통이라는 생각, 이러한 교사들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사회적 인식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짧고 옅은 저의 생각이지만 외적요인과 내적요인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첫째, 외적요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 나라 기업문화나 기업의 근로여건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해진 시간 만큼 근무하고 눈치보지 않고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하는 삶이 정상적인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정상을 비정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그런 사회적 상황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런 정책들을 제시하는 정당을 지지하면서 변화를 이끌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을 보장받는 교사들에게 분노의 화살이 향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질적으로 분노해야할 대상은 누구일까요? 제대로된 복지제도와 부의 분배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정치집단으로 향해야할 포화가 부당하게 교사집단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프란츠 파농의 수평폭력 개념처럼 참으로 분노해야할 대상 대신 주변의 약자 또는 같은 처지의 집단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둘째, 그렇다면 사회적 존중감의 부재와 과잉보상의 철밥통이라는 인식은 이런 외부적 요인 탓으로만 돌리고 나면 끝일까요? 내적 요인은 없을까요? 각 교과 시간에 교사들은 교과의 지식을 교과서가 제시하는 대로 미리 몇 번 읽어보고 전달합니다. (다른 분들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래왔고, 아직도 그러고 있습니다.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과학시간에 교과서가 제시한 과학적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지식을 전달하지만 그 과학적 현상에 대한 깊은 탐구의 경험은 없습니다. 사회 시간에 공정무역과 윤리적 기업에 대해 가르치지만 스스로 윤리적 소비를 하지 않기에 가르치고는 있으나 내용이 실제로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단지 학생들 보다 조금 먼저 지식의 껍데기만을 알았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삼십년 전 스승의 대우를 받기를 원하고,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면 힘들어하고 회의를 느낍니다.(제 이야기입니다. ㅎㅎ) 존중받을 만한 교사가 못되지요.

   어쩌면 좋을까요? 먼저 외적요인의 개선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교사 집단의 삶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삶이 보다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도록 .... 실제로 각종 규제로 교사들의 사회적 참여가 만만치는 않지만.... 내적요인으로 부터 발생한 원인은 솔직히 인정하고 개선해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존중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지요.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고, 전문성을 쌓아가야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공부하고, 배움의 메카니즘에 대해 탐구하고, 아이들의 개별적 발달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밥값한다는 소리를 들어야겠지요. 글로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막상 제가 실천하려면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지향점으로 삼을 지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삶에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고 생각됩니다.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 교사들의 근무조건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시되는 데이터에 따라 그 해석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외국교사들과의 근무조건 비교도 중요하지만 우리 나라 안에서의 다른 직종의 근무조건과의 비교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내가 남편에게 불만이 있을 때 친구 남편 또는 옆집 남편과 비교하지 미국에 있는 톰이나 조나단과 비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다른 직종과 눈높이를 맞추고 상대적 비교를 통해 다른 직종에서 과잉보상이라는 생각 또는 이질감을 느끼거나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사려깊게 행동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학교 밖에 나가면 서정초등학교 교사라는 것만으로 달리 봅니다. 그 만큼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이루어놓은 우리 학교 교사의 이미지가 존중받는 교사의 이미지와 가깝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또 다른 아픈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존중받지 못해 흔들리고 아파하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개선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적응하는 분이 있는가하면 과거의 향수 속에서 힘들게 탈바꿈하려 몸부림치는 선생님도 계십니다.

  일부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격려와 칭찬이 필요하듯이, 교사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대화와 존중이 교사를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의 에너지가 아이들에게 분출되며 그 에너지를 받아 아이들이 배우고 자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사의 사기를 추락시킵니다. 교사는 보기 드문 동질집단입니다. 일반 직장과는 달리 관리자와 교사 두 계층 밖에 없어 그런지 주변의 교사가 자존감의 붕괴에 힘들어할 때 동질의식을 느끼고 집단적 감정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집단적으로 멘붕(?)을 겪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께 무작정 선생님들의 자존감을 높여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부모님들은 눈높이를 좀 낮추고 교사들을 바라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동반자요 같은 배를 탔다는 의식이 꼭 필요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수평폭력'적 인식과 언행은 없어야겠죠. 교사들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불완전하며 깨지기 쉬운 유리잔과 같습니다.  모자란 부분은 함께 협력해서 채워주고, 장점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은 교사와 부모 공동의 책임이지 교사의 단독 책임이 아닙니다. 또한 교사는 아이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아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잠재적 가능성의 존재로 보면서 함께 아이를 위해 이야기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누구든지 내 자식 욕하면 밉습니다. 미운 짓 하는 것 콕 찍어 말하지 않아도 아는게 부모입니다. 교사는 의식적으로 아이의 긍정적 측면을 바라보고 부모에게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부모는 아이의 부족한 점을 교사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혹시 그 역의 상황이 우리 학교에서 연출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도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오랫 만에 주저리 주저리 긴 글을 올리네요. 혹시 글 때문에 기분 상하시는 분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전적으로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 제 생각일 뿐입니다. ㅎㅎ. 아울러 교권붕괴와 관련한 선진국의 사례를 스캔해서 그림으로 첨부합니다. 그림은 진보적 교육 월간지인 '우리 교육' 편집위원을 지내고, 곽노현 교육감 시절 교육정책팀에서 일했던 권재원선생님의 '학교라는 괴물'에서 발췌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진국에서 실시되는 교권보호 정책들이 무색할 정도로 학부모와 교사가 서로 존중과 배려 속에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가 되면 좋겠구요. 그리고 그림에 나와있는 교권보호 방안들의 적용이 서로 다른 교육적 환경이기에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지만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그냥 한 번 보시면 좋겠네요. ~~^&^

[우리여기]

절절한 맘이~~~느껴져요. 관계에 있어서 여전히 상대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는 건 소통이 부족했다는 거 아닐까요? 권위, 존중, 존경의 마음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닌 절로 우러나오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더운 여름방학에 고생이 많아요.

[황국현]

네, 제대로 된 소통... 쉽진 않네요^^

[양성혜]

선생님 힘내세요. 우울해 하시기엔 너무나 그대를 존경하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이 너무 많답니다. 아이를 탓하기 전에 부모와 선생님들이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하셔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연구된 심뇌과학분야에서 한 사람의 심장과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사람의 심장이 전자기장을 형성해 영향을 주고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어른의 심장이 전자기장이 더 크고 강력하여 아이들이 교사와 부모의 내적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당신은 그렇게 위대한 존재이십니다. ^^

[황국현]

고맙습니다~^^. 2학기에는 더욱 힘을 얻어 그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전하도록 해야죠^^

[te2tt]

선생님..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