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촌보의 찌뿌린 아침 풍경>
남녘 땅 나주로 향하는 호남고속도로는 한가한데 구름이 끼어 시야가 맑지 않다.
2016년을 보내며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영산강으로 달린다.
1월에 대청댐으로 달려간 자전거 라이딩은 출퇴근과 더불어 금강종주, 한강, 낙동강, 영산강을 섭렵했다.
봄의 향기와 여름의 땀 그리고 순식간에 지나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의 초입에 영산강에서 끝맺음을 하게 되었다.
멀고 긴 여정이었는데 1대간 9정맥을 진행하는 느낌으로 큰 재미와 흥미를 가지며 페달을 밟았다.
아름다운 북한강 상류 강촌 풍경을 잊을 수 없고, 경춘선 폐철로 위를 달리던 기분을 상상 이상이었다.
건강 때문에 달리기 시작한 라이딩이 어느 새 중독이 되어 미지의 코스를 향해 시야를 넓혀 나간 셈이다.
얼마 전 다녀온 선유도 라이딩도 흡족한 여정이었고, 앞으로 타고 싶은 제주도 여정도 기대가 크다.
오늘 달리는 영산강 여정은 섬진강과 제주도 라이딩에 큰 경험이 되리라 생각된다.
고속도로를 나와 빛고을 광주를 지나니 나주 들판을 마주하고 영산강으로 접어 든다.
<승촌보 오토 캠핑장 부근>
송촌보에는 지난 번 라이딩 때 보다 인적이 드물다.
겨울엔 바람으로 자전거 타기가 어렵기 때문이지만 아무래도 흐린 날씨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동호인들이 에닐곱 모여 라이딩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장비와 옷매새를 고친다.
3주 가량 지나서일까?
출발하며 내딛는 페달이 무겁다.
덜 나은 왼쪽 손목과 오른손이 약간의 통증으로 힘겹다.
다행히 바람이 적어서 달리기에는 그리 어려움이 없다.
<영산강 전망대>
<영산강 전망대 부근에서 하구둑까지 70.3km>
30분 정도 달리니 영산강 전망대가 나온다.
철새와 영산강 숲을 관찰하기 좋은 위치였다.
승촌보까지는 강의 수량이 별로였는데 죽산보로 이어지는 강물은 꽤나 많다.
강물도 맑고 깨끗해서 주변 경관에 잘 어울린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하수처리와 주변 축사 관리로 영산강이 상당히 맑아졌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이 늘 잘못된 정책이라고 핀잔만 들었지만 막상 주민들 이야기는 긍정적인 면도 많이 발견된다.
잘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자전거 길은 그중에 최고로 꼽힌다.
대도시 주변의 라이딩 열풍은 국민 건강 증진에 큰 보탬이 되리라 확신한다.
<나주 영산교>
나주 영산강을 지날 무렵 하천 옆 부지에 새파란 수변 공원이 눈길을 끈다.
남쪽으로 내려오며 특이한 현상은 강변 주변 잡초와 식물들이 녹색으로 푸르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어떤 곳은 무화과 나무가 싱싱하게 열매를 맺고 있다.
배추도 아직 뽑지 않고 밭에 그대로 널려 있다.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식생은 남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영산강 황포돛배 선착장>
<영산포 등대>
영산강대교 옆에는 예전 배가 드나들 때 쓰이던 영산포 등대가 하얀 모습으로 나그네를 반긴다.
강에는 황포돛배가 정박 중인데 겨울이어서 항해하지 않고 정박되어 있다.
멀리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이곳까지 운반하던 중 시간이 지나 변질되어 낭패를 보았는데 발효된 홍어가 다시 살아난 곳이 나주 영산포이다.
지금도 나주 영산포 시장에는 홍어 1번지를 자랑하는 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코를 싸하게 자극하는 발효된 홍어와 막걸리 그리고 돼지고기의 3합 안주는 목포의 중요 먹걸이로 유명하다.
영산강의 연인 이야기가 전하는 앙암바위 모형이 만들어져 시선을 끈다.
<영산강의 연인 앙암바위 모형>
금강나루를 지나 한참을 달리면 언덕을 오르는 자전거 길이다.
오르막 먼 발치에서 보이는 앙암바위와 영산강의 구도가 아름답다.
황포돛배를 타고 영산강을 따라 영산포구 쪽으로 가면 56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앙암(仰岩)바우’ 또는 ‘아망바우’라 부른다.
