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01: A Space Odyssey〉의 시대 배경은 패션 시계에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옛적 얘기다. 세상이 떠들썩하게 환영하던 새로운 밀레니엄 2000년대는 바야흐로 두 번째 10년과 맞닥뜨렸다. 190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패션 현대사의 시대 경향이 명징하게 분류됐던 것과 달리, 2000년대는 패션과 유행이 불분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되는 1월, ‘2010스타일 오딧세이’는 어떻게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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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1; BODY
모든 건 여자의 몸에서 비롯된다. 당대 패션 창조자들은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며 이브를 찬미한 아담처럼 여자의 육체를 위해 헌신 중이다. 허리, 온갖 관절, 등, 가랑이 등에 이어 2010년 첫 시즌은 가슴이다. 80년대 유행이 판을 치면서, 넓은 어깨나 높은 허리선 등과 함께 그 시대의 또 다른 성분인 원뿔 브라가 돌아온 것. 그건 자기 자신을 풍자하고 회고한 장 폴 고티에 덕분이다. 80년대 말에서90년대 초, 마돈나의 순회공연을 위한 의상으로 고티에는 마징가-Z의 여자 친구 로봇인 미네르바-X 같은 형태의 보디 수트를 개발했다(마징가-Z의 두 팔이 로켓이었다면, 미네르바-X는 가슴에서 로켓 두 발을 발사했다). 그래서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마돈나의 원뿔 브라가 80년대를 상징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젊은 디자이너들이 엄마나 이모의 앨범에서 이런저런 80년대 복식을 참고하며 그 시절 그 유행을 되돌리는 것과 달리, 고티에는 자기 전성기인 80년대를 추억하며 원뿔 브라의 21세기 버전을 탄생시켰다. 물론, 10년 전에도 이런 시도는 있었다. 톰 포드는 구찌의 2001년 봄 컬렉션을 위해 고티에의 원뿔 브라의 첫 번째 재현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다. 다시 10년 후, 고티에 혼자서 자신의 찬란한 유산을 꺼냈다고 유행이 될까? 마크 제이콥스, 디올의 존 갈리아노, 후세인 샬라얀, 루이즈 골딘 등도 가슴을 뾰족하게 묘사했다. 게다가 현대판 패션 먼로를 자처하는 래티시아 카스타는 파리 〈보그〉 최신호에서 초록색 꼬깔콘 같은 고티에의 21세기 원뿔 브라로 풍만한 가슴을 감싼 채 등장해 육감적 이미지를 두 배로 부풀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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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2; COLOR
그리고 신은 자연을 창조했다.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우리 여자들을 위해 자연색을 창조했다! 눈과 소금, 흙과 모래, 조약돌과 바위 등에서 추출된 내추럴amp;뉴트럴 색조들. 마이클 코어스, 캘빈 클라인, 도나 카란, 알렉산더 왕을 시작으로, 버버리 프로섬에 이어 마르니, 질 샌더는 물론 발렌티노, 발맹, 스텔라 맥카트니, 셀린 등이 4대 패션 도시의 캣워크 풍경을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색조로 채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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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3; PRINT
케이트 모스의 등에는 자그마한 제비 두 마리가 날아다닌다. 프레자 베하와 캐롤린 머피의 엉덩이에는 일본인들이 좋아서 키우는 코이라는 잉어가 헤엄친다. 안젤리나 졸리의 등엔 호랑이가 덮치고 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문신이 패셔너블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수백 마리의 벌들이 쉴 새 없이 당신의 보드라운 살갗을 쏘아대는 끔찍한 고통이 반드시 아니어도 된다. 샤넬에서 로다테 등이 여자의 피부를 캔버스 삼아 붓으로 그리거나 스텐실 기법을 이용해 스프레이로 뿌려 새로운 보디 메이크업, 혹은 새로운 액세서리, 혹은 새로운 패브릭의 효과를 실험했다. 심지어 지방시는 원시 부족처럼 온몸에 타투를 그린 듯한 신종 프린트를 개발해 수트를 만들 정도다. 그건 고티에의 에스닉의 절정을 이뤘던 90년대 중반과, 존 갈리아노가 97년 봄 컬렉션을 위해 스핑크스를 테마로 타투 의상을 만들거나 2004년 봄 디올을 위해 디트리히에서 영감을 얻을 무렵 만든 타투 보디 스타킹 이후 가장 폼 나는 타투 패션으로 인정받았다. 한편, 서울에서도 엠비오의 디자이너 한상혁이 타투 시리즈 옷들을 디자인했다. 그건 요즘 여자들이 검정이나 화이트 재킷 안에 이너웨어로 살짝 끼워 넣으면 새로운 섹스어필처럼 여겨질 듯하다. 여자의 몸을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으로 만들어주는 타투! 그 원초적 본능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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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4; SKIRT
