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손에서 더러워진 물건은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잠 14:9
(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누군가가 오래 사용한 듯한 낡은 물건을 보게 되면
꾀죄죄하고 꼬질꼬질하여 더럽다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세제품일 때부터 오랜 기간 사용한 자신의 물건은
조금 더러워졌어도 그렇게까지 더럽다고 느껴지지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손때 묻은 그 물건에 왠지 모를 정감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중학교 2학년 때에 용돈을 모아서 구입한 추리닝을 지금도 즐겨 입고 있는데
제가 원래 물건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을 저와 함께 한 그 옷이 꼬질꼬질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낡은 물건을 볼 때와는 다르게 자신의 낡은 물건을 볼 때
더 관대해져서 꾀죄죄하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물건이 더러워지고, 낡아지는 과정을 자신이 직접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르는 누군가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에서 천천히 낡아져간 물건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론 더러워졌어도 내 눈에는 더럽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몸무게도 많이 늘어난 흔한 동네 아저씨(아줌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예뻐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지내온 오랜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보기엔 그저 나이든 흔한 중년이기에 관심이 가지 않는 외모지만
그들은 알 수가 없는 그의(그녀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배우자는 잘 알고 있으며,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외모도 배우자의 기억 속에서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심리는 다른 사람이 소유한 낡은 물건을 보았을 때와
자신의 손에서 천천히 낡아간 물건을 볼 때의 평가와 인식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오랜 세월 자신의 곁에 있었을 때에
객관성은 최저치로 줄어들고, 주관성/개인적 평가가 극대화되는 원리입니다.
교활하고 더러운 마귀는 사람이 가진 이런 심리마저도 최대한 이용하여
우리를 죄로 더럽혀 타락시키려고 계획해왔고, 지금도 그것을 성실히 실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그 죄에 절대로 가까이 가지 않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치 가랑비에 옷이 흠뻑 젖듯 아주 조금씩, 작은 부분부터 스스로에게 허용하게 함으로서
나중엔 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버리는 지극히 교활한 술수 중의 하나입니다.
“야! 요새 이 정도는 죄도 아니다~ 너 말하는 것 보니 아주 꽉 막힌 늙은이 같다?” 는 식의 말을
주변에서 계속 듣거나 스스로 생각하다보면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에 동조하다보면)
어느새 죄를 합리화하여 ‘맞아... 시대가 바뀌었잖아? 남들은 더 심할 텐데
나는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야.’ 하며 조금씩 죄를 자신에게 허용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죄를 그럴듯하게 합리화시키고, 어리석은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다들 그럴 거다.’ 라고 여기게 하며,
죄와 타협하게 만들어 작은 크랙을 통해 비집고 들어오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누구한테 특별히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요새는 그 정도는 다 해.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에 맞게 살아가는 것도 지혜야.”
‘누구한테 특별히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이 부분이 바로 마귀가 삽입해놓은 지극히 교활하고 악한 말입니다.
이 문장이 왜 지극히 교활하고 악한 부분이냐면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 가만히 생각해보았을 때
“당신은 예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 는 전제를 확실하게 까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권하고 있는 그 죄의 행위가
비록 다른 사람들한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 하더라도
예수님께는 확실히 피해를 드린 것이 맞습니다.
마귀는 이렇게까지 교활한 존재입니다.
히 6:4-6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엡 4:30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어떤 죄든지 사람이 스스로 죄를 선택하여 또 범죄 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이며,
하나님께 슬픔을 드린 행위이고, 성령님을 근심 시킨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여 여러분들을 곁에서 지키고 있는 천사분들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쉴 것 같습니다.
마귀는 어찌나 교활한지 죄를 죄가 아닌 것처럼 꾸미는 데의 선수입니다.
마귀가 유혹하는 그 소리가 달콤하게 들리고, 매우 그럴듯하게 논리적으로 들려서
설득이 되기 시작하고 동조하여 결국 스스로 죄를 선택하면
그 사람은 마귀가 살살 흔들고 있던 미끼를 확 물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 세상적인 풍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이 어디까지 죄로 인식하고 있는지,
죄를 죄로서 확실히 여기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자신의 가치관, 세계관을 점검하여 영적으로 예민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자칫 길을 잘못 들어서면
외형적으로 완벽한 행위에만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행위주의자가 되지만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또한 나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내가 확정한 나의 최우선순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나도 그 모습을 점점 닮아가며 거룩해지기로 결정했기에
하나님을 사랑하여 너무나도 닮고 싶은 마음,
그러나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하나님께 간구하여 기도하며, 의심 없이 의지하고,
나를 비우고(자기를 부인하고), 성령님께 나를 산 제물로서 내어드리는 과정으로,
즉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바른 길을 따라가면
균형 잡힌 신앙관, 영적으로 건강한 마음과 행위를 동시에 소유하게 됩니다.
