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기사원문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437
문 닫힌 남녀공용 화장실을 들어가기 전 인기척을 살핀다. 문을 잠근 뒤 볼일을 보는 중에도 누군가 들어오지 않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 느껴 봤음직한 보이지 않는 공포다. 일상적 공포는 일터에서도 이어진다. 방문점검 노동자는 고객 집 문 앞에서, 응급실 간호사는 환자 처치를 위해 커튼을 닫으며 행여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긴장한다. 보이지 않지만 위험은 실재하고, 사고는 일어난다. 공포를 말해도 ‘보이지 않는다’며 눈감은 이들도 사고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동자가 겪는 성폭력은 구조적 문제가 켜켜이 쌓여 터진 지극히 공적인 일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 직장내 성폭력 문제를 풀 열쇠는 거기서 시작한다.
지난달 14일 서울교통공사 역무원이 스토킹하던 입사 동기에게 죽임을 당한 신당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흘렀다. 16일 <매일노동뉴스>가 일터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안전 문제를 취재했다.
닫힌 공간, 공포에 눈감는 사회
24시간 운영되며, 분초를 다퉈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 있다. 응급실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곳에서도 성폭력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17년차 간호사 정혜수(39·가명)씨는 “주사를 놓을 때 커튼을 치는 경우가 많다”며 “근육주사는 보통 엉덩이에 놓게 되는데 바지를 내려 달라고 했을 때 성기 쪽을 노출하며 ‘만져 달라’고 하는 환자도 있었고, 여자 속옷을 입고 보란 듯이 바지를 내리고 주사를 놓아 달라며 웃는 사람도 있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환자의 프라이버시, 안정을 위해 닫은 커튼 안 폐쇄된 공간은 성별 위계에 따라 남성 환자에게 힘을, ‘여성’ 간호사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준다.
커튼 밖도 안전하진 않다. 환자의 수액량을 조절하려 잠시 뒤로 돌아서는 짧은 순간에도 성추행은 일어난다고 한다. 정씨는 엉덩이를 만지거나 실수인 척 팔꿈치로 터치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진의 보호를 받는 ‘환자’인 탓에, 의도를 가지고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 웬만해선 ‘불쾌한 일’로 치부하고 넘긴다.
정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3월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 4만3천58명을 대상으로 ‘2021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했는데 여성 보건의료 노동자 63.9%가 최근 1년간 폭언·폭행·성폭력을 겪었다고 답했다. 남성은 37.4%였다. 신체적 성폭력 경험도 여성은 5.3%가 “있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은 2.3%였다.
낯선 공간에 들어가야만 일할 수 있는 방문점검 노동자도 상시적 성폭력 위험에 놓인다. LG전자 가전제품을 방문해 점검하는 노동자이자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장인 김정원씨는 “점검 중 남성이 상의를 입지 않고 삼각팬티만 입고 돌아다니거나 뒤에 와 스킨십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잠깐 앉아 커피를 마시자고 하면서 성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는 남성도 있다”고 증언했다.
김 지회장은 “지회로 상담은 계속 들어오는데, 공개적으로 취합은 잘 안 된다”고 전했다. 가해자는 방문점검 노동자의 서비스 만족도를 평가하는 고객인 데다, 노동자가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할 때 사업주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단순히 운이 나빠서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폐쇄된 공간 속 남과 여,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이란 상황이 만들어 낸 구조적 폭력이다. 이런 구조가 무시되면서 여성노동자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공포는 간과되고 여성노동자는 위험에 노출된다.
여성노동자 ‘동료’는 지워지고 ‘성별’만 남았다
폐쇄적 공간, 신원이 불확실한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업무 특성이 제거되면 여성노동자는 안전할까.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계속되는 한 안전한 일터는 먼 얘기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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