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우리집 대소사
* 우정 공로 대상 수상
* 토론토의 아들 식구의 행복
* 사돈 해후
* 코로나 감염
* 휘닉스 파크 휴가
* 우정공로인물로 신문 전면 게재
* 부랄 친구 3인
* 궁뎅이 멍
* 우리집 호캉스
* 만보 걷기
* 우리집 유단자
* 송정 자랑스러운 해사인상 수상식에 참석
* 해외여행 두바이, 몽골
* 고대 MBA 산우회 매봉
우정 공로 대상
우정공로대상
새한 일보가 금년에 선정한 대한민국을 빛낸 우정공로상에 내가 선정되었다.
4월 26일 백범 기념관에서 수상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유명 일간지는 아니지만 신문사에서 선정하고 상을 받으니 기분은 좋다.
나는 별로 큰 비중을 안두고 상을 받는 것을 집에도 알리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새한 일보에서 만든 2022년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대상의 수상자 이력들을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보고 있는데 내 이름이 나오니까 집사람이 듣고 난리가 났다.
무슨 상이냐? 언제 받느냐? 왜 여태껏 말도 하지 않았느냐? 하며 속사포로 물어 온다.
오늘 오후 3시에 백범 기념관에서 시상식이 열린다고 하니 전화기가 불이 났다.
전에 상을 받는다고 이야기는 했는데 집사람은 또 친구들 모임에 식당에서 상을 받는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원 며느리에게 꽃다발을 준비하여 가지고 오라고 하고 작은 누이에게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한다.
나는 사전에 알고 있는 고등학교 감지인 동창들에게 연락을 하여 마포에 있는 원조 마포 갈비 집에서 중식을 하고 같이 백범기념관으로 갔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십여 명 오고 감지인회에서는 화환을 갔다가 놓았다.
기념촬영을 하고 백범기념관 시상식장으로 들어가 수상을 하였다.
수상을 하는데 손자 순우가 꽃다발을 주었다.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축하해 주니 기분이 좋다.
토론토 아들 식구의 행복
토론토 아들 식구의 행복
큰아들 집이 금년에 한 단계 업 그래이드 되어 온 식구가 화기에 차 있다.
* 며느리는 연방법원에서 승급하여 12월 1일부로 만인의 치하를 받으며 근무하고 있다.
연방법원에서 승급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직무 분야별 표준화 하여 업무 수행한 것을 인정받고 열심히 한 덕분이다.
우리는 며느리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당연지사로 알고 있다.
* 계륵같은 윈저의 주택을 팔았다.
윈저의 주택을 팔아 약간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되어 현금이 필요한 요즈음 적절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이 주택을 팔고 마지막 날 아희들을 데리고 윈저 집에 가서 기억에 남기 위하여 온 식구가 하룻밤을 잤다고 한다.
아이들은 윈저 주택이 좋으니 팔지 말라고 했단다.
* 고은이는 IB 시험에 합격하여 실력을 인정받았다.
캐나다 토론토의 손녀 고은이가 내년에 고등학교를 간다.
캐나다에도 우리니라 특목 고등학교 같이 우열반이 있는 모양이다.
이 우열반에 들어가려면 연방정부에서 치는 IB 시험에 합격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12월에 IB 시험에 합격을 했다고 통지가 와서 식구들이 매우 좋아하고 있다.
IB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만 가는 고등학교는 교과 과정이 일반 고등학교와는 다른 모양이다.
일반 고등학교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실생활에 쓸 수 있는 교과 과정이 있으나
Ib 시험에 통과한 학생이 가는 특수학교는 대학교를 가는 목적으로 전문 분야를 가르치고 있어서 국가의 고급인재를 양성하는 기초 기관이다.
전체학생을 평등하게 만드는 교육평등보다 국가 인재를 양성하는 우열반이 국가를 위해서는 월등히 났다고 생각된다.
우리 똑똑한 손녀 고은이 고등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가기를 기원한다.
* 큰 아들은 현재 다니고 있는 IT 회사에서 봉급 협상도 하지 않았는데 인상을 해 주었다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윈저의 주택을 정리한 남은 돈으로 원하던 집안 가전제품도 개비하고 아이들 교유에 필요한 돈도 마음 놓고 사용하고 컴퓨터도 별도로 4대를 구입하여 지하방에 완전 오락실 같이 구비해 놓고 네 식구가 동시에 게임을 즐기고 있다.
* 막내 장손주 순용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반에서 어수선하게 놀아도 공부는 잘한다고 선생님한테 인정을 받아 밝게 생활을 하고 있다.
집에서는 식구들과 컴퓨터 오락을 하는 것을 제일 즐거워하는 것 같다.
온 집안이 좋은 일만 생기니 이제야 살맛이 나겠다.
이런 일이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사돈 해후
사돈 해후
작은 아들 장인 장모는 모두 돌아가시고 큰아들 장인 장모는 캐나다 이민 가서 토론토에 거주 하기 때문에 사돈과 같이 소주한잔 할 기회가 없었다.
금년12월에 토론토 사돈이 3개월 일정으로 부부가 귀국하여 인생 말년에 조국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여생을 즐기다 카나다로 돌아간단다.
큰아들 사돈 부부와 12월 7일 압구정 삿보로 일식집에서 우리 부부와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모처럼 해후하여 덕담을 하며 식사를 하며 즐거운 담화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식당 선정을 잘못 했다는 것이 나타났다.
사돈 부인이 일식집의 회를 안 드는 것이었다.
