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戱曲)
(單幕劇)
7남매 다둥이 夫婦의 愛國
- 癸卯年 7월 17일, Monday -
오 인 철(조선대 師大 영교과, 명예교수)
◆ 때 : 2023년
◆ 장소 : 강원도 춘천시 농촌일우에서
◆ 등장인물 : 농촌 목회자 부부 배(裵)氏 내외(不惑을 넘긴 50歲(地天命))를 헤아리는 양 날개를 편 배목사와 사모 李氏 각각 50세와 不惑(40세)
산부인과 의사 : 45세 가량
전氏와 부인 류氏 부부(50歲와 43歲) : 6명 자녀를 기왕에 품음
성실 : 6형제 중에 맏이
성은 : 6형제 중 누이(10세, 초3)
성우 : 예정일보다 12일 빨리 태어난 조산아(早産兒)
태랑 : 20세, 대학 1학년
해준 : 18세, 고2
성진 : 13세, 초6
수 : 16세, 중3
모두가 전氏 부부가 낳았다.
네레이터 : 1명
막(幕)이 오르면 전氏네 다둥이 가족이 살고 있는 춘천 市內서도 차(車)를 타고 40분이나 가야하는 산골. 주민(住民)은 49명인데다, 고작 노인(老人)들만 우클한데다가, 이런 한산한 마을에, 그것도 4년만에야 아기가 태어났으니, 마을 전체가 축제(祝祭)분위기다.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2006년 이후(以後)에야 이런 마을에, 응야, 응야, 총 4건의 출생신고가 있게 됐고, 총 4건 출생신고, 모두 전氏의 아이들이었다. 마을 시골버스에서 내린(下車) 세 사람이 신작로 길서 주고받는 대사들마저, 을시년스럽기 짝이 없는 투정섞인 대화다.
제 1막
제 1장
농촌목회자 배(裵)氏 內外 : (빵떡모양(베레모) 모자 벗으며) : 아이구야, 외출(外出)때나 인사드립니다. 워낙 한산한터라, 핑계 같습니다만......
산부인과 의사 : 저두요, 동감이네요, 원 참 나....
전氏와 부인 류氏 : 휑한 동네나 호젓한 산골서 산새들 깍깍대는 소리도 없다면 무섬증까지 드네요. 모골이 송연타더만, 암만, 사람 부대끼는 맛 있어얄텐데, 마음 같잖네요.
산부인과 의사 : 갈수록 사람 구경 못하니, 왠지 저마저도 겸연쩍한게 배고픔보다는 장차 시름겨운 날이 더 탈이네요.
배(裵)목사 內外 : 저야 소명(召命)이지만 근자에 우쩍 산(山)동네가 공허(空虛)하니까 인구에 회자되는 나랏걱정 땜에 가시방석이네요.
산부인과 의사 : 타고난 품성보다 국민된 한 사람으로서 창조주께 죄송천만할 따름입니다.
속담(俗談)에 개(dogs, 犬)눈에는 똥만 보인다.(All things seem yellow to the jaundiced.) 여기다가 한 술 더 떠 어질병이 지랄병이 된다고, 너도나도 제 속만 채우다보니, 꿩 먹고 알 먹기式만 판친다. 하물며, 이웃도 나라(국가(國家))도 눈 안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전氏 내외분 : 어쩌다가 이런 벽촌마을 차라리 깡촌마을이랄수 있는 곳에서, “육남매 감자빵”집서, 2006년 우리 內外가 출생신고가 끊겼던 산골마을에 고된양 꼬락서니였지만, 어렵고 가난한 감자빵집 꾸려 나가면서 태어난 자식 온전히 학원한번 못 보냈지만 서로 돕고 배려하는 아이들만 보면, 입 딱 벌어지는 행복을 느껴요.
태랑 : 6형제 중 그것도 맏형이란 은근한 자리 뿌듯하죠. 허전한 세상서 위선자 보담 다둥이 형제들에 에워싼 울타리 호박 넝쿨마냥 주렁주렁 뒤엉키면 그 풍성함이 넉넉코 보기 좋잖나요.
해준 : 심산유촌서 大學生 兄을 둔 것도 으시댈만큼 자랑이죠만, 장마 통에 삼(마전(麻田)밭 쑥쑥 키재기 자랑하는 이내 몸도 으쓱키도 하죠
수 : 이 몸 비록 중학 3년생이나 사춘기(思春期)란 뻗쳐오르는 물줄기란 기어코 그 터지는 7색(色) 무지개를 뉘라서 막아설꼬, 으흠, 어허(자주 턱 밑 쓰다듬는 시늉이다)
성진 : 초등학교 6년생이지만 끌텅이 커서 왕대밭에 왕대(王竹)난다는 엄연한 사실, 꿈꾸는 왕자(王子)라오.
성우 : 조산아(早産兒)나 팔삭동이란 별칭도 나돌지만, 위선 하수상한 世上을 몹시도 궁금해서 일찍 뛰쳐나온 실수(失手)라면 그렇기도 한 처지지요.
성은 : 유난히 무남독녀(無男獨女)라는 칭호 외에도 외동딸이 많지만, 고독에 쩌든 외톨박이(a chestnut-bur with a single nut)란 그 휘귀성 때문에도 비록 10세(歲) 초등생 3년 애송이 취급하나 코흘리개로만 함부로 다둑여선 문제라요.(입꼬리를 씰룩인다.)
