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구 전라북도청 1층에 마련된 '등불야학'에서 강경숙(47.여.뇌병변1급.사진오른쪽)씨 등 학생들이 오는 4월과 5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앞두고 막바지 공부에 한창이다. 작년 5월15일 개교한 등불야학은 반딧불(기초)반과 호롱불(중입), 등잔불(고입), 모닥불(대입)반 등 4개반으로 나뉘어 장애때문에 정규 교과 과정을 밟지 못한 한(恨)을 지니고 살던 이들에게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연합 |
‘야학’이라는 줄임말이 더 익숙한 ‘야간학교’는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에서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풀어주는 비정규 교육의 선봉 역할을 해왔다. 그런 야학이 인력난ㆍ재정난ㆍ공간 문제라는 ‘3대 고질병’으로 우리 사회에서 하나 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도 많은 야학들엔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된 계층이나 경제적 이유로 주간에 공부를 할 수 없는 ‘목마른 사슴’들이 뒤늦은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무관심과 정부의 융통성 없는 정책 밑에서 야학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져만 가고 있다.
취업 쫓긴 대학생들 야학에서 발 돌려 야학의 위기는 많은 부분 ‘성장엔진’ 역할을 해야 할 젊은 대학생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 한때 야학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던 ‘젊은 지성인’들이 IMF 사태 이후 취업난에 부딪히며 ‘취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야학 봉사활동에서 발길을 돌린 것이다.
경기도 의정부시의 유일한 야학인 ‘노성야학’(1981년 설립)의 경우, 총 30여 명의 교사 중 대학생 교사 비율이 1990년대에는 50%를 훌쩍 넘었지만, 지금은 20% 정도인 대여섯명으로 크게 줄었다.
춘천 ‘신흥야학’ 강종윤 교사대표는 “청년 실업난 때문에 대학생들의 야학에 대한 열정이 적다”며 “젊은 사람들이 야학운영과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야 하는데, 야학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들의 수가 많이 적어져 교사 충원과 야학 운영이 힘들다”고 말했다.
야학 관계자들은 ‘봉사정신도 많이 옅어져, 단순히 이력서의 봉사경력란을 채우거나 졸업을 위한 봉사학점 취득을 위해 야학 문을 두드리는 대학생들도 많다’며 씁쓸해 했다.
정부 재정지원 취약… 후원으로 연명 재정적 문제도 야학 관계자들의 이마에 주름살을 늘리는 큰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올해 들어 그간 야학의 재정 지원활동을 해오던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지원 규모를 줄이면서 많은 야학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야학의 1년 소요예산은 공과금ㆍ임대료 등 1천만원 정도. 지난해까지는 이 예산의 대부분을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지원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올해부터 “청소년 비율이 80% 이상인 청소년 전문 야학에만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야학 수강생 중 청소년의 비율이 낮기 때문에 청소년 육성기금으로 야학을 지원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야학에서 공부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할 때를 놓친’ 40대 이상의 만학도들이므로 대다수의 야학들은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야학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지난 3월 정부가 교육부 산하 교육개발원의 평생교육센터에서 야학을 평생교육기관으로 지정하고 운영비를 지원해주는 방침을 확정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정부의 늑장지원과 비합리적이고 융통성없는 지원규정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아직 큰 도움이 안 되고 있는 상태다.
서울 강동구 ‘강동야학’ 남기송 교장은 “올해 초 신청한 1년 예산을 7월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지원해 주지 않고 있다”며 “지원해 준다 해도 올해 8월부터 12월까지의 예산만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그럼 이미 지나간 1월~7월 사이의 예산 공백은 어떻게 하라는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남 교장은 “또 반드시 처음에 제출한 계획서대로만 돈을 써야 하고 계획에서 어긋나면 정산을 안 해준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국가 예산을 엉뚱한 데 쓸까 봐 고심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융통성이 없어 답답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대부분의 야학들은 교사들이 일정액의 야학 회비를 내거나 후원금을 모금해 겨우겨우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고질적인 공간 문제도 해결 힘들어 이렇게 재정난을 겪다 보니 고질적인 공간 문제도 계속해서 야학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임대료 문제 때문에 장소가 비좁거나 환경이 열악해도 쉽사리 더 넓은 곳으로 이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충북 청주 ‘무궁화 야학’의 경우 임대료 문제 때문에 30년 동안 7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지난해에도 공간 문제 때문에 야학이 없어질 뻔 했지만, 청주대학교 김윤배 총장이 한 야학 재학생의 편지를 받고 동아리방 5개를 선뜻 내줘 겨우 한숨을 돌렸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공간을 제공받은 야학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의정부 ‘노성야학’ 김종한 총무부장은 “정부의 야학에 대한 정책이 청소년 쪽으로 많이 이동하고 있다”며 “시에서 제공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대신 야학에서 청소년 비중을 늘리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노성야학에서 공부하는 120여 명의 학생 중 청소년은 불과 7명에 불과하다.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임대료나 재정 문제 때문에 도저히 이사갈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 야학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강동야학 남기송 교장은 “지금 야학에 필요한 것은 관심과 지원”이라며 “융통성 있고 합리적인 지원만이 쓰러져가는 야학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www.newsmission.com제보 및 문의 :
redin4u1st@hanmail.net / redin4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