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22일 우리큰딸의 결혼식을 하기전, 바깥사돈이 예식장 문제로 상의하길레 사돈에게 일임하자
대구 범어동대성당이 1951년 기존 본당 설립됬지만 중축중이라서 '계성대성당'으로 결정했다.
사돈 가족분들이 다니는 범어대성당과 함께 천주교 대구대 교구의 공동 주교좌 성당으로 1898년에 본당을 '
세워졌고 사적 제290호 지정됬고, 성당 및 계명대와 동산의료원에 이르는 골목길은 '대구의 문화재'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대구고등보통학교, 계성학교, 대구신명학교 학생들이 이 골목에서
3월 8일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바로 옆에는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이상화의 고택이 있다.
대구 최초의 가톨릭 성당인 계산성당과 대구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인 대구제일교회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본다. 교파를 떠나 계산동, 동산동 일대는 대구 그리스도 교 역사의 출발지점이다.
화재로 1901년에 전소되자 새로 고딕식 성당을 지었는데 경상도에서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성당이다. 명동
성당과 전주 전동성당을 설계한 신부가 맡았고, 외부공사나 벽돌 조달은 청나라 인부들이 했다.
이 성당은 박정희 전 대한민국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결혼식 주례를 보던
대구시장 허억(許億)이 신랑 육영수 군, 신부 박정희 양이라고 소개한 일화로 유명한 장소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가톨릭 신자는 아니다. 원래 가톨릭 성당에서 결혼식(혼인성사)을 올리려면, 신랑과 신부 중 최소한 한 쪽은 신자여야만 한다. 당시 전쟁 중이라 마땅히 결혼식 장소가 없어서 였다고 한다.
성당 결혼식은 단순히 예쁘고 멋있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가톨릭의 가르침대로 가정 생활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었고 신자도 아닌 두 사람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내가 인천 남동공단에 3번을 근무한 적이 있다. 1990년대 삼익악기 기획조정실 근무할때 '우성기계' 업무 지도차 자주 갔었고, 2000년대 YG-1그룹의 계열사인 '신세기산업'에서 파견 근무을 한 적이 있다.
2013년 중국법인이 투자한 서울 강남소재 '한울하이텍'에 입사하여 삼성전자 협력사인 '한울정보기술' 본사
(남동공단)에서 겸직 근무할 당시, 큰 딸이 결혼식이 있어서 전날에 아내와 둘째딸과 대구로 같다.
장거리 주행이라서 카센터에서 타이어와 오일 교체하고 대구 동인동에 있는 호텔에서 방을 잡고 저녁은 찜갈비 골목에서 갈비찜을 먹었고 다음날 아침은 예비 사돈과 대구에 유명한 미장원에 함께갔다.
미용사가 내 머리를 볶으면 좋을 것 같다고 자문을 해 주었는 데 아직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다. 서울에서 버스
3대를 전세를 냈는데 한차는 친척, 한차는 고향과 고교친구, 한차는 예전 직원이 탑승했다.
작은누나는 잠실에서 출발하는 친척과 친구의 차에 음식을 준비를 풍성하고 맛깔나게 하였고 강남에서 출발하는 직원 차에는 돈을 줘서 알아서 했고, 정선을 필두로 전국 방방곡곡에 하객이 몰려 왔다.
내 손님이 접수대에 줄을 서서 축의금을 내자 대구 명문 의사 집안인 사돈댁 쪽에서 놀라워 했고, 손위 처남의
장남은 고모부인 내가 뭐하 시는 분인데 구름과 같이 하객이 몰려왔느냐고 물어 보았다고 한다.
쌍둥이인 내 딸의 인물 평이 화두였는데 젊은 층에서 큰딸을 선호한 반면, 나이 든 분들은 둘째딸을 선호했다.
주인공인 신부가 신부화장 덕분인지, 이구동성으로 연예인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나 보다.
아내는 뇌종양수술 이후 치매로 걷지 못할 정도의 환자였지 만, 대학교 식품영양과와 대학교 동호회의
친구들이 예식내내 보살펴 준 덕분에 혼례를 무사히 마칠수 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한 결혼식이었다.
신부 측인데 폐백을 받았고 계산 오거리의 성당옆 매일신문사 빌딩내 피로연은 음식이 동이 날 정도였다.
포스코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부탁한 문어는 버스 3곳에 실었고 직원이 탄 버스에 양주도 실었다.
내가 차타고 가다가 휴게소에서 친척이 탄 버스안에서 감사 인사를 했는데 셋째형이 깜놀했다는데 내가 말을
잘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내가 50만원을 줘서 고향과 고교 친구들은 방이동에서 뒷풀이했다.
