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
뭉크의 <눈 치우는 노동자들>을 보았다.
<눈 치우는 노동자들.1910>
"세계 영혼에 연결된 인간의 심리적 리얼리티를 표현하여 포비즘•표현주의에 영향을 준 화가, 판화가"
뭉크에 대한 상투적 인식의 불감증을 날카롭게 찌르는 어떤 힘에 사로잡혔다.
<눈 치우는 노동자들>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의 의미를 되찾고 싶었다.
인천에서 도하를 거쳐 오슬로로 비행하는 동안
선우예권과 루빈슈타인이 연주하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여러 번 들었다.
가을 여행이라면 미술관 옆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의 공연도,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하는 오슬로 필하모닉의 소리도 들어볼 수 있겠지..
[미술관 옆 오페라하우스]
오슬로에 도착하자마자 폭우경보가 계속 울린다.
오슬로에서 다음 여행지로 가는 도로가 통제되어 일찍 오슬로를 떠나야 목적지에 겨우 도착할 수 있단다.
뭉크미술관에서 90분 동안 작품을 보고 떠나야 하는 불운이 닥친거다.
열심히 보고 드문드문 찍어온 사진을 정리하면서
Sue Prideaux의 [EDVARD MUNCH] 를 참조하여
전시의 흐름을 재구성해 보았다.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한 22점의
《삶의 프리즈 Frieze of LIFE》는
사랑의 싹틈, 사랑의 피고 짐, 불안, 죽음, 으로 구성된 연작으로
뭉크의 가장 중요한 대표작이다.
1902년(뭉크 39세) 베를린 분리파 회장 막스 리베르만은 분리파의 3~4월 전시에 뭉크를 초청해서
"사랑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경멸당한 그림 일체"를 전시하도록 했다.
주최측에서 제시한 《삶과 여러 이미지전》 이라는 제목하에 뭉크는 22점의 그림을 선보였다.
큰 주제의 이 작품들은 뭉크의 개인적 체험, 특히 연애사 가족사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의 내면적 진실이 비유적• 반사실적으로 재현되어
당시 주류를 이루던 사실주의 인상주의와 선을 긋는 뭉크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전시의 성공으로 많은 독일인 지지자와 후원자가 생겨났고
뭉크는 독일 표현주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뭉크의 삶에 개입한 세 여성은
《삶의 프리즈》에 재현된다.
첫번째 여성, 밀리 테울로브는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하나임을 체험하게 한 여인 으로
<목소리> <키스> <뱀파이어> 에 영감을 준다.
두번째 여성, 다그니 유엘은 <질투> <마돈나>에 영감을 준 여인.
세번째 여성, 툴라 라르센은 '사랑 섹션'을 구성하는 중요작품인 <삶의 춤>,
'죽음 섹션'의 <물질대사.metabolism>에 영감을 준 인물이다.
22점의 작품 중에서 몇 작품만 살펴 보기로 하자.
[1] '사랑의 싹틈' (봄)
<목소리.1896>
<레드와 화이트.1894>
<눈 맞춤.1899-1900>
<해변에서의 춤.1900>
<키스.1892>
<마돈나.1894>
(1) 오스가르스트란 해변에서의 사랑을 회상하는 <목소리>
<summer night. the voice 1896>
삶의 프리즈 연작의 맨 앞에 놓인 여인은 뭉크의 첫 키스를 빼앗음으로써 성적 욕망을 일깨우는 밀리 테울로브를
묘사한 것이다.
카를 테울로브의 부인 밀리는 사교계의 팜므 파탈.
상처와 상실만 남은 사랑이었으나 뭉크는 밀리를 사랑했던 몇 년간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삶의 본질임을 체험한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에서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삼손의 욕망을 깨우는 데릴라의 성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 ㅎㅎ
(2) <눈 맞춤>
<eye in eye. 1899-1900>
뭉크와 밀리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끈에 연결된 채
육체적 사랑을 갈망하는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다.
innocence에서 experience로,
동정상실과 낙원추방의 모티프.
