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필 / 문학시대 / 류인혜의 책읽기 14 / 2021년
평안의 집을 짓는다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태학사, 9쇄 2005.
류인혜
《비슷한 것은 가짜다》는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 미학을 들려주는 책이라는 소개 글이 있다. 저자 정민은 연암이 쓴 산문과 시 중의 대표적인 작품을 예시하며 글마다 본인의 연구와 느낌을 다양한 예문을 들어가며 주장한다. 저자가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 1997년 9월부터 1999년 7월까지 ‘독연방필(讀燕放筆)’이란 제목 아래 2년간 연재한 글에 두 편의 글을 더하여 한 자리에 묶었다.
목차는 첫 번째 이야기 <이미지는 살아있다, 코끼리의 기호학 上記>부터 스물다섯 번째 <강물 빛은 거울 같았네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로 나뉘었다. 하나의 이야기마다 한편 혹은 두세 편의 관련된 글이 나온다. 여러 편의 글을 모아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저자의 시선이 진지하다. 책 뒤편에 부록처럼 실린 원문에는 쉰두 편의 글을 소개한다. 연암의 저술뿐만 아니라 명나라 사상가 이지(이탁오)를 비롯하여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홍길주 등의 글도 예문으로 들어 있다.
연암의 글을 읽으면 궁금해지는 것이 많다. 뚜렷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인용된 고사와 예문 등 깊은 내공이 담긴 문장들의 정체에 호기심이 생긴다. 일반 독자인 나도 그런데 연암을 집중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연암의 작품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맛이 한층 재미날 것이다. 종횡무진으로 뻗어가는 연암의 지적탐구에 저절로 감탄이 나오지 않겠는가!
연암에 관한 책을 섭렵하며 역자 혹은 저자들의 한결같은 연암의 저술에 대한 끝없는 감탄에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자신이 읽어서 감동하니 다른 사람에게도 당연히 읽히고 싶다. 연암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에 대해 공통된 경외감을 느끼고 있다. 책머리에 있는 문장, “연암은 가도 가도 난공불락이다.”라는 표현에 박수를 보낸다.
또 “연암의 글을 꼼꼼히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불분명하던 나의 사고들이 명확하게 그 방향을 얻고 추동력을 얻어나가는 느낌을 갖곤 하였다.”라는 문장은 필자도 절감했던 내용이라 반가웠다. 특히 사고들이 명확하게 방향을 찾았다는 것에 공감했다.
내용을 다 소개할 수 없으니 몇 편만 추려, 아홉 번째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때의 지금인 옛날> 嬰處稿序(영처고서)는 이덕무가 젊은 시절 지은 시문을 모은 영처고의 서문이다. 연암은 이 글을 쓰면서 동심을 끌어들인 것은 이덕무가 붙인 문집의 제목 때문이다. 영처고를 쓴 이덕무나 서문을 써준 연암이나 두 사람과 그 글을 읽어 설명하는 저자나 읽고 있는 독자들 모두 천진한 즐거움에 잠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제3권 《영처문고》1에는 <영처고자서>란 글이 실려 있다. 그는 스스로‘영처嬰處’의 변을 이렇게 적었다.
즐거워함의 지극한 것은 영아만 한 것이 없다. 그런 까닭에 그 장난치는 것은 애연(藹然)한 천진(天眞)이다. 부끄러워함의 지극한 것은 처녀만 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감춤은 순순한 진정(眞情)이다. 사람으로 문장을 좋아하여 즐거워 장난치고 부끄러워 감추기를 지극히 하는 것이 또한 나만한 이가 없다. 그런 까닭에 그 원고를 ‘영처’라 하였다 . -127쪽
저자는 이덕무의 ‘영처고’에 대한 생각을 존중해서 연암이 예로 들은 이탁오의 <동심설>에 관한 내용을 풀어간다. 문학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모범을 찾기 위해서라니 관심이 가서 꼼꼼히 읽었다.
연암의 자유롭게 열린 사고와 통하는 사람, 이지(李贄 1527~1602)는 이탁오(李卓吾)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의 이단적인 사상가로, 혹세무민(惑世誣民)했다는 비난 끝에 탄압을 받아 옥중에서 자살한 인물이다. 그는 <동심설童心說>을 바탕으로 위선적인 도학(道學)과 가식적인 문학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퍼부었다. 동심설이 당대에 워낙 큰 파장을 일으켰다기에 조금만 소개한다.