마귀의 그럴듯한 속삭임에 동조하는 생각으로 결국 스스로 죄를 선택하여
하나, 둘 자신에게 허용하다보면 결국 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오랜 세월 그 죄에 노출되거나(품고 살아가거나) 잘못된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죄를 더 이상 죄로 여기지 못하는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가 됩니다.
‘동성애가 왜 죄지? 듣고 보니 그러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왜 죄야?
하나님께서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며?!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 게 맞지 왜 죄라면서 배척해?‘
이와 같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어 스스로 분별을 할 수 없게 되고,
그저 마귀의 속삭임에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돌이킬 수가 없는 안타까운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가증한 죄로 정의 내리신 동성애 부분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죄를 더 이상 죄로 여기지 않는 풍조는 마귀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새제품일 때부터 사용하여 내 손에서 더러워진 내 물건이면 더럽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죄는 그렇게 서서히 스며들어 자신이 죄로 더러워졌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죄가 점점 더 크게 자라나면 더욱 큰 죄, 더 악한 죄를 고민 없이 받아들이며,
영적 소경이 된 것도 모른 채, 하나님과 단절되어버렸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죄와 벗하여 결국 죄의 종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귀가 치밀하게 계획하여
오랜 세월 성공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실행한 이 교활한 원리를 알고 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하고 솔직하게 각자 자신의 현재 모습, 진짜 모습을 되돌아보면
허를 찔린 듯한 기분, 깔끔하게 당해버렸다는 원통한 기분을 느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교활하고 더러운 마귀는 마치 화룡점정처럼
최종적, 결정적으로 우리가 자의로서 스스로 죄를 선택하게끔 유도하여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 가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오랜 세월 죄의 탑을 빌드업하여
마지막 순간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를 선택하게 만들어
영원토록 하나님과 그 사람을 단절시키려는 속셈입니다.
각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회개할 수가 없을 때, 죽기 얼마 전, 의식이 희미한 상태,
또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하신 그 사람의 임계점에 달했을 때
(더 이상 회개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때),
즉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다 지나고, 모든 기회를 다 놓쳐버린 후에는
다시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고 당부해주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연약하고, 자꾸만 죄를 범하려 하고,
조금만 건드리면 아직도 살아있는 육신적인 옛 자아가 드러나는
행위로서는 도저히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매일 새롭게 각성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꾸준히 회개하여 마음과 행위를 돌이키며,
그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간구해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게, 우습게) 여기고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련한 자가 죄를 심상히 여기는 내용에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
정직한 자에 대한 말씀인 이유는
미련한 자의 반대가 바로 정직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심상히 여기는 미련한 자에 대한 내용에 이어서
죄를 범하지 않는 지혜로운 자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하여 세상에 죄를 범하지 않는 자가 없고,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사실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즉시 인정하며, 회개하여 돌이키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자의 반대되는 자, 정직한 자입니다.
롬 3:9-10, 20, 23-24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죄를 쉽게 범하는 미련한 자’와 반대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하며, 회개하는 정직한 자’라는 것입니다.
시 32:5
(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충신의 부인을 강제로 빼앗아 강간하여 임신시키고,
그 죄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 충신을 살해한 엄청나게 끔찍한 죄를 범했지만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핑계도 대지 않고, 합리화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서 즉시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며 죄의 대가를 받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은 믿음의 선배, 다윗 왕이 생각납니다.
시 51:3-4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태초부터 영원까지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시며,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숨기려하지 않고, 언제나 솔직하게 인정하며,
하나님의 꾸중과 징계가 있을 때에 달게 받으며 여전히 하나님을 높이는 자,
마귀의 속삭임에 동조하지 않고, 한 때 동조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돌이켜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죄를 여전히 죄로 여기는 자가 바로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경외하며, 사랑하며, 순종하는 자입니다.
이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각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죄와 싸울 때입니다.
멍하니 세상의 것들에 눈을 돌린 채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닙니다.
마귀는 어떻게든 우리를 죄 가운데 끌어들이려고,
죄 가운데에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는 어리석은 상태, 중독된 상태로 두려고
현재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극히 교활한 마귀의 간계를 전보다 더욱 느끼고 계실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여
각자의 영혼을 지킬 때입니다.