일식집의 꽃인 회를 못 드는 것을 보고 우리가 당황하자 날것을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식사에 불고기가 나와 대체효과를 보았지만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제서야 며느리인 소영이가 회를 안 좋아하고 대신 게를 좋아하여 대게를 사다 준 기억이 난다.
다행히 바깥사돈이 회를 좋아하여 같이 소주를 들며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었다.
이민 갔다 모처럼 귀국하면 우리는 우리가 최상으로 여기는 스테이크나 회를 접대 하는 데 그들은 그런 바싼게 아니라 김치 찌게나 설농탕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식사 후에 우리 집에 모시고 와서 다과와 커피한잔을 하였다.
집사람이 집에서 만든 사과파이를 내 놓으니 대단히 맛있다고 칭찬을 한다.
집사람은 모처럼 사돈을 만나니 매우 신경을 쓰고 매사를 준비 하였다.
우리는 소영이가 보내준 선물을 받고 우리는 집사람이 만든 사과 파이와 내가 쓴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자서전과 신문에 난 나의 사진이 들어간 신문을 주고 년말에 다시 한번만나 식사하기로 하였다.
코로나 감염
코로나 감염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우리나라에 2020년 1월 20일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고 2022년에는 우리니라 Covid 19 코로나 바이러스 누적 환자가 3천5백만 명을 넘어 섰다.
이 누적 환지 수에 내가 함 몫을 하고 말았다.
나는 코로나 예방주사를 3차까지 맞고 금년에 해외여행까지 갔다 왔다.
4차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하는데 나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맞지 않기로 했다.
집사람도 4차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다.
집사람은 3차 예방주사를 맞기전에 코로나에 걸렸었다.
집에 둘만 거주 하는데 집사람이 코로나에 걸렸으니 구청에서 격리를 하라고 하는데 내가 집을 나갈 수도 없고 집사람을 병원에 입원시킬 수도 없어 같이 동거하였다.
집사람은 코로나가 완치 되었고 나는 환자와 동거했는데도 코로나 에 걸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고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
12월 16일 감기 몸살이 시작되었다.
17일이 토요일이라 만약을 위해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받아왔다.
의사가 PCR 검사를 해보자고 하는 것을 걱정 없다고 자신 있다고 그냥 왔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갈라져 내 목소리가 아니고 지독하게 감기에 걸린 목소리다.
목이 아프거나 코에 콧물이 나지도 않고 열도 나지 않고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다.
점심에 작은 아들식구와 우리가 회식을 하기로 하였는데 미심적어 집에서 코로나 간이 검사를 하였다.
아니 이게 왠일인가.
간이 검사기에 양성인 두줄이 나왔다.
집사람은 한줄인 음성이 나왔다.
부랴뷰랴 작은 아들과의 점심 약속을 취소 하였다.
작은아들과 손자의 합동 생일 축하연을 취소한 것이었다.
월요일 집사람과 같이 아침에 병원에 가서 Pcr 검사를 하니 나는 양성 집사람은 음성이 나왔다.
약을 사가지고 오니 벌써 구청에서 코로나에 걸렸다고 집에서 일주일 격리하라고 문자가 온다.
크리스 마스날 까지 집에서 격리하고 두문불출 하란다.
일주일 지나면 자동해제가 된단다.
잘 나가는 연말 행사를 모두 취소하게 되었다.
교인이라면 크리스 마스 예배를 못 봐서 안달을 했을 거다.
코로나 걸리고 좋은 일이 하나도 없다.
영등포로타리에서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는데 내차가 받쳤는데 내가 차선을 침범했다고 다 내 책임이란다.
보험사가 내차의 브랙박스는 보지도 않고 상대방의 브랙박스를 보고 판정한 것이란다.
내가 받쳤다고 항의를 해도 아니란다.
쌍방과실도 아니고 내 과실이라니 억울하지만 참아야 했다.
또 일 잘하던 장비를 크리스 마스 전에 현장에서 철수하란다.
정말로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할 것 같다.
휘닉스 파크 휴가
휘닉스 휴가
8/26 일부터 28일까지 여름휴가 막바지에 평창 휘닉스 파크에 휴가를 갔다.
우리 부부와 혁범이 세 식구 또 해경 처제부부와 손자 모두 8명이 방 3개를 얻었다.
곤돌라를 타고 스키장 정상에서 조망도 하고 밤에는 방갈로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며 술 한 잔 걸치기도 하였다.
혁범이 식구와 우리는 작년에도 여름휴가에 휘닉스에서 바비큐를 하며 놀았다.
처제부부는 이런데 이런 분위기를 처음 느껴 보는 것 같이 매우 즐거워한다.
손자 순우와 훤이는 둘이서 잔디밭이나 모래밭에서 잘 논다.
유치원에 다니는 훤이는 콘도로 들어가며 건물과 시설을 보고는 이 동네는 부자 동네야 라고 하여 식구들을 웃겼다.
다음날은 수영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물을 좋아하는 처제, 물을 싫어하는 동서는 물론 순우와 훤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즐겁게 잘 논다.
수영시설이 용인 캐라비안베이 처럼 크진 안지만 꼬맹이들이 놀기엔 손색이 없다.
늦은 여름이라 야외 놀이터에 있으면 쌀쌀하지만 여기저기 온탕이 설치되어 있어 몸을 녹이면 즐기는 데엔 이상이 없다.
작은 며느리는 편의시설 예약이나 식당 예약 등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전 준비하고 진행하는데 차질 없이 잘한다.
처제가 우리 작은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점수를 따서 못마땅한 마음이 사라진 것 같다.
