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사원 순례
2015년 1월 13일
탁상사원 오르는 길
오늘은 탁상사원으로 간다. 6시에 단독 건물의 널찍한 방에서 나와 중앙 건물에서 계란 후라이, 주스, 토스트 몇 쪽, 시리얼로 아침밥을 먹었다. 그리고 7시 30분 넘어서 호텔을 나섰다.
버스가 파로 공항 옆의 강변을 달린다. 아침 햇빛이 산봉우리들을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강물은 차갑게 흐른다. 멀리 골짜기에는 푸른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다. 강 건너편의 산기슭에 파로종이 위용을 드러낸다. 그 아래의 논 가운데 있는 마을에서는 아침밥을 짓는지 어느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고요하고 평화롭기 이를 데 없는 아침이다.
버스는 파로 시가의 북쪽으로 10킬로미터를 달려 어느새 탁상사원 입구에 도착했다. 장춥은 탁상 사원의 유래와 건축에 대해 설명하였다. 본래 금강승불교를 전파한 파드마삼바바가 8세기에 부탄에 왔을 때 암컷 범을 타고 와서 수행하던 바위 동굴이었다. 그래서 탁상사원을 영어로 ‘범의 둥지(Tiger’s Nest)’라고 한다.
히말라야 지역에 금강승불교를 성립시킨 파드마삼바바는 인도의 왕자 출신인데 제2의 부처로 숭앙되고 있다. 구루(Guru) 린포체라고 불리는 연화생대사(蓮華生大師), 파드마삼바바는 8가지의 화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692년 파로의 통치자 텐진 랍게(Tenzin Rabgye)가 파드마삼바바가 명상했다는 동굴 위에 부탄말로 ‘라캉(Lhakhang)’ 이라고 불리는 법당을 세웠다. 이 중심 법당 주변에 3개의 부속 법당을 더 지었다. 1951년 일부가 불탔고, 1998년에 큰 불이 나서 사원이 거의 탔다. 2000년부터 모금운동이 있었고 2005년에 복원 되었다. 현재는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외국인에게는 부탄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지만, 불자들에게 탁상 사원은 히말라야 최고의 성지이다.
곧 울창한 솔숲이 있는 탁상 사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하였다. 해발 2600미터인 이곳에서 해발 3120미터에 위치하는 절에까지 올라가는 데는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소나무들이 한 결 같이 곧게 쭉쭉 자라나 있다. 백두산 여행 중에 보았던 미인송(美人松)을 닮았다. 현장 스님의 지도로 싱그럽고 신선한 공기가 충만한 히말라야의 솔숲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향공(香功) 체조로 몸을 풀었다.
모두들 나무 지팡이를 50눌트륨 주고 사서 트렉킹에 나섰다. 정광화 법우님이 두 개의 지팡이를 사서 고맙게도 나에게 하나를 건넨다. 날씨가 꽤 쌀쌀하다. 부탄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불을 쬔다. 나도 가져간 뜨개실 모자를 쓰고 가죽 장갑까지 꼈다. 어제 발을 삐어서 걸음이 불편한 박 선생님과 현장 스님은 중턱까지 태워주는 조랑말을 탔다.
솔숲 속으로 난 등산로 길 가에는 물레방아처럼 계곡물을 이용하여 마니차를 돌리는 작은 건물이 아래위로 세 채가 있다. 룽다나 타르초가 바람을 타고 깃발에 찍힌 경전 구절이 허공으로 퍼져나가도록 하는 염원의 표현인 것처럼 물을 타고 부처님의 신성한 가르침이 바다로 흘러가라는 바람에서 만든 물레방아 마니차이다.
많은 사람들이 탁상사원으로 발걸음을 붙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간다. 중국 관광객 한 사람이 말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현장 스님이 탄 말이 뒤따라 올라온다. 마부 대신 내가 잠시 말고삐를 잡아 보았다. 현장법사를 수호하는 손오공이 된 기분이다. 유머와 박식함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시는 스님이 이번에도 현장법사 만트라를 외어 주변 사람들이 웃음이 터지게 하신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 대학생이 된 우리 집 아이들이 유치원 시절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며 따라 불렀던 주제가에 나오는 가사이다.
등산로를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몸에서 열이 나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모자와 장갑을 벗어서 배낭에 넣고 두꺼운 잠바는 허리춤에 묶었다. 오르막길에 힘들어 하는 정광화 법우님의 털모자를 받아 내 배낭에 넣고 작은 배낭은 앞으로 멨다.