그 경관이 아름답고 바위 아래 강물은 소용돌이 치면서 깊은 소(沼)를 만든다.
사람들은 이 앙암바위 아래에는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 바위는 영산강의 절경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지만, 소용돌이치는 물에 영산강을 다니던 많은 배들이 침몰한 곳이다.
예부터 이곳은 제주도나 중국으로 가는 배들이 안전한 항해를 위해 용진단에서 제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곳은 백제 시절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가 맴돌고 있는 곳이다.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앙암바위의 허리쯤에 진부촌이 있고, 그 맞은편에 택촌이 있다.
하루는 택촌에 사는 아랑사라는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는데, 강 건너에서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 진부촌에 사는 아비사라는 처녀였다.
그녀는 홀아버지가 병들어 있는데 물고기를 잡수시고 싶다 해 강가에 나왔으나 물고기를 잡을 길이 막막해 울고 있다 해 아랑사는 자기가 잡은 물고기를 처녀에게 주었다.
이것이 인연이 돼 두 사람은 밤마다 앙암바위에서 만나 사랑을 속삭이곤 했는데, 진부촌 젊은이들이 이를 시기해 아랑사를 속여 앙암바위 아래로 떨어뜨려 그만 죽이고 말았다.
그 후 아비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얼굴이 수심이 가득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비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기쁨이 넘쳐나는 걸 보고 이상히 여긴 마을 젊은이들이 처녀의 뒤를 밟아보니 강에서 바위를 타고 올라온 커다란 구렁이와 아비사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을 젊은이들은 이를 나쁜 징조라 여겨 그들을 바위 아래로 굴려 버렸다.
그 일이 있고부터 이상하게도 서로 얽힌 두 마리의 구렁이가 밤마다 진부촌에 나타났고, 진부촌 젊은이들은 시름시름 앓다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노인들이 협의해 무당들을 불러 음력 8월에 씻김굿을 해 아비사와 아랑사 두 사람의 넋을 위로한 뒤부터는 화를 면했다고 한다.
아랑사와 아비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깎아지른 암벽을 소재로 해 지금도 가슴 아픈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 영산포 택촌마을 앞 영산강의 앙암바위를 자세히 보면 남녀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앙암바위>
<앙암바위의 전설>
앙암바위를 지금이나 한 여름처럼 나무가 잎이 많을 때가 아닌 초봄이나 가을쯤에 보게 되면
바위 결이 물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마치 뱀이 감고 올라가는 형상처럼 결이 보이는 것이 있다.
그래서 옛날에 구렁이가 바위를 타고 올라간다는 것이 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또 하나 내려오는 이야기는 자세하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앙암바위 아래쪽에는 굴이 하나 있는데 그 곳의 물결이 소용돌이 치고 매우 빨라 배가 많이 가라앉고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에 용이 산다고 하여 제사를 지내자 난파하는 배들이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더불어 왜구들이 노략질을 하기 위해 영산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앙암바위 밑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더 이상 왜선이 오르지 못하고 물러갔다고 전해오는 곳이기도 한다.
예전에는 먼 항해를 할 때 이곳에서 무사항해를 비는 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일명 낙화암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에 영산포에는 조선의 조창 중에 하나인 영산창이 있었는데 조운선이 이 앙암바위 근처에서 자주 뒤집어져서 중종 7년 때 조창을 영광 법성포로 아예 옮겨 버리는 일도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앙암(仰岩)은 금강(錦江) 남안에 있다.
혹 노자암(鸕鶿岩)이라고도 한다. 그 밑에는 물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데 속설에 용이 있다고 한다. 바위 밑에 구멍이 있는데 조수가 밀려갔을 때는 보인다.
전설에 명나라 황엄(黃儼)이 제주로 갈 때 압승(壓勝)한 곳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앙암은 가파른 바위를 뜻하고, '아망바우'라 부른다.
남녀 간 못 이룬 사랑을 말할 때는 '상사바우'라고도 한다.
영산강에는 담양 보리암 앞과 무안 주룡진 근처에도 상사바우가 있다.
모두 급애(急涯)를 이루고 있다.
<앙암바위에서 본 영산강>
<앙암바위 오르막>
앙암바위 고개를 오르는 길은 경사가 크다.
나주에서 죽산보로 가는 자전거 길에서 가장 경사도가 크지만 영산강을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지점이다.
