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비관적 세계관은 여러 종교의 바탕이 되며 쇼펜하우어의 철학의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의 진실성을 깨닫고자 한다면 폴스메탈 한 곡을 들으면 간단하겠지만, 그것은 무한한 절망의 심연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반면 Demigod의 Slumber of Sullen Eyes는 비관적인 관점을 인정하지만 그 상태를 초월하고자 하는 시도도 담고 있다. 특유의 비관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굉장히 자연스러운 리프 연결, 정교한 텍스쳐, 그리고 명료하면서도 복잡한 구조를 통해 최고의 앨범 중 하나를 만들어낸다.
비관적 느낌은 반음계적이지만 선명한 어두운 멜로디들을 통해 표현된다. 가장 강렬하게는 리드와 솔로들에서 나타나고, 그 외에도 비교적 덜 명상적이고 더 공격적인 트레몰로 리프들에도 이러한 멜로디가 내제되어있긴 하다. 기타 솔로들은 빠르지 않으면서 선명한 멜로디를 갖추고 있고, 길지는 않지만 As I Behold I Despise에서는 중심부에서 템포 변화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Dead Soul과 Embrace the Darkness/Blood of the Perished에서는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용도로 중요하게 사용된다. As I Behold I Despise의 중반부터 계속 나오는 거대한 코드 3개나 Slumber of Sullen Eyes의 두 번째 리프들 등은 화성적으로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항상 이런 식으로만 나가지는 않고,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이거나 Dead Soul의 첫 리프나 As I Behold I Despise의 세 번째 리프와 같이 강인하게 전진하기도 하는데, 그렇지만 각 곡, 그리고 앨범 전체는 비관적 분위기를 핵심 및 목표로 한다.
리프 연결이 극도로 자연스럽다는 것도 중요한 특성이다. 여러 리프들이 하나의 흐름 속에 종속되는 느낌이라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표현하며, 유연하고 힘들이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명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The Forlorn에서는 트레몰로 리프와 리듬이 보다 강조된 두 번째 리프가 각각 두 번씩 반복되며 이어지는데 (또한 두번째 리프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흐름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첫 리프 및 두 번째 리프의 첫 부분에는 종결성이 없고 그 뒷부분에서야 마무리를 지어주기 때문에 이것이 사실상 하나의 굉장히 긴 프레이즈를 형성한다. 타이틀 트랙의 첫 리프에서 두 번째 리프로 넘어가는 부분 또한 이러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게다가 드러밍이 튀지 않고 상당히 일정하여 일부분에선 앰비언트적인 느낌까지 줘서, 너무 밀어버리는데 치중하지 않고 웅장하게 펼쳐지는 성격에 도움을 주며 동시에 명상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때로는 드러밍이 어느 정도 복잡해지기도 하는데, 이것이 As I Behold I Despise의 느린 리프에서와 같이 고대 부족적인 느낌을 취하여 전체적 분위기를 강화한다.