(3) <키스>
뭉크는 밀리의 열정에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자유 의지와 힘이 모두 고갈되는
죽음에 이르는 허무를 느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적 행위는 멜랑콜리와 죄의식, 공포 죽음과 연관된다.
<전망좋은 방>에서 루시를 사로잡았던 줄리안의 키스,
피렌체 교외 밝은 태양 아래 꽃 만발한 들판에서의 급습 키스와 대조적이죠 ㅎ
"오 미오 바비노 까로~
미 피아체 에 벨로 벨로~~~"
몽세라 카바예의 멋진 아리아 들려 오는 듯요 ㅎ
(4) <마돈나>
뭉크는 판화를 회화만큼 중요시하여
판화를 통해 창의적 시도, 기법 혁신,
같은 모티프에 대한 재확인 식으로 깊이있게 연구했다.
채색석판화, 목판화를 시작한 1896년에는
<마돈나> <병든 아이> <절규> <키스> <죽음과 소녀> 등을 판화로 제작했다.
[2] '사랑의 피고 짐' (여름)
<재.1894>
<사랑과 고통 (vampire).1893>
<삶의 춤.1899-1900>
<질투.1895>
<스핑크스(여인의 세 단계).1893-5>
<멜랑콜리.1894-5>
(1) 재
<Ashes>
<재>는 동정을 상실하고 난 후의 느낌을 보여 준 그림,
뭉크는 심하게 상처받은 모습이지만,
밀리는 그들이 나눈 사랑의 재에서
불사조처럼 일어선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2) 사랑의 고통을 보여주는 <뱀파이어>
<love and pain (vampire)>
밀리의 머리카락이 꿈틀거리는 촉수로 변해서
뭉크의 목을 휘감아 질식시키고
마음 속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쥐어뜯음을 느낀다.
"내가 고통스럽다고 말하면 그것은 美나 醜보다 더 중요한 진실이다" (E. 디킨슨)
(3) <질투>
<jealousy.1895>
오른쪽 클로즈업된 스타추 프지비셰프스키는
풀린 드레스 사이로 알몸을 드러낸 다그니 유엘이 뭉크와 함께 생명의 나무 아래 서 있는 환영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jealousy. 1907>
다그니 유엘을 사이에 두고 뭉크와 스트린드베리, 스타추, 세 사람이 경쟁한다.
뭉크는 자신과 다그니를 연인으로, 스타추를 고통스러운 질투에 사로잡힌 인물로 설정하지만,
소설가 다그니는 스타추를 선택해서 결혼한다.
스타추는 1894년 최초의 뭉크 전기 《Edvard Munch의 작품세계》를 출간한다.
"사랑은 자유로운 새~~~"
다그니,,, 당신은 돈호세를 유혹했던
카르멘인가요?
33세로 에메릭의 정념에 살해될 때
후회 없었나요?
<Dagny Juell.1893>
오, 질투심을 조심해요.
그것은 희생물을 비웃으며 잡아먹는
푸른 눈의 괴물이랍니다.
- 이야고의 대사 (셰익스피어.<오셀로>)
(4) < 멜랑콜리>
<melancholy. 1894-1896>
원근법을 단축시킴으로써 오른쪽 귀퉁이에 내몰린
우울한 남자의 고립감과 절망감이 부각된다.
뱀처럼 구불구불 물결치는 기다란 해변은 여성의 살처럼 에로틱하다.
뭉크는 풍경을 여성의 누드처럼 다루었다.
성적인 경험이 권태로와지면 질투심도 삶의 <멜랑콜리>라는 영원한 暗流로 변한다.
사랑이 피고지는 과정에 수반되는 필연적 패턴인 것이다.
(5) <삶의 춤>
<the dance of life. 1899-1900>
한여름 오스가르스트란 해변에서는
구혼의 춤, 多産의 무도회가 열린다.
그림 왼쪽의 젊고 미소를 띤 툴라는 흰 드레스를 입은 천사의 모습으로 사랑의 꽃을 따려고 한다.
중앙에는 뭉크가 정열적인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성과 춤추고 있는데
<목소리>에서 보았던 포즈로 보아
첫사랑 밀리 테울로브임을 알 수 있다.
