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하는 동안 명채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강덕형과 이순남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 있던 형기도 변호사 일을 같이하며 김정원이
좌익이라는 올가미를 벗게 해 명예를 회복게 하는 소송에 동참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
“그래서 제가 순천에다가 변호사사무실을 열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여기 있는 형기도
같이 도와줄 거고요.”
“나도 고향이 고흥이지만, 시방 고향에는 아무도 없거든. 광양에 처가가 있응게 순천이나
광양 쪽으로 가서 장인·장모가 있는 가까운 곳에 이사해 살자고 우리 마누라가 졸라댄다 말이시.
그래서 나도 순천 쪽에 사무실을 내려고 생각 중이었다가 명채가 즈그 아버지 명예를
찾아주겠다고 소송을 준비하는 것을 알았다니까.”
“순남이 자네는 명채나 형기보다는 법에는 도가 텄다 아닌가?”
“명채 부친이며 덕형이 자네에 친구다는데 명예회복 시키는 일에 나도 협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명채가 순천에 변호사사무실을 차리려 하는 것은 아버지 명예 회복을 위한 소송을 준비하기
위함을 알고 이 팀장도 형기도 명채를 돕겠다고 뜻을 모았다.
“명채 즈그 아부지도 우리랑 동갑이람 말이시.”
“나도 안다니까, 명채헌테 야그를 들었담 말이시.”
“여순사건이 정리되면 정원이가 쓰고 있는 빨갱이라는 올가미를 어찌케 벗을 방법이
있기는 있는 건가?”
“지리산에 숨어 있는 빨치산들을 완전히 섬멸해야 여순사건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니까.
그런다고 해서 명채 즈그 아부지 겉은 사람을 면죄부를 주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시.
그래서 명채가 순천에 변호사사무실을 내려고 하는 이유가 아부지한테 씌워진 올가미를
벗겨 달라고 소송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여순사건이 마무리되면 김정원이 빨갱이 올가미를 벗을 수 있느냐고 이순남 변호사에게
덕형이 물었다.
지리산에 숨어 있는 빨치산들이 소탕되었다고 판단이 서야 이승만 정부에서 여순사건은
종결되었다고 발표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에서 명채 아버지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을 거 같다며 소송을 해서
머리에 쓴 빨갱이 올가미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러나 사람은 내일 벌어질 일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고 했다. 올해가 바뀌고 나면 비극의
남북전쟁이 벌어질 거라고는 여기에 있는 사람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디 시방 좌익군인들은 거의 다 진압되었고 지리산에 숨어 있는 사람들은 얼마뿐인 것
같은데 뭐 하려고 계엄령도 해제 안 하고 입산 금지도 안 푸는지 모르겠고만요.”
“무조건 입산 금지를 내레 뿔믄 안 된다니까. 산골짝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경찰들이
보호 아래 모를 심고 허야 되는데 무조건 농사를 못 짓게 해 뿡게 나쁜 놈들이라니까.”
“땔나무가 없어 산에 나무하기로 갔다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은 줄 안가?”
14연대 군인들이 대부분 진압되고 지리산에 극소수 숨었는데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고
입산 금지를 풀지 않으면서 농사도 못 짓게 하느냐고 형기와 이 팀장이 비난했다.
그러자 땔나무가 없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던 사람들도 벌을 주든지 다른 방법으로
처벌해야 할 일인데 수많은 사람이 현장에서 총살당했다고 덕형이 말했다.
“내가 얼마 전에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 여행을 했는데 내년 6월 25일 김일성이가
남침해 가꼬 전쟁이 일어나더라니까. 대구와 부산만 남고 김일성이헌테 나라를 다
뺏기고 있더라 말이시. 그런디 미국이 다른 나라들허고 같이 와 가꼬 북한군을 38선
너머 압록강까지 북한군을 몰아냈는디 중공군이 내려온게 아따 뜨거라 허고 후퇴허등만
이승만 대통령허고는 한마디 타협도 안 하고 38선에서 휴전회담을 허드라니까.”
“어이 친구가 갑자기 그거이 무신 말인가? 여순사건도 지긋지긋한데 또 큰 전쟁이 난단 말인가?”
“그런디 내가 솔직히 말하면 타임머신을 탔는지 꿈을 꿨는지는 헷갈린단 말이여!
내가 생각해도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여.”
“팀장님, 꿈이었으면 좋겠는데요! 만약에 타임머신을 타고 본 것이었다면 큰일이네요.”라고
명채가 말했다.
이순남 변호사가 타임머신 여행에서 본 것들은 정확했으니 꿈 얘기였으면 좋겠다고
형기도 명채 생각과 같았다.
