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책방에는 2022년 노벨문학상 작가 <아니 에르노>를 모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막 아니 에르노를 읽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도 간간이 그의 책이 소개될 때마다 찾아 읽곤 했지만....뭔가 저와는 결이 다른 작가라는 느낌. 깊은 감동을 받기 어려웠어요. 이번에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그의 책들을 찬찬히 살펴 봅니다. 이 작가의 무엇이 세상을 감동시켰나....나는 이 작가의 무엇이 불편했었나....
숙제는 이제 시작입니다.
1940년에 태어난 프랑스 작가.
1974년 그의 데뷔작인 <빈 옷장>이 프랑스 문단에 충격을 던지며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이유는 너무나도 거침없고 솔직한 그의 자전적 글쓰기 방식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남자의 자리> <한 여자> 등을 통해 그는 자신의 임신과 낙태, 출산과 연애 등 자신의 삶에 관계된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썼습니다. 어찌 보면 전통적 소설의 영역과는 다른 종류의 이런 자전적 글쓰기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새롭게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사적 영역을 드러내지만 그것을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 성적 욕망, 여성의 성을 금기시하고 대상화하는 가부장제의 폭력과 지식인 계급의 위선 같은 것을 찌르듯 써내려갑니다. 그리고 그는 문학을 싸움의 무기라고 표현하며 거리로 나서는 행동파 작가입니다.
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에르노 수상 대표작은 <단순한 열정>입니다.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담은 이 소설은 파격적이고 적나라한 묘사와 서술로 화제를 일으켰는데요, 이런 글쓰기가 저에겐 좀 불편하고 낯설기도 했습니다. '노출증'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구체적인 그의 글에 대해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시점과, 그에 대해 글을 쓰는 시점, 그리고 발표되는 시점이 모두 다르다는 것의 의미를 들어 노출증과는 구분된다고 설명합니다.
아니 에르노를 알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하는 책은 <세월>입니다. 1941년에서부터 2006년까지, 노르망디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태어나 자란 것에서 시작해 파리 교외의 세르지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 그리고 작가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족 사진첩을 넘기듯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자신의 굴곡진 전 생애를 다룬 책이기 때문입니다(인터넷 서점 인용).
이 책에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개인의 이야기를 쓰는 듯하지만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라 동시대를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으며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 혹은 역사 속에 개인이 어떻게 위치지워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 아니 에르노 라는 작가를, 그가 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가 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정한 장소>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2011년, 다큐멘터리 감독 미셸 포르트와 인터뷰를 했고 그를 토대로 2013년 아니 에르노 다큐멘터리가 완성되어 방영됩니다. 이 인터뷰를 담은 책인데요,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의 탄생과 책에 대한 준비작업, 내가 글쓰기에 부여하는 사회적, 정치적, 신화적인 의미에 대해서" 그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글쓰기는 <진정한 나만의 장소>"라고 표현합니다. 그에게 '글은 하나의 장소'입니다. 비물질적인 장소.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느끼는 곳...그곳이 바로 '글쓰기'라는 장소라고 그는 말해요. 얼핏 난해한 말 같지만 너무나도 저는 이 말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사라지게 될 것들, 그 얼굴들, 그 순간들을 기록한다.
무엇인가에 대해 쓰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장소>
책에서 그는 남성적 성향이 강하고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가 하라는대로 하며 살았던 어린 시절, 엄격한 훈육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외동딸인 그를 독서에 입문시킨 사람도 어머니였고 페미니즘과 관련한 첫번째 모델도 어머니입니다. 그는 강력하게 외칩니다. "나는 글을 쓰는 여성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요.
그는 글을 쓰는 것은 세상에 대한 자기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고 합니다. 변화하는 불확실한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글을 쓴다고요. 그리고 여기서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해줍니다.
글쓰기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겉으로 드러난 것들을 찢는 거다.
칼같은 글쓰기. 글쓰기는 상처를 파고 넓혀서 내 밖으로 꺼내는 것
<진정한 장소>
저는 확실히 알게 됩니다. 제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들을 칼같이 도려내고 후벼파는 아니 에르노의 글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부담스럽고 불편했던 것임을요. 저는 절대 시도하지 못할 이런 글쓰기....
저는 <사진의 용도>도 아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 또한 독특해서 '섹스 후 남겨진 흔적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기록'이라는 카피가 보여주듯 섹스 후 흔적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남긴 기록입니다.
어느 날, 섹스 후 일어나서 어질러진 바닥과 침대를 보면서 그걸 사진으로 찍게 됩니다. 이미 그들의 행위는 지나간 뒤고 구겨진 시트와 널브러진 속옷 따위가 그들의 지난 시간을 증거하고 있는데요, 그것을 보면서 지나간 욕망과 지금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이때 그는 암 투병 중이었기에 빠져가는 머리카락, 병으로 손상돼가는 육체의 풍경, 여성의 몸에 대해 많이 쓰고 있어요.
사진 속에 우리의 육체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나눈 사랑도 없다. 그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장면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고통.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데서 비롯된다.
사진의 필사적인 의미. 우리는 구멍을 통해 시간의, 무의 불변의 빛을 엿본다.
모든 사진은 형이상학이다.
<사진의 용도>
책을 읽으며 사진의 용도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결국은 사라지고 말 현재를 순간에 붙잡아두려는,
유한한 삶을 살아갈 뿐인 인간이 무한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구현된 게 사진이라고 하죠.
사진속에서, 혹은 책을 읽으며 타인의 삶과 사랑과 욕망이 지나간 흔적들을 눈으로 쫒으며 나는 오늘 하루도 내 삶의 어떤 것들을 사랑하고, 남기고, 추억할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이 책들을 필두로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들을 찬찬히 살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