네레이터 : 여러분, 상기합시다. 보릿고개 시절 주린 배(腹), 송키 벗겨내 그냥 우려서 먹으면 죽는다고 한사코 막무가낸 그 무렵 참 팍팍턴 우리네 민둥산들, 땔감으로 山河가 말갛게 벗겨져 땔감마저도 없어, 벌건 黃土밭 산등성이 얼 비치는 시커먼, 가난 속에서 속절없이 그 누가 愛國愛族 부르짖겠어요. 골골마다 찌든 가난 때문에 돌아서서 물론 배 채우느라 따로 영일(寧日)이 없었잖소.
제 2장
일제(日帝) 각박턴 식민지(植民地)시절 倭의 수탈과 침략 근성은 못 배우고 가난에서 편협한데다 친일(親日) 좌파(左派)의 나라 팔아먹는 용공분자들까지 날뛰어서 가히 풍전등화(風前燈火) 祖國 운세는 급기야 1902년 12월 22일 韓人 移民 첫배가 仁川을 떠나게 되자, 官民 다수가 전송하는 중, 國外의 정황도 들어본 일 없는 정든 故國山川을 이별, 낯선 他國 붕정만리 한 페이지 참담한 移民歷史는 곧바로 韓人의 속박과 수난(受難), 亡國의 恨과 슬픔, 日帝의 병탄과 나라 잃은 서름까지 겹쳐, 누대의 大韓民族의 淨化運動이었다.
전氏와 부인 류氏부부 : 그렇지만 본래 全北 군산(群山)인 고향서 전氏는 목회자의 길을 걷던 중(中) 지난 2003년 7살이나 어린 류氏와 결혼했다. 全氏는 친구 6촌 동생이었는데, “지금은 아내가 됐다”며 첫눈에 반해, 연애 3개월 만에 결혼했다고 했다. 부부는 이듬해 첫째 태랑이 낳고는,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위해 ‘가일마을’로 이사(移舍)왔다. 전氏는 “별다른 자녀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라면서 “하나 둘 낳다보니, 아이들이 주는 행복감이 너무 좋았고, 어느새 아이들은 참 귀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막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부부는 적잖게 당황했다고 한다. 계획에도 없던 일이기도 했고, 혹여나 아이들이 싫어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됐다. 진짜는 “육아 걱정보다 아이들이 동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걱정됐는데, 걱정과 달리 서로 태어날 동생의 이름을 지어주겠다며 기뻐했다”고 말했다.
오픈을 앞두고 있던 빵집도 문제였다. 출산과 애들 뒷바라지에 20-30代가 훌쩍 지나버린 아내 류氏는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작년 10월 ‘빵집 개업’을 앞두고 있었다.
사북면 가일교회 담임목사로 17년째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전氏 벌이로는 생활비가 빠듯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몇 해 전부터 교회 인근에 땅을 빌려 감자농사를 지었다. 일부는 가족이 직접 먹고, 일부는 내다 팔았다. 그러던 중 류氏는 상처가 나서 못 파는 감자로 ‘감자빵’을 만들어 가끔 이웃들에게 나눠줬는데, “맛있다” “장사하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 용기를 얻어 류氏는 春川市內에서 빵집 개업을 준비했다.
네레이터 : 류氏는 가게를 얻어 개업준비를 한창인데, 덜컥 임신을 하게 돼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그래도 하늘이 주신 선물(膳物)이라고 생각하고 낳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한편 “6남매 감자빵”이라고 명명(命名)했는데, 이제는 7남매가 됐으므로, 간판을 바꿔야하나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全氏는 아내가 순산(順産)하는데는 6남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배가 불러오는 엄마 위해 설거지, 빨래, 식사준비까지 스스로 해냈다.
첫째 태랑은 수업마치면 빵집으로 직행(直行) 엄마 도왔고, 실업고교(失業高校) 조리과 在學中인 둘째 해준인 가족반찬 만들어 냉장보관, 큰 딸이자 셋째 수는 동생들과 집안청소, 빨래 담당, 전氏는 다섯 살 성실이도 엄말 도왔다 한다. 한편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볼 적마다 가슴 뭉클할 때 많아 다둥이 아이들 둔 걸 한 번도 후회 않았다.’
전氏 부부 : 다둥이들 키우는데 큰 어려움은 ‘집 마련과 교육문제’였다. 시골 마을서는 교회에 딸린 단칸방서 살았는데, 식구가 늘다보니 인근 폐가(廢家)를 고쳐 살았다. 허나 애들 커가면서 학교가 멀어서 고충, 초등교는 車로 15분 거리, 中學校는 40분, 춘천시내까지 가야 했다. 셔틀버스처럼 매일 車로 보내다가 지난 3월 춘천 市內 작은 아파트 구(求)해, 첫째부터 셋째까진 아파트에서, 그 밑으로는 교회서, 부모랑 함께 지낸다.
네레이터 : 장차 훌륭한 사람보다는 도움 되는 사람 되라고 가르쳤다. 또 의무적인 일 보담 하고픈 일 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다보니 상부상조 정신을 가르쳤다. 이런 습관 자연스레 몸에 밴 것 같다.
그 흔한 피아노, 미술학원 한번 못 보냈으나 이것이 그래도 전氏 부부의 ‘교육철학’이요, 모두가 사회에 이바지 수단되니 더 바랄 愛國정신훈련이 없었단거다. 본받자. 온 국민이 바로 이런 정신과 훈련을 드높이자.
- 막(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