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09월27일(화요일)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 13 암자 순례기
산 :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 13 암자
[통도사(通度寺)는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의 영축산에 있는 절로, 송광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사찰로 불리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佛寶寺刹)이다. 신라 때인 646년에 자장 율사가 세웠다. 자장 율사는 이 곳에서 불법을 전하는 한편, 당나라로부터 가져온 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시고 금강계단을 쌓아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득도시켰다. 이처럼 통도사는 신라의 승단을 질서 있게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통도사의 중심인 금강계단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이후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통도사 안에는 대웅전과 영산전·극락보전 등 12개의 법당이 있다. 통도사 대웅전은 그 특이한 성격을 반영하듯 동쪽에는 대웅전(大雄殿), 서쪽에는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중 금강계단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다. 대웅전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인조 23년(1645) 우운(友雲)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의 북쪽면에 접해있는 금강계단(金剛戒壇)과 불사리탑(佛舍利塔)은 대웅전 동서 양쪽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으나 평소에는 잠겨 있다. 또 보광전·감로당 외에 6개의 방, 비각·천왕문·불이문·일주문·범종각 등이 있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불탔으나 1601년과 1641년에 두 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보물 제1827호)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뒤에 지은 건물들이다. 통도사는 부처의 사리를 모셨으므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는 대웅전이 보물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奉鉢塔)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산행코스: [ 통도사 입구 매표소 ~ 무풍한송로 ~ 보타암 ~ 취운암 ~ 서운암 ~ 옥련암 ~
백련암 ~ 사명암 ~ 자장암 ~ 금수암 ~ 서축암 ~ 반야암 ~ 극락암 ~ 백운암 ~
비로암 ~ 반야암 가는 길과 극락암 가는 길의 분기점 3거리 ]
일시 : 2022년 09월 27일(화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5시간30분 소요)
06:55~11:53 “좋은사람들” 버스로
서울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17-56 번지에 있는 통도사 입구 매표소로 이동
(355km) [4시간58분 소요]
[통도사 입장요금 : 3천원]
11:53~12:16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17-56 번지에 있는 통도사 입구 매표소에서
탐방 출발하여 통도사 무풍한송로를 거쳐서
통도사의 유일한 비구니 암자인 보타암(암자1)으로 이동
[보타암(寶陀唵)은 1927년 재덕·호전 두 비구니가 창건하였고, 1935년 정운·호전 두 비구니가 증축하였다. 통도사에서 유일한 비구니 암자로서 깨끗하게 잘 가꾸어져 있다.]
12:16~12:21 통도사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암자인 취운암(암자2)으로 이동
[취운암(翠雲庵)은 보타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자로 통도사의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1650년(효종 1)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처음 창건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낙운대사(洛雲大師)가 중건하였다. 그 후 1969년 태일화상(泰日和尙)이 다시 중수하였다. 근래까지만 해도 취운암 법당 뒤쪽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으나, 지금은 통도사 부도전으로 모두 이전되었다. 취운암(翠雲庵)은 재가수행자들 중에서 특별히 불교 계율의 연구에 뜻을 지닌 자들을 율사(律師)로서 양성하는 전문교육기관인 영축총림 취운선원과 붙어 있다. 취운암은 6동 128칸에 이르는 건물을 지니고 있어, 통도사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암자이다. 통도 8경 중 2경인 취운모종(翠雲暮鐘)은 일몰 시점에 취운암의 범종 소리가 영축산의 산록과 수많은 계곡에 퍼지면서 사찰의 경내 모습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경관을 가리킨다.]
12:21~12:25 사진촬영
12:25~12:37 16만여 개의 도자 대장경을 소장한 장경각이 있는
서운암(암자3)으로 이동
[서운암(瑞雲庵)은 현 통도사 방장 성파(性坡) 스님이 주석하는 절이다. 서운암은 백련암 옥련암을 창건한 2년 뒤인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충현대사(沖絢大師)가 창건했다. 옥련암 옆으로 난 산길을 2분 가량 가면 도자기로 불상을 조성하여 모신 서운암의 삼천불전이 나온다. 아래로 내려가면 야생화가 지천이다. 서운암의 4월은 금낭화, 5월은 이팝나무'라는 말이 있다. '꽃 암자'라는 명칭도 있고 '야생화의 보고'라는 수식도 있으며, '서운암 꽃길'이라는 이름도 있다. 이처럼 많은 호칭은 2000년부터 성파스님이 암자 주위 야산에 100여 종의 꽃나무와 들꽃 1만 포기를 심기 시작하면서부터라 한다. 이후 봄부터 가을까지 때에 맞춰 복사꽃, 할미꽃, 벌개미취, 참나리, 붓꽃, 은방울꽃, 비비추, 애기똥풀, 산철쭉, 꽃창포, 하늘매발톱, 황매화, 불두화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고 진다. 금낭화가 피어나는 4월에는 야생화 축제를 열기도 한다.
