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 송수권 잠 못 든 어느 날은 창밖을 무심히 스치는 나비 등허리에 풀밭이 흔들리고 나비가 길을 이끄는 대로 한 줄기 잠의 풀밭을 건너왔다. 부러워라 반짝이는 풀꽃 위에 잠이 든 나비 몇 마리, 얼마나 깊은 잠이 들었는지, 붉은나비 흰나비 노랑나비 검정나비 잠의 색깔도 귀여워라. 얼마나 열렬한 꿈을 꾸는지 타오르는 꿈의 빛깔도 고와라. 마가빛 강물을 이끌고 디딤돌을 놓아가다 빠져 죽는지, 불 속에서 타 죽는지 휘뜩휘뜩 솟아오르는 검정나비 흰나비 노랑나비, 이 세상은 얼마나 깊은 잠들로 가득 쌓이는지, 나비잠을 자라 나비잠을 자라 잠깬 나비들의 눈부빔, 타오르는 춤, 우리는 또 얼마나 깊은 잠이 드는지 아가야, 너는 벌써 이마에 손을 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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