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엔리코 나르디(Enrico Nardi) 가 친구 아우구스토 모나코(Augusto Monaco)와 함께 처음 만든 레이싱 카인 치치비오는 마치 시발 택시같이 강판을 두드려 만든, 65마력 엔진에 5단 변석 기어를 가진 전륜 구동 모노포스토 였으며, 전방엔진 전륜 구동에 후륜 샤프트를 없애서 운전석이 아주 낮았고, 672파운드 밖에 안되는 무게였지만, 이탈리아 힐 클라임에서 여러 번 우승했다고 합니다.
그 후 나르디는 피아트, 란치아, 아바스 등이 모여있던 토리노(Turin) 에 공장을 세웠고, 여러 브랜드들과 협업을 했고, 레이싱 클럽에 공동 설립자 역할도 했으며 피아트나 오스카, 생카, BMW 나 알파 로메오 같은 여러 회사들과 협업한 결과물들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때, 엔초 페라리의 조언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스티어링 휠을 브랜드화 하기도 했지요.
1950년대 나르디는 이탈리아나 독일은 물론, 미국의 SCCA, 그리고 프랑스의 르망 에도 차량들을 출전시키는 레이싱 광이었습니다. 특히 1952년 이후로 토리노 지방의 레이싱 클럽을 기반으로 만든 750cc 엔진의 레이싱 카를 이용해 프랑스 차들을 꺾으려는 목표를 세웠고, 1954년 나르디 레이싱 카는 독특하고 멋진 휠과 유려한 곡선의 바체타로 비록 완주에 실패했음에도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때 쯤, 나르디의 레이서이자 후원자이기도 했던 마리오 다몬테 Mario Damonte 가 알게된 건축업자이자 항공기 디자이너 카를로 몰리노 Carlo Mollino 는 기존 경주차 섀시가 아닌 유선형에 걸맞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곧 나르디의 1955년 대 르망용 새 레이싱카 계획에 참여하게 됩니다.
몰리노가 디자인한 이 차량의 특징은 좌 우 바퀴들 위를 세로로 걸치는 두 개의 튜브 바디에 왼쪽에는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그리고 오른 쪽에는 6피트 미만의 왜소한 드라이버를 위한 좌석을 놓고 그 튜브들을 연결하는 비행기의 날개 같은 연결부에 공기 흡입구, 라디에이터를 붙인 형태였습니다.
유선형 차체는 작고 낮으므로, 몰리노는 스티어링 휠도 다시 디자인했습니다. 드라이버가 좁은 좌석에 낑기고 무릎도 접어야 하므로 스티어링 휠이 일반적인 원형이 될 수 없었고, 탈착이 가능하며 밑쪽이 평평해서 작은 공간에서도 사용가능하도록 새로 만들었지요. 또한 리어뷰 미러는 공기 저항을 받지 않도록, 원할 때 레버를 당겨서 차체로 숨길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차는 브레이크의 효과 향상을 위해서 양 튜브 사이의 연결부에 에어브레이크 시스템도 장착했습니다. 즉, 운전석에서 페달을 밟으면 중앙부에서 두 개의 에어 브레이크 판이 열려서 드럼브레이킹을 보조하며, 차가 흔들림 없이 감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지요. 이 시기에 메르세데스 300SLR 또한 같은 원리의 에어브레이크를 썼습니다.
약간 더 놀라운 것은 이 중앙부가 실제로 항공기 날개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다운포스를 일으켰고, 청동 파이프와 촘촘한 판의 직사각형 섹션으로 이루어진 긴 라디에이터가 열기를 위로 올려 차체를 따라 뒤로 빠지면서 냉각시키는 구조 또한 현대의 F1 카들에 쓰이는 역학적 구조와 유사한 매우 급진적인 디자인의 산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디 역시 나르디 동업자들이 9/10 밀리미터의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었으며, 나르디 본인은 최종적으로 이렇게 디자인된 바디 속을 채울 프레임 샤시와 휠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러니깐 이 차는 일반적인 과정대로 차체와 구동계를 먼저 설계하고 바디를 얹은 것이 아니라 먼저 바디를 디자인하고 나서 그에 걸맞는 프레임을 설계한 것이지요.
