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아오자 영우는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으나 아직도 몸을 움직이지는 못 한다.
다행히도 밤사이에 산짐승은 나타나지 않았다.
불빛 때문인지 아니면 6.25 전쟁 때 격전지였던 곳이라 총소리 대포 소리에 놀라서 도망했던 짐승들이 그 전쟁으로 거의 모든 나무가 불타버리고 그로 해서 아직 숲이 우거지지 않아 흩어졌던 산짐승들이 산으로 돌아오지 않은 때문인지 모르겠다.
날이 밝으며 좀 정신이 드는 영우를 본 영우의 처가 이러고 있으면 언제 사람들이 찾으러 올지 모르니 가까운 군부대에 가서라도 구원을 청하여야겠다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그동안만 정신을 차리고 참고 있으라고 영우에게 단단히 이르고 엎어지며 자빠지며 산길을 2Km 정도 달려 가까운 군부대로 갔다.
군부대 위병소에서는 피로 얼룩진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얼굴에도 여기저기 피를 묻히고 턱에는 큰 상처까지 입은 여자가 아침 새벽에 위병소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 공비나 간첩에게 피해를 입고 신고를 하려고 온 사람인 줄로 알고 바짝 긴장하였다가 영우 처의 이야기를 듣고 긴장했던 마음은 풀렸으나 사고로 사람이 크게 다쳤다니 구하여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위병소에서는 일직 사관에게 보고하고 일직 사관은 일직 장교에게 보고한다.
보고 받은 일직 장교는 급하게 일직에 관한 사후 처리를 하고 스리쿼터를 내어서 영우의 처를 싣고 사고 장소로 갔다.
부대에서 보고하고 준비하는 동안 영우의 처가 필상의 집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일직 장교는 영우의 상태를 보고 부상이 심하여 늦으면 위험하다는 판단으로 데리고 온 장병들을 시켜 영우를 들것에 실어 비탈을 올라가 차에 싣고는 영우의 처를 데리고 의정부에 있는 큰 병원으로 향했다.
필상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영우 일행이 의정부로 향하고 좀 지난 후로 필상이 포장도로에서 군작전 도로로 들어오기 바로 전에 작전도로에서 나와 우회전 한 군인 스리쿼터가 그 차였으나 필상이 예상을 못하고 스리쿼터에 탄 영우의 처도 남편을 구해 차에 싣고 병원으로 향하자 어제 사고 때부터 그때까지 초긴장했던 마음을 놓는 바람에 긴장이 풀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상처의 아픔이 덮쳐와 거의 정신을 잃어 병사들의 부축을 받고 있어 필상이 탄 차가 지나가는 것을 못 보았다.
아니 필상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온다는 것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작전도로 비탈길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으로 알아들은 필상이네는 30분가량을 작전도로 비탈길만 오르내리며 영우를 찾다 산비탈 쪽을 뒤지던 택시기사가 마침내 영우가 사고를 당한 곳을 찾았다.
사고 장소에는 부서진 마차와 심하게 다쳐서 거의 숨이 멎어 있는 소와 여기저기 흩어진 나뭇짐만 보이고 심하게 다쳤다는 영우와 영우 처는 물론 영우의 처가 군인 차를 타고 왔다고 했는데 그 군용차도 군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것인지 황당하고 답답해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군 작전도로에서 군인 한 사람이 사고현장으로 내려오며
“여기들 계시군요. 안필상씨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다.
“내가 안필상이오.”
필상이 한 발작 나서며 대답한다.
“박영우씨는 상태가 위험해서 바로 의정부 병원으로 가셨답니다.”
“어떻게 갔어? 무얼 타고?”
“우리 부대에서 보낸 스리쿼터를 타고 가셨답니다.”
“그랬군! 정말 고마운 일이야. 고마워 젊은이.”
필상이 진심으로 고마운 인사를 하고
“우리가 작전도로로 들어서기 직전에 우회전한 스리쿼터가 그 차로 군”
한 것은 택시기사이다.
“아닙니다. 저희 소대장님이 하신 일입니다.”
일직 장교가 병원으로 가던 도중 정신을 차린 영우처가 필상이 사고 장소에 와서 자기들을 찾을 것이라며 걱정하는 말을 듣고 의정부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부대 위병소에 들러 자기 부대로 전화를 해서 병사 한 사람을 사고현장에 보내 알린 것이다.
“어쨌든 고맙지. 그래 병원이 어디라 하던가?”
하는 필상의 물음에
“병원이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저희 소대장님이 어른이 걱정하실 거라며 의정부로 가는 중이라고 알려드리라고 전화하셨습니다.”
필상은 다시 군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마을로 돌아와 의정부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의정부로 가자고 택시 기사에게 부탁하여 대기를 시키고 마을 사람들에게 부서진 마차와 다친 소의 처리도 부탁했다.
그리곤 영우네가 사고 현장에서 곧바로 병원으로 향해서 입원비와 치료비 등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고 농협에 가서 돈을 구해가지고 집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필상이 처가 내달으며 영우네가 의정부 00동 00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단다.
필상은 처와 같이 택시기사를 재촉하여 의정부로 달린다.
의정부 00병원에 도착한 영우는 응급실로 들어가고 영우의 처도 응급치료를 받고 입원을 했다.
내닫는 마차 때문에 넘어지며 생긴 상처 외에 언제 무엇을 하다 생겼는지 모르는 깊은 상처도 팔다리에 여럿이 생겼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나뭇가지나 그루터기에 부딪치고 찢긴 모양이다.