얼마 전, 수단에서는 10대 소녀가 무릎길이쯤 되는 치마를 입었다고 30분간 볼기를 장장 50대나 맞았다. 세상에, 그 치마가 음란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는 꿀벅지 운운하며 어리디 어린 여가수들의 허벅지가 드러나는 미니스커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단 소녀의 볼기를 친 사람들에게 요런 미니스커트는 그야말로 사형감 아닐지. 게다가 올봄 〈보그〉 컬렉션북 한 권을 던져준다면 책에 19금 딱지를 붙여놓을지도 모르겠다. 발렌시아가, 지방시, 맥퀸, 셀린, 에르메스 등 파리 편의 앞쪽 지면을 선점한 컬렉션들의 미니스커트들만의 공통점은? 종이로 접은 듯 칼 같고 율동감 있게 주름이 잡혀 있다는 것. 베르사체, 구찌, 돌체 앤 가바나, 프라다 등 밀라노파는 플리츠의 발랄함 대신 80년대 워킹걸 분위기다. 루이 비통을 위해 가는 주름의 미니스커트를 만든 마크 제이콥스가 쇼가 끝난 뒤 인사하러 나올 때 무릎 길이의 킬트 스커트를 나온 모습을 수단의 판사가 본다면? 10대가 아니라서, 남자라서 괜찮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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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5; AGE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은 산업혁명 때문에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다. 1930년대엔 그런 상황이 가장 모던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 ‘모던 타임즈’는? EU 정치통합, 신종플루, 세종시 등이 주제가 될 수 있을까. 각도를 틀어서 패션 쪽으로 초점을 맞췄을 때 패션 모던 타임즈라면 눈살을 찌푸리며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모던한 게 가장 모던할 뿐! 패션은 물론 리빙이나 아트 쪽에서 ‘모던하다’는 말은 간결하고 그래픽적인 느낌으로 인이 박혀 있는것도 사실이다. 바로 그것! 직선적이고 그래픽적이며 형광 컬러까지 동원해 최신식 초현대주의 이미지를 보여준 발렌시아가, 흑백의 과감한 면 분할로 시작해 눈이 팽팽 도는 지그재그 사이키델릭 무늬까지 건드린 지방시, 그리고 베르사체, 샬라얀, 셀린 등의 모던한 시대정신이란! 누군가 당신에게 “올 봄은 몇십 년대가 유행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대답하시라. 현대적이고 현재적인 것이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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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6; FABRIC
모델 애냐 루빅이 밑단을 종아리쯤에서 한 뼘쯤 걷어 올린 낡고 헤지고 큼직한 청바지에 멜빵을 맨 다음, 그 위에 비슷한 톤의 청 재킷 소매를 주름지게 올려서 입고 나왔을 때! 누구도 촌스럽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대신 거기에 곁들인 보석 장식의 은색 스트랩 힐과 세련된 제스처로 인해 데님의 새로운 스타일링 방식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건 근사했지만 새롭진 않았다. 80년대엔 다들 그렇게 입고 다녔고 그게 최신식이었으니까. 그 80년대가 지난 후, 절대 입어선 안 된다는 금기사항처럼 여겨진 옷차림이 데님 상의에 데님 하의를 짝 맞추는 것. 하지만 패션에서 금기사항은 늘 보란 듯이 박살 나게 마련이다. 데님 셔츠보다 청 남방으로 통용되던 상의에 허리선이 높고 다리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었던 대학생들(클로에는 바로 그 룩을 아주 세련된 형태로 재현했다)부터, 여기저기 물빠진 데님 소재에 이런저런 레이스 장식을 곁들여 입던 사회초년병(돌체 앤 가바나는 미니스커트와 검정 레이스로 그 룩을 ‘귀티’나게 재현했다) 등이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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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7; DETAIL
“시저 샐러드 입으실래요?” 시저 샐러드를 먹지 말고 입으라니 당최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Scissor 커팅이 Caesar 샐러드만의 풋풋함과 맛깔스러움을 그대로 닮았기에 풍자해본 것. ‘가위로 자르다’는 뜻의 ‘Scissor’라는 영어 낱말이 올봄의 중요한 세부 장식으로 부각됐다. 지난달에도 다뤘듯이 프라다는 어두침침한 회색빛 수직실크를 가위로 툭툭 잘라내 옷을 만들었고, 이브 생 로랑은 얇고 톡톡하고 순결한 흰색면을 가위로 쓱쓱 잘라내 드레스도도 디자인했다. 질 샌더와 펜디 역시 가위질을 막 끝낸 다음 며칠 방치된 옷처럼 밑단의 올이 술술 풀린 그 상태로 옷을 내놨다. 