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독보하며 짝할 이 없으니 / 향곡 스님
여러분, 불법(佛法)의 대의(大意)란 무엇입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보광삼매(普光三昧)에 드시어
실상무상(實相無相)이요, 불립문자(不立文字)요, 교외별전(敎外別傳)이요,
심심미묘(深深微妙)한 최고무상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셨습니다.
그 뒤 거듭거듭, 고금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큰 지혜의 성인들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스스로가 원만하게 갖추고 있는 걸림 없는
큰 법을 자유자재하게 쓰셨습니다.
때로는 제왕의 집에 태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고관대작의 집에
태어나기도 하며, 때로는 장자의 집안에, 때로는 부귀한 집안에,
때로는 빈천한 가정에 태어났고, 때로는 여인의 몸을 받아 태어나서,
여러 번 부처가 되기도 하고 조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보살의 몸을 나타내어 세간과 출세간에 머물렀습니다.
번뇌가 없는 큰 지혜와 원만히 통하고 원만히 밝은
황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묘용(妙用)과 자재하고 걸림 없는
백천 법문과 무량한 삼매를 본래 스스로 갖추었습니다.
본래 스스로 원명(圓明)하고 청정하고, 본래 번뇌가 없고
본래 생사가 없고 본래 미함과 깨달음이 없으며,
본래 차례가 없고 본래 계급이 없고 본래 범부와 성인이 없고
본래 닦음과 얻음도 없는 것입니다.
만법이 원만하고 만법을 갖추었고 만법이 한결같고
만법이 청정일여할 뿐만 아니라 본래 일이 없나니,
시방세계에 빛나고 인연 속에서 당당하게 머물며
삼계 속에서 안락하고 자재하며 걸림이 없기 마련입니다.
때를 만나면 병에 따라 약을 주고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고
물이 넘치면 도랑을 이루나니, 자연히 못과 쇠를 끊고
수만 자루의 칼로 벽을 세우며, 쇠를 녹여 금을 이루고
금을 녹여 쇠를 이름이 골수로 사무쳐 자재롭고 원통(圓通)합니다.
또 때로는 향상(向上)의 한마디를 나타내고
때로는 향하(向下)의 한마디를 나타내며
때로는 여래선을, 때로는 조사선을,
때로는 최초의 한마디, 때로는 최후의 한마디를 합니다.
더불어 때로는 큰 기틀과 큰 작용을 보이고 때로는 죽이고 살리고
주고 빼앗으며, 때로는 선정에서 나와 마음대로 향하고
때로는 거두고 놓음을 자유롭게 하게 됩니다.
주고 빼앗음에 짝할 이 없으며, 비춤과 씀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방편과 진실이 자재하고 순(順)과 역(逆)에 걸림이 없고
응용이 무애한 것입니다.
네거리 한복판에서 마음대로 노닐고, 티끌 세상에 묻혀
오른쪽을 마주보며 왼쪽을 바로보고 왼쪽을 마주보며 오른쪽을 보나니,
전광석화로도 통할 수 없고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티끌에도 물들지 않고 시방세계에 자취를 남김없이
대자재 무애하며 크게 청정하고 크게 당당하고 크게 활발한 것입니다.
황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가 본래 대해탈의 보리세계(菩提世界)요,
백천 황하사 모래알과 같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세계가
본래 청정한 대적멸도량(大寂滅道場)입니다.
꽃과 풀들은 모두 제불께서 몸을 나타낸 것이며,
모든 사람과 물건들은 일천 성인께서 정법을 제창함이며,
모든 국토 속에서 법을 잃고 법을 파하는 것은
모두 도인께서 참된 법을 마음대로 수용하여 다함이 없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작용이 무궁하고 취함 또한 끝이 없어서, 영원토록 천하를 홀로 거닐고,
삿됨이 없음을 드러내며, 영원토록 자유자재하고
생사의 길에 빠지지 아니하며, 영원토록 고요하고 밝으며
한 결 같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또한 영원토록 뛰어나고 한가로우며, 영원토록 체(體)가 스스로 한결같으며,
영원토록 뚜렷이 밝고 고요히 비추며 원만히 통하고 원만히 밝으며,
영원토록 장애가 없으며 영원토록 광대하고 신령스럽게 통하며 밝게 빛납니다.
저 황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겁 동안 높고 높으며
다함없는 겁 동안 진체(眞體)가 원만히 밝나니,
마치 손위에 올려놓은 여의주에 사물의 모든 모습이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과 같으며,
밝은 거울 앞에 검은 얼굴의 오랑캐가 서면 검게 나타나고,
붉은 얼굴의 한인이 오면 붉게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고인께서는 “향상(向上)의 일로(一路)는
일천 명의 선인도 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나머지 사람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에 이르러서는 삼세제불도 몸을 잃고 목숨을 잃으며,
역대조사도 혼이 날아가고 쓸개가 없어지며
문수와 보현보살도 숨을 죽이고 말을 못하며
천만 성인 모두가 삼천리 밖으로 물러가고
조주와 운문스님도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리기 마련입니다.
잠깐이라도 입을 열고 몸을 움직이면 몽둥이를 빗발치듯이 맞게 되니,
곧바로 도를 얻어 입 안에 가득 찰지라도
뼈가 쌓임이 저 산과 같고, ‘아이고’ 곡함을 결코 면치 못하게 됩니다.
만일 이 속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능히 대장부의 일을 마치게 됩니다. 알겠습니까.
위음왕불 이전으로 한걸음 나아가니
산은 밝고 물 맑으며 해와 달은 영원하네.
천상천하 독보하며 짝할 이 없으니
천선과 인간 세상의 으뜸가는 법왕일세.
“할!” “아이고, 아이고” “허허” “훔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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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곡 혜림 스님(1912~1978)
법호는 향곡(香谷)이며 법명은 혜림(蕙林)이다.
16세 때 둘째 형을 따라 양산 내원사에 입산해
18세 때 성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30년 부산 범어사에서 운봉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향곡스님은 조선시대 500년간 숭유억불정책으로
위축된 선(禪)불교 중흥의 기틀을 다진 경허스님의 법맥을 잇게 된다.
즉 경허 만공 운봉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어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지식이다.
향곡스님의 법맥은 이후 법제자인 진제스님(현재 대구 동화사 조실)을 통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향곡스님은 선암사, 불국사, 동화사, 선학원 등 여러 선방의 조실로서
20여 년간 계시며 법의 깃을 높이 세우고 종풍을 드날렸다.
특히 스님은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성철, 청담, 자운, 월산, 혜암,
법전스님 등과 함께 ‘봉암사 결사’를 하며 수행 정진했다.
향곡스님은 봉암사 결사를 함께 한 성철스님과 세납이 같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함께 한 도반이었다.
성철스님은 1978년 향곡스님이 세수 67세, 법납 50세로 열반에 들자
‘곡형향곡(哭兄香谷)’이란 글을 지을 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출처] 나홀로 절로 | 작성자 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