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 사랑해라
<난 꽃도 핀 적이 없는데 열매를 맺었어...
열 아홉 살에서 바로 서른 살이 되어 버렸어...
일하느라, 똑똑하다는 소리 듣느라...
이름 값을 하고 돈을 버느라...
그런데 이제 꽃이 피려고 그래...
싹이 나려고 간질간질해.
피가 나게 긁어도 가라앉지를 않아...
그 녀석을 사랑하게 됐어...>
중학교 때 이혼하고 각기 제 갈길 찾아 재혼해 버린 부모님,
큰집에서 눈치보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너무 일찍 어리광부리는 것을 포기해 버렸던 여자 조이나.
자신의 성공과 나아가야 할 앞길만 바라보고
사랑 같은 것은 자기의 세상 안에 존재하지 않는 듯,
그렇게 살아왔던 이나가
요구와 명령과 지시에만 익숙해져서
내 마음을 상대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사랑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나가
병수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날 사랑해라.
내가 널 사랑한다.
그러니 너도 날 사랑해라...>
이나의 서른 몇 해를 와르르 무너트리고 만 것은
<어쩌면 그렇게 웃을 수 있냐?
나 더러 어쩌라구...>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병수의 웃음이었겠지요.
상대방의 온 마음을 휘저어 놓는,
한번도 꽃이 피어본 적이 없는 나무에게
꽃을 피워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어린 시절 포기해 버린 어리광을
마음놓고 피우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 살면서 잊어버리고 만 것들을 환기시키는,
그런 웃음.
마음이 진심으로 가득 차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사랑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다하는,
다 그 병수의 웃음 때문에...
괄호 안에 묶여 행방불명되어 버린 이나의 청춘은,
불만 없던 인생에 찾아온 회의와 함께 시작해버린 이나의 사랑은,
질주하는 스포츠카를 잡아낸 첫 시작 화면처럼,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내달리기만 하겠죠.
어느 한 순간,
저지선을 들이받고 추락하기 전 까지는...
나도 한번 그런 웃음을 짓는 남자를 내 곁에서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날 사랑해라...>
그렇게 명령의 행간을 읽으라고 말할 수 있을지....
아니,
나도 한번 그런 웃음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비록 위험할 지라도,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잊고 있던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을지...
2. 잘못해라, 용서해줄게
<마음은 그게 아닌데 몸이 지멋대로 그렇게> 되어버렸을 뿐인
병수가,
공항 한 구석에서 먼 발치에서 영채를 바라보기만 하던 병수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차마 볼 수가 없데예...>
<죽을죄를 지었어도 그래도 영채만 보고 싶어예...
영채 보고 살고 싶어예...>
그렇게 억울하다고 울부짖을 때,
고해와 속죄의 대밭 길에 길게 여운을 남기는 병수의 울음소리...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동정을 준 것을
그토록 가슴아파하고 죄스러워 하는,
천연기념물, 아니 희귀동물(?) 같은 김병수라는 남자를...
한번의 입맞춤으로 여자들도 쓰지 않을
<너, 나 책임져야지...>라는 표현을 쓰는 이 남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자신의 한가지 잘못이,
다른 것은 다 말할 수 있어도,
절대로 이것만을 말할 수 없는 잘못이라고 생각하기에,
영채가 앞으로 천가지 잘못을 해도 무조건 용서해주겠다고 하는
이 남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이,
오로지 영채라는 세상 안에서 스물 몇 해를 살아온
김병수라는 남자...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남자라는 표현만으로 충분할까요?
이 넓은 세상,
병수라는 때묻지 않은 영혼이 배워가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나는 병수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잘못, 많이많이 해라...
용서해줄게....
3. 병수가 되다
사실,
병수가 이나와 하룻밤을 보냈을 때,
순간의 유혹에 무너져,
자기 자신 조차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행동을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과연 그러한 그의 행동이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는 것인가...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더군요.
물론,
남자와 여자의 생리학적 구조적 차이에서 기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이나가
내 마음을 상대에게 알릴 때 남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을 때,
병수가 그랬죠.
<어떤 마음이 진심으로 차 오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그리고
요구, 지시, 명령에도 마음이 있습니다.>
병수는 그 때,
<날 사랑해라>는 이나의 명령의 행간을 읽었을 겁니다.
떨쳐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불끈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게 되는,
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 쓰라린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순간의 사랑도,
비록 찰나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한가지 형태라는 것을...
영채 아버지가 그랬죠.
남자고 여자고 마음이 없는데 몸을 쓰면 잡놈, 잡년이 된다고..
병수의 행위 속에 과연 마음은 하나도 없었을까요?
영채라는 자신의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보았을 때,
그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병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하염없는 이해와 동정심이
무의식적이고 생리적인 남자의 본능과 연결되었던 것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의식적 본능 속의 병수와
자신의 이성이 설정해놓은 규범의 틀을 벗어난 행동에 대한 자책으로
뒤틀린 병수....