슥 13:1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히 8:12-13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죄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죄에는 우리가 타협할만한 부분이 조금도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전체를 되돌아보면서
혹시라도 오래 사용한 정든 물건처럼
더러운 죄를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품고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지하게 점검해보면서
하나님 앞에 한 명씩 실제로 설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죄를 사함 받아 긍휼히 여김과 의롭다 해주심을 받으며,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아주시는 은혜의 새 언약, 더러움을 씻는 샘,
예수 그리스도.
그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헛되게 만드는 자,
제발 예수님과 아무 관계도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이제는 죄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고,
마귀와 싸워서 이기고, 죄와 싸워서 이기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되십시다.
시 119:11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이번 주에는 설 명절이 있습니다.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다른 사람의 근황 얘기도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꼭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고,
은근히 누군가를 판단하는 죄를 범하면서 그 죄에 여러분들도 동참하도록 유도를 할 것인데
얼떨결에 휩쓸려 여러분들도 그 죄에 합류하는 것에 주의하시기를 미리 당부 드립니다.
“누가 그렇다더라, 누구는 그래서 못 (안) 왔다더라. 누구는 여전히 그러고 있다더라.”
하면서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항상 있는데
그 순간에 여러분들에게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각자 자신에게 들어있는 귀신을 서로 나누며, 함께 죄의 더러움에 빠지는 명절이 되면 안 됩니다.
잠 10:19
(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수군수군 거린 것이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그게 왜 또 잘못이래요?
누가 하는 말에 그저 맞장구만 치면서 대화를 나눈 것뿐인데 그것도 잘못이랍니까?
그러면 대꾸도 하지 말라 구요? 손윗사람에게 대답도 안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런 생각이 바로
‘내가 보기엔 그 정도는 죄가 아니야...’ 하면서
하나님의 눈치는 보지 않고 그저 사람의 눈치만 보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하게 된 오염이며, 교만입니다.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남을 판단하고, 험담하며, 수군거린 대로
자신도 동일하게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도 방금 한 말을 그대로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부디 명절에도 자신의 영혼을 잘 지키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잠 18:7
(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잠 14:7
(7)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에 지내거나 특별한 사정 때문에
명절에 가족들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해도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마음으로는 진실하게 사랑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복한 설 명절을 다들 건강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내 손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물건은 더러워졌어도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
미련하게 죄를 심상히 여겨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오염된 부분,
오랜 세월을 따라 자신의 일부분이 된 것 같은 죄가 혹 우리 안에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죄를 합리화시키고, 타협하여 결국 스스로 선택하여 자신에게 허용한 교활한 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일상의 습관처럼 되어버린 오래된 죄,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죄와 연합되어
그것이 나의 의지인지, 마귀의 의지인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짓고 있는 죄와
또한 죄로 이어지는 어리석은 생각들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 사람들의 말, 세상의 풍조, 시대적 여론, 군중심리,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옳다고 여기는 교만한 모습으로
감히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스스로를 살피고,
뭔가 발견 되었다면 즉시 정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복된 자가 되어
언제인지 모르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 마지막 날에
아무 후회도, 아무 미련도, 어떤 의문도 없이 활짝 웃으며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잠 24:9
(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시 34:21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시 39:1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3.01.22.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198장 정결하게 하는 샘이
1. 정결하게 하는 샘이 나의 앞에 있도다 성령께서 권고하되 죄 씻으라 하시네
2. 나 가는 길 비록 좁고 내 뜻대로 안돼도 모든 욕심 다 버리고 주만 따라 가겠네
3. 나의 마음 제단 위에 불길같이 타도다 영원토록 찬양하며 주께 영광 돌리리
4. 감사하신 주의 은혜 나를 영접하셨네 내가 지은 모든 죄와 허물 용서 하셨네
5. 성부 하나님께 영광 성자 예수께 영광 성령님께 크신 영광 돌려 보낼지어다
[후렴]
찬양하리 찬양하리 죽임당한 어린양 주께 영광 돌리어라 우리 죄를 씻어주셨네
첫댓글 아무 후회도 미련도 의문도 없는 삶.
생각만해도 아름답고 자유하고 예수님의 생명만으로 가득할 것 같아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
제 속에 심상히 여기다 못해 사랑하여 놓지 못하는, 죄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죄에 대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목사님께도 고맙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며 제자로서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최고로 복된 인생을 완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오랫동안 습관처럼 유지하여 이제는 객관적으로
보이지도 않는 죄들이 있지는 않은지 철저히 점검하고
회개하여 나중에 주님앞에 서는날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준비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힘 입어
감사하시며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