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문예창작학회
동화창작에서 인물 창조 김자연(전주대) 1. 동화창작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위치 한국 동화에서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몇이나 되나? 대답은 매우 실망스럽다. 동화는 이야기이다. 이야기(stroy)로써 동화는 인물(character), 사건, 배경으로 구성된다. 이중 인물은 작품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동이나 사건의 주체가 된다. 소설에 비해 비교적 사건이 제한적인 동화에서 인물 창조는 그만큼 비중이 더 크다고 하겠다. 동화를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과 같다. 따라서 동화를 쓰는 것은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했다’에서 ‘어디서’와 ‘무엇을 했다’는 것은 결국 ‘누가’를 그리기 위한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문학이론가 오르테가이 가세트(Ortegay Gasset)는 ‘이야기는 사건의 개연성이나 복잡성에 연원하기보다는 인물이 지닌 신비한 마력, 그 인물의 가능성에 있다’며 이야기에서 ‘인물’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세계 명작 동화, 이를테면 『모모』, 『피노키오』, 『삐삐 롱스타킹』,『피터팬』,『알프스 소녀 하이디』, 『톰소여의 모험』,『산적의 딸 로냐』,『헤리포터』를 살펴보면 독자의 흥미를 끄는 개성적 인물(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이 실감나게 창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감나게 창조된 인물이란 이 세상에 ‘있음직한 인물’로 그럴듯하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예1> 삐삐의 모습은 이랬다. 홍당무처럼 빨간 머리카락은 두 달래로 야무지게 땋아져 옆으로 좍 뻗어 있었다. 감자같이 생긴 조그만 코는 주근깨 투성이였다. 그 코밑에는 커다란 입이 있었는데, 튼튼하고 새하얀 이가 엿보인다. 거기에다. 삐삐의 옷은 정말 특이했다. 삐삐가 직접 만든 옷이었다. 원래 파란색 옷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파란색 천이 부족했다. 그래서 파란 천에 빨간 천조각을 여기저기 기워서 옷을 만들었던 것이다. 길고 비쩍 마른 다리에는 긴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한 짝은 밤색이고 한 짝은 검은색이었다. 그리고 자기 발의 딱 두 배가되는 까만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구두는 삐삐의 아빠가 남아메리카에서 사준 것인데, 삐삐가 자라서도 신을 수 있게 큼직한 구두를 고른 모양이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삐삐 롱스타킹」 <예2> 나는 문제아다 선생님이 문제아라니까 나는 문제아이다. 처음에는 그 말이 듣기 싫어 눈에 불이 났다. 지금은 상관없다. 문제아라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어떤 때는 그 말을 들으니까 더 편하다. 문제아라고 아예 봐주는 것도 많다. 웬만한 일로는 혼나지도 않는다. 그냥 포기한 셈치니까. 잔소리나 듣다가 만다. 애들도 내 앞에서는 슬슬 기기만 한다. 그러니까 내가 점점 더 문제아가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박기범,「문제아」- <예3> 잎싹은 마당에 있는 암탉을 볼 때마다 철망이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잎싹도 수탉과 함께 두엄을 헤치거나 나란히 걷고 싶었다. 그리고 마당의 암탉처럼 알을 품고 싶었다. 오리들과 늙은 개, 수탉과 암탉이 어울려 지내는 마당. 그 곳은 잎싹이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다른 세상이었다. 아무리 목을 내밀어도 철망으로 빠져 나갈 수 없고 깃털만 뽑혔으니! ‘왜 나는 닭장에 있고, 저 암탉은 마당에 있을까?’ (…중략…) 눈물이 흘렀다. 암탉으로 태어나서 처음 흘린 눈물이었다. 잎싹은 진저리를 치며 부리를 앙다물었다. ‘절대로 알을 낳지 않겠어! 절대로!’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예문1)은 주인공 삐삐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직접 만든 옷에 한 짝은 밤색, 또 한 짝은 검은색을 신은 삐삐의 모습, 거기다가 자기 발의 두 배가 되는 구두를 신은 것으로 보아 삐삐는 호기심이 많고 개방적인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문1)이 인물의 외형적인 특징을 통해 성격을 나타냈다면 (예문2)와 (예문3)은 주인공의 행동과 주변 상황으로 성격을 드러낸 경우이다. (예문2)의 주인공 창수는 반항적이면서도 자신과 주위 인물에 대해 냉소적이며, (예문3)의 잎싹은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주어진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성격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그 내용은 잊어버려도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랫동안 기억하곤 한다. 