서운암의 장경각(藏經閣)에는 16만여 개의 도자 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다. 대장경을 도자기로 굽는 일은 1991년부터 시작되었다. 성파스님의 제자 5명, 기술자 20여 명과 함께 밤낮 없이 경을 새기고 뜨겁게 구웠다. 숱한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2013년 장경각 불사를 마무리했다. 도자판의 크기는 가로 52㎝, 세로 25㎝, 정확한 경판의 수는 16만3천장이라고 한다.
장경각 앞마당에는 두 개의 커다란 수조가 있다. 왼쪽 수조에는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가 잠겨 있고, 오른쪽 수조에는 국보 147호인 울산 천전리 각석이 잠겨 있다. 성파 스님의 '나전옻칠 반구대 암각화' 그림은 옻칠과 나전칠기 공법을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은 더욱 생생하고 율동감 있는 작품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잊힐 수 있는 귀중한 인류문화유산을 되돌아보게 되고 특히, 수중전시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반구대 암각화의 실물과 같은 크기로 7.8 x 4.4(m)로 만들어졌고, 제작하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서운암은 '된장 암자'로 불리기도 한다. 장이 익어가는 독이 무려 5천 여 개다. 이곳에서는 1천300년 동안 스님들이 절 식구들을 위해 장을 담그던 방법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한국불교조계종의 제15대 종정(宗正)인 성파(性坡)스님이 전국을 돌며 장독을 모으고 옛 방식대로 장을 담그는 일을 주도했다. '신분제가 있었던 시절에도 왕족이나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똑같이 사용했던 게 장독이니 우리에게 이만큼 소중한 문화유산이 어디 있겠느냐'라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그렇게 독을 모으고 장을 담근 지 10년이 넘었고 지금 서운암의 재래식 된장은 양산시의 특산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12:37~12:58 사진촬영 후 간식
12:58~13:16 옥련암(암자4)으로 이동
[백련암(白蓮庵)과 밭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암자가 옥련암(玉蓮庵)이다. 쌍옥대사가 공민왕 23년(1374) 창건했다. 사찰에서 전하는 재미 있는 이야기로, 옛날 옥련암에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장군수를 매일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절의 스님들이 당하지를 못했다. 하루는 큰절의 스님들이 가만히 의논하여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 후부터는 옥련암에서 힘센 스님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13:16~13:20 사진촬영
13:20~13:30 만일염불회로 유명한 백련암(암자5)으로 이동
[백련암(白蓮庵)은 염불공덕에 의하여 살아서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죽어서는 극락에 왕생(往生)할 것을 원하여 행하는 법회인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로 유명하다. 법당의 현판은 백련사(白蓮舍)라고 하였으며, 종단 교육원장과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원산스님이 주석하는 명찰이다. 월화대사가 공민왕 23년(1374) 창건했다. 700년 된 은행나무가 우뚝 서있는 백련암은 1938년 성철스님이, 1940년 구산스님이 정진한 유서 깊은 도량이다.]
13:30~13:38 사진촬영
13:38~13:46 사명대사가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 금강계단의 부처님 진신사리를 수호했던 사명암(암자6)으로 이동
[사명암(四溟庵)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 전 1573년 창건했다. 사명대사는 이곳에 모옥(茅屋)을 짓고 수도하면서 통도사 금강계단 부처님 진신사리를 수호했다. 대사는 왜구의 침탈을 우려하여 진신사리를 2과로 나눠 스승이 계신 묘향산에 보냈는데 휴정은 묘향산 역시 안전하지 못하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을 잘 수호하여 모시라고 되돌렸다. 이에 1과는 금강계단에 다른 1과는 태백산 갈반지(葛盤地)에 모셨으니 오늘날 정암사 적멸보궁이다.
사명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대사의 법명으로 가람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은 단청의 산실로 유명하다. 국가중요문화재 단청장 제48호 혜각스님이 주석하였으며 동원스님이 스승의 뒤를 이어 단청장 맥을 잇고 있다. 무작정(無作亭)과 일승대(日昇臺)에서 바라보는 연못이 운치가 있으며 아름답다.]