또는 뭉크와 열정적인 관계였을 때의 툴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 역시 툴라인데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소유욕과 성적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다.
나이들고 머리가 지저분하게 날리는 모습으로 묘사된 툴라는
집착과 결혼 강요로 뭉크를 힘들게 했고
마침내 총격으로 뭉크의 왼손 중지에 부상을 입힌다.
<Tulla Larsen.1905>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는 그리스도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만큼
부유한 와인상의 딸 툴라의 경제적 정서적 지배력은 집요했다.
이 모티프는 <골고다>에 변형된다.
뭉크는 툴라를 "내 인생의 악령"이라 했다.
도상학적으로 볼 때 <삶의 춤>은
'三美神' 과 '파리스의 심판' 같은 전통적인 주제를 연상시킨다.
차이코프스키를 후원한 폰 매크부인의 거리두기는 모방하기 힘들지요 ㅎㅎ
[3] '불안' (가을)
<불안.1894>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1894>
<붉은 담쟁이.1898-1900>
<골고다.1900>
<절규.1893>
(1) 불안
(2) 카를 요한 거리의 저녁
(3) <붉은 담쟁이>
붉은 담쟁이, 흘러 넘치는 피는 결혼에 대한 비유이다.
다그니의 실낱같은 마지막 핏줄기가 벽을 타고 붉게 얼룩진 도로로 흘러 내려와 스타추의 얼굴과 마음에 닿을 듯하다.
살해당한 아내에 대한 스타추의 죄의식이 표현되어 있다.
(4) <골고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 죽음의 나무에
십자로 못박힌 그리스도는 뭉크 자신으로,
비평가에게 처형당한 작가의 회의를 표현했다.
(5) 절망감을 표현한 <절규>
[4] '죽음' (겨울)
<임종.열병.1895>
<병실에서의 죽음.1893>
<포츠담 광장의 영구차.1902>
<물질대사.1898>
<죽은 어머니와 아이..1893-9>
(1) <죽은 어머니와 아이>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죽음이라는 폭력,
불안• 공포• 낙원 상실 모티프의 원형
(2) <병실에서의 죽음>
병실 내의 무력감이 가득찬 톤은
병과 죽음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신의 무용함과 아버지의 무능함을 폭로한다.
(3) <물질대사. metabolism>
<물질대사>는 교회의 제단화와 유사하다.
뭉크와 툴라가 아담과 이브처럼 생명의 나무 아래에 서 있다.
두 남녀는 영원한 생명력의 전체 순환 속에 놓여 있다.
"숲은 죽은 것들에서 양분을 빨아들이고, 도시는 수관(樹冠) 뒤에서 성장한다.
이 그림은 삶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맹렬한 물질대사를 그린 것이다." 고 뭉크는 말했다.
<metabolism. 1898-99>
<물질대사>는 《삶의 프리즈》를 다시 서사의 처음으로 되돌려
삶의 연쇄에서 다음 고리가 되어 줄 多産 커플에 이른다.
뭉크에 따르면 이것은 벨트의 버클처럼 모든 그림을 하나로 결합한다.
독립된 완결구조를 갖고 있는 일군의 작품들이
일정한 내적 연관을 지닌 채 연쇄적으로 묶여있는
연작소설(roman-cycle)의 형식과 유사하며
낙원 상실과 낙원 회복의 주제를 내포한 《삶의 프리즈》는
가장 문학적인 그림이면서 회화적인 자서전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뭉크의 정서적 축을 지탱해 준 인물이었다면,
니체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영원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 인물이었다.
니체와 뭉크의 유사성은
영원회귀의 개념과 《삶의 프리즈》 연작에서 찾을 수 있다.
뭉크는 22점의 작품을 기본으로 하여
새 작품으로 대체하거나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여 변주한 버전으로 바꾸거나
작품의 전시 순서에 변화를 주었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면서 새로운 삶의 순환을 만들어 낸
《삶의 프리즈》는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뭉크적 버전이다.
