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은하. 약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은하든 별이든 그 어떤 천체이든 지구에서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천체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은 인류가 눈을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한 이래 천문학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주제였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우리가 하늘을 쳐다보고 뭔가를 알 수 있는 것은 별이나 은하에서 나오는 빛 때문이다. 은하는 수많은 별들이 모인 집단이니까 결국 우리는 우주의 별에서 나오는 빛만을 볼 뿐이다. 그렇다면 별에서 나오는 빛만 가지고 어떻게 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을까?
연주 시차 측정법으로는 한계가 있어
지구에서 특정한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연주 시차 측정법’이 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1년 주기로 공전한다. 이 때문에 지구가 어떤 별을 바라보는 각도는 6개월 단위로 최대로 달라진다. 지구 공전으로 인한 별의 관측 각도 차이가 바로 연주 시차이다. 지구와 태양까지의 거리는 잘 알려져 있으니까 연주 시차만 알면 별까지의 거리는 간단한 삼각 함수 계산법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연주 시차는 천문학적인 거리 단위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특히 연주 시차 1초(1초는 1도의 각도를 3,600으로 나눈 값이다. 즉 3,600초=1도)에 해당하는 거리를 1파섹(parsec, 약자 pc)이라고 한다. 1파섹을 광년으로 환산하면 3.26광년이다. 이것은 30조 8400억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다. 그러나 간단한 연주 시차로는 매우 멀리 있는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데에 한계가 있어서 100파섹 정도의 거리까지만 믿을 만하다. 이 거리는 우리 은하의 크기(약 5만 파섹)에 비하면 너무나 짧다. 그래서 실제 별까지의 거리를 잴 때 갖가지 보조적인 방법들을 동원한다.
연주 시차 측정법. 연주시차는 지구의 공전을 이용해서 별의 거리를 측정한다.
연주시차를 처음으로 측정한 인물은 독일의 과학자 프리드리히 베셀(Friedrich Wilhelm Bessel, 1784 ~ 1846)이다.
세페이드 변광성을 이용하라
겉보기 밝기와 절대 밝기
또 다른 방법은 별빛의 밝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가까이 있는 불빛이 멀리 있는 불빛보다 더 밝게 보인다는 것을 안다. 같은 거리에서 같은 밝기였던 2개의 불빛 중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2배 먼 거리에 놓아두면 밝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즉 4분의 1로 어두워진다. 그런데 거리를 가늠하기 힘든 희미한 불빛을 보았다고 치자. 우리는 그 불빛이 원래는 아주 밝지만 워낙 멀리 있기 때문에 희미한 것인지, 아니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원래 불빛이 어두워서 희미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의 밝기, 즉 ‘겉보기 밝기’는 그 광원의 원래 밝기(이것을 ‘절대 밝기’라고 한다. 일정한 기준 거리를 정해 놓고 광원이 관측자에게서 그 거리만큼 떨어져 있을 때 얼마나 밝은가를 정하면 된다.)와 관측자와 광원 사이의 거리의 영향을 모두 받기 때문에 빛이 밝은지 어두운지만으로는 그 빛까지의 거리를 전혀 알 수 없다. 만약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 별빛의 절대 밝기를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 밝기와 겉보기 밝기를 비교해서 별이 절대 밝기의 기준이 되는 거리보다 얼마나 가까운지, 혹은 얼마나 먼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겉보기 밝기가 절대 밝기보다 9배 정도 어둡다면(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니까.) 그 별이 절대 밝기의 기준 거리보다 3배 멀리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불빛의 겉보기 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즉 거리가 2배면 밝기는 1/4이 된다. <출처: Gettyimage>
원래 밝기를 알 수 없다면 빛의 겉보기 밝기 만으로 거리를 알기는 어렵다. <출처: Gettyimage>
세페이드 변광성으로 절대 밝기를 알 수 있어
별빛의 절대 밝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1912년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의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스완 리빗(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년)이 극적으로 밝혀냈다. 그녀는 소마젤란 성운의 세페이드 변광성(Cepheid variable)들을 조사했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별빛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별이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별의 중력 수축과 별 내부의 핵융합 반응에서 생기는 열이 만드는 압력이 서로 밀고 당겨 별 자체의 크기가 변하기 때문에 밝기가 달라진다. 중력 수축이 강해지면 별은 움츠러들고 어두워진다. 이렇게 별이 움츠러들어 별 내부의 연료가 압축되면 핵융합 반응이 격렬해져 더 많은 에너지를 낸다. 이 결과로 별의 온도는 높아지고 압력도 따라서 높아져 별이 부푼다. 이때는 세페이드 변광성이 밝아진다.
헨리에타 스완 리빗(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년). 세페이드 변광성은 주기와 절대 밝기가 비례한다는 점을 밝혔다.
리빗이 밝혀낸 것은 세페이드의 밝고 어두워지는 주기와 절대 밝기 사이에 간단한 비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마젤란 성운에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들은 지구로부터 거리가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대체로 지구에서 소마젤란 성운까지의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지구에서 소마젤란 성운까지의 거리가 워낙 큰 반면, 소마젤란 성운 안에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들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는 무척 짧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리빗이 조사한 세페이드 변광성들은 지구에서 떨어진 거리가 거의 똑같다고 가정해도 무방하다. (천문학자들은 통이 크다. 참고로, 소마젤란 성운까지의 거리는 약 20만 광년, 성운의 지름은 약 7,000광년이다.)