나는 큰누님의 장남과 내 집(신갈 새천년아파트)에서 축의금과 경비 정산을 했다. 당시 74세인 대부님이
사모님과 같이 오시고 정선 부군수인 친구 등 많은 분이 찾아 준 발걸음은 영원히 잊을수가 없다.
지난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큰딸가족이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 여행을 다녀왔고 오늘 둘째 손자가 태권도
승단 시험이 있어 격려하고 3일 전, 강릉가서 선물을 보냈지만 결혼 11주년을 축하할 계획이다.
♧https://youtu.be/f5O2kF4BeHc?si=qvYoHW_NmOXx1cPa♧
어제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 등에 따르면 20일 부터 진행된 투표에서 참여 인원 946명의
73.6%인 696명이 무기한 휴진을 반대함에 따라 다른 형태로의 투쟁 전환이 필요하다고 투표했다.
이에 따라 비대위는 무기한 휴진을 중단하기로 했다. 한편 가톨릭의대 교수들은 무기한 휴진 여부를 논의
중이어서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고 세브란스병원은 27일 휴진을 예고한 상태다.
합참은 어제 “전날 오전 11시쯤 중부전선 DMZ안에서 작업 중이던 북한군 수 명이 MDL을 20m가량 침범했다”며 “우리 군은 경고 방송과 경고사격했고, 북한군은 북상했다”면서 이달 들어와 네 번째다.
김여정은 “국경 부근에 또다시 더러운 휴지장과 물건 짝들이 널려 졌다”며 ‘오물 풍선’ 살포를 예고했다. 앞서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북으로 전단, 이동식 USB, 1달러 지폐 등을 담은 풍선 20개를 날렸다.
한국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에게 정계 주요 인물 6인의 호감 여부를 문의 결과, 오세훈(36%), 조국(35%), 이재명(33%), 한동훈(31%), 홍준표(30%), 이준석(27%) 순이었다.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 32%, 민주당 28%, 조국혁신당 9%, 개혁신당 4%였다. 여론조사공정이 지난 17-18일
조사에선 국민의힘 36. 7%, 민주당 31.2%, 조국혁신당 10.4%, 개혁신당 6.2%으로 나왔다.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각각 7주, 8주 연속 하락했고(6월 셋째주 ℓ당 휘발유 6.0원,
경유 5.7 원 전주보다 하락) 7월부터 유류세 인하율을 하향조정으로 인해 기름값이 오른다.
어제 12시 30분 마포역 1번출구 부근 '전주향'에서 대부님 (85세)과 대자맏형(78세)가 먼저 오셨고 맏형께서
대흥동 성당을 다니다 보니 마포 맛집을 많이 아시는데 김치찌개전골(7,900원)을 추천하셨다.
대부님은 등심불고기전골을 제안해 따랐고 식전 기도하고 소맥했고 맛이 있었고 이 집은 "왕갈비집'이었는데
(고교 절친이 신화건설다닐 때, 자주 온 곳) 올해 연말까지 할인하여 착한가격(1인분18,000원)이다.
대부님께서 계산을 하셨고 '카페 진미한옥'에서 맏형이 사 주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이 집은 '진미
생태탕'이었는데 초심을 잃어서 주인이 바뀌었다. 이전 전, 조박집 근처에서 장사할때는 대박집이었다.
대부님이 원주에서 선물 들어 온 살구에 귤을 접목한 과일을 주셔서 맛이 있었고 남은 것은 맏형과 나누어
가졌고, 대부님이 정선중 1회 문창순 선배(93세.시사영어학원 설립자)와 최근 만났다고 하셨다.
KT에서 2년 전, 정년퇴직한 막내 대자가 감리 일로 바쁜지 최근 불참으로 아쉬웠다. 4시간 같이 있으면서
대부님이 7월초 둘째아들이 있는 캐나다에 한달 다녀 오신다고 했고 회비는 내지않고 헤어졌다.
나는 전철안에서 찍은 사진 30장을 단톡과 레오회(레오는 대부님의 본명) 밴드에 회비 정산(분기별 전용계좌에 이자가 입금)을 올렸고, 된장찌개로 먹고 밥솥에 밥을 공기크기로 11 개 싸서 냉동 보관했다.
오늘 오후 1시 청라에서 1주일 후 회갑인 김남식 후배와 아내(18회 백옥녀 후배) 및 15회 조철재 후배와 만나며
비는 새벽에 제주와 전남을 시작으로, 충청 이남으로 확대되며, 서울 낮 기온 30도로 주말을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