--Sue Prideaux. [EDVARD MUNCH] 에서 인용
첫댓글
미술이건 음악이건 문학이건,
왜 예술가들에게는 당시 사귀던 여자들의 존재가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걸까요?
여자만이 사람이 아닌데, , 관계 맺고 있을 남자들도 잔뜩할텐데, ,
희한해요.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는 여자를 '뮤즈'라고 하잖아요.
허면 여자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는 남자는 뭐라고 지칭하는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뭐냐고
나는 예술가가 못됨으로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코스트코와 하나로 마트와 집을 오가면서
저녁 식탁을 차릴 때 생각나고 있었다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예술가라고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고
챗봇에게 물었다
여성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는 남자가 뭐냐고
뮤즈는 9명의 여신을 부르는 말로서
고대 예술가들은 남자들이다보니
남성형은 없다고
남성시대의 여성비하 용어라고
챗봇은 말했다
알래스카님
저도 궁금했던 사항 지적해 주셨네요
김종삼 시인 버전으로 답합니다
@manolin 예술가는 아니고 취미수준이지만 가끔 인물화를 그려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보통 취미생들은 자화상이나 자기 가족들을 그려요.
전 사진찍다보면 뭔가 말을 거는 얼굴들이 있더라구요. 그게 정확히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
그런분들은 한번씩 그려보고 싶어져요
뭉크 작품의 대부분은 죽음, 고통, 불안등의 주제가 많아 젊었을 때는 별로 눈여겨 보지 않은것 같네요 ~
오래전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만났는데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작품은 " 절규 " 였지요 ~
공포의 극치를 보여준 절박함과
강렬한 포스가 인상적이라 parody 가 많은 작품이지요 ~
올려 준 27점의 많은 작품들을 조곤조곤 설명 잘하는 manolin 도슨트와
함께한
느낌 ~ㅎㅎ
여러번 읽고 , 보고
뭉크의 작품 세계로 빠져들게 되네요 ~~
뭉크의 재 발견 !!
최고의 후기 ~~
감사합니다 ♡
스스랑님~
예술작품에 대한 기대지평(선이해)을 배제하고
해석하고 감상하는 것이 어려움을 알면서도
혼돈 속에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뭉크의 창조성에 닿아 보려고
쓴 글입니다.
개별 작품의 모티프가
주제로 통합되어
질서와 리듬을 구축하는 과정이 흥미로왔습니다.
스스랑님~
허점 많은 글을
따뜻이 포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뭉크는 소리를 지르고 있는걸까
아니면 귀를 막은걸까
이그림을 처음 봤을때는 자기안의 고통으로 소리지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뭉크가 이렇게 이야기 한걸 알았죠.
펌글
[뭉크는 '절규'를 그린 이유를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해 질 녘,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공포에 질려 다리 난간으로 다가갔다. 친구들은 무심히 걸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그 순간, 자연을 관통하는 무한하고 강력한 비명이 들려왔다." 뭉크의 설명에 따르면 그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인간은 자연이 지르는 비명에 화들짝 놀라 귀를 틀어막고 있을 뿐이다. 뭉크는 왜 친구들이 듣지 못한 자연의 비명을 혼자서만 듣고 괴로워했을까. 의학적으로 추측해보면, 뭉크는 공황장애를 앓았을 수 있다. 심각한 환청에 시달렸을 가능성도 있고, 망상에 쫓겨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런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하늘이 뒤틀리는 공포'는 비유가 아니라 현실의 공포다. 뭉크는 낭만적인 붉은 노을마저 자연재해로 느낄 만큼 불안에 떨었던 인간이었다.]
뭉크는 천식을 갖고 태어났고 만성적인 류머티즘에 시달렸죠
다섯살때 엄마를 잃었고 누이도 정신 병으로 잃었고 아버지와 남동생도 잇따라 세상을 떠났죠 사랑조차 순탄하지 않았구요.
그에게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운 장면을 그리며 도피처로 삼는 예술가도 있고 뭉크처럼 철저히 자기내면과 싸움하는 예술가도 있더라구요.
