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간판 ― 조창규
당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드립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동네 미용실 기분 잡치게 하는 입간판을 향해 헛발질을 한다 파마에 실패한 내 머리가 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지만 귀찮아 고수한다 설렁탕 먹고 심봉사 눈뜬 집 놀라 들어가니 국물이 영 맹탕이다 저 상가의 얼굴에 빽빽하게 실망으로 들러붙은 명함들 과외도, 취직도 어렵다 공명첩을 산 증조부 나는 양반이다 감투를 쓰고부터 성형수술을 한 결혼정보회사들이 줄을 선다 짝퉁 루이뷔통, 스탠퍼드대학, 빈 컵 모두 빛 좋은 개살구 간판 나는 너를 내세우고 거울보고 콧방귀 뀐다 간판은 나의 마네킹 조상, 얼굴, 허세를 건 간판, 사이버시장의 삐끼가 된다 출장방문서비스 간판은 배너광고, 팝업 창, 밤의 골목으로 진화한다
간판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을 한다. 바로 ‘1. 기관, 상점, 영업소 따위에서 이름이나 판매 상품, 업종 따위를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걸거나 붙이는 표지(標識)’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2. 겉으로 내세우는 외모, 학벌, 경력, 명분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조창규의 시 <좋은 간판>에서는 이 ‘간판’을 두 가지 의미 다 복합적으로 쓰고 있다. 시 속 화자가 ‘당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드립니다’는 간판의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간판과는 달리 ‘버르장머리 없는 동네 미용실’이다. 왜냐하면 파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분 잡치게 하는 입간판을 향해 헛발질을’했고, 실패한 파마로 ‘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지만 귀찮아 고수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설렁탕 먹고 심봉사 눈뜬 집’이란 간판의 설렁탕 집에 가 보니 ‘국물이 영 맹탕’이란다. 그러니 화자에게 간판이란 ‘저 상가의 얼굴에 빽빽하게 실망으로 들러붙은 명함들’이다. 여기까지는 국어사전의 1에 나오는 간판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국어사전의 2에 해당하는 간판이다. ‘과외도, 취직도 어렵’지만 ‘공명첩을 산 증조부’ 덕에 양반으로 행세한다. 공명첩이 무엇인가. 옛날에 큰 기근이 들었거나 전쟁이 났을 때, 부족한 세원을 채우기 위해 국가가 발행한 신분상승증명서가 아닌가. 그러니 가짜 양반증이다. 하지만 가짜일망정 그런 ‘감투를 쓰고부터’는 이쁜 얼굴로 ‘성형수술을 한’ 여성회원을 보유한 ‘결혼정보회사들이 줄을 선다’ 결국 남자는 양반이란 감투, 여자는 성형수술한 이쁜 얼굴이 간판이 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짝퉁 루이뷔통, 스탠퍼드대학, 빈 컵 모두 빛 좋은 개살구 간판’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내세워야 정상이지만 ‘나는 너를 내세우고’ 당연히 그런 모습에 ‘거울보고 콧방귀 뀐다.’ 이제 ‘간판은 나의 마네킹’이 되어 나를 보여주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조상, 얼굴’ 모두 ‘허세를 건 간판’뿐이다. 그런 가짜 간판들은 ‘사이버시장의 삐끼’가 아니겠는가. 나아가 ‘출장방문서비스 간판은 배너광고, 팝업 창, 밤의 골목으로 진화’하며 자신의 가짜 모습으로 대중을 유혹하는 것이다. 시의 제목이 ‘좋은 간판’이다. 어떤 것이 좋은 간판일까. 시 속에 시인이 나서서 이런 것이 좋은 간판이라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독자들은 알 수 있다. 시에 제시된 간판과는 다른 간판이어야 한다는 것을. 중의적으로 쓰인 ‘간판’이란 말 - 상호이건 어느 개인의 이력이건 진실된 내용, 참된 모습이 좋은 간판이 아니겠는가. ♣ ※ ‘버르장머리’는 버릇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조선의 입법, 사법, 행정, 군대를 통솔하려 설치한 기관이 바로 조선총독부이다. 경복궁 앞에 건물을 지어 들어섰는데 건설 당시 일본은 최고의 기술을 발휘해 튼튼하게 지었단다. 식민통치가 천년만년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해방 이후 중앙청이라 불리며 행정부의 본관으로 사용하다가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 완전 철거를 결정하고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기점으로 철거를 시작한다.
조선총독부 철거를 하던 중 당시 일본 총무처장관 에토 다카미가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는 자선 활동 기간이었다’라든가, 또다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망언을 했는데 이 때 김영삼 대통령은 ‘이번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야겠다’는 명언을 남긴다. 일본 언론은 ‘버르장머리’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라 당황했다는데, 현재 천안 독립기념관 산책로 한쪽에 조선총독부 건물 첨탑이 전시되어 있지만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어 관람객들이 발로 차거나 오물을 투척해도 그대로 둔다고 한다. 의도적인 방치일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 이후 미용실 간판에 이 ‘버르장머리’가 많이 쓰이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