또한 괄목한 점이 있으니, 바로 데스메탈에서 가장 정교한 수준의 텍스쳐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Slumber of Sullen Eyes 초반부처럼 다양한 형태의 리프를 겹치거나 The Forlorn 초반의 트레몰로 리프가 후반에 재등장할 때처럼 트레몰로로 나오면서 고음에서 약간 다른 멜로디를 잠깐 동시에 보여주는 등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기본적으로 거칠고 육중한 톤에 신비함을 부여한다. 때로는 기타 리드들이 대위법적으로 나오기도 하며, 같은 멜로디를 트레몰로로 저음에서 연주하고서 리드 기타로 보다 고음에서 한 음씩 연주하기도 한다 (이럴 때 더욱 날카롭게 멜로디를 약간 바꾸기도 한다). Dead Soul의 중반에서 베이스만 남은 뒤에 (이것이 강한 대조성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선행하는 기타 리프의 마지막 음표와 이어지는 베이스 리프의 첫 음표가 겹쳐져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기타 라인들이 위에 겹쳐서 등장하며 쌓아 올려지는 것이나 Tears of God의 무거운 코러스 뒤에 민첩한 메인 리프로 재진입할 때 첫 번째에는 기타 없이 베이스만으로 연주되고 그 뒤에 기타가 진입하는 부분, 베이스 라인이 중심이 되며 기타는 잠깐씩만 나오는 Fear Obscures From Within의 인트로 등 베이스가 텍스쳐상 중요한 레이어 하나로 사용되는 부분들도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텍스쳐를 보이는 곡은 타이틀 트랙이자 앨범 중간에 위치하며 가장 긴 시간을 갖는 Slumber of Sullen Eyes다. 덩굴들이 복잡하게 얽힌 정글을 연상시킬만한 텍스쳐를 보여준다. 우선 인트로에서 어둡게 동기가 제시된 뒤 바로 배경에 리드기타가 트레몰로로 배경에 깔리고, 한번 핀치 하모닉스를 날려준 뒤에 왼쪽 채널에서 더욱 큰 소리로 트레몰로 리드 기타가 등장한다. 두 번째 리프로 넘어간 뒤에 다시 첫 동기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트레몰로로 연주되며 등장할 때 마다 계속해서 음정을 바꿔서 훨씬 공격적이고 분노에 가득 찬 느낌을 준다. 그 뒤엔 이 동기가 처음 나올 때와 같이 연주되고, 거기에서 두번째 리프로 넘어가는 대신 그것의 변형된, 긴장감을 더 강하게 유지하는 형태의 리프로 넘어가고, 거기에서 첫 동기의 격렬한 버젼이 다시 나온다. 기존 버젼으로 돌아갈 때에는 복잡한 리드가 배경에 대위법적으로 펼쳐지며, 이것이 곧 처음과 같은 트레몰로로 바뀌고서 두 번째 리프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두번째 리프가 마침내 재등장할 때는 코드들 위로 리드 기타 멜로디가 겹쳐지고, 그 뒤에 새로운 리드 멜로디로 진입한다. 여기에선 다른 리드가 대위법적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하고, 반복 중에 한번을 쉬면서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 뒤에 나오는 마지막 리프는 역시 여러 레이어를 쌓아 올라가며 변화한다. 리드 기타의 활용을 통해 풍성한 텍스쳐를 형성하는 곡이며, 첫 동기를 변형해서 계속해서 다른 느낌을 주며 사용하고, 이것이 두번째 동기로 넘어가려는 성격을 이용하여 첫 동기의 재등장 뒤에는 두 번째 동기의 등장을 계속해서 지연시키면서 강한 추진력을 얻어내는 전반부, 그리고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크게 두 가지 주제의 반복을 통해 마무리를 짓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이것을 모두 한번의 붓 터치로 그려내는 듯한 쉴 틈 없는 전개를 갖춘 구조를 취한다.
다른 곡들은 길이는 더 짧지만 대체로 구조적으로는 되려 대조적인 섹션이 더 많이 있다. 타이틀 트랙을 중심으로 앨범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 곡들이 더 독특하고 변화무쌍한 구조를 취하고 개성도 강하다.
As I Behold I Despise는 빠른 리프들이 연속되다가 음침한 멜로디가 나오고, 그것이 트레몰로로 연주되면서 후반부 중심 동기로 돌진한다. 세 개의 커다란 코드로 이루어진 동기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와중에 리드 멜로디가 겹쳐지고서는 기타 솔로로 이어지고, 그 뒤에는 보다 강렬한 리듬의 새로운 리프가 잠시 끊어주지만 다시 중심 동기로 돌아와서 리드 기타가 새로운 멜로디를 겹쳐서 연주하면서 끝난다. 목표 지점(느린 후반부 동기)을 향해 가고서 도달한 뒤에 천천히 그 동기에서 모든 것을 뽑아내며 끝내는 방식이다. Dead Soul은 미드템포에서 시작하여 점차 빨라지다가 느려진 뒤에 베이스부터 점점 더 고음의 기타 멜로디가 들어오면서 솟아오르고서 첫 리프의 변주된 버젼이 등장하여 통일성을 부여한다. 여기서는 새로운 빠른 리프와 느린 리프 뒤에 기타 솔로로 마무리된다. 사실상 반복이 없지만 중간에 첫 리프의 변형된 것이 재등장하여 약간의 대칭성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다.
