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을 갔던 사람들(히말사랑) 6인이 두 달에 한번씩 모인다. 4월에는 산행을 하기로 했기에 사패산으로 정하고 결행하였다.
아침 10시 회룡역에서 모여서 산을 향해 걸었다. 중간에 회룡사에 들러서 물도 마시고 절 구경을 했다. 회룡사라는 이름은 무학대사가 지었다고 하는데 아들인 태종 이방원과 불화하여 서울로 오지 않았던 태조 이성계가 결국 귀경하여 이 절애 들렀기에 이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용의 돌아옴”이란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절의 건물들은 대체로 새 것으로 보였고 거의 평탄한 지형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는 절이다. 극락보전의 외벽에는 불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반야용선 그림이다. 불교의 구원관을 나타내는 그림으로 알고 있다. 잘 생긴 약사여래 석상도 야외에 세워져 있었다.
절을 떠나 경사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서 능선에 도달하니 힘이 덜 들어가도 되었다. 마지막 경사길을 올라가니 사패산이다. 사방의 경관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전망처이다. 사패산은 조선시대 선조가 시집가는 여섯째 딸 정휘옹주에게 하사하였다는 사실에서 그 지명이 유래하였다고한다.(산 아래 마패를 제작하는 곳이 있어 그 지명이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정상 근처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김밥을 먹고 막걸리와 가양주를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내려오는 길은 의정부 시청 쪽으로 잡았다. 유명한 냉면집(평양면옥)이 마침 근처에 있어 그곳까지 걸어서 갔다. 냉면에 약주를 한 잔씩 하고 헤어졌다. 두 달 만에 산에서 회동하여 가볍게 산행을 하게 된 날이었다.
- 후기 -
회룡사는 제법 이름도 알려져 있고 규모도 큰 절이다. 극락보전의 바깥벽(후벽)에서 탱화 중 반야용선 그림이 있어 다시 돌아 보았다. 용의 몸으로 된 배에 여섯 사람이 앉아있고 보살(?)이 안내를 하고 있는 그림이다.(통도사에서 본 반야용선도와는 조금 달랐다.) 배의 앞쪽인 용의 머리는 필시 극락이라는 피안으로 신도들을 싣고 가는 듯하다. 불교의 구원관이 나타났다고 보여진다.
배에는 귀중한 물건이나 사람들이 실어지게 마련이니 이 사람들은 뭇사람들에게서 선별되어 구원된 사람들이다. 자력으로 구원되기 보다는 보살의 조력을 얻는 것이 좀 더 확실한 방식이 되겠다. 배 안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구원은 개인적이기 보다는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배가 큰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으로 보아 이 항해는 하나의 통과의례를 의미하며 물이 이승과 극락을 구분하고 있다.(이 때의 바다는 기독교에서 죽을 때 건너간다는 요르단강에 비교된다.)
집에 돌어와 시를 한 수 써 보았다.
[사패산에서]
태조 돌아와 경사난 절
회룡사 돌아드니
반야용선 그림 배에
여섯 사람 앉아 있고
보살이 서서 인도하네
구원이 있다 하면
단체로 이루어지듯
산행이 뜻 깊으려면
여섯 사람은 있어야 하리
신록 숲을 헤치며
히말라야 사랑하는 6인방
4월 날 허위단심
바위 비탈을 올라왔다
사패산 정상은
바위로 되어
단단하고
멀리 주변 산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도다
용렬한 임금 선조도
자기 딸은 너무 사랑해
아름다운 이 산을
결혼 선물로 주었단다
사패산의 “사”자는
임금이 내린다는 “사”자이니
그 발음 길지 않고
짧아야 되지
"사"자 소리 짧으니
산행도 짧았나
의정부 시청 인근에
평양면옥 맛집인데
흰색의 냉면발은
쫄깃쫄깃 길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