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장 33~47절/예수님의 십자가(290/144)
기어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대제사장의 무리들은 시기와 질투로 예수님을 죽여야 했고,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민란이 나고 자신에 대해서 좋지 않은 것을 로마 황제에게 보고를 한다면 그것이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죽여야만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서 죽어야만 했다. 이렇게 저마다 자신이 가진 목적을 따라서 예수님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너무나 조용하게 죽임을 당하였고,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버림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렇게 마감이 되는 것일까? 이것이 다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죽었다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고, 그 죽음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선포하는 장면이었다.
1.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운명을 하셨다.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메달려 있었던 것이다(33). 십자가에서 6시간을 메달려 있다는 그 고통은 그 자체로 끔찍한 고통이지만 사실 십자가에서 그 이상 메달려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때로는 몇 칠씩 메달려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째든 예수님은 6시간 메달려 있다가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래고래 자신의 고통에 신음하며 소리치지 않았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저주하며 소리쳤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다. 마가복음에는 그 일곱 마디의 말씀 중에 한 마디가 기록되어 있다(34). 예수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육신의 고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육신의 고통에 신음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것이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은 곧 인생의 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음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품에 들어가게 되었다. 바로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길을 가신 것이다. 그러기에 구원은 은혜이고, 감격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나타난 현상은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38). 성소의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어 놓고 있었다. 성소에는 매일 제사장들이 들어가서 향단에 향을 피우고, 등잔에 기름을 부었고, 떡상에 있는 떡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거룩한 곳이다. 아무나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한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때에만 들어갈 수 있엇다.
그런데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어 놓고 있는 이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그것도 아래에서 위로 찢어진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더 이상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성소가 따로 있고, 지성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온 세상에 뿌려 졌기 때문에 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구하고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로 하셨다. 이것이 가장 큰 복이다. 임마누엘, 예수님께서는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오셨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 일이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이 된 것이다.
3.예수님에 죽음을 당하시는 것을 보고 백부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신앙고백을 했다(38).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백부장은 로마의 군인이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고문하고 조롱하는 그 모든 것을 지켜 본 사람이다. 그리고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게 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든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입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이 나왔다.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진정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구원자였다는 신앙고백이다. 마치 한편 강도가 예수님께 나를 기억해 달라고 한 것처럼 그러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영적인 눈이 열린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도 자신의 백성들에게 눈을 열어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도록 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을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람의 생각과 관점을 뛰어 넘어 나타나게 되어 있다.
4.예수님이 죽으셨다. 이제 유월절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은 십자가에서 내려져 버려짐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고자 나서야 할 가족들과 제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에 전혀 생각지 못한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이 사람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42,43).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죽이도록 모의를 했는데, 그 회원중에 한 사람인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신신을 달라고 한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진실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이 임하는 것을 기다리며 바라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았고, 죽임을 당했을 때 예수님께 최소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다. 지금까지는 숨어 있었지만 더 이상은 숨어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신앙고백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을 가지고 가서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무덤에 예수님을 안장하고 장례를 치루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밀한 섭리를 볼 수 있다. 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떠났지만, 그 가운데 전혀 보이지 않은 새로운 믿음의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