오르막은 내리막이 있기에 라이딩이 즐겁다.
하지만 손목이 아퍼서 조심해서 내리막을 달린다.
길은 이내 영산강 변을 달리는데 멀리 영산강 영상 테마파크가 산마루에 걸려 다가온다.
영산강의 빼어난 경치와 강물 그리고 절벽이 있는 산정에 옛 모습의 세트장(주몽 촬영지)이 만들어져 영화 촬영 장소로 쓰인다.
영산강 넓은 수변은 쉼터와 갈대 그리고 그늘진 천막이 몇 군데 보인다.
<죽산보 옆 다리>
<죽산보 주변 영산강 모습>
<죽산보>
<죽산보 공원>
<죽산보 인증센터>
<죽산 수변 공원 안내도>
죽산보는 전라남도나주시 다시면 죽산리와 송죽리를 연결하는 보이고, 조명 시설을 갖추어 야경이 화려하다고 한다.
또한 영산강에 뱃길이 열렸는데 죽산보의 물길을 따라 황포돛배가 드나들 수 있는 수문을 갖추고 있다.
유람선은 목포에서 출발하여 죽산보를 거쳐 승촌보까지 왕래할 수 있다고 한다.
<금강정 부근에서 보이는 석관정과 이별 바위>
나주영상테마파크를 지나면 강 건너에 조그만 정자가 보인다.
이별바위와 석관정인데 황포돛배가 지나갈 때 그리운 사람을 떠나 보내는 장면이 연상된다.
이별바위를 바라보는 산정엔 금강정이 있고 자전거 라이딩하는 사람들에게는 들르기 곤란한 정자로 보인다.
금강정 주변의 강은 영산강과 고막천이 만나는 지점으로 물길과 교통의 요지였다.
예전에는 황포돛배가 자주 드나들던 곳이였지만 지금은 금강정만이 쓸쓸하고 강 건너 언덕에 있는 석관정이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한 쌍을 이뤄 지나는 나그네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금강정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영산강 모습-인터넷 펌>
<금강정(錦岡亭)>
금강정은 나주시 공산면 면사무소에서 북쪽으로 6㎞ 떨어진 공산면 나주영상테마파크를 나와 농촌체험마을인 영산나루마을을 지나 영산강변으로 가다보면 신곡리 봉곡마을 끝자락 비포장도로가 100m쯤 가다보면 봉산 중턱에 자리 잡은 정자다.
공산면은 가송리, 금곡리, 남창리, 동촌리, 백사리, 복용리, 상방리, 신곡리, 중포리, 화성리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금강정도 통일신라 때 나주를 금성이라고 불렀으며 이곳을 통과하는 곳을 금천(金川), 금강(錦江)이라고 불렀으며 이곳 나룻터도 금강진(錦江津)이라고 불러 그러한 연유로 정자 이름을 지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금강정은 1530년 함평이씨 진충이 지었다고 한다.
<형제 쉼터>
<형제 쉼터와 주변 모습>
형제 쉼터에서 오전에 달려온 피로를 풀려고 한참을 쉰다.
온화한 영산강 날씨가 두툼하게 입은 옷을 하나 둘 벗게 만든다.
하지만 겨울 바람이 차가워 겉옷은 걸치고 땀이 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쉼터 주변 풍광은 강폭이 넓어지고 갈대밭이 무성하게 자라서 평화스럽다.
낙동강이나 금강에 비교하여 강변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거나 단지화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시골스런 풍경이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동강교>
<동강교 부근 영산강 풍경>
<느러지 쉼터 안내도>
느러지 쉼터에 도착하여 간식을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갖는다.
늘어지들은 느러지뜰이라고도 부르는데 S자 모양으로 강이 굽어들면서 만들어진 넓은 들을 말한다.
몽탄면 이산리의 곡강 일대를 '늘어지' 혹은 '느러지'로 부르는데 물결이 느려진다는 뜻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은 안동 하회마을 앞 낙동강 물줄기와 견줄만하다.
간 건너에는 터널과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목포 도청까지 연결되는 강변 고속화도로를 만드는 중이란다.
<느러지 쉼터 부근 영산강과 자전거 길>
<느러지 쉼터 건너편 모습>
<식영정과 느러지 뜰 안내문>
<느러지 관람 전망대 가는 도중에 만난 저수지>
<느러지 전망대 곡강정>
느러지 전망대가 있는 곡강정에 도착했다.