어쨋든 그림은 늘 무언가 말을 건네죠. 그걸 해석하는건 보는 사람의 시선따라 다르죠.창작물에 정답을 찾아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내마음속 답을 찾는게 맞는듯 싶기도 해요
@초우 뭉크 그림 올려주시고 해설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도쿄 미술관은 소장작품도 많더라구요.
혼자 도쿄 여행가면 미술관에 들리곤해요
@초우
다양한 해석으로 계속 담론이 이어지니
<절규>는 명작이겠지요.
초우님께서도
소중한 글로 찾아주신 걸 보니
<절규>는 正典임을 느낍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일본의 미술관
우리나라의 미술관 화랑
자주 찾고 안목을 길러야겠다
저도 생각합니다.
독창적 시선으로 쓴 초우님 글도
차츰차츰 담론의 대상이 되고 있지요.
후기 자주 올려 주세요
초우님의 시각 개성 배우고 싶어요.
밀도있는 댓글 감사합니다^^*
@manolin
뭉크가 해질녘 친구와 걸었다는 길이
오슬로 피오르드 항구 언저리였을 게 틀림 없는데,
가보셨으니 아시죠? 그곳이 얼마나 평화로운 情景인지를.. 그것도 붉게 저녘노을이 질 때라니!
아니 근데, 거기서 저런 절규를 떠올리다니요?
- 극단적 괴로움을 요!
저는 뭉크의 절규 작품을 도무지 이해 못하겠고,
그래서 작품해설에도 동의를 못하겠어요.
남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걸 보며 문득 자신이 겪는 운명을 생각하니
자격지심에 속이 뒤집혀서..... 에라이~~~~!!!!!!!
그렇다면야 이해가 될 수도 있죠.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노을은
폐결핵으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엄마를 지켜 보았던
원초적 상흔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낙원상실의 극단적 공포를 애도할 수 없게 만든
아버지의 경직된 신앙심도
뭉크의 멜랑콜리를 형성한 원인이라고 합니다.
<죽은 어머니와 아이>
<절규> <붉은 담쟁이>를 비롯하여
뭉크의 많은 작품에
이 상흔이 내재화되었다고 합니다.
뭉크의 미술은 불안과 광기 죽음의
직접적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그 같은 실존의 한계를 돌파한 의지의 산물이라고 해석한
Sue Prideaux를 존중합니다.
예술가의 창작품은 다양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에 와닿죠.
그리는 이의 마음과 보는이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대와 상황은 변하니까요.
작가는 이런 마음으로 그렸구나 딱 그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것 같아요.
그다음은 본인마음으로 재해석하는거 아닐까요.
표현주의 작품들은 더욱 그렇죠.
이그림을 먼훗날 23세기쯤 보면 또 다르겠죠. 그림 그릴때 특히 제목 붙일때 보는 이들의 이해와 공감 이것을 우선순위로 생각하지는 않죠
다양한 해석 그속에 칭찬도 있지만 특히 불만들이 그림세계를 더 확장하는게 아닐까...낯섦은 늘 두렵고 두려우니 불안하죠. 불안은 예술가들에게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동기부여라 생각해요.
앞으로 많은 그림 또 생각나눔 부탁드려요.
@초우 자격지심 질투 부러움 이 또한 동기부여가 되곤 하죠.
절망속에 피는 꽃.
고통속에 외치는 비명.
아름다운 꽃을 그렸지만 보는 이들이 지난 겨울의 아픔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 그림은 많은 서사를 품은 멋진 그림일거에요.
뭉크의 절규에서 고통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한사람이라도 보았다면 그 역시 멋진 그림이겠죠
모든게 다 그림 소재.
전 다크한 그림을 좋아해요. ^^*
그림은 결국 개개인 창작자의 마음에서 시작하죠. 그렇지 않다면 정직하지 않죠. 그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아무도 모르죠.
@manolin 고전주의 낭만주의 표현주의 등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앞서가는 화가들은 그시대에 환호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어요.
그럼에도 그렇게 밖에 그릴 수없는 그 무엇 .
그 무엇이 창작가들에겐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환호받는 유명 철학자들도 당시엔 돌팔매질도 받았는걸요
@초우 이런 해석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