동화에 등장하는 개성적인 인물도 마찬가지다. 『만년샤쓰』의 한창남,『칠칠단의 비밀』의 상호,『너하고 안 놀아』의 노마,「돼지 콧구멍」의 종규, 『몽실언니』의 몽실이,『강아지똥』의 강아지똥,『오세암』의 길손이와 감이, 『목걸이 열쇠』의 향기도 기억에 남는 개성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기억에 남는 동화에는 인물이 독특하면서도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동화에서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인물들은 현실 속 인물일 수 있고 현실 밖의 인물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말과 행동은 현실 속의 삶의 양상을 띈다. 어린이는 동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세상이 어떤 것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에 대한 인식을 넓혀나간다. 이러한 인물들은 대개 작가의 관찰과 상상력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현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작품에서 인물을 말할 때 흔히 성격(character)이라는 용어를 대신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인물의 여러 요소 중 성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물을 표현하는 방법은 인물의 외형적인 모습이나 행위, 버릇, 습관, 취미, 대화, 사건을 통해서이다.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는 외부적 조건에 대해 이태준은 『문장강화』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키가 크고 작은 것, 살찌고 야윈 것, 이마가 넓고 좁은 것, 얼굴빛이 희고 검은 것, 눈이 크고, 맑고, 어둡고, 두리두리하고, 안존한 것, 입술의 얇고 두터운 것, 말소리의 맑고, 탁하고, 느리고, 빠른 것, 앉음앉음, 걸음걸이 등 이런 것이 가장 그 성격과 유기적인 인과성을 갖는 것이니 이런 점에 예리하고, 다소 과장적인 묘사가 필요한 것이다. 기타, 옷 모양, 취미, 교양 직업 등도 그 인물을 성격적으로 나타내는데 적당한 안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물을 초목이나 동물처럼 가만히 세워 놓고 묘사만 하는 것은 서투르다. 그 글에 나오는 필요한 언행과 사건을 써나가는 속에서 그 인물의 성격적인 것을 독자가 모르는 새에 일점, 일선씩 가벼이 터치해 나가야 읽고 나면 은연히 그 인물이 두드러지게 해야 가장 자연스럽다" 동화를 창작할 때 작가는 인물 외형을 묘사하면서도 그 인물의 내면에 감추어진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독특하고 흥미로운 인물을 창조했다고 해도 주제가 모호하고 구성이 엉성하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주제가 잘 표출되고 구성이 잘 되었어도 인물의 성격을 제대로 창조하지 않았다면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이 독자적으로 창조되지 않듯 동화에서도 인물의 성격과, 주제, 구성은 밀접하게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동화창작법’에 나타난 인물 창조의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2. 동화 인물 창조의 어제와 오늘 현대 동화 창작의 한 특징은 개성 있는 인물을 창조하여 독자층을 넓혀 가고 있는 작가가 많아진 것이다. 사실 그 동안 한국 동화를 살펴보면 인물이 만들어내는 사건에 치중하여 인물이 지닌 고유한 성격 창조에는 다소 소홀한 감이 있다.1) 또 동화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개성적인 인물 창조보다 사회 통념을 수용한 착하고, 모범적인 인물을 동화에 많이 등장시켜 왔다. 어린이는 어른의 종속물이라는 생각에 이른바 어른들이 바라는 아동상을 동화에 담아왔다.2) 그러나 요즘에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당면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인물이 동화에 더 많이 눈에 띈다. 동화창작에서 개성적인 인물 창조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으로 이금이, 노경실, 김향이, 채인선, 황선미, 박기범, 고정욱, 김중미, 김진경 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전 동화 속에 개성적인 인물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방정환의 『만년샤쓰』, 『칠칠단의 비밀』에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한창남과 상호가 등장한다. 