한반도 지형을 닮은 느러지뜰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5층까지 오르게 되어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강 건너 한반도 지형이 뚜렷하게 보인다.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 흡사하거나 또는 낙동강의 하회마을 지형 그리고 예천 회룡포를 많이 닮았다.
강물이 휘어져 도는 곳에 위치하여 특이한 지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곡강정에는 영산강의 절경을 읊은 시 한 수가 현판에 걸려 있다.
곡강(曲江)이 흐르는 아름다운 동강이라는 현판도 눈길을 끈다.
<곡강정 현판>
<느러지 한반도 지형 전망대>
<느러지 한반도 지형>
느러지 한반도 지형을 본 자전거 길은 신나는 내리막을 달려 몽탄대교로 향한다.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전망대 부근 자전거 길이 완성되면 더 쾌적한 라이딩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수량이 풍부하고 강물이 느리게 흐르는 영산강은 이곳을 지나며 영산호로 합류한다.
영산강 지류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강물의 수량은 많아지고 점차 호수 같은 거대한 모습이 보인다.
<몽탄대교>
<몽탄대교를 건넌 후 만나는 영산강 풍경>
몽탄대교를 건너면 하구둑까지 28km 정도 남는다.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승촌보로 돌아가거나 그냥 하구둑까지 완주해야 한다.
겨울에 달리는 자전거 라이딩은 의외로 맞바람의 고충이 크다.
달리며 여러 생각을 하다가 영산강 하구둑까지 완주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전국 용달차를 수배하여 4시 30분에 목포 하구둑 근처에서 픽업하기로 예약하고 페달을 밟는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영산강>
<소댕이 나루 근처>
왕복 종주가 아니기에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므로 쉬지 않고 달리려하는데 삼포천과 만나는 회산백련지와 돈도리나루 근처에서 U자형 되돌이 길에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회산 백련지 근처는 다리 공사가 한창인데 그냥 건너 갔으면 20여분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탄탄대로 자전거 길이지만 바로 목전에 길을 두고 빙 돌아가는 것이 영 부담이 된다.
돈도리 나루의 U자형 되돌이 지형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영산강 자전거 길에서 만나는 풍경>
<무영대교와 영산강>
무영대교 현수교가 보이며 주변 경관이 많이 변화한다.
강을 벗어나 동네를 한바퀴 돈 자전거 길은 이내 우비나루에 도칙하여 마지막 스퍼트를 남겨 둔다.
하구를 향한 마지막 휘어짐을 허용한 영산강은 삼호대교를 바라보며 영산호의 위용을 보인다.
오늘 달리는 자전거 길은 승촌보에서 하구둑까지 79km이다.
제법 긴 종주이기에 페달을 밟는 종아리에 조금 무리가 온다.
하지만 목적지가 서서히 보이면서 힘든 기색은 오히려 희망으로 바뀌어 더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영산강 하구둑과 목포가 보이는 우비나루 근처 모습>
<영산강 하구둑>
영산강 하구둑 석양 모습이 장관이다.
햇빛이 반사된 하구둑 구조물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산을 다니며 만났던 절경과 운무 그리고 선경의 아름다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넓고 평화로우며 물을 만나는 즐거움은 4대강 자전거 라이딩의 묘미이다.
걷기보다 훨씬 가볍게 달릴 수 있고, 먼 거리를 주파할 수 있어 편하다.
다만 너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과 차량 회수 문제가 걸림돌이다.
<영산강 철교>
<영산강 하구 수변 공원>
하구둑 주변은 생태 습지와 산책길이 조성되어 목포 시민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널리 이용되는 모양이다.
많은 시민들이 걷거나 산책하며 자연을 즐긴다.
특히 목포 신도시가 조성되어 영산호 주변은 많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습지 조경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예전 칙칙한 목포의 이미지를 벗는데 크게 이바지한다고 한다.
<영산강 하구둑 인증센터>
영산강 하구둑 인증 센터에서 마지막 인증 스탬프를 찍었다.
담양호 인증 센터, 메타쉐쿼이아 길, 담양 대나무 숲, 승촌보, 죽산보, 느러지 전망대, 하구둑 인증 센터를 모두 지난 것이다.
담양댐에서 133km의 자전거 길을 달려 영산강 하구둑에 도착한 것이다.
