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龍) 시리즈 8 >
내 고향 부산
중구 광복동(光復洞)에는
용두산(龍頭山)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공원 입구
용두산공원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이렇게 적혀 있다.
옛부터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현산(松峴山) 이라 불렀고,
초량소산(草梁小山)이라고도 하였다.
산의 형세가 용(龍)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바다를
향해 뻗어가는
용(龍)의 머리를 두고
용두산龍頭山)이라고 하여
1954년
대화재로 재조성 되어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호(號)를 따서
우남(雩南) 공원으로
이름을 개명 하였다가
1960년
4·19 혁명 후
다시 용두산공원으로
환원되었다.
자! 결론부터...
공원이 있는 이 산 이름
용두산(龍頭山)은
백두대간이고 뭐고
아무 상관이 없다.
용두산(龍頭山)은
19세기
그 산기슭에 살던
바로
그 왜구(倭寇)인
일본 대마도 사람들이
지은 이름이고,
일본인들이
천황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1915. 11월 10일
공원 공사가 시작되어
1916. 10월 15일
공원 완공,
1944년 1월 8일
조선총독부 고시 제14호에 의해
공원으로
공식 지정 되었다.
그리고,
1840년
대동여지도 부산 부분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초량왜관(草梁倭館) 과
북서쪽
송현산은 보이지만
용두산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용두산은
어디서에서 나온 말 일까?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따르면
1876년 일본
후쿠시마현 출신 한학자
이시바타 사다(石幡貞)가 쓴
조선귀호여록(朝鮮歸好餘錄)에
용대(龍臺)에서 얻은
산 이름 두개.
하나는 용두(龍頭) 이고
하나는 용미(龍尾) 이라며
용두산이
처음 등장하는데...
여기 용대(龍臺)는
아마 지금의
오륙도(五六島)인 듯하고
용두산(龍頭山)은
육지 속에 있고
용미산(龍尾山)은
바다로 돌출돼 있다.
이름만 보면,
용(龍)의 머리는 육지에
용(龍)의 꼬리는 바다에...
즉,
용(龍)이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산세가
용(龍) 모양이여서
침범해 오는 왜구들을
삼켜 버릴 기상이라고 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은
왜곡을 넘어 날조다.
그 뿐만 아니다.
일본인들이
용두산공원 공사 당시
신사(神社)도
함께 지었는데
그 변재신사(辨才神社)에는
변재천(辨才天) 이라는
재물의 신이 있다.
변재천은
용왕과 결혼한 여신(女神)이라
용(龍)이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도처에 있는
변재천 신사 주변에는
용(龍)과 관련된
지명이 자주 나오고
물과 관련된 자연재해를
변재천과 친한
용(龍)이 막아 줄 수 있다는
일본의 전설이다.
이 정도 이면
한마디로,
용두산 공원은
일제 잔재가 아니라
총체적인
일본 문화가 분명하다.
자!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승만 대통령의 호(號)를 딴
우남(雩南) 공원을
독재자가
명명한 이름이라며
폐기를 하였는데,
식민 시대
용두산 공원 이름으로
다시 되돌려
놓은 꼴이 되었고,
또,
알고 보니
용두산
이름 자체도
19세기 어느 시점
일본인이 지은 이름이고
용두산 공원도
식민 시대에 만든 공원이며,
그것도 부족하여
거기에다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용(龍)을
오히려,
산의 형세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왜구를 격퇴하는 용(龍) 이라고
창작까지 덧붙였으니
세상에
이런 코메디가 또 있겠는가?
이것을,
일본인들이 보고 있다면
무엇이라 말 할지
참으로
한심하고 한심하다.
참고로,
심볼마크(symbolmark)가
두꺼비인
참이슬 '진로(眞露)'
소주의 창업자는
1903년 평안남도 용강 출생
1985년 83세로 세상을 떠난
우천(友泉)
장학엽(張學燁) 선생이다.
1923년 진남포(鎭南浦)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황해도 곡산(谷山)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였으나
육영의 꿈을 위하여
2년 교원 생활을 청산하며
1924년
진천(眞泉) 양조상회를 설립,
상표를
‘진로(眞露)’로 정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진로(眞露)의 효시(嚆矢)이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하여
1952년 구포양조회사를 설립,
소주 ‘낙동강’을 생산
1954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공장을 세우고
서광주조회사를 설립,
제품명을
또 다시
‘진로’로 하면서
본격적인 생산 돌입과
꾸준한 기술 개발로
소주업계의 확실한
선두 주자의 기반을 다진 후
식품업, 의류업과
유리 공업까지 확장 하였다.
특히,
내 고향 부산을
남다르게 생각한 1972년에는
도원관광(道苑觀光)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용두산(龍頭山) 공원 내
부산의 최고 명물인
용두산 타워를 건립한 후
부산시에
기증(寄贈) 하였고,
태종대(太宗臺) 해상 공원까지
개발 하였다.
그런데,
그의 둘째 아들
2대 경영주 장진호 회장의
맥주 카스, 건설업, 유통업 등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결국,
2005년 7월 하이트 맥주에
인수되는 불운과
2015년 4월
그의 나이 63세
국적과 이름까지 변경한
타국 중국에서
싸늘한 시신(屍身)으로
발견이 되는데
선친(先親)께서 피와 땀으로
이루어 놓은 유업(遺業)을
졸지(猝地)에
홀딱 까먹었으니...
역시,
순하고 어질게
결대로 살아야 하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되는데
갈잎을 먹었으니
어찌 탈이 안나겠는가...
휴...
오늘도 이래저래
또, 밤을 세우나 보다.
甲辰年
一月 第二十天
寓居泗川 灑落堂
律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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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龍)의 머리
律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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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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