창남이(만년셔츠)는 눈먼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사는 소년이지만 자기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 아이다. 동네에 불이 났을 때도 창남이는 이웃 사람에게 옷을 다 벗어주고 추운 겨울에 홑 저고리만 입고 학교에 간다. 체육 시간이 되어 겉옷을 벗어야 하자, 선생님께 만년셔츠(맨몸)도 괜찮냐고 물을 만큼 낙천적이다. 현실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모습은 상호와 『칠칠단의 비밀』의 상호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은 개성적으로 형상화한 인물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윤리관이나 사회관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참혹한 현실에서 어린이에게 무언가 일깨워 주고자 했던 사회 통념이 굳세고 어른 같은 한창남과 상호를 탄생하게 한 것이다. 마해송은「토끼와 원숭이」,「사슴과 사냥개」를 통해 시대를 반영한 인물을 창조했다. 갑동이「토끼와 원숭이」는 섬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외세와 결탁한다. 반면 갑동이네 집 머슴인 돌쇠는 무상원조를 거부하고 자립의 중요성을 부르짖는다. 돌쇠는 떡배와 단배 사람들의 교묘한 술책을 섬사람들에게 폭로하고 그들과 힘을 합쳐 다른 사람의 지배와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슴과 사냥개」에 등장하는 비호는 그 시대 사회상이 반영된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호는 주인의 사랑과 칭찬을 제일로 알고 주인을 위해 숲 속 동물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충성을 다한다. 그러나 사람이 쳐 놓은 덫에 걸린 사냥개 비호를 구해주는 것은 자기 주인이 아닌 동물이다. 사슴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된 사냥개는 양을 구하려고 인간에게 달려들어 죽임을 당한다. 결국 비호는 자기가 동물임을 깨닫는다. 여기서 비호는 자기 주체성을 회복해 가는 인물이지만 사회적 통념이 반영된 인물이다. 가치의 혼돈이 팽배했던 시대를 떠올린다면, 그 당시 우리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조선인의 주체성을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식이 등장인물에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주홍의 「청어뼉다귀」에 등장하는 순덕이는 현실에 아무런 대항을 하지 못하고 순응하는 인물로 1930년대를 대변하는 전형3)성을 보여준다. 강소천의 「인형의 꿈」에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꿈을 이끌어 가는 당찬 정란이가 등장한다. 이원수의 『민들레 노래』에 등장하는 현우는 학살된 시체 더미 속에서 어머니 품에 안겨 기적적으로 탈출한 운명적인 소년이다. 권정생의『강아지 똥』과『몽실언니』에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몽실이와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자기 몸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강아지똥이 나온다. 강아지똥은 천하고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어도 꿈을 잃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이전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개성적으로 창조된 인물이라기보다 사회의식을 대변하는 인물, 전체를 위해 나를 희생시키는 인물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전의 동화가 인물의 개성적 성격 창조보다는 그 인물에 의해 형성되는 사건을 보다 중요하게 여긴 까닭이다. 동화 인물 창조의 바람직한 방향은 사회의 전형성과 함께 보편성, 개성이 상호 보완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이다. 점점 개인의 삶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변화 속에 우리 동화에도 독창적인 인물 창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작한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다섯시 반에 멈춘 시계』,『문제아』,『나쁜 어린이표』,『마당을 나온 암탉』,『가방을 들어 주는 아이』는 개성 있는 인물 창조의 좋은 예가 된다. 3. 동화 인물 창조의 실제 1) 등장 인물을 열심히 연구하고 완전히 장악한다 등장 인물에 대해 독자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아주 적다. 