13:46~13:56 사진촬영 후 간식
13:56~14:24 자장율사가 중국으로 유학가기 전 머물며 수도하던 곳으로
통도사의 모태인 자장암(암자7)으로 이동
[자장암(慈藏庵)은 통도사 17곳 암자 중 가장 특별한 지위를 갖는 암자다. 현문스님(전 통도사 주지)의 말씀에 의하면 자장암은 통도사의 모태(母胎)다.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중국으로 유학가기 전 머물며 수도하던 곳이다. 금개구리(金蛙)도 자장율사와 관련이 있다. 자장율사가 움막을 짓고 공부할 때다. 계곡에서 공양미를 씻는데 개구리 한 쌍이 늘 물을 흐려 귀찮게 했다. 개구리를 죽일 수 없어 저 멀리 갖다 놓으면 어느새 또 찾아와 자장스님은 예사 개구리가 아님을 알고 특별하게 대했다. 입가에 금테를 두른 것을 보고 이름을 금와라 짓고 ‘세세생생 자장암을 지키며 살아라’는 수기를 주었다.
금와를 둘러싼 신기한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6·25 때 통도사는 전국 각지에서 피난 온 스님들이 모여 살았다. 한 스님이 금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서 바루에 넣어 통도사 보광전에 갔는데 바루 안에 들어있어야 할 개구리가 없어졌다. 다음날 자장암에 갔더니 그대로 있었다고 전한다. 법당은 암벽을 의지하여 서향하였고 그 옆에는 1896년에 조각된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磨崖佛)이 있다. 법당 뒤쪽 암벽에는 석간수(石間水)가 나오는데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는 소위 금와공(金蛙孔)이 있어 유명하다. 통도 8경 중 4경인 자장동천(慈藏洞天)은 자장암 계곡의 소(沼)가 달빛을 받는 광경을 가리킨다.]
14:24~14:33 사진촬영
14:33~14:44 영축산의 두 신비로운 샘물인 금샘과 은샘 중 금샘에서 내려오는 물인
金水를 품고 있는 금수암(암자8)으로 이동
[금수암(金水庵)은 서축암의 윗쪽에 위치한다. 환경 전문가이며 부부불자인 이병인 이영경 교수가 최근 펴낸 <통도사 사찰약수>에 의하면 금수(金水)는 영축산의 두 신비로운 샘물 중 하나라고 한다. 영축산 백운암을 사이에 두고 금샘과 은샘이 있는데 각기 금수탕과 은수탕으로 계곡 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 중 금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금수암으로 흘러들어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10년 창건했으니 이제 100년이 넘은 사찰이다. 영축산 중심에 위치하여 큰 기가 모인 터여서 샘도 맑고 시원하다. 수행도량이어서 보통 때는 철문으로 닫혀 있으며 인적이 없어 조용하다. 정갈한 경내에는 법당과 팔각정자, 석탑, 석등 등이 배치되어 있고 마당은 아름다운 조경수들과 잔디로 장식되어 있다. 법당은 5칸 규모의 건물로서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앞에는 다양한 석물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자는 유리문으로 둘러져 있고, 정자 안에서 금수암 경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다.]
14:44~14:48 약수를 마시면서 휴식
14:48~15:00 영축총림 초대 방장이며 종정을 역임한 월하스님이 1996년 창건한
서축암(암자9)으로 이동
[서축암(西鷲庵)은 영축총림 초대 방장이며 종정을 역임한 월하스님이 1996년 창건했다. 절 입구를 들어서면 대강백 종범스님이 2011년 10월부터 매월 한 차례 25회에 걸쳐 서축암에서 했던 대중법회 법문을 엮은 설법집 <오직 한 생각> 소개가 눈길을 끈다. 경내에는 인법당((因法堂) 형식의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인법당은 법당을 따로 두지 않고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시는 것을 말하며, 서축암 입구 우측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유명한 다보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으며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다. 인법당 형식의 방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좌우에서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 모시고 있다. 다보탑이 영축산을 등지고 서 있고, 경내는 경전 어구를 적은 안내문이 줄지어 서 있다.]
15:00~15:05 사진촬영
15:05~15:21 불교학의 산실인 반야암(암자10)으로 이동
[극락암(極樂庵)을 나서 농가로 난 밭길을 따라가면 반야암(般若庵)이다. 5분 가량 걸리는 지척이다. 경내에는 법당인 반야보전, 청향당, 세진정이 들어서 있다. 반야보전(般若寶殿) 현판은 지안스님께서 썼으며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반야암은 대강백 지안스님이 1999년 창건했다. 매월 첫째주 일요일 거사림(居士林) 법회가 열린다. 퇴임한 교수 기업가 학자 등 부산 창원 등지의 나이 지긋한 남성불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노학자들이 대강백의 법문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 기울여 듣는 광경은 아름답다. 스님은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을 만들고 반야학술상을 제정해 해마다 불교학 진흥에 공이 큰 학자를 선정해 상금을 전달한다.]