손주 순우와 훤이도 즐겁게 놀고 좋아하여 모든 식구가 여름휴가를 알차게 보낸 것 같다.
우정공로인물로 신문 전면 게재
우정공로 인물 권오찬 감지인
6월 20일 자 새한 일보 12면 전체를 우정공로 인물 권오찬 감지인으로 도배를 하였다.
나의 상반신 대형사진을 게재하고 감지인과 소통을 하는 노인들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감지인이란 감성과 지성과 인성이라는 뜻으로 내가 고등학교 동창회 회장시절 시작하여 발간한 문집의 제목이다.
이를 계기로 동창 중에서 책 발간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원고를 내고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모여 결성한 모임의 이름이 감지인 이다.
사진은 공로대상 받을 때 축하하러온 친구들과 찍은 사진 국선에서 서예대상을 받은 최종건이 쓴 감지인 이라고 쓴 서체를 보고 있는 사진 또 감지인 친구들의 개인사진을 넣고 프로필과 설명을 한 사진 등 전면을 장식하니 신문을 펼쳐보면 대단하게 보인다.
내 사진엔 내가 쓴 덤으로 사는 인생의 저자라고 덧붙였다.
새한 일보에서 이 신문을 100부 보내와 10월 16일 감지인 모임에 가지고 가서 나누어 주었다.
이십 여명이 일식집에서 소주한잔 하며 웃음의 대화를 이어 가던 중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민안기가 이번 식대는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한다.
나는 감지인 에서 나만 부각되어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감지인회에 백만 원을 기부하겠다고 하니 박수를 친다.
부랄 친구 3인
부랄 친구 3인
옛날 어릴 적에 만나 지금까지 유지하며 만나는 부랄 친구가 있다.
시골 국민학교에서 만나 같이 공부를 한 동기동창들이다.
어려운 보리 고개를 넘기며 고등학교 시절 국민학교 동창회를 결성하였다.
동창회는 지지궁상 끌어가다가 결혼 적령이 되어 재경 동창회가 재결성이 되었다.
재경 동창회도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다 지금은 몇 명이 부부 동반하여 만난다.
그중에서 이선기와 유윤선과 나는 셋이서 부부 동반하여 특히 잘 만난다.
이선기가 춘천에서 세 부부가 자기 집에서 1박하며 놀다가라고 하여 선기의 춘천 집으로 갔다.
5월 1일 점심에 오라고 하여 갔더니 선기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회를 떠 가지고 점심에 춘천으로 와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서 포항 회를 먹는 것이다.
회도 많이 떠 가지고 와서 세 부부가 술을 한잔 걸치며 먹어도 끝이 없다.
대화도 끝이 없이 저녁을 먹고도 이어진다.
선기가 편집한 책자를 보여주는데 깜작 놀랐다.
두꺼운 앨범 같은데 자식들이 타온 상장을 한 번에 모아서 책자를 만든 것이다.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에서 타오는 상장을 한 상자에 타오는 대로 쌓아 놓았다가 이번에 정리를 해서 책자로 만든 것이란다.
상장도 1등상이나 우수상장만 있다.
제본소에서도 이런 책자는 처음 본단다.
선기는 아들 하나에 딸 둘이다.
아들이 과학고를 나와 포항공대에 들어갔고 딸은 서울대에 이대를 나온 수재들이다.
이들이 중 고등학교 다니며 타온 상장들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또 놀라운 사실은 선기부인이 해장국을 끓여 놓았다는 사실이다.
오늘 하루가 아니라 매일 새벽에 해장국을 끓이고 아침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새벽 해장국은 시집올 때부터 시집의 전통이라 대장동에서 시집살이 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청평사를 보고 귀가 하면서 선기는 굴곡 없이 인생을 잘 살고 재복도 있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유윤선이가 자기 SUV 승용차로 우리 세 부부를 태우고 속초에서 마음껏 회를 먹고 한화콘도에서 1박을 하였다.
윤선이는 정말로 맨손으로 자수성가하여 미도파 백화점에 금은방 사장을 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재력도 있고 덕소 농장에서 동네 노인 친구들을 모아 식사도 하고 놀러 다니면서 모든 비용을 윤선이가 지불하여 동네에서 복 많은 노인네로 알려져 있다.
윤선이 아들이 둘인데 모두 머리가 좋아 둘 다 서울대를 나와 지금은 자리 잡고 잘 살고 있으며 자기 부모를 무척 보살핀다.
이 친구들이 서로 서로에게 잘 하려고 신경을 써 이런 친구들이 주위에 있어 나는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궁뎅이 멍
궁뎅이 멍
집사람이 보모님 산소에 올라 가다가 넘어져 궁데이에 멍이 들었다.
부모님 제사에는 집사람과 제수를 장만하여 한 배낭씩 질머지고 하오고개에 있는 산소에 올라가 제사를 지낸다.
매년 부모님 산소를 올라가며 산 높이에 써서 후손들을 힘들게 한다고 불평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어머님 제사라 산소에 올라가는데 집사람이 중턱에서 넘어져 궁뎅이가 아프다고 다 올라온 나에게 전화가 왔다.
부리나케 내려가 집사람 배낭을 받아들고 괜찮으냐고 물었다.
아프지만 올라가 제사를 지내겠단다.
못 올라가겠다고 하던지 자기 혼자 내려가겠다고 하면 골치 아픈데 올라가겠다니 다행이다.
산소에서 부모님 술 한잔 부어드리고 우리는 자식들 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고하고는 제단석에서 제물을 내리고 산소 앞에 앉아 제수로 점심을 같이 하고 내려 왔다.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술 한 두잔으로 식사를 대신 할 만큼 노쇠해져 계셨다.
