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코레일 대전충남본부 청주역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기차마을이야기 스크랩 70년대 디스코 음악의 진수, 밤차
국가대표청주역 추천 0 조회 308 10.02.06 09: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래가 만들어진 때는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77년. 특히 허스키보이스로 유명한 이은하(49)의 독특한 창법과 무대에서의 찌르기 몸동작은 화제였다. 노래와 몸놀림이 어우러져 가슴이 뚫리는 것처럼 시원한 맛을 준다. 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허스키한 목소리, 폭발적인 가창력, 열정 넘치는 무대 매너가 팬들을 사로잡았다.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머리 위로 ‘동서남북’을 찌르며 육감적으로 춤추던 이은하의 모습은 1970년대 말 디스코 춤에 대한 스냅사진으로 뚜렷이 남는다.

 

<밤차>를 작곡·작사한 유승엽 씨(64)는 어릴 때부터 기차와 인연이 많았다. 부친이 군포역장을 한 것이다. 수많은 히트곡들을 작곡한 그는 10여 년 전부터 고향인 경기도 군포에서 한국오카리나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독학으로 오카리나를 익혀 1997년 첫 음반 ‘해초’까지 냈다. 2001년부터는 오카리나를 직접 만들고 있다.

 

그는 음악과 관련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리고 가수, 작곡가, 작사가, 연극극장장, 드라마주제가(OST) 등 그의 손을 댄 작품들마다 빛을 발했다. 첫앨범 <슬픈 노래는 싫어요>는 음악인생 시작을 알리는 첫 작품이었지만 가수생활을 접고 난 뒤, 우연히 작곡한 노래가 이은하의 <밤차>다. <겨울장>, <제비처럼>, 진미령의 <하얀 민들레>, 심수봉의 <당신은 누구시길래> 등도 차례로 만들었다. 아직도 그가 만든 노래는 명곡으로 오래기억되고 있다. 역대 최고시청률을 자랑했던 드라마 ‘첫사랑’의 OST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극중 인물인 배우 손현주가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상대역이었던 배우 송채환에게 바쳤던 노래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도 그렇다. 그룹 산울림과 함께 한 연극도 그의 음악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대학선배 부탁으로 맡게 된 연극무
대에 산울림 노래를 사용해 관객을 사로잡았다.

 

<밤차>는 2008년 10월 개봉된 영화 ‘고고 70’ (감독 최호)에도 등장한다. 1970년대를 이끈 트렌드리더이자 섹시 디바로 이은하의 모델로 변신한 신민아(27)가 1970년대 최고의 디바곡인 <밤차>를 완벽하게 불러 눈길을 모았다. VIP시사회장에 초대받은 이은하는 신민아의 <밤차>를 듣고 “나와 똑같이 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한 것 같다. 찌르기 동작이나 라이브로 보여준 부분들이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아 어린친구가 예쁘다”며 극찬했다. ‘고고70’은 야간통행금지시절 자정에서부터 새벽까지 밤을 깨운 전설의 밴드 ‘데블스’의 열정적 활약을 다뤘다. 기지촌과이태원클럽을 돌며 무명생활을 해온 데블스는 1971년 10곡이 담긴 데뷔음반을 냈다. 이어 1975년 박영걸 씨가 창립한 노만기획에 소속돼 그룹이름을 ‘친구들’로 바꿨다. 1977년 <너만 알고 있어>, <사랑의 무지개> 등이 실린 3번째 독집을 발표했다. 그땐 작곡을 잘해도 심의를 넣으면 번번이 걸려 작곡보다는 편곡에 관심을 뒀다. 편곡상을 받은 이은하의 <밤차>와 <아리송해>, 정난이의 <제7광구> 등은 그의 편곡작품이다. 1981년 5월 10일 박 씨가 연 ‘이은하 쇼’에 그룹이 참가했다. 전국을 순회한 공연은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로 실패했다. 팀이 깨진 것도 그 때문이다.

 

 

 

 

1961년 3월 29일 서울서 태어난 이은하(본명 이효순)는 학생 때부터 노래를 불렀다. 경남여고를 나온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73년 <님 마중>(김주명 작사, 김준규 작곡)을 불러 가요계에 데뷔했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1976년), <아리송해>(1979년),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1984년), <돌이키지 마>(1989년),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1986년), <봄비>, <최진사댁 셋째 딸> 등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특히 1977년부터 1985년까지 9번의 10대 가수상과 방송사의 가수왕을 차지했다. 1986년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으로 10번째를 채우려 했으나 정수라의 ‘공포의 외인구단’ 주제가 <난 너에게> 인기에 밀렸다.

 

1992년 <탈출> 발표 뒤 노래활동을 접은 그는 일본으로 가 공연, 신인가수 배출 등을 하다 2007년 7월 새 앨범 <컴백(Come Back)>으로 가요계 복귀했다. 15년 만에 발표한 <컴백>엔 과거 히트곡 대신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장르의 곡들을 담았다.

 

이은하는 몸매, 나이, 4대 강 관련노래 취입, 영화출연 등 에피소드가 많은 가수다. 젊었을 때 뚱뚱했던 몸매가 중년이 되면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날씬해졌다. 특히 2008년 늦은 나이에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 또 한번 눈길을 끌었다.

 

나이를 둘러싼 얘기도 재미있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년도가 1958년으로 돼있었으나 지난해 법원결정문에서 1961년(소띠)으로 고쳤다. 나이가 잘못된 건, 1973년 13세 때 데뷔한 그가 1975년 17세 미만 미성년자의 방송활동을 금지시키는 ‘긴급조치 9호’에 묶였기 때문이다. 방송활동은 물론 노래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되자 그녀의 재능을 아꼈던 소속사와 가까운 사람들이 나이를 올리는 쪽으로 머리를 썼다. 태어난 해가 잘못됐다며 정정 신청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이배영 씨)와 얽힌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이은하는 2008년 6월 2일 밤 서울 마포 가든 호텔에서 부친의 칠순잔치를 열어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불러 화제가 됐다. 1976년 발표해 히트한 곡이다. 이 노래는 평소 그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다. 일부 가수들에게 불렸으나 이은하를 통해서야 유명세를 탔다. 그에게 아버지는 매니저이자 스승이다. 아코디언연주가인 부친은 어린 시절 이은하 손을 이끌고 가수의 길로 들게 했다. 그 뒤 든든한 지원자요 바람막이 노릇을 했다.

 

이은하는 4대 강 개발과 관련된 노래 <한반도 대운하>를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운하가 통과하는 지역에 땅을 사뒀냐’, ‘머리가 비었다’, ‘정치권에 줄이라도 댄 것이냐’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플에 시달린 것. 또 한 때 영화배우로도 뛰어 1982년 에로영화 ‘날마다 허물 벗는 꽃뱀’에서 주연을 맡았고, 영화에서 <네가 좋아>란 주제가를 불렀다.

 

2002년 한국-미얀마친선협회 명예홍보대사, 2008년 7월 중순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 중이다. 2009년 6월 하순엔 KLPGA 연예인홍보단장으로도 임명됐다. 김지선, 김혜연, 이경실, 이광기, 정수라 등 소속연예인 25명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