나르디는 앞쪽에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란치아 아피아 Lancia Appia 의 서스펜션을, 뒤쪽에는 피아트 1100의 구동계를 썼습니다. 1955년 2월, 드디어 롤링 섀시가 완성되었고, 봄의 끝자락에 자동차의 기계적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차체 왼쪽에 얹은 엔진은 지안니니 Giannini G2 4실린더 750cc 엔진이었으며 4단 기어 박스와 디퍼렌셜을 갖추었습니다. 지아니니에 의해 디자인된 엔진은 53-54년 모토 구찌가 사용했던 엔진으로 7000 rpm에 60마력을, 베버 카뷰레터를 얹으면 대략 70 마력의 출력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나르디는 베버가 아닌 델로르토 Dell'Orto SS25 카뷰레터를 선호했는데, 이 경우 엔진은 6000rpm에 55 마력 출력이 가능했지만 연비가 낮았고, 이 셋팅에서도 차량은 시속 215km를 가뿐히 넘겼습니다.
비실류로 Bisiluro (두 어뢰) 라고 이름붙여진 이 레이서는 공차중량 400kg 대에 1900mm 의 휠베이스, 앞 바퀴와 뒷 바퀴 트랙은 각각 1195mm , 1135mm 였습니다. 1955년 5월에 나르디는 이 차로 집중적인 로드테스트를 거쳤고, 파워 유닛의 위치를 350mm 더 뒷쪽으로 이동시켜 안정성을 확보했지만, 매우 공기역학적인 차체로 인해 차량은 매우 예민했고, 특히 턴할 때 급격한 움직임은 균형을 깨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통제가 잘 된 몬자 트랙에서의 마지막 테스트에서 차량은 217km에 도달했습니다.
문제점은 르망 운영위 ACO 에서 규정상 패신저 좌석을 놓아야 한다고 해서 막판에 차체 중앙의 에어브레이크 브래킷 하나를 떼 버리고 대신 작은 접이 의자를 장착했다는 정도였습니다. 운영진은 만족했지만, 차체의 불안정성은 증가했지요. 프랙티스에서 이 차량은 동급 차량들을 뛰어넘고, 더 강한 차량들도 조금씩 뛰어넘는 능력을 과시하지만, 동시에 드라이버는 민감하게 요동치는 차를 제어해야만 했고, 결국 그것이 르망에서의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본선에서 나르디는 겨우 148분의 경기 후에 재규어에 추월당하다가 다몬테가 중심을 잃고 스핀하면서 딧치 (구덩이)로 빠지게 됩니다. 혹은 재규어가 지나가다가 비실류로의 차체를 건드렸다고 하기도 하네요. 어쨌건 비실류로는 아쉽게도 이렇게 스핀 해서 탈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마저도 곧 이어 새벽에 발생하는 메르세데스 팀의 대 참사로 인해 잊혀지게 되지요.
이탈리아로 돌아온 비실류로는 몇 해 동안 잊혀져 있다가 10년 쯤 지난 후, 엔리코 나르디가 급성 페렴으로 급사 하기 전, 현명하게도 밀라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 기술 뮤지엄에 기증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량은 오늘날까지도 박물관에서 멋지게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예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보던 차량이랑 모형인데 박굴님 덕분에 나르디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급상승 했습니다..ㅎ
쌍어뢰 외의 다른 나르디들은 왠지 알파나 페라리 짭같...
풀오픈 다이캐스팅으로 나오면 의외로 히트 칠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또 의외로 처망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묵직하고 디테일 쩌는 1:18로 미친듯이 갖고 싶구만요...
이거 비자 모델에 18스케일 레진도 나왔습니다. 첨에 보고는 이건 뭐 뗏목이냐 이러고 웃어넘겼는데, 나중에 몇 번 찾아보게 되더라구요.
물론 흔적도 없.....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