술도 서울에 있는 집사람이 과일주를 담가 판교까지 날르며 신경을 썼다.
어머님이 예감 하셨는지 집사람 보고 목욕를 해달란다.
목욕을 하고 새옷을 갈아 입히고 방에 앉아 계시며 앞마당에 피어 있는 함박꽃을 보고 꺽어다 달란다.
집사람이 꽃을 꺽어 어머님에게 갔다드리니 꽃을 안고 좋아 하셨다.
그러고는 몇일 후에 저세상으로 가셨다.
서울에 사는 우리는 임종을 하지 못한 설음이 있다.
어머님은 음력 4월 18일 생일을 잡수시고 3일 만인 21일 작고 하시니 마지막에 자손들에게 페를 안끼치고 화창한 봄날에 행복하게 돌아 가셨다.
이 어머님 제사인 토요일에 산소에 오르다가 넘어져 집사람이 궁뎅이를 다친 것이다.
집에 와서 어떠냐고 물어보니 괸찮다고 하며 보여주는데 오른쪽 궁데이 가운데 엄지손가락 만하게 멍 자국이 보인다.
이제 멍만 없어지면 괜찮구나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하루자고 일요일에 아프다고 하여 궁뎅이를 보니 멍자국이 애기 손바닥 만하게 커져 있었다.
월요일에 정형외과에 가서 X-레이를 찍으니 약간 뼈 끝이 부서졌다고 하는데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여기에서 약간의 출혈이 있었나 보다.
궁데이 멍이 어른 손바닥만하게 커져 있었다.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궁데이 멍이 큰데 아프지는 않다고 하니 다행이다.
정형외과에서는 레이져로 쏘면 한번에 십만원씩 일주일은 해야 한단다.
집사람은 정형외과를 가지 않고 한방병원에 가서 침과 부황으로 다스렸다.
그렇게 큰 멍이 하루만에 눈에 크게 띨 정도로 멍이 빠진다.
한방의사도 이렇게 큰 궁뎅이 멍도 처음 보았지만 멍이 이렇게 빨리 빠지는 것도 처음 본다며 의사가 오히려 신기해 하였다.
일주일 만에 궁뎅이 멍은 언제냐 싶을 정도로 말끔하게 나았다.
궁뎅이 멍의 사진을 보고는 며느리들이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야단이다.
큰 며느리는 도가니와 꼬리를 보내고 비타민 칼슘까지 보내 나까지 잘 먹고 있다.
집사람은 내 동창 부부모임에도 가서 산소가다 넘어져 궁뎅이 뼈가 부러졌다고 사람들을 놀래키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나는 산소를 오르내렸는데 모처럼 가서 넘어져 나를 놀래키고 있다.
우리집 호캉스
우리집 호캉스
여름휴가에 바닷가에 가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도심 호텔에서 즐긴다고 호캉스 라고 한다.
집사람이 애쓰고 바다까지 가지 말고 우아하게 서울 호텔에서 하룻밤 즐기며 수영도 하면 멋있는 낭만이 될 것 같단다.
그래서 우리도 한번 흉내 내 보기로 하였다.
우리 부부만 가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 싶어 아들을 앞세우고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 예약을 했다.
예약한 날이 하필 고대 MBA 산행일이라 집사람을 아침에 아들과 합류 시키고 나는 저녁에 호텔로 직행하기로 하였다.
집사람은 아침에 아들식구와 여의도 신현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하였다.
저녁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집사람과 둘이 호텔방에 있는데 적막만 흐르고 시간만 가고 말았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노는 것도 재주다.
아기자기 하고 오붓한 부부의 낭만이 넘치는 우아한 밤의 무드는 젊은이들의 몫인 모양이다.
아침에 아들 부부와 손자를 데리고 여의도 공원을 둘러보는데 나는 수십 번 온 공원이라 덤덤하게 쫓아다니는데 손자는 좋다고 뛰어 다닌다.
만보 걷기
만보 걷기
나이가 들면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다.
노인들이 돈 안 들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운동이다.
친구들이 걷기운동을 하는 숫자가 부쩍 늘은 것을 보면 걷기운동의 효과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만보걷기를 2020년 10월부터 시작하여 2022년 말까지 2년 3개월 간 거의 빠짐없이 열심히 하였다.
여의도 샛강 공원을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린다.
약 1만 2천보의 거리다.
한 시간만 걸어도 여름에는 런닝이 땀에 흠뻑 젖는다.
나의 경우는 만 2천보를 걸으면 저녁에 피곤함을 느낀다.
8천보를 걸으면 피곤함이 없이 지나갈 수 있으나 부족한듯하고 만보가 나의 체력으로 적정수준이나 그날의 생체리듬으로 거리를 조절하고 있다.
만보를 걸으니 확실히 몸의 조그만 병은 사라지고 정상적인 체력을 유지할 수 있어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만보걷기 운동이다.
일주일에 한번 등산을 해 보면 만보 운동을 하여 다리의 근육이 발달하여 산에 올라 갈 때 다리에 확실히 힘이 실려 산에 올라가는데 쉽게 등산을 할 수가 있어서 좋다.
다리에 근육이 발달하기 까지는 삼 개월은 안 되고 약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걸을 때 도리도리 운동이나 손뼉 치기를 병행하면 더욱 좋다.
우리집 유단자
유단자
우리 집에도 유단자가 생겼다.
국가 공인 같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사람이 태극권 유단 증을 받아 왔다.
