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 갯벌을 두루 품어 낚시며 등산이며 즐길거리가 쏠쏠한 강화도엔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길이 숱하다. 선사시대 돌무덤부터 조선 왕의 첫사랑까지, 역사의 면면이 깃든 길 위의 이야기가 풍성하다. 빙어를 낚으러 갔다가 붉은 연꽃 같은 절집의 우련한 잔영만 품고 돌아왔건만 빈손이 아쉽지 않았다.
낙조를 바라보며 적석사가 한 송이 붉은 연꽃으로 피어날 즈음 저녁 예불이 시작된다.
빙어 낚시를 목적 삼아 떠난 여행이었건만 저수지 앞에서 차를 돌려 나왔다. 얼음 두께가 기준치 이하라 저수지 입장이 불가능하다 했다. 견지대를 위, 아래로 톡- 톡- 들었다 놨다…. 글로 익힌 ‘겨울 호수의 요정을 유인하는 기술’은 써먹어볼 기회도 없었다. 손가락만 한 물고기를 낚겠다고 손바닥만 한 얼음 구멍 앞에서 종일토록 묵상하는 건 애당초 내 취향이 아니었노라, 애써 미련을 갈무리했다.
관광지도를 펼치니, 국내에서 다섯 번째 큰 섬이라는 강화는 생각보다 넓고 갈 곳도 많았다. 산과 바다, 갯벌을 고루 품고 있는데다 고조선부터 고구려, 고려, 조선의 유적과 유물이 널려 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단군이 제를 지낸 참성단이 남아 있는가 하면, 39년간 고려의 수도로 자리매김한 터라 고려 궁지도 있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1232년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까지 38년간 사용된 고려 궁궐터.
읍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군청 인근에 용흥궁, 고려궁지, 강화산성 등의 문화재들이 모여 있기도 하거니와 일단 맛있는 밥부터 먹고 싶었다. 여행 중 가장 신중한 순간이라 할 맛집 검색으로 찾아낸 강화도 향토음식은 젓국갈비. 돼지갈비에 두부, 호박, 버섯 등을 곁들여 새우젓으로 간한 맑은 탕국으로, 돼지고기와 새우젓의 궁합이 좋아서인지 시원하고 감칠맛 도는 국물이 입에 착 감겼다. 쌉싸래한 순무김치에 강화섬쌀로 지은 차진 밥, 따끈한 손두부까지 두루 만족스러웠다.
마그네슘 함량이 높은 토양에서 청정수로 재배된 강화섬쌀은 밥맛 좋은 쌀로 손꼽힌다.
국물을 훌훌 마시다 문득 새우젓의 까만 눈동자가 눈에 밟혔다. 푹 삭힌 젓갈에도 눈알은 삭지 않는다더니만, 의식하기 시작하자 숟가락을 퍼 올릴 때마다 작디작은 삶의 마침표들이 동동 떠올랐다. 기실, 함민복 시인 때문이었다. 모 방송에서 그의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눈물이 잘라지던가요?” 진행자가 물었고, 시인은 수줍게 “눈물은 끊는 거지요”라고 답했다. 이어 그가 “눈에 관한 것은 잘 잘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그 근거로 든 이야기들이 강렬했다. 개 사료에 들어갈 닭 머리를 분쇄하는 공정을 봤는데, 무수한 닭의 눈알이 날카로운 커터 날을 피해 가더라는 것. 새우젓만 해도 몸체는 삭을지언정 눈동자는 그대로 남지 않느냐는 부연 설명까지 조곤조곤 곁들였다. 오소소 돋는 소름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더랬다. 새우젓의 눈동자와도 눈을 마주치는 시인이란, 저토록 섬세한 통각이란 대체 무슨 천형인가. ‘새들도 먹이를 먹지 않는 하늘길에서 / 음식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차마, 하늘에서, 불경스러워, 소변이나 참아보았다’(‘하늘길’ 중에서)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시들이 수록된 시집을 여행 가방에 챙겨 넣을 때만 해도, 새우젓의 눈동자와 눈을 마주칠 줄은 몰랐다. 함민복 시인이 살고 있는 강화에 가는 길이니, 강화도 출입증인 것처럼 그의 시집을 챙겼을 뿐.
임진강과 예성강, 한강이 합류하는 강화도 앞바다에서 생산된 새우젓은 내륙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영양염류를 섭취해 감칠맛과 높은 영양가를 자랑한다.