작품을 쓰는 사람만이 등장인물을 알고 있는 것이다. 동화를 창작하는 사람이 인물에 대해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면 줄거리와 사건은 얼마든지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동화를 창작할 때는 무엇보다 등장인물에 대해 철저하게 정보를 입수해야 한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먹고, 무슨 옷을 입고 있으며, 취미나 특기, 습관이나 버릇 등 그들의 정보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모두 끌어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학생들과 창작 수업을 하면서 제일 먼저 권한 것이 창작 노트(수첩)이다. 그 때 그때 대상에서 받은 느낌이나 본 것, 다양한 정보를 노트에 담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요즘엔 대부분이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번거롭게 무슨 창작 노트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창작노트를 가지고 다니면 언제 어디서든 관찰한 대상에 대해 자기 느낌과 이미지를 적어둘 수가 있다. 인물은 도처에 있다. 길을 가다 우연히 특별한 대상을 만날 수 있고 옆 사람으로부터 재미있는 인물에 관해 들을 수도 있다.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자존심이 강한 사람, 소심한 사람, 대범한 사람,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 의리가 강한 사람, 다른 사람이 말할 때마다 반박하는 사람,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 까다로운 사람, 규칙을 싫어하는 사람, 사소한 일을 결정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리는 사람 등. 동화를 창작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듣고 관찰하고 보고 느낀 것을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우리 주변에는 작품에 등장시킬 수 있는 인물들이 많다. 다만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심코 지나치거나 이야기 소재로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버스가 멈추어 있는 동안, 또는 지하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는가. 그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 버스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하나같이 다른 표정과 행동을 한다.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 올리는 사람, 한쪽 발을 떠는 사람,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는 사람, 껌을 씹고 있는 사람, 종종거리는 사람, 옆 사람을 툭툭 치며 말하는 사람, 목소리가 큰 사람, 말할 때마다 코를 킁킁거리거나 눈썹을 떠는 사람 등.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표정과 몸짓 역시 제 각기 다르다.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창작노트에 정리해 두고 필요에 따라 꺼내 쓰도록 한다. 다음 예문은 인물의 성격을 잘 서술한 부분이다 <예1> 나는 싸움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애들이랑 노는 것만 좋아했다. 그래도 애들 중에서는 내가 깡이 센 편이었다. 지는 것도 싫어했다. 그래서 애들끼리 무슨 시합이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깜깜해져도 이길 때까지 했다. 아니면 그 다음날에라도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렇다고 무슨 어거지를 쓰거나 우기진 않았다. - 박기범, 『문제아』 <예2> 영대는 아주 조용했어요. 공부를 할 때도 조용하고 쉬는 시간에도 조용했어요. 그 애는 행동도 조용조용 했어요. 천천히 소리 안 나게 일어나서는 소리 안 나게 걸어다녔어요.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느렸어요. 글씨 쓰는 것도 느리고 밥 먹는 것도 느렸어요. 누가 자기 흉을 부아도 잠자코 있었어요. 아이들은 영대를 놀렸어요. ꡒ굼뱅이 바보! 쟤는 말도 잘 못한대. 아마 듣지도 못할 거야!ꡓ -채인선, 『내 짝꿍 최영대』 2) 개성적이면서도 그럴듯한 인물을 창조한다. 아동문학 작품을 쓸 때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은 등장 인물의 단계성이다. 작품에 등장시키는 인물이 유치원생인지, 저학년인지 고학년인지를 설정해 두면 적당한 인물을 선택하여 묘사하기가 훨씬 쉽다. 