중국 공원에서 추는 군무 같이 하는 태극권은 대만이 본거지다.
2022년 11월 26일 교대역 태극권 협회에서 승단 대화를 열어 태극권 1단증을 받아왔다.
신사동 문화 교육쎈타에서 8년간 훈련한 보람이 있어 유단자가 됐다.
일주일에 세 번 새벽에 나가 한 시간씩 하는 훈련은 끈질겨야 하는데 인내심도 부족한 집사람이 늙어서 자기 적성에 맡는다고 쉬지 않고 한 결과다.
송정 자랑스러운 해사인상 수상식에 참석
송정 자랑스러운 해사인 상.
12월 29일 해군 호텔에서 해군사관학교 총 동문 송년회에서 해사를 빛낸 인물에 송정 송재신 해사 14기생을 선정하여 자랑스러운 해사인상을 수여 하였다.
해사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동문에게는 처음으로 수상하는 것이란다.
다른 상을 받는 사람은 없고 오직 자랑스러운 해사인상 1명밖에 없으니 상의 무게가 대단히 높은 것이다.
송정 송재신 중대장은 해사졸업하고 해병대로 와서 해병대 사관후보생 중대장을 하였다.
해병학교 35기가 소위로 임관을 하고 기초반 시절 송재신이 중대장을 하고 있을 때 이 해병학교 35기 장교들이 김해에 있는 공군 비행장을 처들어가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이를 8.8사건이라고 하며 신문에서 대서특필하였다.
휴일 귀대 중에 해병장교에게 공군 장교가 감히 모멸을 주어 해병대의 명예를 위하여 응징을 해야 한다고 129명이나 되는 해병장교들이 진해에서 김해까지 밤새도록 간 것이다.
공군사관학교 졸업 후에 파이롯트가 되기 위하여 교육받고 있는 공사 장교들을 해병장교가 기상시간에 기습을 하여 순식간에 제압을 하였다.
공군 기지 사령에게 사과를 받는다고 소연병장에 해병장교들이 집합을 하여 사과를 듣고 있는 중에 기지 공군 장사병이 돌을 들고 몰려와서 사과를 듣는 해병장교위로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교단위에서 사과를 하던 공군기지 사령인 최석만 중령이 돌을 던지지 말라고 하여도 공군장사병이 듣지를 않고 던지니 교단 밑에 있는 공군 기지 사관인 이양호 대위도 돌을 던지지 말라고 제지 하였으나 공군들에게 군령이 듣지 않았다.
돌을 피하고 사과를 듣던 해병장교들은 비행기 밑으로 피신을 하였다.
공군이라 비행기에는 돌을 던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이게 큰 오산이었다.
공군은 비행이 밑에 피신해 있는 비무장 해병장교들에게 무차별로 돌을 던져 자기들 비행기마저 파손하고 말았다.
비행기 밑에 피신해 있던 해병 장교들은 활주로로 내 달려 활주로를 끝까지 뛰어 기지 담 밖으로 일단 피신을 하였다.
이 소란으로 해병장교 1명이 숨지고 해병장교 여러 명이 부상을 당하여 공군 병원에 입원을 하고 이 공군 병원에 해병대 정교들에게 얻어맞은 공군 장교들도 같이 입원을 하였다.
이 사건으로 공군 기지 사령인 최석만은 전역을 하여 민항기 조종사로 근무하다 민항기가 강릉에서 이북으로 납치 되에 소식이 없다.
교단 밑에서 공군기지 사령을 보좌 하던 공군 대위는 공군 참모총장에 국방장관을 하다 린다김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이양호 대위다.
장군 예비명령을 받은 해병학교장은 전역을 하여 월부 책장사로 전락을 하는 슬픈 역사다.
해병학교 중대장 송재신은 헌병대로 가는 우여곡절 끝에 해병대 사령관의 꿈을 접고 전역을 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처음 고생도 하였지만 성공을 하여 해병학교 35기생과 지금도 끈끈하게 연을 이어가고 있다.
송재신 중대장은 월남에 파병되어 27중대장으로 바탕강 전투에서 부대지휘능력을 인정받아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아 미국사회에서도 대우받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
해병학교 35기생은 송재신 중대장에게 松井(송정)이라는 호를 헌정하고 중대장 대신 형님으로 호칭을 하기로 하고 전 동기생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였다.
송정 형님이 한국에 오실 때 마다 동기생 부부들과 야유회도 가고 국립묘지도 가는 등 수십 년간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다.
송정 형님의 인품이나 매너가 타인의 존경을 받을 만큼 완벽하여 동기생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해병학교 35기 하면 해병대가 알아주는 기수이고 전역을 하고 사회에서도 알아주는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능력자들이다.
이 엘리트 동기생 들이 자존심도 높고 학력도 높고 사회 경험도 많은데 송정 형님에 대해서는 군말 없이 우리들의 롤 모델이라고 인정을 하니 송정형님의 인품이 어는 정도 고귀한지 알만하다.
해군 호텔에서 해사 총 동문회가 해사출신 외에 외부 인사가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송정 형님의 자랑스러운 해사인상을 축하해 주기 위하여 해병학교 35기 전 현직 회장단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송정형님 수상식 때는 꽃다발에 현수막까지 들고 나가 사진을 찍으니 해사인 들이 해병대는 다르다고 한마디 한다.
해병 35기 테이블에 전 해병대 사령관 김명환과 이상로 사령관이 와서 특히 축하해 주어 참석한 동기생들의 기분을 상승시켜 주었다.
