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명소15-고경명선생비각](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geumsan.go.kr%2Fimages%2Ftour%2Fintro%2F010214n_ti.jpg)
![의병장 고경명선생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다 고경명선생비각](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geumsan.go.kr%2Fimages%2Ftour%2Fintro%2F010214n_tit01.gif)
1592년 임진년(壬辰-)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4월 13일 경상좌수영을 궤멸시킨 왜군은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성을 침공·함락시키면서 파죽지세의 승기로 서울까지 함락시키기에 이른다.
개전 한 달도 안 돼 왜군에 밀려 왕마저 도성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른 조선은 온 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당시 금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호남 침공을 목적으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주력부대가 금산성을 함락시키고
주둔하면서 전주성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은 조선 전국토를 황폐화시키고 수많은 의병과 승병, 관군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임진왜란은 구국충절에 불타는 조선의 전쟁영웅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선비로 하여금 칼을 들게 했으며 살생을 금하는 승려들까지 창검을 들게 했다.
금산에서는 의병장 중봉 조헌과 제봉 고경명, 의승장 영규대사가 금산성 왜군을 상대로 절치부심,
구국의 일념을 불태우고 있었다.
마침내 임진년 7월 9일부터 10일까지 이틀에 걸쳐
의병장 제봉 고경명이 항적필사의 전투를 벌인다.
7,000의병을 이끌고 전라도방어사 곽영의 군대와 합세하여 ‘금산성전투’를 일으켰던 것이다
전주성을 함락시켜 호남을 점령하려는 왜군 주력부대의 야욕을 막고 빼앗긴 성을 탈환하고자
왜군이 주둔하고 있는 금산성 탈환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고경명은 순절하고 만다.
첫날 금산성 외곽을 장악한 고경명이 성 안 방어전을 펴는 왜군에게 피해를 입히며 승기를 잡았으나 총공격을 감행한 둘째 날 전세는 역전됐다.
의병은 서문을, 관군은 동문을 치기로 하고 시작된 둘째 날 전투는 동문을 열고 나온 왜군이
관군을 격파하고 의병을 연이어 공격하면서 의병의 전열은 무너지기에 이른다.
전투는 패색이 짙어갔지만 항적필사의 일념으로 적과 맞서는 고경명에게는 후퇴란 없었다.
금산성전투는 비록 패배로 끝났지만 왜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이 금산성전투를 벌이게 된 것은 여산을 지나면서 들은 소식 때문이었다. 근왕을 위해 7,000 의병을 이끌고 서울로 가는 도중 여산에 이르렀을 때 금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왜병의 주력부대가 전주성을 치고자 진군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였다.
왜군에게 있어서 호남감영이 설치되어 있는 전주성이 함락되면
호남을 장악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임진년 7월 10일 금산성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효종때 금산군수 여필관이 비문을 지어 세운 순절비는 1940년 일제의 만행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1952년 후손들이 여필관의 비문을 다시 새겨 복원한 비를 1962년에 석조비각을 조성하여
현재 보존하고 있다.
파괴된 비석의 파편은 석조비각 옆에 전통양식의 비각을 짓고 그 안에 정리하여 보존하고 있다.
순절비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그가 전사한 곳의 건너편 산기슭이다.
한편 고경명은 1558년(명종 13년)에 문과에 장원한 후 중요한 직책을 두루 거쳐 동래부사에
이르렀는데, 서인(西人)이 몰락할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담양에서 6,000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근왕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면서 전주에 이르러 7,000 의병으로 세를 늘렸다.
![문화재 정보](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geumsan.go.kr%2Fimages%2Ftour%2Fintro%2Ftit_hInfo.gif)
- 종목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호
- 명칭고경명선생비(高敬命先生碑)
- 분류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 수량·면적1기
- 지정(등록)일1984.05.17
![여행팁](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geumsan.go.kr%2Fimages%2Ftour%2Fintro%2Ftit_tip.gif)
금산군청 문화공보과 041-750-2391
![금산성전투의 현장, 그리고 금산읍과 진산면을 잇는 68번국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geumsan.go.kr%2Fimages%2Ftour%2Fintro%2F010214n_tit02.gif)
고경명선생비각은 금산과 진산을 잇는 68번 국도변 산기슭 도로를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비각 아래에서 68번국도를 따라 진산방면으로 진행하면 산모퉁이를 돌자마자 큰 벌판을 지나게 된다. 이곳이 금산성전투의 격전지이자 선생이 순절했던 역사의 현장 눈벌이다. 눈벌을 지나 진산면 소재지로 접어들어 전북 완주로 길을 잡으면 17번국도를 이용하게 된다. 이 길은 이치대첩지와 연결된다. 이치대첩지는 금산성에 주둔하고 있던 다카카게가 군사를 일으켜 전주성을 치고자했으나 권율장군에 대패한 전적지. 이치대첩은 선생이 이끄는 의병을 불러들인 역사적 사건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선생의 순절비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그가 전사한 곳의 건너편 산기슭’이라 하는 바, 비가 위치하고 있는 산의 북서쪽 평야가 ‘눈벌’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현재에도 이 들판을 눈벌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