출발할 때부터 검둥개들이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더니 누렁개 한 마리가 줄곧 우리를 따라 올라온다. 비행기 기내식을 먹으며 챙겨두었던 비스킷을 배낭에서 꺼내어 주었다. 햇살 아래 그림자를 끌며 남루한 가죽에 마른 체구를 하고 먹이를 바라며 사람을 앞장서서 먼지 나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개나 사람을 등에 태우고 일용할 양식을 버는 조랑말들이 어쩐지 가엾게 보인다.
한참 올라가니 쉼터가 있다. 잠시 쉬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오색 타르초가 바람에 흔들리고 멀리 바위 벼랑에 매달린 탁상 사원의 하얀 법당들이 정면에 보인다. 탁상사원 위쪽의 정상에도 암자들이 있고 룽다가 나부낀다.
노랑색 부리에 검은색 머리, 흰 색 몸통, 회색 날개, 흑백이 섞인 긴 꼬리 깃을 가진 우리나라의 어치를 닮은 새가 소나무 가지에 소리 없이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본다. 야생 동물을 사냥하지 않는 부탄의 새들은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타르초를 세운 기둥 밑에는 둑걀중고등학교(Drukgyel Higer Secondary School)에서 녹색 바탕에 흰 색 글씨로 자연자연보호 캠페인 영문을 쓴 간판을 세워놓았다. “Green is gold, Let’s Preserve it! Please don’t litter, keep clean Enjoy the Nature.(자연은 황금이다. 자연을 보호합시다.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자연을 즐깁시다.) Drukgyel H.S.S.”
산중턱에서 조랑말을 타고 오르던 사람들이 말에서 내려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갔다. 상록 침엽수인 소나무, 사이프러스 외에도 상록 활엽수들이 있고 바위나 나무줄기에는 녹색의 이끼가 붙어서 자라고 있다. 나무 가지에는 홍갈색과 회록색의 이끼 종류의 기생 식물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드리워져 있다. 원시림의 건강한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목 아래에 오색의 타르초가 많이 쳐져 있고 그 아래에 자연적으로 생긴 감실에는 주먹 크기의 작은 탑, 참이 여러 개 놓여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예전 서낭당과 같은 신앙의 공간이다. 그늘 진 곳에는 물이 배어나오고 얼어서 고드름도 맺혀 있다.
정광화 법우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랐다. 히말라야의 행복왕국, 그곳의 최고 성지로 오르는 산길은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인생의 여정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혼자서 세 따님을 훌륭하게 키워온 정광화 법우님은 비록 곁에 있지는 않지만 언제나 가족을 지켜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는 내밀한 이야기를 하셨다. 직장에서 퇴임하고 암이라는 병마를 기도와 보살행과 수행으로 잘 극복해낸 법우님은 그 얼굴이 언제나 자애롭고 밝다.
오색 타르초가 햇빛에 선명하게 걸려 있는 곳에 숙소처럼 보이는 흰 건물이 있다. 그곳에서 보니 탁상사원은 보이지 않고 머리 위의 바위 봉우리 위에 흰 색 암자가 보인다.
다시 굽이진 오르막길을 올랐다. 차를 파는 작은 레스토랑이 있고 탁상사원이 눈앞에 보인다. 900미터 높이의 바위벼랑에 제비둥지처럼 암자가 매달려 있다. 하얀색 벽면에 짙은 자주색 띠를 칠했고 황금빛 지붕이 올려진 여러 채의 법당이 위아래로 이어져 있다. 건너편에서 내가 발딛고 서 있는 이곳까지 허공에 오색의 타르초가 어릴 적 운동회 날 하늘에 걸린 만국기처럼 줄쳐져 있다. 그곳을 배경으로 현장 스님, 수경심, 정광화, 곽 선생님, 김 선생님 모녀, 진경 선생님 부부, 금당거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다시 바위절벽 밑으로 난 좁고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탁상사원에서 돌아 나오는 부탄인 가이드나 외국인들과 마주치며 ‘구수상뽀 라!’라고 인사를 건넸다. 가이드와 함께 맞은편에서 오는 금발의 외국 여인을 보고 반가워 큰 소리로 ‘헬로우!’하며 인사를 하였다. 카투만두에서 파로 공항까지 오는 비행기에서 옆 자리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브라질에서 온 그 경찰관, ‘백조 아가씨’이다.
서로가 뜻밖의 시간에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한 곳에서 만나는 것을 축하하였다. 스치는 그 순간이 놓치기 아쉬워 같이 서서 사진을 찍었다. 메일 아이디와 이름을 수첩에 적어서 주고받으며 작별하였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이사벨에게 사진을 동봉하여 편지를 보냈지만 한 해가 지나도록 아직도 답장은 오지 않고 있다.