강화도령의 첫사랑을 따라가는 나들길제주에 올레길이 있고 지리산에 둘레길이 있듯, 강화엔 ‘나들길’이라는 도보 여행 코스가 있다.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이란 뜻을 지닌 강화 나들길 19개 코스는 선사시대의 흔적부터 자연 생태계의 속결까지, 강화에 깃든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중 길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의 출발점인 용흥궁을 찾았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강화팔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용흥궁은 조선 제25대 임금인 철종의 잠저다. 잠저는 왕세자와 같이 정상법통이 아닌 다른 루트로 임금에 오른 이가 궁으로 옮기기 전에 살던 거처를 이르는 말로, ‘강화도령’은 19세까지 강화도에 살았던 철종의 별명이다. 본명은 이원범.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후손이다. 모반 사건에 휘말려 가족이 모두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천주교 탄압으로 양친을 잃고 농사일을 하며 혼자 살다가 순조의 양자로 입적해 왕위에 올랐다.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뀐 철종의 생애는 「왕자와 거지」 이상으로 드라마틱하지만, 동화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는 씁쓸하다. 강화도 시절, 철종에겐 혼인을 약속한 마을 처녀가 있었다고 한다. 철종은 “강화에 있을 때가 좋았다”라고 자주 되뇌며, 종종 강화로 신하를 보내 찬우물 약수로 만든 막걸리와 순무김치, 젓국갈비 등을 궁궐로 들였다고 한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눌려 제 뜻을 펴지 못한 울분과 정인에 대한 그리움은 방탕한 생활로 이어졌고, 이에 병을 얻어 서른셋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청하동약수터-남장대-찬우물약수터-철종 외가로 이어지는 ‘강화도령 첫사랑길’은 철종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재구성한 길이다.
용흥궁 마당에 깃든 이른 봄소식. 용흥궁은 강화도령으로 불린 조선의 25대 왕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용흥궁 뒷문은 1900년에 완공된 성공회 강화성당으로 이어진다. 외관은 전통 한옥이지만 내부에 바실리카 양식이 접목됐다.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담아 야트막한 언덕 위에 배의 형상을 따라 터를 잡았다. 동서로 10칸, 남북으로 4칸, 총 40칸 규모로 지어진 성당의 팔작지붕을 올려다보면 ‘천주성전(天主聖殿)’이란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정면 기둥에는 사찰의 주련처럼 성경 구절을 한자로 내려 쓴 현판을 걸었다. 범종과 종각에, 마당에는 우람한 보리수나무까지, 사찰로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용마루와 벽면을 장식한 십자가가 은은하게 종교 색을 드러낸다. 목재는 백두산 원시림에서 구해오고, 건물 설계는 경복궁 중건 공사에 참여했던 목수가 맡았다고 한다. 타국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복음을 전하고자 한 선교사들의 의지와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붉은 연꽃으로 피어나는 산사의 저녁
강화읍 서쪽, 고려산 중턱에 고구려 장수왕 때 창건됐다는 적석사란 고찰이 있다. ‘쌓을 적(積)’에 ‘돌 석(石)’ 자를 쓴 적석사의 원래 이름은 ‘붉을 적(赤)’에 ‘연꽃 련(蓮)’ 자를 쓴 적련사다. 창건 설화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도의 한 승려가 진나라를 거쳐 고구려에 들어와 절터를 물색하던 중, 강화도 고려산에 이르러 다섯 빛깔의 연꽃이 만발한 연지(蓮池)를 발견한다. 그는 다섯 송이의 연꽃을 공중에 날려 연꽃이 떨어진 곳마다 사찰을 지었는데, 붉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지은 절이 적련사(赤蓮寺)다. 적련사가 적석사로 이름을 바꾼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산과 절에 불이 자주 나는 바람에 불을 연상시키는 ‘붉을 적(赤)’ 자를 지웠다는 것. 그럼에도 맑은 저녁, 낙조에 물든 절집은 한 송이 붉은 연꽃으로 피어난다.
젓갈수산시장이 위치한 외포항. 석모도로 가는 배편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적석사 옆 샛길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강화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는 낙조대가 나온다. 적석사 낙조대는 정동진과 일직선에 위치한 정서진으로 일몰뿐 아니라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장쾌하기 그지없다. 마니산을 포함한 8개 산자락의 파도치는 능선과 너른 들판, 저수지와 바다가 하나의 화폭에 담기고 그리로 해가 진다.
해 뜨고 해 지는 풍경은 기다림 끝에 한순간이라, 지켜보는 이들에게 골똘한 집중력을 요한다. 일몰이 진행되는 동안 기념 촬영을 하느라 떠들썩했던 단체 관광객도 해가 완전히 잠기는 순간엔 말을 멈췄다. 여럿이 어우러져 쏟아내는 말과 말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순간이 있다. 불현듯 찾아드는 그 침묵을, 프랑스인들은 ‘천사가 지나간다’라고 표현한다. 적석사 낙조대에서 맞은 일몰의 순간, 찰나의 고요 속에 무언가 지나갔다. 붉은 연꽃 위 관음보살이거나, 어쩌다 꿈결에 만나는 아득히 그리운 당신인지도 모르겠다.
낙조대에서 내려오자 적석사의 저녁 예불이 시작됐다. 산중의 어둠은 쏜살같아서 먼 하늘엔 일몰의 여운이 남아 있건만 절집 마당은 이미 별을 헤아릴 만큼 깜깜하다. 범종각을 장식한 연등이 점화되고 타종이 시작됐다. 종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 것임을 새삼 느끼며, 가슴께로 파고드는 떨림 위로 두 손을 모았다.
강화성당의 종을 멀리서 보면 사찰의 범종과 다를 바 없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십자가와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