15:21~15:26 사진촬영
15:26~15:41 극락암(암자11)으로 이동
[극락암(極樂庵)은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창건했으며, 창건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1758년(영조 34)에 지홍대사(智弘大師)가 중건했다. 일제강점기에서 1980년대까지 당대 최고의 선승이셨던 경봉(鏡峰)이 주석하고 선(禪) 사상을 표방하면서 가람 전체를 크게 중수하였다. 경봉이 선객(禪客)을 지도한 조실(祖室)인 삼소굴(三笑窟)이 유명하다. 여여문(如如門)의 여여(如如)는 금강경의 마지막분 '여여부동'(如如不動)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여여부동은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한결같아 여여(如如)하여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비로암(毘盧庵)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극락암(極樂庵)은 영남에서 한국불교의 중심이며 자부심이었다.
극락암의 연못 극락영지(極樂影池)는 통도사 8경 중 5경이다. 영축산의 풍경이 담긴 극락영지(極樂影池)는 봄에는 벚나무가 장식하고, 여름에는 연등이 빛나며, 가을에는 단풍이 연못에 잠기는 비경을 연출한다. 극락영지 위에 놓인 무지개 다리 홍교(虹橋)는 탐진치 삼독심에 물든 예토(穢土)에서 정토로 넘어가는 다리다. 경봉스님이 1962년 만들었다. 1955년 경봉스님이 33조사를 모신 삽삼전(卅三殿), 과거 선원 역할을 했던 정수보각, 경봉스님이 주석했던 삼소굴 등 많은 전각이 있다.]
15:41~15:52 사진촬영 후 휴식
15:52~16:32 영축산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암자로서
통도사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인 백운암(암자12)으로 이동
[영축산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암자인 백운암(白雲庵)은 신라 진성여왕 6년(892)에 조일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순조 10년(1810) 침노대사가 중건했다는 정도의 기록만 전한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의 선승(禪僧)인 만공선사(1871 ~ 1946)가 31세에 두 번 째 깨달은 곳이 바로 이 곳 백운암이다. 만공은 스승 경허선사를 따라 서산 부석사에서 범어사 계명암으로 갔다가 하안거를 마치고 통도사 백운암으로 왔다. 장마철이어서 보름 동안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게 되는데, 종소리와 더불어 사방에서 광명이 쏟아지는 광경을 맞는다. 두 번째 깨닫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백운명고(白雲鳴鼓: 백운암의 북소리)는 통도8경 중 7경이다.]
16:32~16:37 백운암 약수를 마시면서 휴식
16:37~17:05 높은 곳에 자리해 전망이 좋은 비로암(암자13)으로 이동
[비로암(毘盧庵)은 고려 충목왕 원년(1345) 영숙대사가 창건하고 선조 11년(1578) 태흠대사가 중건, 그리고 최근 원명스님이 중수했다. 높은 곳에 자리해 전망이 좋은데다 영축산이 가깝다. 경내는 꽃과 연못, 크지 않은 전각이 어울려 정원에 들어온 듯 편안하다. 특히, 조경수가 아름다운 곳이다. 북두칠성 신앙을 반영한 북극전이 있고 조선시대 탱화를 3점 보유하고 있다. 여시문(如是門)의 여시(如是)는 '이와 같다'는 뜻으로서 금강경의 첫머리인 '여시아문'(如是我聞)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이 계신 곳이라는 의미로 볼 수있다. 암자에서 서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는 통도사 8경 가운데 6경인 비로폭포(毘盧瀑布)가 있다. 비로암은 통도사 영축총림 방장(方丈)을 역임한 원명스님이 주석했던 암자이기도 하다.]
17:05~17:08 사진촬영
17:08~17:23 반야암 가는 길과 극락암 가는 길의 분기점 3거리로 이동하여
통도사 암자 순례를 마침
17:23~17:39 사전에 Call한 택시를 타고
반야암 가는 길과 극락암 가는 길의 분기점 3거리에서 출발하여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마을1길 13 번지에 있는 만남의광장으로 이동
[택시요금 : 8,900원] (이동 거리 : 6.9km) [16분 소요]
17:39~17:49 휴식
17:49~21:51 “좋은사람들” 버스로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마을1길 13 번지에 있는 만남의광장을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귀경 (355km) [4시간2분 소요]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 암자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