탁상사원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곳에 폭포가 있었다. 해발 3120미터의 이곳에 높이 100미터의 물줄기가 바위를 치면서 쏟아지고 있는 것이 정말 경이로웠다. 물방울이 튀어서 폭포 아래에는 백설이 쌓여 있고 신이 난 사람들은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첫 눈이 오는 날이 공휴일이 되는 부탄에서는 축복을 위하여 눈사람을 만들어 이웃집 대문에 둔다고 한다. 햇빛이 비추어 드는 폭포 가운데에는 무지개가 서 있다.
수행자들이 험준한 바위 절벽에 암자를 짓고 머물 수 있는 것도 이렇게 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폭포 중간의 바위틈에도 암자가 있다. 발아래를 굽어보니 녹색의 물결이 굽이치는 울창한 솔숲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고 맞은 편 산이 검푸른 기운을 뿜어내며 웅장하게 서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파로의 골짜기에는 논이 촘촘하게 보이고 그 가운데에 집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이곳에 오니 금강산 구룡연 폭포를 닮은 상중하 세 폭포가 있고 폭포 곁에 바위굴이 있으며 까마득한 바위 벼랑 위와 깊은 계곡 위의 암봉에 선열암(禪悅庵)과 운주암(雲住庵), 계조암(繼祖庵), 대비암(大悲庵), 내원암(內院庵), 문수암(文殊庵), 보현암(普賢庵) 터가 있어서 동해 바다의 만경창파를 향하여 시야가 무한하게 열린 내가 사는 포항의 내연산(內延山) 삼용추(三龍湫)가 떠올랐다. 그 규모는 이곳 탁상사원의 암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웅장하지만 내연산 삼용추의 경관이 바다를 끼고 있는 점은 탁상사원이 따라올 수가 없다.
한국의 불자가 한 번은 꼭 다녀오는 기도의 성지이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한 곳이 설악산(雪嶽山) 봉정암(鳳頂庵)이다. 티베트 라사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왔던 곳이 중국의 쓰촨성 청두(成都)였다. 그곳에 보현보살이 상주하는 중국불교의 명산인 아미산(峨嵋山)이 있다. 포항교사불자회 법우들과 해발 3500미터가 넘는 아미산 정상에 있는 금정(金頂)에 서니 발아래 천길만길 낭떠러지가 있고 운무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장관이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었다. 900미터 높이의 바위 절벽 가운데에 매의 둥지처럼 얹혀 있는 여기 탁상사원은 내연산 선열암(禪悅庵)이나 설악산 봉정암이나 아미산 금정과도 닮았다. 그 신령스럽고 영험스러운 기운이 일체의 번뇌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수량이 많아서 폭포 밑에는 작은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불보살님들이 상주하는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만 같다. 오색의 타르초가 휘감아진 가파른 계단 길을 다시 올랐다. 작은 문을 지나고 사천왕을 닮은 경비원에게 모든 짐과 지팡이마저 맡겼다. 카메라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모든 악업을 내려놓고 지혜와 자비의 불심만 들고 지성소(至聖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회향 예불
안으로 들어가니 바위를 깎아 만든 가파른 계단으로 법당들이 연결되어 있다. 초르텐이 모셔진 법당에서 불전에 공양금을 올리고 버터 등잔에 불을 붙였다. 삼배를 올리고 합장하고 탑을 세 번 돌았다. 내부의 마룻바닥은 발바닥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853년에 랑첸 펠키 싱게(Langchen Pelkyi Singye) 스님이 이곳 동굴에 와서 수행하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펠키 동굴이라고 명명하였다. 스님은 네팔에서 열반에 들었는데 신비하게도 도르제 렉빠(Dorje Legpa) 신이 그 몸을 이곳으로 가져왔는데, 바로 이 탑 안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초르텐 맞은편으로 난 좁은 통로 안쪽에도 법당이 있는데, 포부 라캉이다. 이곳에 파드마삼바바가 파로의 악귀들을 굴복시킬 때 사용한 금강저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참배를 하였다.
그리고 더 안쪽으로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열두 보살을 그린 탕카와 파드마삼바바의 상을 모신 중심 법당이 있다. 그곳에서 마루바닥에 작게 뚫린 구멍 안을 들여다보니 파드마 삼바바가 수행을 한 바위굴이 밑에 있다. 사람들이 지폐를 던져 놓았다.
그곳에서 나와 다시 신발을 벋고서 나무 사다리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문 안으로 들어가니 동굴 앞은 문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파드마삼바바 이후 밀라래빠, 탕돈걀뽀, 아티샤, 직메링빠, 딜고켄체, 까르마파, 까루, 종사르켄체 등 역대 위대한 스승들이 수행하고 기도하였던 곳이다. 그 상서로운 기운이 응결된 부탄 최고의 성소이다.