The Forlorn은 앞서 언급한 거대한 리프 세트가 등장하는 곡으로, 첫 리프 진입 직전 곡을 시작하는 음표 4개까지 포함해서 첫 번째 프레이즈 하나가 굉장히 길게 이어지며, 여기서 트레몰로 부분은 거대한 주문을 길게 외우는 것과 같고 그 뒤의 리듬은 주문의 발동으로 인한 파괴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 뒤에 나오는 전개가 또한 예술이다. 트레몰로 부분의 음정 변화를 더 빨리 하고, 두 번째 리프의 마지막 동기와 연결해서 더 빠르고 공격적인 리프를 만들어낸다. 이 뒤에 처음의 긴 리프가 재등장할 때는 트레몰로 부분이 두 번 나오는 대신 세 번 나와서 더욱 뜸을 들여주고, 그걸 이어받는 동기의 마지막 음표를 축으로 해서 새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리프를 만들어내고, 이 리프는 다시 그 강한 리듬의 동기로 끝나게 된다. 여기서 새로운 트레몰로 리프들이 등장하며 (두 번째 리프가 시작하기 전에는 맨 처음에 나왔던 4개의 음표가 등장한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첫 주제의 빠른 형태로 넘어가며 곡을 마친다. 굉장히 독특한 형태의 리프 연결을 보여주면서 동기의 통일성도 강하고 안정감 있으면서도 발전하는 구조를 가진 곡으로 이 앨범에서 타이틀 트랙 다음으로 뛰어나다고 할만하다.
시작부터 빠르게 몰아 부치던 다른 곡들과 달리 Tears of God은 비교적 조용하고 느리게 시작한다. 곡이 전체적으로 더 느린 편이기도 하다. 육중한 리프로 (이후에 코러스 리프로 사용된다) 넘어가는데, 여기에서 처음에는 기타 멜로디 자리에 키보드를 기습적으로 넣어버리기도 한다. 이후에 가장 중심적인, 그렇게 빠르진 않지만 민첩하게 거미줄 치듯이 움직이는 리프가 나온다. 앞서 나온 육중한 리프가 일종의 코러스와 같이 사용된 뒤 메인 리프가 재등장하는데, 이게 다시 코러스로 이어지는 대신 조성을 바꿔서 연주되며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비교적 빠른 리프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서는, 기타 솔로를 통해 점차 느려지며, 둠 템포까지 내려가진 않지만 상당히 느린 멜로디가 음정을 바꿔가며 반복되는 부분으로 진입한다. 팜뮤트 코드들과 리드 기타를 통해 연주되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 뒤엔 메인 리프가 한번만 등장하고 무거운 코러스로 넘어가더니 다시 메인 리프가 등장하며, 리드기타가 살짝 나와줬다가 같은 리프를 연주하고 드럼 비트가 더욱 강해지면서 곡을 끝으로 이끈다. 앨범 전체에서 가장 서로 다른 템포의 대조가 극명한 곡이고, 2개의 리프가 상당히 많이 반복되지만 등장 환경 및 역할을 약간씩 바꾸고 다른 리프들도 충분히 사용하여 가장 내적으로 완성된 구조를 가지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의 중간 지점이자 절정인 타이틀 곡 뒤의 후반부는 보다 평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충분히 곡들이 차이가 있긴 하고, 앨범을 보다 명상적이고 앰비언트적인 분위기 속에서 끝나게 하는 면이 있다.