영우의 부상 상태가 너무 위중해 놀란 영우의 처가 초긴장을 해서 자기의 부상을 크게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영우가 그렇게 위중하지 않았다면 영우의 처도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의사들이 그런 부상을 당한 몸 상태로 밤을 새우고 이리저리 뛰며 여태까지 버틴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필상이 병원에 도착해 보니 영우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영우의 처도 치료를 받고 여기저기 붕대를 감은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다.
영우의 처는 필상을 보자 다시 눈물을 흘리며 사고 경우를 설명하고는 부상을 당해 정신을 잃고 꼼짝도 못 하는 사람과 산속에서 하룻밤을 새우며 얼마나 무섭고 서러웠는지 울면서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으며 필상의 처는 물론 필상도 눈물을 흘린다.
필상은 영우의 처에게 이제는 병원에 왔으니 걱정말라고 위로하고 자기는 영우에게로 가보겠으니, 처에게 영우의 처를 돌보라고 했다.
영우는 자기의 처가 부대로 구원을 요청하러 가기 전 잠시 정신이 돌아왔다가 다시 정신을 잃고 이제껏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온몸과 머리까지 붕대를 감고 산소 호흡기를 끼고 침대에 누워있다.
애처로운 그 모양을 한참 바라보며 눈물짓던 필상이 담당 의사를 찾았다.
담당 의사의 말을 들으니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고 다리가 부러지고 갈비뼈도 다섯 대나 부러졌는데 무엇보다도 구르면서 돌에 부딪혀 생긴 머리의 상처가 문제고, 또 사고를 당한 후 시간이 많이 흐르는 동안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무척 위험한 상태란다.
어떻게 하든 사람을 좀 살려달라고 필상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부탁에 부탁을 했고 의사도 의례적인 말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자며 어색한 웃음을 웃는다.
필상과 같은 입원하는 중환자의 보호자들을 만나면 으레 부딪치는 어떻게든 살려달라는 요청이 의사를 거북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웃음을 거둔 의사가
“지금은 우선 수혈이 필요합니다. 환자의 혈액형이 B형인데 식구 중에 누가 B형인 사람이 없습니까?”
하고 묻는다.
필상은 자기가 B형이라며 자기의 피를 수혈하자고 한다.
영우의 아들이나 딸 중에서 같은 B형이나 O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사의 말에 필상은 급하다고 하면서 언제 애들이 오기를 기다리냐며 자기 피로 수혈을 하자고 고집한다.
필상씨는 50이 훨씬 넘은 분이라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으니 우선 자식들에게서 수혈을 하고 모자라면 필상씨에게서도 채혈하겠으니 그렇게 하자 마침 병원에 있던 피로 응급처치를 해서 그만한 시간은 벌어 놓았다고 의사가 권한다.
의사에 말에 갑작스러운 큰 사고에 정신이 없어 그때까지 아이들에게 영우의 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필상이 급히 연락을 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아버지 어머니의 부상을 보고 성도, 성국은 침통한 표정으로 할 말을 잃고 성숙은 엄마의 손을 잡고 한없이 운다.
어제만 해도 건강하던 부모님이 아버지는 온몸과 머리까지 붕대를 감고 혼수상태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워있고 어머니도 심하게 다쳐서 입원해 있으니 그들에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성수와 성호도 작은아버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모습을 보는 필상 부부의 마음에 또다시 하염없는 빗물이 흘렸다.
비탄에 빠진 아이들을 위로한 필상이 영우의 상태를 말하고 우선 수혈이 필요함을 알려 영우와 같은 B형인 성도와 성국에게서 채혈해서 영우에게 수혈했다.
수혈을 끝내고 필상이 아이들과 같이 담당 의사를 만나서 신에게 비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영우를 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벌레 씹은 표정을 하는 의사의 얼굴을 보고 쉽지 않음을 눈치챈 가족들의 마음은 달 없는 어두운 밤처럼 검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영우네 병원 생활은 영우의 처는 두 달쯤 지나서 퇴원했지만, 영우는 6개월여를 혼수상태에서 보낸다.
사고현장에서는 혼수상태에 있다가도 한 번씩 정신을 차렸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병원에 들어와서는 한 번도 정신을 돌리지 못한다.
그런 영우를 영우의 처가 아플 때는 필상의 처가 간호를 하고 상처를 회복한 후엔 영우의 처가 남편의 쾌유를 빌며 정성을 기울여 간호하며 남편도 속히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간이 언제쯤이면 남편이 정신을 차리겠느냐고 의사들에게 물었지만, 의사들은 머리의 심한 부상과 그로 인한 뇌출혈 때문인 것 같으니 기다려 보자는 대답만 한다.
그동안 성도와 성국 그리고 성숙은 물론이지만, 성수와 성호도 시간을 만들어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R.O.T.C 훈련을 받고 있는 성도는 자주 올 수가 없고 입주식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국은 방과 후 학생지도로 많은 시간을 낼 수 없고 의정부 반대쪽에 있는 금촌에서 학교를 다니는 성숙은 주말에나 시간을 낼 수 있어 뜻과 같이 병원을 올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병원에 계시는 부모님을 거의 필상 내외가 돌보아야 하는 형편이다.
필상의 부부는 친동생과 같이 생각하며 아무 불편한 내색 없이 부모님을 잘 돌보아주고 있지만 아무리 큰아버지로 큰어머니로 부르는 사이지만 아픈 부모를 필상네에게 맡겨 놓아야 하는 아이들은 필상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면서 세 아이의 그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각 다르다.
성도는 되도록 필상네를 피하는 것으로, 성국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만들어 부모 곁에서 간호하는 필상네를 찾아보고 돕는 것으로, 성숙도 틈나는 대로 필상의 처가 하는 일을 도우며 그녀에게 미안함을 표한다.
첫댓글 즐~~~~감!
잘 보고 갑니다
무혈님!
구리천리향님!
감사합니다. 기쁜 날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