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에 관한 시모음 13)
한여름밤 /정숙경
한 낮의 열기는
잠시 사라지고
샤한 바람이
빰위로 스친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금방이라도 우르르
쏟아 내릴것같다
사방은 정적만 흐르고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멈추었네
도시의 한 여름밤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밤 하늘의 별
오늘따라 유난히 빤짝거린다
내일은 좋은일 생길려나
그렇게 한 여름밤이
깊어만 가는데
한여름 밤 /서영처
내 속에 들어앉은 슬픔을 꺼내놓자
무덤이 하나 더 늘어난다
구름 같고 산 같은 무리
늙은 소나무 회나무가 능을 향해 경배한다
나는 잔디밭에 누워
노른자위 황금의 위치를 추적해 본다
덤덤하게 등 맞대는 슬픔
팽팽한 법칙을 놓친 항성들인지 모른다
신음 소리를 땅 속에 묻어버린,
순간, 고분들 두근 거린다
침묵이야 말로 오래 묵힌 소음인 것을
꺼내놓은 슬픔을 집어넣자
슬그머니 능이 하나 사라진다
여름밤의 정전(停電) /한재 곽철재
찰나의 긴장이 사라지고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더듬거리며 꺼내 마신 냉장고의 물맛이
여름밤에 찾아온 어둠처럼 부드러운데
아파트 벽을 타고 들려오는
아마 처음 들어보는 옆집 아저씨 목소리가
생각보다 많이 가늘고 따뜻하다
늘 잘난체하던 책장 속의 책들이
오늘밤엔 마치
퇴마사를 만난 귀신들처럼 얌전하게 늘어서고
오랫동안 방치된 옛 기억들이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방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겨우 스무 살이던 그해 여름밤
집 앞 벼논의 개구리들이
끈적한 불협화음을 쉴 새 없이 토해낼 때
멀리 앞산 넘어 빗속을 뚫고 와
내 청춘 깊은 곳을 흔들던 소리
진한 서글픔이 묻어 있던 그것은
분명 습하고 어두운 들판을 달리는
서울로 가는 급행열차의 울음이었다
아 ! 앞산 고운 능선이
땀내 나는 엄마 젖가슴처럼 아늑한 오늘밤엔
꿈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새벽까지 쏟아졌으면 좋겠다
저 들판을 가로지르는 수만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포근한 어둠 속에 안겨 드는 오늘밤엔
민달팽이처럼 느린 기차가
낮고 묵직한 기적을 밤새 울렸으면 좋겠다
여름밤 /송근주
더워야 여름밤이지
선선하면 여름밤이라고하겠어
폭염에 장마에 태풍에 열대야로
뒤집어 쓴
잠이 안와 잠이 안와 하면서
잠에 들어 가고자 하나
잠에 들지않아
그립거든
사랑하고 사는 곳으로 가는
잠에 들어 가는것이
나 깨어
나쁜짓을 하고 있는거야
애인이 찾아오는 꿈으로
대신하려고해
왜 인지 알 수있을까요
나 지금
너무 잘 자고 있어
나 또한
사랑을 받고 기억하게 하거든
살아있는 놈보다
죽은놈이 떠났다는데
잠에 들어 있다
여름밤의 이야기 /신성호
뜨겁게 달구던 태양은
하루종일 빈하늘을 지키더니
심술이 발동한 듯 빛이 바래고
밤에 뜨는 보름달이 혹시 아닌가
달걀의 노란자위 그 모양으로
제모습을 다 들어 내놓고
미워하던 것 들도
좋아하던 것 들도
다 채념해 버린 듯
긴 휴식의 보금자리로 간다
하늘가엔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
세상의 있는 물감 다 팽개쳐 버린 듯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 모습을
못내 아쉬운듯 긴 그림자로 가리운다
해가 저편으로 사라진 그길을
무슨 표시라도 해 놓으려는 듯
총총히 빛나는 별들이 제자리를 지키니
어느땐가 또 다시 떠오를 태양을 그리며
밤새도록 졸음을 쫓으며 서 있구나
숲속에는 님을 보낸 아쉬움을 달래 듯
울어대는 풀벌레들은 너나 할것 없이
각양각색 목소리로 울고 있구나
모기쫓던 모기불은 식어만 가고
조용한 들녁에는 긴 어둠이 잠들고
수박밭을 지키던 원두막지기도
깊어가는 여름밤에 흠뻑 취해서
모기의 괴로핌도 잃어 버리고
여름밤의 긴 이야기도 멈추었구나
여름밤 /양승준
밤하늘에 별들이 떼 지어 떠 있다
무리를 짓는 것은
살아 있는 것들의 오랜 습성,
오늘도 사람들은
밤늦도록 이 거리 저 골목을 몰려다닌다
무턱대고 세勢를 불리려는 그들의 욕망은
무정형無定形의 고무풍선과 닮았다
어둠보다도 깊은 대숲에서
목어木魚처럼 우는 직박구리 한 마리,
어느덧 달이 많이 기울어졌다
별들도 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여름밤의 추억 /이상정
풀빛으로 덮을 모깃불
평상에는 참외, 수박, 복숭아까지
둔딱한 어머니 부채까지
아련하게 떠오를 때
