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구마모토의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이어서 또 한 번의 충격을 받고 있다.
구마모토는 임진왜란과 관련이 있는 도시다.
임진왜란의 제1선봉장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은 한양을 점령하고 평안도로 올라가서 평양성에 주둔하고 의주로 북상하지 않고 있다가 이여송의 조명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후퇴하였으며, 제2선봉장 가등청정(가토 키요마사)은 한양을 거쳐서 함경도로 진격하여 그곳의 토호세력인 국경인의 도움으로 왕자인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아서 이 인질들을 앞세워 한양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 가등청정은 울산왜성에서 남해안의 퇴로가 막혀서 죽을 고생을 하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 말을 잡아 먹고, 물이 없어서 말의 목을 베어 그 피를 마시는 지경이 되었다.
울산왜성의 물이 마른 것은 도체찰사 류성룡이 왜성 안 우물의 근원이 되는 물줄기를 성 밖에서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가등청정은 풍신수길의 사후 귀국하여 구마모토성을 하사받았다.
구마모토성은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성으로 유명하다.
가등청정은 구마모토성을 수축하면서 울산왜성에서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의 부족함과 고통을 절감하여 구마모토성 내에 100개가 넘는 우물을 팠고, 고구마줄기를 말려서 엮어가지고 방바닥에 깔았는데 이는 비상시에 푹 삶아서 식량으로 사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가등청정은 의리가 없는 인간이었다.
풍신수길과는 친족인데 그 심복으로 있다가 풍신수길이 죽고 난 후에는 풍신수길의 반대파인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서서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로 덕천가강에게 구마모토성을 하사 받은 것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소서행장은 풍신수길의 침략에 반대하고 속이기까지 하였으나 풍신수길 사후에 그 가문의 편에 서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여 의리를 지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 이렇게 큰 재난이 닥쳐도 동정의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평소에 덕을 닦았느냐 닦지 않았느냐로 볼 수 있다.
왜구들이 한반도를 2,000년이나 괴롭혔고, 임진왜란으로 조선인 100만 명을 도륙하였으며, 조선 말기에는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국모를 죽였으며, 일제 36년에 무고한 백성의 목을 자르고 전쟁에 아녀자들을 속여서 위안부로 징집해 가서 성노리개로 삼다가 그런 일 없다고 발뺌을 하며,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우기는 인간들에게 무슨 동정을 하리오.
첫댓글 뼈속깊이 타고난 도둑의 근성이 저리게 맺혀있는 왜국의 핏줄인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한민족의 피가 이미 많이 섞여 있으리라는 것이지요,
어릴 때에 친구 하나가 일본인에게 시집가서 고생끝에 잘 살고 있는 데
아직도 민족차별이 각심하다 들었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 악연입니다.
지진이라는 숙제를 안고 사니 그렇게 독하고 어이없는 민족성으로 자리매김하는 지.
일본인들이 속마음을 감추고 겉으로는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대쪽처럼 정직한 것 처럼 보입니다. ㅜ
감사합니다.
일본열도가 결국에는 땅속에 가라앉게 될거라 ~~~~~~라 라 라
천지가 개벽하는 사건이 발생하거나 대륙판이 갈라지거나 대륙판이 충돌하면 일본이 절단나겠지요.
일본제품 안써야지 !!!
알게 모르게 일제가 많이 널부러져있고 왜색문화가 우리 문화에 잠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지만,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버려선 안 되지요....
--지진은 업보가 아닙니다 !~~~^^ .. ...공감합니다 ,..우리가 당한것을 다른나라에서 얼마나 죄악을 저질렀기에 그런일을 당하느냐고 하면 ?...~~^^
@동양역술공부 ㅎㅎ ㅎ 학창시절에 배웠듯이, 환태평양화산대(지진대)에 일본이 속해 있고 한국은 쪼금 벗어나있는, 지질학적 위치 덕분이죠~~^^*
@순하 ~~자연과학 프로그램에서 세계적인 과학자가 설명하지요...지진이 나는것은 하느님의 뜻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