송정 중대장을 아는 해사인 들은 송정 형님에게 어떻게 해병35기가 송정을 그렇게 깍듯이 모시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묻는단다.
자기들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단다.
고대 MBA 산우회 매봉
MBA 산우회 매봉
이번 7월 고대 MBA 산행에 앵봉산을 오르는데 여름인데다가 두바이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산하는 것이 힘이 부치는 상황이었다.
중간에 쉬며 간식 시간에 몇 년 만에 나타난 MBA 대표적 사회자 김연재가 이민숙 회장에게 물어 봤는지 나에게 와서 선배님이 그렇게 나이가 많은지 몰랐다고 하며 그 나이에 산을 잘 탄다고 놀라워 한다.
옆에 있는 띠 동갑 윤주탁 회장이 이제야 알았냐는 듯 빙그레 웃는다.
몇 년 전에 대공원에서 청계산 매봉을 거처 원터골로 산행을 한적이 있는데 이때에 김연재와 이상용회장이 새벽에 원터골에서 매봉을 넘어 대공원에서 출발하려던 우리와 합류하여 다시 매봉에서 원터골로 갔던 철각의 여인이라 그때 기억이 생생히 난다.
폭염에 한번하기도 힘든 산행을 왕복을 한다는 것은 보통 체력이 아니다.
이민숙 회장과 유종식 사장도 등산에는 철인이다.
작년 봄에 산우회에서 청계산을 정복하고 원터골 소담채 식당에 도착하니 에드워드정과 권용준 회장이 양주와 고량주를 가지고 와서 우리 산우회원들을 즐겁게 하였다.
이 장소에서 이상용 회장이 나보고 한마디 하라고 해서 내가 일어났다.
내 나이 칠순 일 때에 이 모임에서 나의 목포는 이 산우회에 나오는 것이 10년후인 팔십이다.
내가 그때까지 살지 죽을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목표는 팔십에 여기 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이 목표한 그날이다.
좌중이 와 하고 박수 치며 연장전 20년인 백세까지로 목표 수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부터 덤으로 사는 인생 마음 편히 살아 보려고 한다.
노인네라고 눈치 보지 않는 한 끝까지 가보고 싶다.
산우회원의 댓글
[이민숙] [오후 6:17] 늘 푸른 청년 권오찬 선배님의
담근주를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윤주탁] [오후 6:24] 항상 응원합니다,,
[Bronson Choi(최병렬)] [오후 6:27] 멋지십니다~ 권오찬선배님
선배님과 함께 나란히 산길을 걸으며 세상을 이야기할때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행복함을 많이 느낍니다. 앞으로 저의 후배들에게 이러한 행복
계속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형근 gschgl@gmail.com] [오후 6:29] 이모티콘
[양영모] [오후 6:55] 권선배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도전대상이자
모범적 산꾼입니다.
서둘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쳐지지도 않는
그야말로 Slow and Steady의
진수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맏형다움은 나이가 아니라
진지함과 결장없는 집요한 참여행동으로 증명하시고 있음이지요. 저도 세상일도 있곤 해서
참석보다는 결장이 더 많지만
어쩌면 스스로 핑게거리 만들어
불참회수가 노송나이테만큼
늘어났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반성하곤 합니다.
산행 때마다 챙겨 오시는
특급담금주는 항상 기대와
궁금꺼리 보물상자이기도 하지요.
더 건승하셔서
후배들 말마따나 80고개에서
일단 90고개로 수직 상향 조정해서 건각을 계속 보여주시기 바람니다.
[김연재 Sylvie Kim] [오후 7:08] 선배님의 매일 매일 가장 젊은 오늘을 응원합니다!!!♡
[송명수] [오후 9:19] 권선배님께서는 우리 산꾼들을 롤모델이십니다. 산우회에 처음 오신 날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시고 계십니다. 100세 산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OODUK] [오후 9:21] 존경합니다 권선배님!
[황일수] [오후 9:28] 권선배님,우리 산꾼들을 롤모델이십니다. 산우회에서100세 산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또 '블루' 준비하겠습니다~^^
[윤용순] [오후 11:00] 권선배님! 조니워커 사진만 봐도 목구멍에서 꼴깍 소리납니다
그렇지만 산행때 갖고 오시는 特酒가 더 좋습니다.
해외여행 두바이, 몽골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중단되었다 풀리면서 두바이를 가고
또 부부동반 75번째로 몽골을 갔다 왔다.
코로나 후 두바이 여행
우리나라에 우한 코로나가 2020년 1월 20일 첫 번째 환자가 발생했다.
2월 26일 대구 신천지 교회에서 30명이 확진되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에 중국 우한에서 오는 항공편을 통제하면 쉽게 통제가 가능 했을 텐데 늦장대응하다 전국적으로 코로나가 퍼져 전 국민을 팬데믹 상황으로 몰고 가고는 K- 방역이라고 정부에서는 자랑을 하고 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출입금지 구역으로 정하더니 오히려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 전역이 지엽적인 우리나라보다 전국으로 통제 불가능하게 코로나가 번지는 패닉 상태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에 코로나 방역하는 유럽 선진국들의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형편이 없는 지 적나나하게 들어났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이나 의료 질의 능력이 얼마나 우월한지를 한번에 감지 할 수 있었다.
전세계의 의료시스템이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이 우리나라를 쫓아 올려면 한참이 걸리겠다는 것이 실제 상황에서 검증 되었다.