유치원생인 경우엔 성격이 복잡한 인물보다 단순하고 활동적인 인물이 좋겠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인물 묘사가 복잡해진다. 예를 들면 성실하고 착하지만, 시기도 하고, 정직하지만 싸움도 잘하고,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성격 등. 그러나 여기서 주의 할 것은 개성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허무맹랑한 인물을 형상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인물은 독특하기는 해도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비록 허구적인 인물일지라도 그 인물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럴듯함’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와인담은 『동화 쓰는 법』에서 “별로 주요하지 않은 등장인물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셩격만 표현해 주라고 권하며, 부주인공을 너무 재미있게 묘사해서 그가 주인공의 인기를 가로채지 않을 것을” 충고한다. 이것은 동화에서 부주인공을 주인공보다 재미있고 비중 있게 다룰 경우, 이야기 전개에 혼선을 주어 어린이들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학생 작품1> 우리 할머니의 별명은 “허허할매”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허허”하고 웃으셔서 생긴 별명이죠. 할머니는 누가 싫은 소리를 해도 그저 “허허 허허”, 아이들이 “허허할매, 허허할매”하고 놀려도 그냥 “허허”하고 웃으시기만 합니다. -중략- 우리 할머니는 숫자를 이렇게 읽으십니다. 1은 작대기, 2는 오리, 3은 쇠스랑, 4는 상자, 5는 오리 거꾸로, 6은 콩나물 거꾸로, 7은 낫, 8은 절구통, 9는 콩나물, 10은 작대기 놓인 우물, 그 뿐 아닙니다. 제 이름을 부를 땐 “명길아”하고 부르지 않고 꼭 촌스럽게 “맹길아”하고 부른다니까요. (오복형, 국문과 3학년, 허허할매) <학생 작품2> 저에게는 “희망이”라는 얼굴이 유난히 까만 친구가 있습니다. 본래 이름은 제시카인데, 제시카의 일곱 번째 생일날 마을 사람들이 “희망이”라는 이름을 선물했습니다. 희망이 아버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미군으로 일한 흑인이었고, 엄마는 창녀였다고 합니다. 희망이 엄마는 희망이를 낳고 부터 김치공장에 나가며 혼자 희망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희망이는 태어나서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이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많이 닮았습니다. 잘 묵어도 한 가닥씩 삐져 나오는 곱슬머리, 유난히 큰 눈, 까지고 두터운 입술, 까만 피부. 아이들은 이런 희망이를 “검둥이 새끼”라고 놀려댑니다. (김미현, 국문과 3학년, 희망이) 허허 웃는다고 이름이 붙여진 허허 할머니와 잘 묵어도 한 가닥씩 삐져 나오는 곱슬머리, 유난히 큰 눈, 까지고 두터운 입술을 가진 희망이가 개성적으로 표현되었다. 숫자를 1은 작대기, 2는 오리, 3은 쇠스랑, 4는 상자, 5는 오리 거꾸로 등 독특한 방법으로 읽는 할머니의 행동과 태어나서 아버지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희망이가 유독 아버지를 닮고 검둥이 새끼라고 놀림을 받는 등장인물의 모습에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예측하게 한다. 3) 서술과 묘사에 의한 인물 창조 <예1> 은비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예쁘게 보이려는 것 같아서 나는 그것조차 얄미웠다. 하긴 입가에 쏙 들어가는 볼우물가지. 찰랑찰랑 윤기 나는 머리칼을 길게 늘어드리고 머리띠를 한 것까지 그 머리띠에 진주 알이 조르륵 박혀 있는 것까지. 귓불에 뚫은 참새 눈물 방울 같은 반짝이 귀걸이까지. 말할 대마다 ‘으응’하고 콧소리를 길게 늘이는 것까지. - 이미애, 「나만의 단짝」 <예2> 수지는 날마다 아무도 모르게 남자가 되는 연습을 했습니다. 목소리도 될 수 있는 대로 남자아이처럼 굵은 소리를 냈습니다. 걸음걸이도 건들건들 남자 흉내를 내며 걸었습니다. 날마다 옷도 빨강이나 분홍, 초록색이 아닌 파랑이나, 회색, 검정색만 골라 입었습니다. 꽃핀이나 방울끈 대신 야구모자도 눈에 띄는 대로 자꾸자꾸 샀습니다. 야구 모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진짜 남자아이가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규희, 「나도 이제부터 남자다」 <예3> 처음에는 나도 그 애가 몹시 낯설고 서먹했다.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무뚝뚝한 표정, 낡은 파카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퉁명스럽게 인사도 없이 내 옆자리에 앉아 먼 데 창 밖을 바라보던 아이 그 애의 첫인상은 어딘지 어둡고,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아이 같았다. -강무홍, 『깡딱지』 <예4> "놔 둬. 