중간에 엉터리 공사로 자전거 길이 울퉁불퉁하고, 자동차가 달리고, 오토바이가 다니는 등 어수선한 전용 도로 사용의 모순이 보였지만 다른 4대강 보다 인적이 드물고, 통행량이 적었으므로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고 유발의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 위험하다는 문제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승촌보에서 발생한 충돌 사고는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유익한 레포츠라고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영산강 기점에서 인증 샷>
<영산강 수계 발원지 기점 표시판 앞에서 인증 샷>
<영산강 하구둑 기점에서 본 자전거 길>
<영산강 하구둑 인증 샷>
<영산강 하구둑 영산호 인증 샷>
<영산강 하구둑 수문과 기념탑>
길이 4,350m. 최대높이 20m. 저수량 2억 5,000만t. 영산강지구 농업종합개발계획 2단계 사업의 핵심 사업으로 건설된 영산강 하구둑은 목포 동쪽 6km 지점, 무안군 삼향면(三鄕面) 옥암리(玉岩里)와 대안인 영암군 삼호읍(三湖邑) 산호리(山湖里) 사이를 가로막은 토석제(土石堤)로, 1978년 착공, 1981년 12월에 완공하였다.
국내 최대의 이 방조제에는 8련(連)의 배수갑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철제 갑문 하나가 너비 30m, 높이 13.6m, 두께 3.6m로 무게 480t이나 되는 동양 최대의 규모이다. 또한 이 하구둑에는 30t급 선박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너비 6m, 길이 30m의 통선문(通船門)도 갖추어져 있다.
하구둑 위에는 6차선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목포시∼영암군을 육로로 연결하고 있다.
영산강유역 개발 제1단계(장성호·담양호·나주호·광주호 등의 완성)에 이어 추진된 이 2단계사업은 영산호에 저류될 풍부한 담수를 2만 700ha의 농경지에 효과적으로 공급하기 위하여 16개소의 양수장과 164km의 간선용수로를 건설하고 경지정리·개답(開畓:3,250ha)·간척(5,500ha) 등의 후속사업이 1980년 말에 완성됨으로써 6,100ha의 농지가 확장되었으며, 이에 따라 5만 6000M/T의 쌀을 증산하였다.
한편, 하구둑과 직각선을 이루면서 삼호읍 용당리(龍塘里)에 이르는 길이 4,280m의 대불(大佛)방조제가 완공됨으로써 810ha의 간석지가 개간되었다.
(두산백과)
<영산호 표지석>
영산호는 영산강 지구 종합개발 계획 2단계 핵심 사업의 일환으로 목포시 삼향동과 영암군 삼호면 나불리 사이의 길이 4,351m, 높이 20m의 하구둑이 건설됨으로써 등장된 담수호이다.
본래 영산강 유역은 홍수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데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나주시까지 올라가면서 만성적인 염해의 피해를 겪었던 지역이다.
그러나 영산호의 등장으로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음은 물론 영산강 하구 일대의 20,700ha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 56,000t의 쌀 증산과 3,250ha의 새로운 농경지를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 관광지로 지정된 영산호는 연간 많은 관광객이 찾아 드는 호남 남부지방의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영산강 인증 센터 스탬프>
오후 해가 지는 목포를 뒤로하고 용달차에 자전거를 싣고 무안을 거쳐 나주로 향했다.
40여분 걸려 승촌보에 도착하니 어둠이 밀려온다.
서둘러 차량에 자전거를 탑재하고 대전으로 향한다.
긴 여정이었지만 의외로 피로도는 적다.
영산강을 끝냈다는 만족감과 한 해에 금강과 낙동강 그리고 영산강 종주를 마쳤다는 것이 대단하다.
내년에는 충부에서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좋은 계절에 섬진강을 따라 남해로 내려가고, 제주도를 한 바퀴 자전거로 돌 게획도 세워본다.
멈칫거리는 자전거 동호인들에게 선뜻 권하고 싶다.
처음 시작할 때 망설임이 컸지만 한 번, 두 번 4대강에 다가서니 자신감과 만족감 그리고 여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는 곳마다 만나는 정자와 강변 풍경 그리고 잘 닦여진 전용도로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즐거웠다.
영산강을 끝내며 혹여 자전거 라이딩에 망설여하는 분들이 있다면 얼른 떠나라고 권유하고 싶다.
우리 강토에 금수강산이 아름다운데 산에서 배우는 호연지기가 있다면 청산유수 처럼 흐르는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 그리고 섬진강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영산강 종주 자전거 길 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