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연촌공이 군수를 지낸 경상도 청도 출신인데 조의제문을 사초에 올려 무오사화를 촉발시킨 김일손의 삼촌으로 예문관 대교 겸 춘추관 기사관을 지냈다.
김구는 1383년 출생으로 예문관 제학을 지냈으며 초학자회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최항은 1409년 출생으로 영의정을 지냈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정난 1등 공신이 되었다.
최흥효는 1370년 출생으로 중추원사를 지냈으며 초서를 잘 써서 일가를 이룬 서예가이다.
발문을 지은 박팽년은 1417년 출생으로 형조 참판을 지냈으며 사육신 중 한 사람이다.
전별연에 참석한 인물들 면면을 보면 그 행사가 얼마나 성대했는지 알 수 있다.
뒤늦게 참석한 박팽년(朴彭年)은 시 대신 발문을 지었다.
퇴휴시송별시발 박팽년(朴彭年)
지금 전주 최 선생이 글을 올려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니 사림들이 서로 칭찬하고, 그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모두 한가지로 흠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무릇 선생을 조정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할 수만 있다면 그 명성과 벼슬이 당연히 여기에서 머물지는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은퇴를 결정하였으니 사람들이 흠모하는 것이 어찌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今完山崔先生上書乞歸士林相稱道知與不知莫不欽慕夫使先生在朝其名聲爵位當不止此而人之欽慕者宜於是乎
지금 공은 시골로 돌아가서 더 이상은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탄식하며 칭송하여 마지않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여러 사람의 우러름을 받게 되는 이유가 조정에서 머물면서 더 높은 벼슬로 올라가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시골로 물러나 한가롭게 살아가는 곳에 있기 때문인 것이다.
在今也退休田里已不與世相關而萬口咨嗟稱頌不已者何耶其所以感人心而負物望者有不在彼而在此也
연촌공의 은퇴를 많은 사람이 칭찬하고 또 역사책에 수록하게 된 이유는 박팽년이 말하는 것처럼 임금이 승진을 약속하며 만류하므로 가만있으면 저절로 승진하여 높고 좋은 자리로 가는 것이 확실하지만, 명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신의 분수를 지켜 나가는 성리학자의 이념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부서에서 일을 하면서 선생을 모시고 따른 지가 몇 해나 되었기 때문에 매일처럼 만나서 담론을 나누고는 했었는데, 그 때 이미 선생의 높은 도와 덕, 그리고 의리에 감복한바 있었다. 이전에는 담당 업무에 매달려 몇 해 동안 서로 연락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지금 다시 예전에 몸담았던 부서로 돌아왔더니 선생께서는 이미 물러나겠다고 임금님께 보고하신 이후인지라 이별의 정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余於是局從先生有年日接談論固已服其高義頃者牽於職事阻濶數年矣今還舊局也則先生已告歸離別之情詎可言
세상에는 높은 벼슬에 오르고 나면 축하하는 시를 받아서 후세에 전하고자하여 열심히 뛰어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 해를 이곳저곳에 부탁하고 돌아다니지만 얻은 시라고 해보았자 겨우 몇 편에 불과하지만 선생은 하루아침에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영광된 일이라고 여겨서 다투어 먼저 칭송하여 시를 지어 준 것이 이와 같이 많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인심인 것이다.
안숭신은 벼슬이 낮고 이름난 사람이 아닙니다. 저의 추정으로는 안숭선을 안숭신으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다만 물증이 없어서 확정을 못할 뿐입니다. 인단 안숭신은 먼저 형님보다 먼저 죽었는데 그로 인하여 안숭신이 살았을 때 만든 <참의공유사>에 적힌 것은 수정하지 못하고 안숭신이 죽은 후 만든 <연촌유사>에 적힌 것은 안숭선으로 수정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제공찬시에 나오는 10명 중 한사람으로 안숭선이 있는데, 옹재 安崇信이라고 쓴 문헌도 많습니다. 옹재는 안숭신이 아니라 안숭선이니 "옹재 안숭신"은 오류라 생각됩니다.
옹재는 안숭선이고 안숭신은 안숭선의 동생입니다.
안숭선은 4형제던가 그렇죠? 전주 한벽당 곁에 있는 제공찬시비에는 안숭선으로 쓰여있고, 풍남동 종대에 있는 제공찬시비에는 옹제 안숭신이라고 쓰여있는데 제가 다른 자료에서 본 것도 구구해요. 안숭선으로 통일되어야 할텐데...
안숭신은 벼슬이 낮고 이름난 사람이 아닙니다.
저의 추정으로는 안숭선을 안숭신으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다만 물증이 없어서 확정을 못할 뿐입니다.
인단 안숭신은 먼저 형님보다 먼저 죽었는데 그로 인하여
안숭신이 살았을 때 만든 <참의공유사>에 적힌 것은 수정하지 못하고
안숭신이 죽은 후 만든 <연촌유사>에 적힌 것은 안숭선으로 수정하고 있습니다.
잘 하시는 일이예요. 한글로 쓴다면 "선"을 "신"자로 잘 못 쓸 수도 있겠는대 한자로 쓰면서 善이 信으로 바뀌었으니 큰 오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