----- 동자(童子)라는 것은 사람의 처음이요, 동심이라는 것은 마음의 시작이니, 대저 마음의 처음을 어찌 잃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어찌하여 동심을 갑작스레 잃게 되는 것일까? 대개 그 처음에는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을 통해 들어와 그 마음의 주인이 됨으로써 동심을 잃고 만다. 자라서는 도리(道里)가 듣고 보는 것을 좇아 들어와 그 마음의 주인이 됨으로써 동심을 잃게 된다. 나중에 도리와 듣고 보는 것이 날마다 더욱 많아지게 되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날마다 더 그 폭이 넓어져서, 이에 아름다운 이름이 좋아할 만한 것임을 알게 되어 힘써 이름을 드날리고자 하여 동심을 잃게 되고, 아름답지 않은 이름이 추함을 알아 힘써 이를 덮어 가리려 하는 데서 동심을 잃게 된다. - 128~129쪽
나는 똑바로 서서 정면을 바라보거나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앞만 보고 걷기 위해 애쓰지만 삐딱하게 서서 건들거리거나 다른 이가 가지 않는 낯선 길에서 소리치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진다. 어른이 되어서도 철이 덜 든 사람이 아직도 동심에 젖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탁오에 관심을 가져보려다가 아직 연암과도 충분히 친밀하지 못해서 중단했다.
열세 번째 이야기 <속 빈 강정> 편에서 소개하는 《순패旬牌》는 소천암(小川菴)이 우리나라의 민요와 민속, 방언과 속기(俗技)를 모아 놓은 책이다. 종이연의 종류와 아이들의 수수께끼, 민간의 노래와 사투리에서부터, 닭 울고 개 짖는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잡다하다. 요즘의 잡학사전이라고 해야 할까. 소천암은 그런 책을 연암에게 가져왔다.
연암은 그 내용이 모두 일상의 일들뿐이라 신기한 구석은 없었지만, 갈래를 나누어 기록해 놓고 보니 보배로운 책이 되어, 그림까지 붙인다면 지금 세상의 사는 사람 모습이 그대로 뒷날까지 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연암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머무르지 않고 먼 앞날을 바라보는 안목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속 빈 강정> 편에 다른 글, 《영대정승묵映帶亭賸墨》 自序(자서)를 더 가져왔다. 예문을 먼저 읽는다.
추운 겨울날 창문을 바르려고 종이를 꺼내다가 함께 옛날 벗들에게 부치느라 써둔 편지의 초고 뭉치가 나왔다. 그래서 버리기 아까와 수습한 것이 바로 《영대정승묵》이다. 내 편지글에는 그 흔해 빠진 ‘우근진’ 하나 없으니 사람들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나무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이 추하고 더럽다고 여길 뿐, 그 말 안 들어간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다. - 186쪽
우근진(右謹陳)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편지글에서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다. 백이면 백 어김없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이 말을 쓴다. 수십 년 전 서울로 유학을 와서 할아버지께 안부 편지를 보낼 때마다 빼놓지 않고 서두에 쓴 문장과 같다고 이해한다. 그때,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는 “더운 날씨(추운 날씨)에 그간 가내 평안하신지요. 소손도 염려 덕분에 별일 없이 잘 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연암이 편지글에서 ‘우근진’을 배제한 일은 통쾌하다. 그는 그 말이 추하고 더럽다고까지 표현했다. 세상 사물이 한결같지 않은데 유독 글 쓰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금과옥조로 여겨 낯설거나 처음 보는 것이 나오면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덕분에 글을 쓰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버릴 수 있었다.
<속 빈 강정> 편에서는 또 다른, 세 편의 글을 인용했다. <여중일지삼與中一之三>은 중일이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이다. <답창애지구答蒼厓之九>는 창애 유한준(俞漢雋)에게 보내는 아홉 번째 편지이다. 예문은 다른 글 <답중옥지일答仲玉之一>에서 가져왔다.
귀에 대고 하는 말은 듣지를 말고,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며 할 얘기라면 하지를 말 일이오. 남이 알까 염려하면서 어찌 말을 하고 어찌 듣는단 말이오. 이미 말을 해 놓고 다시금 경계한다면 이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인데, 사람을 의심하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소 - 188쪽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된다. 쓸데없는 염려만 생길 뿐이다.
이렇게 내가 쓰는 글들이 속 빈 강정이 되지 않도록 연암은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준다. 이 책의 제목처럼 ‘비슷한 가짜’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세운다.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쌓은 것보다 마음에 평안의 집을 지어가는 것이 더 유익한 일이다.
스물두 번째 이야기 <한여름 밤 이야기>에서는 <夏夜讌記하야연기>와 <醉踏雲從橋記취답운종교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두 편은 연암의 산문 중에서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글이다. 저자는 이 두 편의 글이 연암과 그 벗들이 격의 없이 만나 예술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소개한다.
격식을 차리는 시대에 갓을 벗고 망건에 조끼 차림으로 아니면 훌떡 웃옷을 벗어도 상관이 없는 벗들과 만남은 즐거움의 극치이다. 조선 선비들의 일탈인 듯, 풍류인 듯 흥이 넘치는 글이다. 무더움이 사라지는 여름밤의 정취가 글 속에서 무르익는다.
연암에 관한 원고를 정리하면서 연암의 산문을 소개하는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여러 번 읽으며 책을 추천해 주었던 문 선생께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