우리나라는 4월 국제공항을 전면 통제하여 모든 여행이 금지되고 국민들은 마스크 쓰고 식당도 4인까지 통제하고 중소기업은 불황이라고 아우성이고 여행사는 아예 모든 직원을 해고 내지 집에 재택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2020년 코로나 환자가 하루에 몇백명도 안될때엔 광화문에 경찰 버스로 차벽을 쌓아 재인산성을 만들에 광화문 집회를 원천봉쇄하였다.
2022년에는 누적 환자를 천만명 넘게 만들어 놓더니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는 하루에 5만 명씩 감염자가 나오는데 전 국민이 코로나와 같이 사는 시대로 왔다며 코로나 규제를 전격환화해 모든 규제를 평시 수준으로 완화 시켰다.
우리나라는 국제공황을 통제한지 2년2개월 만에 통제 규제를 해제하니 여행사는 환호를 하고 코로나로 2년 동안 외국여행을 못하고 움추려 있던 국민들이 들떠 있다.
우리나라 여행 열기는 대단하여 세계에서 알아주는 아시아 여행족이 한국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상점 앞에 가면 니하오 하다 얼굴을 보고 안녕하세요 하며 물건을 사라고 한다.
우리부부는 6월 말에 5일간 두바이 여행을 에티하드 항공으로 가는데 만석이라 여유좌석 없이 열 시간 동안 꼼작 못하고 가는데 체력에 한계를 느꼈다.
에미레이트 항공이나 에티하드 항공이나 두바이를 가는 항공은 우리나라 여행객이 꽉 차서 좌석이 만석이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나 두바이 여행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다.
두바이 고층 건물은 똑같은 건물이 하나도 없고 데자인이 독특하여 눈요기만이라도 황홀하고 감동적이다.
나사같이 비틀어진 건물 동그란 건물 비대칭으로 쓰러질 것 같은 건물 구멍난 건물 반달 모양의 건물 등등 건축가의 상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건물모형이 두바이에 있다.
건축학도는 꼭 와서 봐야 되는 건축학도의 메카다.
팜쥬메일리라 부르는 팜 아일랜드는 한 줄기의 폭이 백메타 이상으로 줄기가 1KM 이상 되는 한 줄기 양옆으로 고급주택이 꽉 차 있는데 줄기 줄기마다 똑같이 고급 주택들이다.
인공 팜 아일랜드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모노레일 열차 몇 정거장이나 되며 전망대에서도 전체가 보이지 않고 비행기위에서나 팜쥬메일리를 볼 수 있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버즈 알 아랍 호텔은 아랍의 전통 선박인 도우의 돗대 모양을 한 건물로 에펠탑보다도 높은데 바닷가라 되서 그런지 높게는 안 보이고 멋있게만 보인다.
이 바닷가가 페르시아 만인데 지금은 걸프만에서 아랍만으로 불리고 있다.
바다에 발을 담그니 바닷물이 햇볓에 달구어져 뜨듯하다.
백사장은 뜨거워 맨발로는 못 다니고 신발을 신어야 한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삼성이 지은 버즈 칼리파 빌딩, 세계에서 제일 큰 두바이 몰 건물 등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하면 무엇이던지 시도하여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 10개중 반이 두바이에 있다.
날씨는 중동이라 얼마나 더운지 건물을 나오면 섭씨 40도나 되는 바로 한증막에 들어온 기분이다.
이 더운 나라에 실내에 스키장을 만드는 나라이니 원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만 하다.
개발할 수 있는 땅이 아직도 많고 사막에서는 사파리 두어도 한다.
아부다비에서는 왕궁을 호텔로 만든 아부다비호텔에서 금 커피도 마셔보았다.
금커피가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왕궁 호텔의 분위기에 취해보는 것이다.
두바이 패케지 여행은 여행비 보다 옵션 값이 더 드는 곳이니 요령이 필요한데 젊은이 아니고 우리는 능력부족이라 가이드에 쫓아 다녀 옵숀을 따질 형편이 안된다.
제주도에서 온 오십대 남자 두명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자기들이 내가 여행팀 중에서는 제일 연장자 일거라며 한사람은 나보고 예순다섯이냐고 묻는다. 같이온 옆의 친구가 자기는 근 일흔이 될거라고 했단다.
내가 팔순이 이라고 하니 둘 다 깜작 놀라며 얼굴이 도저히 그렇게 안 보인단다.
내가 키가 작은데다 얼굴이 꺼멓고 잔주름이 없고 마스크까지 쓰니 어리게 보이기는 해도 예순 다섯은 너무 했다.
보통 일흔 소리는 들어도 예순다섯은 처음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여행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 하는게 급선무다.
몽골 여행
코로나가 아직 세계적으로 잡히고 있지 않은 이 때 몽골은 청정지역이라고 관광객을 받는데 입국 때는 백신 접종 증명서를 확인한다.
나는 여행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 집사람과 몽골을 75번째 방문 국가로 선택하였다.
(2022년 9월 25일 ~ 9월29일 )
몽골행 칼이 8시에 있는데 6시 까지 공항을 도착해야 하는데 집에서 첫 전철을 타도 도착하기 힘들어 저가의 열시 반 제주항공을 선택했는데도 집에서 6시전 새벽에 출발을 하여야 했다.
수하물이 칼의 24kg 보다 제주 항공을 타니 개인당 15kg 이라 이미 캐리어 무게가 한계에 달해 현지 쇼핑하긴 글렀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반 만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하자마자 몽고의 국립공원 테렐지에 이동하여 미라지 캠프에서 몽고의 전통 숙박시설인 게르에 짐을 풀었다.
게르를 현대식으로 지어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갖추어 놓은 관광객을 위한 현대식 게르다.
게르가 4인용인데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부부라도 떨어져 자야 한다.
