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p, 338p: 스페인 사람들은 필리핀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고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이를 국왕 또한 지지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종교적 정의에는 동의할지 모르나 식민지 경영의 주도권을 교회에 넘겨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푸에블로 내에서 사용되는 식민지 재화를 본국으로 이전시키려 노력했을 것이다. 실제로 마닐라 종교회의에서는 스페인을‘교회의 도구로서의 국가로’ 규정했다. 식민지 경영에 있어서 본국과 현지 선교사 간의 마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답변: 필리핀의 원주민을 정복하고 통치체제의 개편과 잉여수탈체제 수립이 진행됐다. 스페인 본국에서는 국토회복운동이 진행되면서 군주와 교회의 유착관계가 형성됐고 국왕은 정복지의 성직자 임명권을 부여받았다. 이로인해 국왕은 본국에서보다 식민지에 대한 교회의 권한이 강력해졌다. 스페인의 식민지는 국왕의 개인영토로 취급됐기 때문에 행정기구는 수입원이 없어 왕실재정에 의존해야했다.
어거스틴 수도회를 비롯한 몇몇 선교사들은 스페인의 식민지 수탈체제를 비판하였으나 교황청과 연관되고 종교적 권한이 강해진 국왕을 견제하진 못했다. 식민지주의자들의 행태가 기독교의 복음을 실행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있었음에도 마닐라 종교화의는 선교라는 목표를 위해 스페인의 식민주의를 용인했다. 국왕 역시 선교사를 이용한 지방의 공무대행과 교회의 헹정도구화를 통해 식민지의 영구화를 꾀하였다.
결국 결론적으로 교회와 국왕은 서로를 수단이나 도구로 여기며 서로의 목적을 위해 상호협력하는 유착관계였다. 국왕 입장에서도 교회의 도구화를 위해 이를 크게 견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필리핀내 토착사제의 등장은 교회에 대한 국왕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때문에 토착 필리핀인 스페인계 혼혈을 차별했다. 본국 태생 스페인인을 페닌술라레스라 칭하고 필리핀에서 태어난 스페인인은 인술라레스라고 지칭하여 직업선택의 기회등에서 사회적으로 차별했다.
출처: 박형신, 「필리핀의 교회와 국가의 유착」, 『한국교회사학술지 제37권』, 한국교회사학회, 2014, pp.39~71.
박승우, 「스페인 식민지배하 필리핀의 토착 지배계급의 형성과정」, 『동남아시아연구 13권 1호』, 한국동남아학회, 2003, p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