내가 감을 거란 말이야.“ 큰돌이는 팥쥐 엄마 손을 뿌리쳤어요. “비눗물도 제대로 안 빠지게 감으면서 뭘 그래? 오래간만에 동생 만나러 가면서 지저분하면 쓰겠냐?” 팥쥐 엄마는 큰돌이가 버둥거리거나 말거나 머리를 감겼어요. 팥쥐 엄마는 참 이상해요. 큰돌이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서운해하거나 야단을 치지 않았어요. 목소리리가 부드럽거나 곰살 맞게 구는 것도 아닌데 큰돌이는 번번이 팥쥐 엄마한테 지고 말지요. 무섭게 굴거나 때리는 건 더더욱 아닌데 말이에요 -이금이,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예문5> “그럼 어저깬 기동이 하고 놀 때 내가 네 편 들어줬지?.” “누가 너보고 내편 들랬어?.” “그럼 아까 기차쟀기 할 때 너 막 태 줬지.” “누가 태 줬어 모래 돈 받고 태 줬지.” “나구 놀면 이담에 내 생일날 떡 하거든 너 썩 많이 줄께.” “제 생일날 떡 할 걸 어떻게 기다린담 뭐.” “그럼 이 따 우리 어머니 돈 주면 과자 사서 너 조금만 줄게.” “그까짓 조금.” “그럼 반만 줄께.” “그까짓 반.” “그럼 다 줄께.” -현덕, 『너하고 안 놀아』 <예6> 어느 산허리를 돌아서려니까 별안간 길 옆 숲 속에서 고양이만한 새카만 놈이 깡창 뛰어 나오며 눈 위에다가 엎드려 무릎을 꿇고 자꾸 절을 합니다. “돌쇠 아저씨, 제발 살려 주세요.” 처음에는 깜짝 놀란 돌쇠도 이렇게 말을 붙이는 고로 발을 멈추고 자세히 바라보니까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분간 할 수 없는 얼굴에, 몸에 비해서는 좀 기름한 팔 다리, 살결은 까뭇가뭇하고 귀가 우뚝 솟고 작은 꼬리까지 달려서 원숭이 같기도 하고 고양이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개 같기도 했습니다. “예, 요게 뭐냐.” 돌쇠는 약간 놀라면서 소리쳤습니다. 대체 너는 누구냐? “제 이름은 산오뚝이예요.” “뭐? 산오뚝이?” - 이상, 「황소와 도깨비」 <예7>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쑥대머리에 꽈배기처럼 뒤틀린 다리를 질질 끌며 칠떡꿍 칠떡꿍 걷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앞니마저 뭉텅 빠져나가 팥죽할멈처럼 호물거립니다. -중략- “에그머니나! 누, 누, 누구세요?” 가게 사람들 십중팔구는 느닷없이 불쑥 내민 쑥대머리에 끔쩍 놀라고 맙니다. 오복이 아저씨는 그것이 또 재미있습니다. “이잉, 옵쪽이여, 옵뽁이!” “뭐라구요? 옵꾹이?” “이잉, 내 이늠이여, 이늠, 옵뽁이나고.” “옵뽁이?” “에헤이, 옵뽑이낭께, 옵뽁이!” -황일현, 「옵뽁이 아저씨」 위 (예문1)과(예문2)는 등장 인물을 서술로 나타냈다면,<예문3>은 묘사를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창조했다.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무뚝뚝한 표정, 낡은 파카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퉁명스럽게 인사도 없이 내 옆자리에 앉아 먼 데 창 밖을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은 보통 가정에서 원만하게 자라지 않은 무언가 내부적으로 불만과 반항심 있는 성격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예문4)에서 (예문7)까지는 대화를 통한 성격창조이다. (예문4)의『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에서 큰돌이는 "놔 둬. 내가 감을 거란 말이야.“라고 말하며 팥쥐 엄마 손을 뿌리치는 걸로 봐서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 아이고, 그런 큰돌이를 말없이 씻기는 팥쥐 엄마는 착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예문5)는 영이가 담 밑에 앉아서 조개로 솥을 걸고 흙으로 밥을 지으며 소꿉놀이를 하는데 똘똘이가 같이 놀 구실을 대는 장면이다. 여기서 영이는 제법 콧대가 센 인물로 순순히 상대에게 응해주지 않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예문6)의 경우 ”돌쇠 앞으로 깡장 뛰어나와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 산오뚝이“ 란 말에서 주인공은 가볍고 겁이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문7)의 오복이는 “이잉, 내 이늠이여, 이늠, 옵뽁이나고.”에서 살필 수 있듯 남의 비위를 맞추고 말도 제대로 못하지만 “에헤이, 옵뽑이낭께, 옵뽁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성격이 순박하고 낙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작품의 한 부분만 살펴보고도 우리는 인물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 창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인물로 하여금 우리들의 상상에 있어 실존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할 만큼 진실하게 묘사’ 하는 것이다. 