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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란 이름을 가진 거대한 숲속.
그 커다란 빌딩숲에서 내 집은 작은 나무 한 그루.
그 초라한 한 그루 나무 아래로 파릇 파릇 새싹처럼
푸른 지붕을 이고 있는 이웃들.
내 이웃들의 삶은 겉으로는 고단해 보이지만 어느 누구 하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난 이 가난한 동네가 좋다.
집을 나설 때 어떠한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떤 가방을 메고 나가도 조금도 흉이 되지 않는 동네.
이 동네 초입의 오래되고 허름한 국수집에서 후루룩 마시듯이
들이키는 잔치국수 가락가락에도 주인장의 따스한 온기가 흘러 내리는 동네.
벌써 일년이 되었다.
바로 엊그제 이사를 온 것 같은 데.
그래도 난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마을에 머물 것 같다.
예전에 잃어버린 내 볼품없고 초라한 고향마을 같은 곳.
이 동네에 워나 가족이 왔다.
아버지를 보러.
반가운 마음에 우선 그들을 데리고 모리쵸로 갔다.
마침 점심 식사 때 이기도 하고.
지난 번 연말에 왔을 때 가려다가 너무 사람이 붐벼 가지 못했던 곳.
그리고 아이들이 한 번은 가 보고 싶어 하던 곳.
알아서 주문을 하라고 하니
지난 번 후니네가 왔을 때처럼 거의 똑 같은 것을 주문 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초라하지도 않은 메뉴.
그래도 요리가 나오자 모두가 맛있다며 입맛을 다셔가며
잘도 먹는다.
덩달아 나도 맛있고게 먹고 행복에 겨워 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늘 하던 것처럼 그들을 데리고 카페로 갔다.
내가 좋아 하는 곳.
광복동에 있는 연경재.
디저트의 모양이 예쁜 곳.
워나도 달항아리 모양의 디저트가 예쁘다고 한다.
주니와 윤서도 좋아하는 달달한 맛의 디저트다.
반면에 사실 워나와 나는 티라미슈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쩌면 워나로 인해 나도 티라미슈를 좋아하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쌉싸하고 달콤한 맛이 주는 매력.
워나.
내 가운데 손가락의 생인손 같았던 작은 소녀.
이 아이만 생각하면 늘 눈 앞에 옅은 안개가 서린다.
하나 해 준 것 없이 미안한 마음이지만 늘 밝은 표정으로 응대 해 주었던 작은 아이.
그런 아이가 이제는 나 보다도 더 어엿한 가정을 이루어 아들 낳고 딸 기르며
잘 살아 가고 있다.
그녀를 생각하면 나 또한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러한 그녀가 못난 아빠를 보러 오며 이것저것 많이도 챙겨 왔다.
과일, 마른 생선, 국거리, 문어와 낙지 등 등.
지난 번 명절 때 시댁 어른이 저희들 먹으라고 정성스레 챙겨 준 것들을
고스란히 내게 되 가져 왔다.
그 뿐 아니라 아빠가 커피와 차를 즐겨 마시는 걸 알고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알려 진 바샤커피와 고급홍차인 TWG블랙티를 가지고 왔다.
내게는 좀 호사스러운 제품이고 가격이다.
좋아는 하지만 내게는 가격대가 비싸 늘 망설이며 미루어 왔던 커피와 홍차다.
특히 이 홍차는 티백이 다른 티백들처럼 종이같은 재질이 아니라 순수한 면으로 되어 있어
더욱 고급스럽다.
고소한 과일향을 가진 커피.
그리고 은은한 꽃향기를 품고 있는 홍차.
마치 워나네 집에 찾아 갔을 때 느꼈던 평화로운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커피와 홍차다.
오늘처럼 홀로 집에 있는 날
딸 아이가 준 소중한 커피와 홍차를 번갈아 마시며 다시 한 번
워나의 성장일기를 파노라마처럼 그려 본다.
늘 가운데 손가락의 심하게 앓았던 생인손 같던 조그만 아이가
어느새 내 든든한 울타리로 훌쩍 커 버린 모습을 보면서 지금도
잔뜩 행복에 차 있다.
*워나에게서 커피와 홍차 선물을 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