또래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우물을 길어다
등목 한 번이면
단지 우리의 눈빛은 달랐다
생은 여귀처럼 자라
아무런 생각도 없이
쏟아지는 별빛만 쳐다보았다
서럽게 살아도
그곳에 웃음도 심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사람도 만났다
산빛은 산빛대로 눕고
어머니의 기침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고양이
여름밤의 애환 /김선필
장미보다
더 붉은 진한 여름
날 감싸도는지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그대의 시선 따라
움직이는 미지의 세계에서
향기 품으며 살아가고
아무도 찾지 않아도
여름밤을 능청스럽게 보내었고
임 생각으로
잠에 빠져든다
여름밤 1 /안상균
도심이라 그런지 모기가 많다
엥! 거리며
달려들 때이거나
모기장 속까지 들어와 물어도
그냥 지나치고
태연한 척하다
이내 모기향을 뿌린다
기름 냄새 심하게 난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이목구비가 있고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것인데
매미소리는 선잠을 깨우고
선풍기는 이미 멈춘지 오래
열대야는 기대 이상으로 머문다
여름밤위원회 /박해람
웅덩이에는 날파리가 왱왱댄다
물결 같은 건 없어 그러니까 소녀의 얼굴이 몇 살인지는 나도 몰라
꽃씨가 흘러나오는
소녀의 얼굴,
왜 태양을 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지
찡그린 꽃씨라고 말하지 않는 거지
언젠가 뒷면에 침을 발라 붙인 달이 아직도 편지봉투에 떠 있다
여름밤위원장의 팔에 달무리가 채워져 있고 땋은 머리를 풀자 여러 개의 밤길이 사라진다
가장 큰 날개는
가장 작은 날개를 먹을 수 없지
부엉이와 날파리는 외계
확성기는 가까운 말
거수를 하는 꽃들의 한 뼘
한밤의 풀밭에 얼굴을 터는
소녀들의 파종기
주근깨라 불리는 검은 별들
돌을 던지면 머물던 장소들이 사라진다는 귓솟말,
방심한 곳에 쪼르리고 앉아 달무리를 올려다보면 부르르 떨리는 웅덩이들,
가상의 뼈를 활짝 여는 하품
여름밤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여름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계절이고
박수는 가장 오래된 의견이다
몇몇 번지는 의견은 제외되었다
여름밤의 추억 /신원감
숱하게 여름밤을 지내오면서
우리의 가슴마다 담기는 혼
그것은 사랑하는 세레나데다
보고도 보고싶은 사람들
힘차게 피어나는 우리의 순정
그렇게 달려가도 그대로 있는 순수
여름밤 /반태권
먼 대숲의 바람소리
거제 문동의 달빛처럼
엉금엉금 기어가 앉고
갈매나무 잎사귀에 어린 별빛도 보며
그냥 잠에 취해 있을 때
어디서 왔는지
모기
엥 소리를 내며
못질하듯 나에게 덤벼들었다
여름밤은 한없이 깊어만 가고
의패잡이 어깨에 한숨으로 내리던 장맛비
내 속으로 파고 들었다
한 여름밤의 정서 /김재영
헤어지자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이 땅 저만치서
저물어 가는 햇빛처럼
오래오래 숨겨둔 눈물의 흔적
허공에 주어버리고
한여름밤의 정서를 생각한다
저 버림받은 나날과
헛맹세로 세상을 살아나온
이유는 꽃잎같이
얼룩진 나날
들끓는 어둠 속을 달리며
다시금 눈을 뜬다
저 불타는 눈그늘 끝자락
한 번도 나의 것이 아닌 채
제 스스로 힘을 내었으니
다시금 빛을 내고
모기 소리
어쩐지 너무 크게 들려
저녁답에는 모깃불을 태워야지 하면서
잠을 청한다
여름밤 /안상균
도심이라 그런지 모기가 많다
엥! 거리며
달려들 때이거나
모기장 속까지 들어와 물어도
그냥 지나치고
태연한 척하다
이내 모기향을 뿌린다
기름 냄새 심하게 난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이목구비가 있고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것인데
매미소리는 선잠을 깨우고
선풍기는 이미 멈춘지 오래
열대야는 기대 이상으로 머문다
한여름 밤 /현곡 곽종철
한낮에는 나무그늘에
시원한 바람까지 찾아오는데
밤에는 오라는 잠은 쫓고
가라는 잡념은 밀려오는
후덥지근한 열대야가 되어
잠을 설치는 밤이로구나.
모기가 귀찮게 치근거리고
시원한 화채 생각이 나는 밤,
개울물에 발을 담가도
가슴은 식지 않는 밤이라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에
조각배 띄워 임 마중 갈거나.
한밤의 시계는 더디 가나
밤새워 뒤척이다 보면
그래도 새벽은 오는 가봐.
새벽닭이 울 때쯤이면
잠은 쏟아지고 몸은 천근이라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