즉, 동화 속의 인물은 작품세계에서 살아 흐르는 피처럼 생동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물 설정과 성격창조에 리얼리티가 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인물과 성격은 행동과 구성의 주체로, 삶의 의미로써의 주제를 나타내어야 한다. 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진실성이다. 진실성이란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과 개성적인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화에서 생동감 있는 이러한 비유는 진실성으로,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가 된다. 예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완전하지 않다. 완벽한 주인공은 성격이 발전한 가능성이 희박하며, 활기가 없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작품의 주인공을 너무 좋게만 묘사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동화 인물 창작의 한 특징이다. 4) 등장인물의 이름짓기 르네 웰렉은 그의 『문학의 이론』에서 성격 창조의 가장 간단한 형식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그 인물에게 성격을 부여하고 개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개성적인 이름은 독자에게 등장인물을 뚜렷하게 심어준다. 이름을 붙일 때 작가는 인물의 성격이나 표정 신체적인 특징, 습관, 별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얼굴에 큰 점이 있어 ‘콩점이’, 흠흠 잔기침을 한다고 ‘흠아저씨’, 아카시아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은 소망을 담은 ‘잎싹’ 무엇을 물어도 “난 모리 무싯해서”하고 대답해서 붙여진 ‘무싯할머니’, 이외도 톡톡 할아버지, 나답게, 밤티마을 큰돌이, 옵뽁이 아저씨, 황토, 싸기대장의 형님, 개돌이, 산오뚝이, 이삐언니 메취눈 할아버지, 멍순이, 콩달이, 왕땅콩 갈비 게으름이 욕심쟁이 봉식이, 희야자야, 개미고비 등 성격을 드러내는 이름이 많다. 서정적인 동화를 썼던 정채봉은 주인공 이름을 감이, 서문이, 달반이, 원이, 웅이, 환이, 용이, 수수 등 이름에 성을 붙이지 않고 끝 자가 ㅇ 으로 끝나게 하여 소박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이름을 자주 사용했다. 반면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나쁜 어린표』에 등장하는 건우를 살펴보자. 주인공 건우는 나쁜 어린이인데 이름은 지극히 정상적인, 아니 오히려 너무나 건강한 이름이다. 나쁠래야 나쁠 수 없는 이름이다. 때에 따라서는 이처럼 인물의 성격과 조금은 다른 예상 밖의 이름을 짓는 것도 창작의 한 방법임을 기억하자. ( 황선미는 (동화 창작, 어떻게 해야 하나)를 통해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인물의 이름이나 작품 내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낱말을 통칭 ‘이름’이라 정해보았다. 문학 작품은 그림이 아닌 문자로서 이미지와 인물 행위, 관념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낱말을 상징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동화에서는 인물이나 관념을 나타내는 이름을 단순하게 정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 그런 것이 필요한가 묻는 사람은 계속 그렇게 쓰고 읽어도 된다. 이런 문제는 개인의 취향에 따르는 것이므로 단선적이 넋에 호감을 가졌느냐 중층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느냐는 어디까지나 강요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일수록 작가가 고도의 전략으로 완성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름 하나에도 인물의 특성과 작가의 정신을 담아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방정환외,『한국명작동화』1,2, 예림당, 2003 김자연, 『한국동화문학연구』, 서문당, 2000 ------,『아동문학이해와 창작의 실제』, 청동거울, 2003 ------,『유혹하는 동화 쓰기』, 청동거울, 2004 이원수, 『동시 동화 작법』, 웅진, 1984 나시모토게이스케, 『세계 걸작동화로 배우는 동화쓰기』, 미래M&B, 2001 리와인담,『동화 쓰는법』,보성사,1988 조앤에이커, 『동화 쓰기』,이영미 역, 백년글사랑,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