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중동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집트는 2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실패와 통일 아랍공화국의 붕괴위기가 겹쳐 일어나는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이스라엘도 정치적 문제와 함께 경제적 침체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이때 아랍 게릴라들의 테러가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국은 골치 아픈 국내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전쟁을 하기위한 마땅한 이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랍측의 이스라엘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요르단 강의 수원을 이스라엘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거부하기 위하여 시리아 내의 수로변경 공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이 폭격으로 저지하기는 했지만, 그로인해 양국 간의 감정의 날이 날카롭게 서 있었습니다.
전쟁 발발직전에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유일한 홍해 진출로인 아카바만을 봉쇄하기 위하여 티란 해협 봉쇠령을 선포하였는데요, 이것은 전쟁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간 꼴이 된 것입니다.
고소원이나 불감청이라 이스라엘도 내심 이런 핑계가 있기를 바라던 바였겠지요.
양 진영의 전투력을 비교해 보면,
이스라엘군의 병력은 27개 여단, 27만5천명 이었고 탱크가 1,051대, 항공기 500대, 함정55척 이었으며, 아랍 측의 병력은 53개 여단 43만8천명이고 탱크가 2,542대, 비행기 1,100대, 함정 136척으로 이스라엘군의 2배가 넘었습니다.
아랍측이 수세공세 전략개념 하에 외선작전을 구상하였는데 반해, 이스라엘은 내선의 이점을 이용하여 각개격파 하기로 했는데요, 우선 격파해야할 목표는 가장 위협적인 이집트였습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작전을 위하여 선제기습공격이 전제되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3단계의 작전 실시계획을 수립했는데,
제1단계 ; 아랍 공군을 조기에 무력화 시킨다.
제2단계 ; 적의 지상 방어진지를 돌파한다.
제3단계 ; 적을 추월하여 포위, 격멸하는 것이었습니다.
1967년 6월 5일 아침 7시45분에 출격을 시작한 이스라엘의 공군기들이 이집트의 공군기지를 공습하여 아직까지 지상에 있는 이집트 항공기들을 파괴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폭격기들은 3시간이 체 안 되어 300여대의 이집트 항공기를 격파하여 이집트의 공군력을 일찌감치 무력화 시켰고, 정오부터는 나머지 아랍 동맹군의 공군기지를 공격하여 무력화시킴으로써 개전 하루 만에 제공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육군은 공군이 출격한지 1시간 후인 오전 8시45분에 이집트의 방어진지를 돌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집트군은 7개 사단을 투입하여 수세공세를 할 수 있도록 탄력성 있게 3선으로 배치했는데, 제1방어진지는 전차와 대전차포가 증강된 4개 보병사단이 강력한 종심진지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이 방어진지를 돌파한 이스라엘군의 주공은 샤론사단과 요패사단으로 중앙 축선의 아부. 아게일라-스에즈로 공격했고, 탈 사단은 조공으로 북부축선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여단이 남부 축선으로 양공작전을 하였습니다.
독일군의 전격전술에 초현대 무기의 운영체계를 접목시킨 이스라엘군은 단 4일 만에 시나이반도 전역을 점령하였습니다.
6월8일 이집트가 유엔의 휴전제의를 수락하자, 시나이 반도 작전은 종결 되었습니다.
한편, 요르단은 6월5일 선제공격을 실시했으나 이스라엘군의 역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하자 휴전안에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시리아전선에서는이스라엘군이 초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요, 6월9일 이집트전선으로부터 증원된 7개 여단 이상의 전차와 기계화부대로 재편성, 반격으로 전환하여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6월10일 이스라엘군이 골란고원의 요충지 쿠네이트라를 점령하자 시리아역시 휴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3개 전선의 전쟁이 단 6일 만에 모두 끝이 났습니다. 따라서 제3차 중동전쟁을 6일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의 인명손실은 전사자가 690명 발생했고, 비행기 26대와 전차 86대가 파괴된 반면에 아랍측의 비행기 400여대를 파괴하고, 800여대의 전차를 비롯하여 20억 달러 상당의 장비와 보급품을 노획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전과는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 요르단의 서부지역 등 이스라엘 영토의 3.5배에 해당하는 영토를 빼앗고, 티란 해협은 물론 예루살렘까지 장악 하였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난민의 증가와 아랍 제국의 실지 회복에 대한 집념과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이 증대됨으로서 또 다른 전쟁의 원인을 만든 결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