탕돈걀뽀 린포체가 이곳에서 파드마삼바바가 숨겨 놓은 경전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1646년에 부탄의 국조 샵둥 나왕 남걀 린포체가 여기를 방문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서린 곳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부탄 국민이 평생에 한 번은 반드시 참배하는 성지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 딜고켄체 린포체는 일흔한 살에 이곳에서 직메 링빠의 환시(幻視)를 보고 가피를 받았으며 그의 음성을 듣기도 하였다.
다시 위로 올라가 신발을 신고서 위쪽으로 올라가 건물 사이를 빠져 나가니 작은 마당이 있고 낮은 담벽으로 절벽 가를 막아 놓았다. 그 위쪽의 법당은 파드마삼바바가 거주한다는 도리천을 구현한 법당으로 장포 펠리이다. 그곳으로는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고 돌아 나왔다. 중심 법당 위의 법당은 우겐 체모 라캉이다. 그곳에도 들어가 참배를 하였다.
내부를 참배한 일행이 동굴 위에 있는 파드마삼바바의 상을 모신 중앙의 법당으로 모였다. 창밖으로 바깥을 보니 파로 계곡의 울울창창한 솔숲이 펼쳐지고 멀리 맞은 편 산 아래의 파로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43명의 순례단 모두가 경건하게 합장하고 좁은 법당에 열 지어 섰다. 지도법사인 현장 스님께서 노래로 예불을 이끌어 주고 모두가 따라 합창하였다.
삼보님은 깨달음의 배
이 배 타고 나도 가리라.
육바라밀 돛을 올리고
중생 함께 성불하리라.
귀한 보배 보리심
자라나라 자비심
모두 행복 하소서.
모두 성불 하소서.
나무아미타불
이와 같은 수행의 공덕
원합니다. 깨달음 얻어
온갖 번뇌 사라 지거라.
생로병사 거친 파도 속
윤회바다 떠도는 중생
연꽃나라 어서 나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이어서 문 선생님의 장모님이 극락왕생하시기를 축원하였다. 거룩한 기운이 감도는 성지에서 스님과 함께 일심으로 예배와 기도를 드리니 마음 속 온갖 번뇌가 녹고 가슴 속 응어리진 삶의 상처가 치유되는가 보다. 곁의 여자 도반들이 한두 명씩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나도 몇 달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신 틱낫한 스님께서 의식을 되찾고 어서 쾌유되시기를 기도하였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니 왈칵 목이 메여왔다. 이번 순례를 회향하는 기도와 예배를 올렸다. 현장 스님께서도 울먹이며 불보살님 전에 올리는 축원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뒷줄에 서있던 시견(是見) 스님께서 기도를 마저 하셨다.
소풍
오후1시까지만 입장이 허용되는 탁상사원에서 돌아 나와 폭포를 지나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아쉬운 마음에 박 선생님 부부와 같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머리 위쪽의 허름한 암자가 있고 그 문 앞에 모자를 쓴 늙은 아니(Ani, 비구니) 한 분이 앉아서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보시를 간청한다. 처음에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사진만 촬영하였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폐 한 장을 공양 올렸다.
아래로 내려오니 해발 3000미터는 되는 지점에 따쉬(Tashi) 카페 입구가 보인다. 전망이 무척 좋은 그곳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히말라야의 장관을 보고 싶었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숲속처럼 이끼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걸려있는 원시림 사이로 난 내리막길을 한참이나 내려왔다. 서울교사불자회의 황 회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덕 스님의 포교 서원을 이어나가는 보살행을 하고 주말에는 고향, 안동으로 내려가 남편을 도와 농사도 짓는다고 한다. 무던하고 자상한 안동 여인인 황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노라면 같은 경상도 사람으로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는 탁상 카페테리아(Taktsang Cafeteria)에 도착하니 입구에 팀푸에서 우리가 묵었던 놀부링 호텔의 대표인 돌마 초소 여사가 무지개색 앞치마를 두르고서서 환한 웃음을 지어며 환영해 주었다. 나는 이 친절하고 인정 많은 분과 함께 서서 기념사진남기기를 잊지 않았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거친 음식이지만 구석에 앉아 지친 몸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시간은 오후 2시가 넘었다. 밥을 먹고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900미터 암벽 위의 탁상사원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온 허 선생님이 나이가 많은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고 사랑한다고 외쳐달라며 주문을 한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그 주문대로 몇 차례 외쳤다. 현실의 근심걱정을 놓고 낯 선 땅을 함께 여행 하면 어린이처럼 순수해지고 서로가 금방 친숙해지는가 보다.
