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명성황후)의 한글 서체
다음 사진은 이렇다.
민중전 민비(명성황후)의 한글서체로 1894년 2월 24일 당시 한양에 주재 중인 미국공사 부인에게 보낸 민중전의 한글 초청장이다.
국모의 품격이 느껴진다.
나의 교직 35년 6개월(1982.3.1.~2017.8.31.)에 이토록 아름답게 글씨를 쓴 여교사들을 본 적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문학적으로도 최고급의 국모다운 귀함과 품격이 느껴진다.
놀랄 일이다.
이렇게 자품 있는 글씨체를 보유한 분이 어찌 망국의 왕비가 되었나.
나라와 남편을 잘못 만난 탓인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요는 철학의 부재일 것이다.
역사와 정치, 인간에 대한 철학의 부재일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주야창장 낭독한 사서삼경에도 정치철학이 있지만, 그 정도의 수준과 독서인식으로는 당시 격동하는 세계사에서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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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1세기이다.
내가 사는 부산은 세계 5대 무역대항으로 아시아 최고급이다.
인구도 330만으로 조만간 인근의 김해와 양산을 합하면, 매머드 광역도시이다.
그런데 철학이 너무나 빈곤하다.
부산대와 동아대, 동의대에 철학과가 있었지만, 동의대는 바로 곧 사라졌고, 동아대는 동아대학병원이 있어서 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로 변신하여 21세기를 적응 중이고, 부산대는 국민세금의 큰 지원금으로 보전 운영하는 국립대학이라 졸업생들이 취업을 하든말든 철학과 그 자체로 존속하고 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가난한 빈국에서 조급하게 출발하다보니 사립은 엘리트교육주의로 나아가야하고, 국립이나 공립이 서민대중교육주의로 나아가야하나 거꾸로 되었다. 그 유습이 여전하지만 서서히서시히 본인들도 모르게 벗어나고 있다.
여유 없이 급하다 출발하다 보니 생각에 사고가 듬성듬성 비어 있는 지경이다.
여전히 부산의 필요한 철학적 도덕 정신이 명확한 구체적 인식으로 무엇인지 내용과 형식의 단계적 형상으로 정하여 알기 어렵다.
참고로 철학생명의료윤리학은 영미식의 분석철학으로 실용윤리철학이다. 보편을 경시하는 생성론적 존재론으로 능력 있는 개별적 인간품성을 존중하는 엘리트자유지향 철학으로 로스쿨과 의대(의예과)와 의학계열 대학원이 있는 동아대학 사립학교로는 딱맞춤이다. 3~4년 공부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연과학적 진화론과 자연철학의 목적지향 동일철학을 멀리하게 된다. The Soft Philosophy로 아울러 목적지향의 강한 철학적 도덕정신도 사라진다. 즉 모두를 위한 철학정신이 강단에서부터 사멸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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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하든, 민비처럼 어문학이 뛰어나도 만학의 제왕인 철학이 정치적으로 부재하면 필드(field)인 현장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에서 자기를 보전하기 힘들 것이다. 철학은 매번 마지막 차례로 정립하지만 정신철학에서 예술과 계시종교의 경험을 거쳐 절대정신의 길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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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비(명성황후)의 글을 서체로 보면서, 절대정신의 당시대적인 요청이 무엇인지 늦게나마 한 번이라도 느껴 봤으면 한다.
그는 절대정신을 내리는 신(神, God)의 선택을 부름으로 받았고, 조선의 귀족으로 완벽한 어문학적 소양이 최고급의 품격으로 높게 있었지만, 역사철학의 무지로 조선패망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이게 바로 철학의 비극이다. 어쩌면 철학은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또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모든 것을 생긴 그대로 아는 만큼 흡수하고 결정한다.
을미사변 민비의 시해 사태로 보더라도 모든 것은 정치가 흡수하고 결정한다.
그런데 그 정치의 핵이 바로 정치적 역사 철학이다.
나이와 경륜과 돈과 지위, 그에 걸맞는 풍모와 지력이 점철로 있어야만, 힘 있는 철학을 구비할 수 있다. 설사 그런 철학을 구비하더라도 문제는 자신의 본인 당대에 걸쳐서만 잠시 찰나적으로 겨우 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의 실현 기회는 바람처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