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에 콩 볶듯이..
2년 전, 어머니를 그렌드 센트럴 아파트로 모셨다.
2천 세대 가운데 108동 210세대만
10년 임대 후 분양할 계획이었다.
대 단지라 편의 시설이 괜찮았다.
효용 가치가 높아 은퇴 후 보금자리로 가능하게 보였다.
층, 호수도 좋아 어머니가 이웃 어르신들의 사랑방으로 쓰셨다.
1년 넘게 살다 건설사와 임대회사 간의 불의한 사건이 터졌다.
명의만 가진 깡통 전세였다. 입주민이 술렁거렸다.
갈수록 불안감이 고조되어 대부분 재계약을 포기했다.
대책위를 구성하고 임원으로 옷깃을 여몄다.
젊은 세대가 많아 형평성을 고려해 나셨다.
매주 한번 머리를 맡 대고 해결책을 찾았다.
의사소통의 장으로 단톡 방을 열었다.
한강에 돌 던지기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임대회사에 여러 방안을 제시하였다.
심각하게 받지 않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 답을 얻지 못했다.
신뢰를 잃고 불신을 키운 게 문제였다.
회사 잇속만 챙기는 바람에 입주민이 돌아섰다.
임대 기간 2년 지나 이사 계획을 세워도
전세 보증금을 내주지 않았다.
은행 융자로 전세 사는 젊은 층의 신음 소리가 컸다.
금리 인상으로 월급의 절반이 나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갑질하는 세상이 무서웠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약자는 손해를 봤다.
애지중지 모은 재산을
전세 사기로 잃게 될 위기의식에 유언장이 단톡 방에 떴다.
애틋한 마음에 신고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막았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비싼 수업료로 인생을 배웠다.
믿을 사람 없어 자구책을 찾았다.
법조계 자문을 구하여 정부기관에 민원을 냈다.
재산권 보호 위해 임차권 등기 명령을 신청했다.
주택도시보증 공사(HUG)에 사고 접수 후 기다렸다.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보정 요구에 문지방이 닳도록 다녔다.
임대회사 대표가 바뀌어 아파트 조기 분양으로 돌아섰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놀랐다.
엄청난 광고에도 찾는 사람이 적었다.
9월 초 임대회사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9월 20일, 이사할 수 있는지요? 무엇을 믿고요?
입주자가 결정되었어요? 이사할 집 계약금 줄 수 있나요?
은행 대출 나오면 전부 줄 거예요? 난 믿을 수 없네요..’
한 달 동안 임대업자는 무소식이었다.
답답한 심정에 전화를 걸었다.
반응하지 않자 욕이 나왔다. 괘씸한 녀석들!
어느 날, 60대 초반 여인과
분양 담당자가 위층에서 엘베 타고 내려왔다.
아파트 계약 대화를 엿들었다.
직원은 1층에서 내렸다.
그 여인은 지하로 내려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말을 걸었다.
‘서른 넘은 딸과 사는 게 힘들어
분가시키려 아파트 보려 왔어요.’
현재 상황을 전하며 계약을 막았다.
‘사장님! 클 날 뻔했네요. 고맙습니다!’하고 허리를 굽혔다.
10월 13일 금요일 오후 3시 47분, 회사 직원이 날 찾았다.
낮은 소리로 응했다.
‘10월 17일(화) 집을 비워 줄 수 있어요?’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10월 20일 어머니 화순 전대 희귀성 질환 검사 날이었다.
그 후로 미뤄 달라 사정했지만 형편을 고려해 주지 않았다.
그날 아니면 은행 대출 어긋난다며 목을 조였다.
‘확실한 가요? 뭘 믿지요? 못 믿으면 사무실로 오세요.’
한걸음에 달려갔다.
계약금 영수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은행 담당자와 대출 승낙된 녹음을 들려줬다.
이사 절차를 묻자 구비 서류를 내줬다.
이틀간 이사할 빈 집을 보러 다녔다.
9월 입주한 광신 아파트 전세 가계약을 맺었다.
16일(월) 법원, 허그, 동사무소, 대출 은행..
서류 만들며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해가 저물었다.
이삿짐센터 40만 원에 계약하고
화요일 아침 7시부터 짐을 뺐다.
관리비 정산, 승강기 사용 10만 원,
하자 보수 54만 원에 화가 났다.
‘구십 넘은 노인이 쓴 방인데 너무 과하지 않느냐?
제날짜에 이사 가지 못해 대출이자 나간 손해는 어떻게 하냐?
법원과 허그 다닌 경비는?’ 모르쇠였다.
분명한 갑질이고 약자의 서러움이었다.
어머니가 냉동실에서 언 음식 떨어뜨려
바닥 흠집 낸 2곳 수리비 30만 원을 포함시켰다.
하자 보수 54만 원 뺀 전세 보증금을
대출받은 은행으로 보냈다.
입금 확인하고 점유권을 이전시켰다.
대출금과 이자 정산하고 돌려줘 무사히 받았다.
어머니에게 복구비용 말씀드렸더니
‘칼만 안 들었지 강도네!’ 하셨다.
세상에 현관 신발장 문짝
코팅 조금 벗겨진 원상 복구비용 10만 원을 매겼다.
전혀 예상치 않은 재정 손실이 커 분이 났다.
대부분 돈 받으면 끝이었다.
난 영수증을 들고 허그에 가서 취하시켰다.
말끔하게 끝맺고 나올 때 하늘의 푸른빛에 눈물을 흘렸다.
붉게 물든 노을이 아름다웠다.
장종운 변호사를 찾아
‘그동안의 손해를 임대회사에서 받을 수 있냐’ 물었다.
이사 나오면 힘들다는 말에 접었다.
65년간 산전, 수전, 공중전 겪었지만
번갯불에 콩 볶듯 닷새 만에 한 이사는 첨이다.
여동생과 지인이 입주 청소 맡고 짐을 싸 주어 가능했다.
새들이 머문 자리를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그 아파트 생각하기 싫었다.
하지만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세대 위해
경험담을 단톡에 올렸다.
반응이 뜨거웠다.
‘진짜 눈물 나네요.
심리적,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반환받아 다행이네요.
하자 보수가 생각보다 비싸 맘 아프네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당해야 하는지.. ’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한 결과라 여기네요.
먼저 나온 자로 죄송하나 끝까지 응원할게요.
갑질한 자는 자기 유익만 생각하지
겨자를 음식 삼은 자 배려하지 않았어요.
함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아래 거하다 빠져나와서
너무 부담스럽네요.
좋은 날 위해 기도하며 응원의 힘을 보탤게요. 다 힘내세요.’
2013. 10. 21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