Embrace the Darkness/Blood of the Perished는 저음 기타에서 제시된 주제를 리드 기타가 이어받는 인트로 뒤에 빠른 트레몰로 부분으로 넘어간다. 여기엔 저음의 길게 늘어지는 리프가 제시되고 고음에서 경보 사이렌과도 같은 리프가 잠시 등장하며, 그 뒤엔 그 전 리프가 다른 리프와 교대로 등장하며 진행된다. 그 이후에 트레몰로가 아닌 리프도 나오긴 하지만 드러밍은 계속 빠르고 일정하게 유지되며 거의 일정한 텍스쳐를 유지한다. 기타 솔로 뒤에 끝까지 트레몰로를 유지하며 끝난다. Fear Obscures From Within은 역시 느린 인트로로 시작되는데, Embrace the Darkness/Blood of the Perished의 인트로에 비해 더 어둡고 긴장감이 감돌며, 이것은 인트로 리프의 멜로디를 그 뒤의 빠르고 거친 리프 속에서 사용함으로써 활용된다. 빠른 트레몰로 위주의 섹션에 접어드는데, 여기에선 저음 위주로 가다가 고음에서 리프를 겹치며 강하게 폭발하기도 한다. 약간 템포가 느려지는 부분으로 들어가지만, 곧 다시 빨라지며 기존 트레몰로 리프로 회귀하고, 엇박으로 코드를 넣으며 승천하는 코다를 통해 마무리된다. Embrace the Darkness/Blood of the Perished과 비슷한 편이지만, Embrace the Darkness/Blood of the Perished는 크게 인트로와 나머지로 구분되는 반면 Fear Obscurs From Within은 인트로가 그 이후와 연결되어있으면서 코다가 확연히 구분된다.
Transmigration Beyond Eternities는 특이하게도 트레몰로가 거의 배제되고 빠르지 않은 템포에서 리듬 위주의 리프들로 진행된다. 그 사이사이로 멜로딕 리프가 등장해주기는 한다. 이 앨범에서 가장 단조롭고 약한 곡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일정한 느낌 속에서도 리프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곡을 끝내는 느리고 멜로딕한 코다는 앞부분과 대조되며 곡에 다차원성을 부여한다. Towards The Shrouded Infinity는 후반부 곡들 중 유일하게 빠르게 시작하며, 앨범 전체에서 가장 공격적인 곡이다. 중반의 비교적 덜 빠른 부분도 태핑 솔로가 등장하며 공격성을 잃지 않는다. 특별히 깊이 있고 완성도 있는 구조를 가지는 곡은 아니지, 독자적 곡이라기보다는 앨범 전체에 대한 아웃트로와 같은 인스트루멘털 Perpetual Ascent 이전, 마지막 폭발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내는 곡이다.
Perpetual Ascent는 대미를 장식하기에 굉장히 알맞다 (CD 버젼 보너스 트랙인 Darkened는 앨범 전체의 흐름에 그렇게 어울리지 않고 그 자체도 괜찮긴 하지만 다른 곡들만 못해서 따로 취급하는 것이 낫다). 안개 낀 봉우리를 올라가 듯이 키보드가 배경에 깔리면서 미드템포의 리프가 성큼성큼 등장하고, 리드 기타가 쓰여지기도 하고 비슷한 멜로디가 다른 형태로 연주되기도 하며 끝까지 일정한 템포와 비슷한 느낌을 유지하며 진행된다. 마지막에는 첫 리프가 키보드와 함께 재등장하여 수미쌍관을 이룬다. 앞서 말했듯 그 자체로 하나의 곡이라 하기엔 너무 일정한데, 가장 분위기있게 앨범을 끝내는 클로저로서 굉장히 적합하다.
Slumber of Sullen Eyes는 굉장히 독자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곡 길이가 길지 않지만 다채로우면서도 견고한 미니-에픽들이 모여서 거대한 우주적 비관성을 표현하며, 독특한 반음계적이면서도 선명한 멜로디와 굉장히 자연스러운 리프 연결, 독창적인 구조들을 통해 데스메탈의 헤비함을 유지하는 중에도 신비한 영기를 내뿜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