동그란 게르 천막에 꼬깔형 지붕 꼭대기는 뚫려있고 둥그런 내부에 침대 4개가 놓여 있다.
추운 몽고지방에서 이런 열악한 게르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몽골인 들의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이런 기후 환경에서 이겨내는 인내심이 몽골인 들의 강인함을 키워 징기스칸 같은 영웅을 만들어 냈는지 모른다.
밤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감상하기 위하여 숙소 뒷산으로 올라갔다.
등성이에 올라갔는데 양쪽 밑에 있는 캠프에서 비치는 전등 빛이 밤하늘의 별빛을 가려 생각 같은 별을 감상하지는 못했다.
요르단 사막에서 별을 감상하려다 역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관광객의 숙소 전기 빛으로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 같이 황홀한 감상은 물 건너 갔다.
그래도 사진이나 한 컷 찍어 보려고 삼각대 까지 가지고 올라갔으나 이 삼각대가 360도는 찍을 수 있으나 하늘을 찍을 수 있게는 되어 있지 않아 억지로 땅과 하늘을 연계하여 구도를 잡았으나 핸폰의 프로에 초점 맞추는데 미숙하여 찍는 시늉만 한 사진이 나왔다.
한 시간 동안 초원에서 말도 타보고 장승백이 돌무덤 같은 어워도 보고 초원에 널려있는 야크 떼나 소떼도 보고 거북처럼 생겼다고 거북바위, 코끼리처럼 보이는 아리야발 불교사원도 보고 제주도 쫓아서 낸 올래길도 걸어보고 1900M 고지의 옐트산 트래킹도 하였다.
삼일동안 높은 고지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고산병인지 은근히 머리가 무거워 지며 몸의 피곤이 덮쳐 온다.
삼 일간 일정은 힐링 코스라 시간도 여유가 많고 저녁에 갈 데도 없어 충분한 휴식을 취했는데도 몸의 피곤이 풀리지 않는 것은 노쇠의 탓으로 돌리자.
다행인 것은 여자만 있는 게르에서 예민한 집사람이 여행객과 실랑이를 부리면 어쩌나 하고 근심을 하였는데 동행자들이 협조를 잘 하여주어 언니 언니하며 잘 받들어 주니 집사람은 상승세를 타서 더 즐겁게 잘한다.
하나투어 20명 여행객중에 우리 부부가 최고령자다.
몽골에 온 여행객은 여행은 해볼 만큼 해본 배트랑 들이다.
우리 게르 메이트 들은 중소기업 전무, 반도체 대학 교수인데 서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띨 정도로 매너 있는 여행객이다.
테렐지 국립공원에서 수도 울란바트루 가는 길에 천진벌덕 벌판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50M 높이의 징기스칸 기마상이 있다.
밖에서 보면 멋있는 기마상이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아쉬움이 많다.
시간이 가서 보완을 하면 어디 못지않는 관광명소가 될 만 한조건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몽골의 인구가 3백 50만 인데 수도 울란바토르에 절반이 살고 있다.
이 넓은 몽골에 광활한 벌판과 고지만 있고 사람은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결혼연령이 20대다.
울란바투루에는 우리나라 이태준 의사 기념공원이 있어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울란바투루를 내려다 분수 있는 언덕 위에 자이승 승전탑이 있다.
몽골공화국을 세우는 과정을 모자이크로 담았지만 소련을 칭송하는 탑같이 보인다.
울란바투루 중심에 있는 수흐바타르 관장은 징기스칸 광장에서 이름을 바꾼 곳이다.
징기스칸과 아들 손자의 상이 있는 이 징기스칸 광장은 몽골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시킨 수흐바타르가 국민 영웅으로 인기가 있어 수흐바타르 광장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징기스칸 상 앞에 수흐바타르 기마상을 세웠다.
이 광장이 수도로서의 면목을 지키고 있으며 주위에 국회의사당 오페라극장 국립 은행 등 중요부처들이 몰려 있다.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수하물에서 짐을 찾는데 내 캐리어를 찾고 집사람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집사람이 전화가 와서 면역증 때문에 통관을 못하고 있다고 나를 통관대로 올라오라고 한다.
잠시면 갔다 올 줄 알고 내 짐만 일행에게 맞기고 통관 안내관에게 여권 맞기고 잠간 들어갔다 온다고 하였더니 모두 안 된다고 한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집사람에게 전화하니 조금 후에 나간다고 하여 캐리어 있는 곳으로 가니 일행이 없다.
이제는 캐리어 일행 찾으러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 땀만 흘리며 공항 밖으로 나가 보려고 여권 맞기고 나갔다 온다고 하여도 안 된단다.
일행은 다 나가고 일행 전화번호는 없고 땀만 흘리고 있는데 집사람이 나왔다. 나와서 자기 짐을 찾고 맡긴 내짐은 나보고 찾으라고 한다.
마침 안의 면세점 앞에 일행 한사람이 있어 혹시 누구 전화번호 아느냐고 물으러 갔는데 왜 이제 왔느냐고 내 캐리어를 가르처 준다.
먼저사람이 인계하고 갔는데 면세점에서 시간 끌며 기다렸다는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맙다고 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집사람 쪽으로 갔다.
공항 통관 때 한번 나가면 다시 못 들어간다는 것을 새삼 절실하게 체험 했다.
정부에서는 귀국자는 입국다음날 PCR 검사를 하는 것이 의무사항이란다.
다음날인 30일 PCR 검사를 하니 다음날인 1일 부터는 귀국자는 PCR 검사를 페지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