3회에서 그런 복합적인 병수를 정면으로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 뿌듯했습니다.
역시,
래원군입니다.^^
4. 색다르다. 그러나...
요즘 드라마를 보면,
아무리 깊이 있는 주제에, 무거운 분위기의 드라마라 할지라도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시키는 요소가 가미되지 않고는
만들어지기가 힘든가 봅니다.
석관이나, 영채의 동생이 이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사실, 석관이라는 인물이 담당하는 역할은
예전 무성영화시대의 변사에 해당하는
내레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늘 상당히 영화적인 기법 속에서 등장합니다.
1회에서 병수와 영채의 일거수 일투족을 영채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보고하는 장면,
2회에서 병수와 영채가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인물로
그들의 모습을 쫓아가는 카메라인양 등장할 때,
그리고 3회에서 병수의 실종사건(?)을
울진학사 기숙생들에게 보고할 때,
드라마가 아닌 영화 속에나 등장할 만한 기법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코믹 일변도로 일관해있기 때문에,
과연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1회와 2회에서는 상당히 엇나가고 언밸런스를 이루는 느낌이었는데,
3회에서는 석관이 등장하는 씬은 잘 어울렸던 반면,
조정린양의 등장은 정말 필요 없는 사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5. 재미... 있다.
<사랑한다 말해줘>에는 확실히 여러가지 재미가 있습니다.
<이리 마주보니 얼마나 좋으냐,
너는 나의 목숨이었다.
나를 아프게 하지 마라>던
이정의 다모 패러디를 보는 가벼운 즐거움,
병수가 업혀가던 대밭길이나
이나와 병수 사이에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그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한 영채와 병수가
걸어 내려가던 지하철 역사의 계단,
지상의 밝음과 지하 역사의 어둠의 이미지를 보는 재미,
그리고 점점 물오르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병수스러운 웃음과 눈물을 연기한 래원군,
병수를 사랑하게 된 감정을 절절히 표현한
이나의 술 취한 연기와,
화장실에서 영채와 마주치고 난 후에 입가에 감도는
승리의 싸늘한 미소,
그 녀석을 사랑하게 됐다는 말을 들을 때
순간적으로 심장이 내려앉는 눈빛을 보여주던 희수,
그리고 목소리 톤을 조금 내림으로서 갈등을 내비치는데 성공한 영채...
3회,
너무 흥분한 상태로 봤는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슴이 떨릴 정도입니다.
아주 흥미진진했습니다.
더구나
<안아달라고 한 건 난데,
안아 준건 너야...
또 실수했다고 할래?> 하는 이나의 목소리와
<이제... 영채한테.... 어떻게 가요?>
병수의 퀭한 눈빛과 젖어드는 목소리....
4회는 더 흥미진진할 것 같아,
걱정이 되기까지 합니다.^^
Sigmund Groven - Lost sheep
첫댓글 저두 오늘 방송 보고나서, 잠이 안오고 왠지 들떠서 지금까지 인터넷을 사말 그림자를 찾아 내내 떠돌아다녔네요. 내일 출근에는 무리가 되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님의 글을 첨 읽는 영광을 안게 되어 기쁘네요^^ ...내일이 무척 기다려 집니다
..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어쩜 오늘 나의 마음과 이리도 같은지 전 다시한번 흥분하고 울분이 가라앉지 않네요. 병수 영채 이나...그리고..
퇴물언니의 모니터는 우리미르가족들의 큰 자부심입니다.. 오늘도 병수와의 데이트를 언니글에서 더욱 머찌게 할수 있었습니다..
아, 저도 정말 어제의 감동이 아직도 가시질 않습니다. 훌쩍거리는 병수의 모습은, 아, 정말 남자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아 한번쯤 그럴수도 있지 하면서 용서까지 해주게 되었습니다. 그 눈물에 진심이 녹아져 있기 때문에, 병수 말대로 마음이 전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해요 모니터.
속상합니다 여러가지루... 병수도...영채도...시청률도...
책상퇴물님의 모니터만 읽으면....그래도 마음이 좀 진정이 되네요...^^...싱숭생숭한 제 마음을 님의 모니터가 안정시켜 줍니다...그래도..전..병수라는 캐릭터..너무 현실감없고 설득력이 없어서...불만이 커요...조만간 캐릭터가 바뀌겠지만...그때는 공감할수 있는 인물로 그려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보다..책상퇴물님의 모니터가 더 좋네요...^^드라마 시청하다가 열받은걸 님의 모니터로 진정을 시킵니다^^.....감사드려요...훌륭한 모니터를 계속 올려주셔서......오늘...4회 모니터도 기대하고....기다리겠습니다....
오늘도 퇴물님으l 모니터 정말 잘 읽었어요^ ^ 어제으l 래원 님 연기 진짜 가슴이 아픕니다 ㅠ ㅠ오늘 4호l 모니터도 올려주실거죠? 그거 보고 다시 들마 내용 정리 할수 있을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