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시인의 시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
책소개
김강호 시인의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은 「다인숲 아꿈시선」 3번째 정형시선이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머니의 눈」, 「녹슨 문고리」, 「발」 등 5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김강호 시인의 시조는 시조의 정형률을 거울삼아 이기적이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 오늘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고 드러낸다.
아버지와 어머니 속에 담긴 전통 서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랑으로 넘친 세상을 그려낸다. 시인은 그동안 여러 평론가에게 전통 시조의 정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은유와 풍자 등의 비유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정적 자아의 아픔을 잘 드러내면서 시대의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노창수 평론가는 『서정의 완력 그 내공으로서 은유와 풍자』의 해설을 통해 “시적 대상의 가치는 사물을 보는 시인의 눈에 의해 좌우된다. 시인이 대상의 내밀한 서정에 천착할 때시는 비로소 탄탄히 빚어지기 마련이다.”고 하면서 김강호 시인의 시조집에서 높은 서정의 밀도를 확인해 준다.
약력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진안에서 성장.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으로 『아버지』, 『귀가 부끄러운 날』,『팽목항 편지』,
『참, 좋은 대통령』, 『군함도』
가사 시집『무주구천동 33경』을 발간.
서울문화재단,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받음.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초생달’ 수록.
/ 시인의 말
어둠이 무너질 때까지
소쩍새는 울고
먼 길을 걸어온 별들은
꽃으로 핍니다
시집에 모여 사는 시들이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전령사로 날아가면
좋겠습니다
진안 '시 샘터'에서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이면
당신 생각 지평선만큼 끝 모르게 길어서
수시로 둘둘 말아 가슴 깊이 묻어두고
남몰래 숨을 죽이며 보석이듯 꺼내 봤다
당신 생각 아파서 깊은 상처 동여맬 때
작설차는 연둣빛 울음소리로 끓고 있고
뒷산 숲 오솔길쯤엔 싸라기별 쏟아졌다
당신 생각 끊임없이 잔물결로 밀려와
갯돌 같은 이야기를 자그르르 쏟으면
내 귀는 자루가 되어 넘치도록 받았다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이면
슬픔 깊은 이별 강 목을 늘린 새가 되어
강물이 붉어지도록 피 토하며 울었다
책 등
내소사 꽃살 무늬 온몸에 둘러 입고
변산반도 파도 소리 큰 귀에 담으면서
긴 날개 접은 당신이
우울하게 서 있습니다
상처 깊은 인생 내력 깊은 몸에 가둔 채
행여 눈물 보일까 봐 등 돌리고 있지만
처마 끝 그믐 달빛도
당신 마음 읽습니다
두견새 울음소리 소복하게 쌓일 때
견뎌온 슬픔 둑이 터질 것만 같아서
당신을 소리쳐 부르자
야윈 등이 무너집니다
다시, 베아트리체
죽도록 사랑한 죄 하늘만큼 깊어서
두오모 성당의 종 온몸으로 쳐 울릴까
당신이 묻힌 그곳에 내 혼마저 포갤까
밤마다 요동치는 그리움 만져 보고
하늘나무 흔들어서 별빛 쏟아지거든
못다 한 고백을 꺼내 구절초로 피워 볼까
시혼을 터트려서 바다가 되는 그날
투명한 당신 눈물 폭포로 쏟아다오
비련에 눈 멀 것 같은 내 사랑 베아트리체
밑줄
구겨진 신문을 펴자 솟구치는 전쟁 소식
포연에 묻힌 청춘들 곤두박인 진흙 뺄엔
신음이 검붉게 터져 불길처럼 번진다
눈뜨고 읽을 수 없는 에일듯한 내력들이
덜컹이며 내달리는 협궤열차 같아서
아, 차마 읽지 못하고 먼발치만 보고 있다
피 젖은 들꽃들이 흐느끼는 드네프르강
실체적 진실마저 쓸려간 긴 강둑엔
길 잃은 영혼들 모여 천둥 울음 울고 있다
피눈물 흘러가서 흑해에 잠겨들 때
종전을 위한 기도가 줄임표로 놓이고
평화에 긋는 밑줄도 죽은 듯이 멈췄다
녹슨 문고리
어둠이 굴려내는 보름날의 굴렁쇠가
지상으로 굴러와 문에 턱, 박힐 때쯤
뎅그렁 종소리 내며 내간체로 울었다
원형의 기다림은 이미 붉게 녹슬었다
윤기 나던 고리 안에 갇혀 있던 소리들이
키 낮은 섬돌에 내려 별빛으로 피고 졌다
까마득한 날들이 줄지어 둥글어져
알 수 없는 형상으로 굳어 있는 커다란 굴레
어머니 거친 손길이 다시 오길 기다렸다
/ 해설 /
서정의 완력 그 내공으로서
은유와 풍자
노창수 I 시인·평론가
시적 대상의 가치는 사물을 보는 시인의 눈에 의해 좌우된다. 시인이 대상의 내밀한 서정에 천착할 때 시는 비로소 탄탄히 빚어지기 마련이다. 이때 시는 감동적 발현과 생태적 방향을 주도하며 운율을 타게 된다. 필자는 한 비평론에서 '서정의 완력'이란 말로 이를 강 조한 바 있다. 여기서 '완력'이란 시가 마무리에 이르도록 대상에의 서정성이 완미完美되는 걸 말한다. 김강호 시조에서 서정의 직조 능변을 보게 된 것은, 여러 매체에 발표된 그의 작품에 어떤 필이 꽂히고서이다. 그 정점이란, 감정의 혈에 놓은 침의
효험과 같은 떨림과 더불어 촉감의 끼침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건 모처럼 조우한 친구의 손처럼 따뜻한 악력으로 전해온 경험이 있다.
시조의 꽃, 이 꽃을 위해서는 튼실한 줄기와 뿌리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감상적 차원이긴 하지만 김강호의 시조 세계를 '서정의 완력'이란 준거에 따라 줄기를 세우고 작품 구조를 병립시키는 등, 미학적 탐색을 농사법과 같은 순으로 전개해 본 글이다. 김강호의 시조를 읽는 기쁨이란, 무엇보다 서정적 사유가 깊어지는 데 있다. 그건 시인의 세계상, 예컨대 단시조적 사유랄지, 또는 연시조 맥락에다 어머니를 연결하는 정서의 방식으로 서정성을 강하게 부여하는 면에서도 그렇다.
한편, 필자는 작품을 읽으며 연속 이미지를 따라가기보다는 정작 그가 미학적으로 갈아엎을 때 더 훈훈해지는 그 땅김을 느낀다. 거기 남다른 믿음을 지니게 되었다. 사실 시조단에는 대상의 겉만 보이는 얕고도 얄팍한 작품들이 많다. 차제에, 박토를 일으키는 심경深耕으로 오늘의 산성화된 시조계가 큰 수확을 예증할 옥토로 바꿀 밭갈이가 요구된다. 짐짓 그에게 기대하는 마음이란, 복토에 쓰일 부엽토를 목하 그루마다 뿌리는 중이기에 그게 필요한 작업임을 검증 비슷하게 논의해 봤다.
시조의 땅, 그 지력을 높이며 스스로의 쟁기에 힘을 싣는 김강호 식의 소 모는 기개야말로 미래시조단을 제패할 큰 완력임을 새삼 믿으며 차제에 건필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