탁상 카페테리아에서 바라보니 탁상사원 위의 검은 바위 전체가 신비롭게도 커다란 범의 얼굴을 하고 있다. 범의 눈과 귀와 입이 선명하게 보인다. 범의 아가리 안에 탁상사원이 들어 있다. 바위의 이러한 형상 때문에 파드마삼바바가 암컷 범을 타고 날아서 동굴 수행처로 왔다는 전설이 생겨나고, 탁상사원을 영어로 ‘범의 둥지(Tiger’s Nest)’라고 하였는가보다.
경전에 의하면 파드마삼바바가 7세기 경 이 지역을 지날 때, 그의 8가지 화신 중에 도르제 돌뢰(Dorje Drolo)의 모습으로 나투었다. 도르제 돌뢰는 금강분노존(金剛忿怒尊)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공포스러운 얼굴을 하고 암컷 범을 타고서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글거리는 불은 중생의 어리석음과 어리석음에서 비롯하는 탐욕과 성냄이라는 삼독심과 악업을 모조리 태워버린다. 구루 린포체의 만트라를 108번 염송하면 말법시대(末法時代) 중생의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연화생 대사의 서원이 서린 만트라를 외워본다.
‘옴 아 훔 벤자 구루 빼마 싯디 훔......’
현장 스님께서 동요 ‘과수원길’ 곡에 맞추어 부를 가사를 적은 쪽지를 황 회장님께 건네준다. 여행을 하며 풍경을 보고, 설명을 들으며, 이해하고 느끼기에도 벅찬데 이런 가사를 즉석에서 지어내고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스님은 분명 천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 회장님, 수경심, 곽 선생님이 앞에 서서 율동과 노래를 보여주고 우리는 그에 따라 합창을 하였다. 행복한 소풍길이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교사불자 성지순례
금당 현장 함께 하네
부탄 네팔 큰스님들
감로법문 베푸시네.
중생마음 내려놓고
부처마음 살라하네
최고성지 빠로탁상
연화생 대사님
자비방편 베푸시어
말세중생 제도하네.
(교사불자부탄순례가)
천봉산 대원사에
현장스님 계신다네
현장스님 계시는곳
웃음꽃이 활짝피네
목마르면 차마시고
잠이오면 쿨∼∽쿨
온종일 말이없네
흰구름 바라보며 씽긋
현장스님 사랑해요
우리들에 현장스님
(현장스님 청법가)
탁상 카페테리아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길가에 둑걀중고등학교(Drukgyel Higer Secondary School)의 선생님과 학생들이 세워놓은 자연보호 켐페인 간판이 또 보인다. “NATURE NEVER DID BETRAY A HEART THAT LOVED HER-John Keats Plastics take about 100 years to decompose, Please RECYCLE Our Pristine Environment is our Priceless Gift. Preserve it FOREVER.(플라스틱은 썩는데 약 100년이 걸립니다. 재활용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소중한 환경은 우리의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입니다. 자연을 영원히 보존합시다.) Drukgyel H.S.S.” 26세에 요절한 영국의 2세대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의 말을 부탄의 숲속에서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롭다.
여행 뒤에 찾아보니, “무지개를 보노라면 가슴 뛰노니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한 시, ‘무지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가 “Nature never did betray the heart that loved her.(자연은 자연을 사랑한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또 다시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다. 탁상사원에서 스님으로부터 손바닥에 받아먹은 정병의 그 녹색 정수가 세균 덩어리인가보다. 화장실은 보이지 않고 주차장은 먼데, 속에서는 자꾸 급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는 수 없이 일행들과 헤어져 등산로에서 멀리 벗어난 숲속으로 몸을 숨기고 바지를 내렸다. 푹신하게 쌓인 깔비(솔가리)가 배설물을 감싸버린다. 탁상의 솔숲에서 내뿜는 상쾌한 공기가 허파 깊숙이 들어온다.
솔숲 속 주차장으로 내려와 올라갈 때 돈 주고 샀던 나무 지팡이를 재활용하라고 상인에게 돌려주니 고맙다고 한다. 검둥개와 단발머리를 한 서너 살 먹은 여자아이에게 배낭에 챙겨두었던 비스킷을 꺼내어 건넸다. 구걸도 하지 않고 사 먹을 돈도 없는 소녀는 낯선 사람이 건네는 과자를 아무런 경계심도 부끄러움도 없이 받아서 담담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다. 숲속 오두막 카페 앞에서 기우는 햇살을 받으며 김 선생님 모녀가 벤치에 다정히 앉아서 남모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