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어김없이 필자의 교회에 낯선 분들이 찾아왔다.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전국의 교회를 헤매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기존의 교회를 다니다가 종말론설교로 유명한
경기도 일산의 모 교회를 2년간 다녔다고 한다.
종말론 교회로 이름만 대면 유명한 경제부 신문기자 출신의
담임목사는 세상의 경제상황을 통해 종말이 어느 정도 왔는지 조목조목
짚어주는 설교로 이름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교회에서 듣지 못한 종말론에 대해 듣고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는 그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2년이 넘게 다녔지만 그게 전부였다.
종말이 가까웠다는 것은 알겠는데 더 이상 신앙의 진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목회자의 결론은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투의 얘기는 기존교회에서 늘 들어왔던
얘기인데, 이 교회의 해법도 기존의 교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이 분들은 다시 대전의 모 교회로 옮겼다.
한분은 서울에서, 다른 한분은 지방에서 살고 있지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줄 생수를 찾아 또 다시 유랑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라고 선전하려고 이 칼럼을
쓰는 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 교회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자 한다.
사람들은 교회만 잘 찾으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며 건강한 축복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 교회를 잘 만나면 그런 축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단
말인가?
물론 영적 지도자를 잘 만나 성경적인 가르침을 받고 건강한
교회 공동체에서 은혜를 나누고 산다면 신앙이 부쩍부쩍 자랄 것이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묻겠다.
당신이 그런 교회를 분별한 영안이 열려 있는가?
선한 목자가 풍성한 양식을 먹이는 건강한 교회인지 아닌지, 분별할 눈이
있는가 말인가?
당신이 기껏 한다는 게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이나 주변의
교인들이 수군거리는 얘기를 흘려듣고 찾아나서는 게 전부가 아닌가?
물론 소문이 난 교회는 나름대로 근거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교회는 대부분 대형교회이다.
대형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해서 설교를 한 번 들으면 영혼이 부쩍부쩍
성장하는가?
그렇다면 그런 목사의 설교는 대부분 방송설교로도 들을 수 있다.
굳이 멀리 떨어진 교회를 찾아갈 필요가 없이 인터넷
동영상이나 유선방송을 통해 들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면 신앙이 잘 자라서 당신의 갈급한 영혼을 채워줄 것이지 않은가?
어느 교회를 가든지 똑 같은 해법을 말하고 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성경에서 수도 없이 읽었고, 설교 때마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얘기이다.
문제는 그게 전부라는 것이다.
읽고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곳이 없다.
말하자면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지,
조목조목 가르쳐야 성적이 향상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예배의식에 꼭
참석하고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고 십일조를 잘 내고
새벽기도회를 비롯한 교회의 행사에 적극 참여하라는 주문이다. 그렇게 하면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천국의
자격은 당연하고 이 땅에서 평안하고 형통하게 살수 있다는 결론이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설교를 열심히 들으면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방식인 셈이다.
그럴듯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하나님을 만난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누리고 살고 있는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이
넘치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오고 지난한 문제가 해결되며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영적 능력이 있는가?
없다면 없는 것이다.
우리끼리니까 솔직해지자.
없는 데도 있다고 하지 말자.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하셨고,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병자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믿음이 있다고 자신을 속이지 말자.
그러면 예수님을 속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가진 자를
보겠느냐며 혀를 끌끌 차며 말씀하셨는데, 우리네교회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천국이 좁은 문이라고 하셨을 리가 없다.
제발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말자.
그러므로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방식을 가르치고
훈련시키지 않는 교회를 찾아 떠돌아다니지 말라.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교회에서 찾는 게 아니라 골방에서 찾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이 내려올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리라고
당부하시면서 승천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기에 힘썼다.(행1:13,14)
그게 바로 유명한 펜테코스트사건(유월절이란 헬라어로
성령세례사건을 뜻함)이다.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혹독하게 성령이 내주를
간구했을 때, 비로소 성령이 내려오셔서 방언이 터지고 귀신을 쫒아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영적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 입교한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다락방에서 만난
기도방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행2:41,42)
그 방식이 다름 아닌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며,
‘혹독하게 성령이 내주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아니 이처럼 쉬운 방식을 내버려 두고, 왜 당신은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는가?
유대인들과 로마당국의 박해가 심해지자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은밀하게 약속한 장소에서 비밀리에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나눴다.
그런데 지금의 예배의식을 비롯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는 능력이 차고 넘쳐서,
박해가 혹독해지면 혹독해질수록 교인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로마황제가 믿는 세계 최고의 종교가 되기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그 이후의 교회에서 성령의 능력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등 따습고 배불러진 교인들은 혹독하게 하나님을 부르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사도들에게 나타나는 은사들은 이미 AD 2세기에
끝났다는 학설을 발표하여 많은 목사들이 받아들여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이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함이 없다고 했는데,
신학자의 학설을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하는 기이한 일이
우리네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의 방식은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고 혹독하게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것이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성령세례를 체험할 때, 그들은 여러 날 동안 모든 일을
내려놓고 오직 기도하기에 힘썼다.
성령이 내려오는 비결을 따로 없다. 혹독하게, 전심으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죽기 살기로 성령이 오실 때까지 부르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 같이 혹독한 태도로 두서너 달 남짓 부르면
대부분 성령의 내주를 체험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혹독하게 하나님을 부르는 것을
힘들어하다가 포기하기 일쑤이다.
혹독하게 부르지 않으면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
그게 성경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제 알았으니, 더 이상 이교회 저 교회를 찾아 전국을 유랑하는 것을
그만두시기 바란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방식이 없다.
당신이 혹독하게 하나님을 찾는 굳은 마음을 읽었을 때 오시는 분이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며 동행하는 신앙방식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말기 바란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교회 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