“어, 저그 마당에 들어서는 사람이 영규인가 보네.”
마당으로 들어서는 김영규를 발견하고 덕형이 뛰어 내려가 맞았다.
“아이고 이 사람아, 이것이 얼마 만인가?”
“산동강샌이랑 그동안 잘 계셨어요.”
“하먼, 고생은 자네들이 해 뿌렸네, 동네에 있는 사람들은 무신 고생을 햇것능가?”
산동댁이 영산댁에 갔을 때는 동네 여자들도 없었고 김영규밖에 없었다. 김정만 이장과
영산댁은 이미 구례경찰서로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떠난 뒤였다.
김영규의 뒤를 이어 산동댁도 돌아왔다.
“영규 자네가 일단은 우리 집에 잘 왔네. 저그 텃밭 끄트머리 또랑으로 가세.”
이 팀장과 형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평상에서 서 있고 명채는 평상 아래로 내려와 김영규를 맞았다.
“영산짐샌께서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아니 이 사람 명채 아닌가?”
“평상으로 올라 가십시다. 이쪽에 있는 분이 반민특위 전남지부 팀장님이시고 저쪽에
친구는 우리와 같이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저 김영규입니다.”
“나는 이순남이고망요.”
“저는 이형기그만요.”
명채가 서로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 세 사람이 이름을 밝히고 인사를 나눴다.
이제야 말로만 듣던 영산댁의 남편인 김영규를 이 팀장과 형기는 처음 만나보게 되었다.
“김영규 씨! 여러 사람을 통해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고마라.”
“나는 개똥에 미끄러져도 쪼끔 특이하게 자빠져 뿌렀그마요.”
영규가 말하는 개똥이란 친일경찰을 뜻하는 말이다. 장영팔에게 끌려가 고난받고
쓰러졌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유독 자신만 험하게 고초를 겪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영산떡은 보지 못했고만요. 본동짐샌허고 구례경찰서로 벌써 갔다고 합디다. 그래서
영산짐샌을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고마라.”라고 산동댁이 말했다.
영규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산동댁은 집에 손님들을 두고 영산댁 집에
가 볼 시간이 늦어졌다.
술안주를 충분하게 만들어 주느라고 조금 늦게 갔을 때는 영규 혼자만 마루에 걸쳐 앉아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김영규가 돌아왔다는 소문은 마을에 큰 뉴스가 되었고 개구쟁이가 없는 집에도 빠르게 전달되었다.
산동댁이 영산댁에 갔을 때는 지금처럼 몇 마디 문답이 오가고 나면 더는 얘기는 진전이
되지 않았던지 인사만 하고 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영산댁이 자리에 없기도 할 뿐 근식이 중태에 빠져 있다고 하니 무슨 얘기를 할 기분이
아니었던지 입을 아무르고 있자 이웃 사람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김영규만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걸 산동댁이 집으로 가자 해 데리고 왔다고 했다.
“영규 자네가 잘 왔다니까. 그런디 이것이 어찌 된 건가?”
“그래서 시방 나도 머리가 무척 아픕니다.”
“우리끼리도 이야그를 많이 했다니까. 장영팔이 그놈이 죽어 뿐 거는 반가운 일이니 열 번
죽어도 괜찮은데, 근식이가 정신을 놓고 있다고 헝게 걱정이다니까. 자네는 어찌케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건지 아는가?”
“나도 시방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오늘 아침에 밥 묵을 때도 아니 정심 때가 다 될 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니까요, 그런디 갑자기 유치장에서 나가라고 헝게 갑자기 당헌 일이라서
뭐가 어찌 된 건지 갑갑하고마라.”
“참, 영규 자네는 점심밥은 묵었는가 모르겠네?”
“순천 웃장터서 돼지국밥을 먹고 왔고마라. 그런디 국밥집 아줌마가 허는 말이 바로 쪼금
전에 셋이 와서 묵고 갔다고 하더라니까요.”
“그 말이 무슨 말인가?”
“누군 누구겠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국밥 묵으로 왔다는 거이지요.”
“맞당게요, 우리가 그 집에 단골로 가는 집이 그마요.”
“내 말은 국밥집에 주인아줌마가 영규 자네한테 이 사람들 셋이 돼지국밥을 묵고 갔다고
말을 헐 필요가 있냐 이 말이라니까.”
순천경찰서에서 김영규가 석방되었을 때 입고 있던 옷이 겨울옷이라 옷을 사 입기 위해
웃장터에 갔다가 돼지국밥 간판을 눈여겨보았다고 말했다.
여관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을 때는 아내 영산댁이 좋은 요리를
먹으러 가자 했으나 영규 자신이 먹고 싶었던 돼지국밥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