리빗은 소마젤란 성운의 25개 세페이드 변광성을 조사해 주기가 길수록 밝기도 더 밝아진다는 점을 밝혀냈다. 지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별들의 밝기가 그 밝고 어두워지는 주기에 비례하니까, 결국 세페이드 변광성은 주기와 절대 밝기가 비례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마젤란 성운까지의 거리를 재다
리빗의 결과는 모든 세페이드 변광성들의 상대적인 거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두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를 비교하면 같은 거리에 있을 때 어느 세페이드 변광성이 더 밝은지 알 수 있다. 여기서 다시 겉보기 밝기를 비교하면 하나의 별이 다른 별보다 얼마나 가까운지 혹은 멀리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 결국 모든 세페이드 변광성들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를 잴 수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세페이드 변광성을 아무것이나 하나 골라 지구에서 떨어진 거리를 재는 일이다. 이것만 성공하면 세페이드 변광성의 변광 주기를 이용해 그 성운 안에 있는 다른 모든 세페이드 변광성들까지의 실제 거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누차 말했듯이 별까지의 거리를 직접 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변광성의 밝기와 주기 관계를 이용한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은가.
덴마크의 에나르 헤르츠스프룽(Ejnar Hertzsprung, 1873~1967년)은 리빗이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한 이듬해에 은하수에 있는 몇몇 세페이드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직접 재는 데 성공했다. 그는 대략 같은 거리에 있는 여러 개의 세페이드 변광성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평균적인 시차를 구하는 방식을 취했다. 헤르츠스프룽의 방법은 미국의 할로 섀플리(Harlow Shapley, 1885~1972년)에게로 이어졌다. 헤르츠스프룽은 자신의 관측 결과와, 리빗이 발견한 소마젤란 성운 변광성의 주기-밝기 관계를 결합해 소마젤란 성운까지의 거리를 추정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 은하 밖 외계 은하에 대한 최초의 거리 측정이었다. 소마젤란 성운은 우리 은하에서 아주 가까운 작은 은하이다.
소마젤란 은하. 약 2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출처: NASA>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는
세페이드 변광성은 허블이 자신의 법칙(허블의 법칙)을 발견하기 수년 전에 허블에게 큰 명성을 안긴 적이 있었다. 1920년대 초반까지 과학자들은 성운(星雲, nebula)의 정체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성운은 말 그대로 별들의 구름이다. 당시의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관측한 성운들이 우리 은하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리 은하는 우주의 유일한 은하라고 여겼다. 섀플리는 이 입장의 대변자격이었다. 섀플리는 윌슨 산 천문대에서 허블의 고참이었다. 당시 윌슨 산 천문대에는 섀플리와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또 다른 과학자들은 성운이 우리 은하 바깥에 멀리 떨어져 있는 외계의 새로운 은하라고 생각했다. 성운이 우리 은하의 일부인가, 아니면 새로운 은하인가 하는 논란을 끝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성운들까지의 거리를 재는 것이다. 성운들까지의 거리가 당시에 알려진 우리 은하의 크기보다 작다면 성운들은 우리 은하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성운까지의 거리가 은하의 크기보다 훨씬 크다면 성운들은 우리 은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새로운 은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블은 1923년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컸던 윌슨 산 천문대의 구경 100인치짜리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성운을 촬영했다. 허블과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섀플리는 1921년 이미 하버드 천문대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허블은 억세게 운도 좋았던지 이 사진에는 세페이드 변광성이 하나 찍혔다. 이것은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관측된 최초의 세페이드 변광성이었다. 그러니까 허블이 관측한 안드로메다 성운의 사진에 그 성운까지의 거리를 알려줄 지표가 그대로 찍힌 것이었다. 허블은 이 사진을 판독해 안드로메다 성운까지의 거리가 약 90만 광년이라고 계산해 내었다. 이 거리는 (현재 알려진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인 약 250만 광년보다는 짧긴 하지만) 우리 은하의 크기인 10만 광년보다 10배 가까이 큰 것이다. 이로써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의 한참 바깥에 있는 천체임이 밝혀졌다. 그 정도로 멀리 있으면서도 지구에서 맨눈으로 보이는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처럼 수많은 별들을 지닌 또 다른 은하임이 분명했다. 이후로 안드로메다 성운은 더 이상 ‘성운’으로 불리지 않고 안드로메다 ‘은하(galaxy)’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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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드윈 허블(Edwin Powell Hubble, 1889~1953).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쟀다. 이후 ‘허블의 법칙’으로 더 유명해졌다. <출처: Wikipedia>
2 윌슨 산 천문대의 구경 100인치 망원경 <출처: (cc) © Andrew Dunn, 1989.> |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가 가득하다
허블은 자신의 관측 결과를 1924년 12월 23일자 <뉴욕 타임스>에 발표했고 곧 엄청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섀플리는 허블의 발견을 두고 “이것은 내 우주를 파괴”한 것이라고 평했다고 하는데, 그의 말 그대로 허블은 우리 은하 안에 갇혀 있던 그때까지의 우주관을 파괴하고 우리 은하 너머 무한히 뻗은 공간에 수많은 은하가 가득한 새로운 우주관을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