잘 생각해 보면, 이런 기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험했던 것들이다. DIY이나 리폼이 신나게 유행하던 시절, 손재주가 있는 몇몇 사람들은 티셔츠의 목선이나 팔을 가위로 도려낸 그대로 입고 다녔고, 청바지 밑단을 잘라 한올한올 올을 풀어가며 길이를 조절하고 모양을 만든 시절을 기억하는지. 바로 그 솜씨를 되살려 보시길! 옷장 안쪽에서 수트 케이스에 싸여 겨울잠 자던 재킷이 있나? 샌더를 참고해서 밑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잘라보시라. 철 지난 화이트 셔츠가 보이는가? 생 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나 진태옥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보자. 칼라나 소매단의 시접을 따라 정교하게 가위질한 뒤 입으면, 미완성이 주는 높은 완성도를 보며 풋풋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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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8; PANTS
솔직히 지금은 치마보다 바지를 언급해야 멋쟁이로 보인다. 아시다시피, 부츠컷 팬츠를 시작으로 골반바지, 스키니 팬츠, 똥싼바지 등이 스커트가 지닌 패션의 대표작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 않나. 가랑이 쪽으로 시선이 집중됐던 시절을 지나 똥싼바지의 후속타가 없는 지금, 오버롤이 출현했다. 오버롤은 스텔라 맥카트니와 정욱준의 고유 아이템이 된 올인원(좀더 감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건 꼼비네종!)의 사촌 여동생쯤? 올인원이 재킷이나 셔츠나 바지가 붙은 옷이라면, 오버롤은 멜빵 끈 두 개에 마라톤 선수들의 번호표 같은 앞장식을 바지와 연결한 옷. 명랑만화 주인공(장 폴 고티에)에서 근로자(랄프 로렌)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넘나들며 등장한 멜빵바지의 최대 단점이라면? 화장실에서 일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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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09; STYLING
존 갈리아노식 혼합에서 마크 제이콥스식 혼합으로! 시대, 역사, 지역, 문화, 예술의 꾸뛰르적 믹스 앤 매치는 좀더 스트리트적이고 캐주얼하게 진화하고 있다. 사실, 요즘 보면 몇몇 패션 단행본 서적들은 “이건 이렇게 입어야 옳습니다”라고 누가 누구를 따박따박 가르치는 사례가 많다. 그런 식의 계몽은 아무리 패션 초보자를 위한 조언이라고 해도 이번 시즌만큼은 구태의연해 보인다. 우리는 갈리아노식 혼합을 보며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별 생각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입힌 듯하지만, 실제로 그건 치밀한 계산 후 이뤄진 스타일링이란 건 볼수록 깨닫는다. 갈리아노식 패션 스튜를 맛본 뒤 우리는 셀프 스타일링에 있어 큰 모험심을 얻었다. 그 셀프 스타일링이 좀더 캐주얼 해지고 있다. 그건 제이콥스식 스튜로부터 비롯된다. 자신의 그런지 스타일과 스트리트적 감수성을 기본 재료로 루이 비통과 시그니처 컬렉션에서 보여준 정신 산만한 혼합의 레시피를 보자. 얌전한 셔츠+프릴 장식의 캐미솔 톱+흰색 러플목 장식+가는 가죽 벨트+두세 가지 색깔의 러플로 꾸며진 맨드라미 같은 무릎 길이 스커트+슬리퍼+백=마크 제이콥스! 깅엄 체크 셔츠+몸에 딱 달라붙는 귤색 톱+A라인 미니스커트+허리에 둘러맨 네이비 점퍼+가슴을 사선으로 가로질러 맨 큼직한 메신저백+모피가 달린 앵클 부츠=루이 비통! 이 역시 닥치는 대로 넣고 빼고를 반복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여자로 옷 입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마디로, 네 멋대로 입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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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yssey 10; SHOES
뮤뮤! 패션 세상에서 새끼 고양이 소리를 들은 지는 오래다. 미우미우라는 상표를 읽을 때마다 우린 늘 앙칼진 새끼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떠올렸으니까(한국에서는 ‘야옹’이지만 서양에서는 ‘뮤뮤’로 발음된다). 이번엔 또 다른 곳에서 새끼 고양이를 만나게 될 듯. 새끼 고양이나 말괄량이라는 의미의 ‘Kitten’이 올봄 구두를 새로 정의하는 낱말이다. 비통, 마르니, 카발리, 미쏘니, 자일스, 클로에 등은 엄지 발가락만한 구두 굽이 달린 곱상한 구두를 내놨다. 어정쩡한 높이라서 키튼 힐의 등장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길 멋쟁이들도 많을 것이다(특히 캣워크에서 키튼 힐은 어딘지 노숙해 보이는 건 물론 프로포션도 짜리 몽땅해 보였다). 그러나 높은 데서 내려와 낮은 곳으로 임하기 전, ‘새끼 고양이 힐’에 발뒤꿈치를 올려놓으며 잠시 기분전환 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서 새끼 고양이처럼 얌전하게 걸어보는 것! 남편을 위해 눈높이를 맞춰주는 자상하고 다소곳한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